Various Artists : O.S.T. “Up in the 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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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Up in the Air> 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순서에 크게 어긋남이 없이 차례를 지키며 나타나고 사라지는 14곡의 영화 삽입곡들이 들어 있다. 이 영화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곡들이 있는 반면, 엘리엇 스미스처럼 감독의 취향이 솔직하게 드러나는 선곡도 있다. 모든 곡들은 크게 튀는 구석없이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으며, 음악을 들으면 아, 어느 장면쯤에 나왔었구나, 하는 생각을 능히 할 수 있을 만큼 영화와도 썩 잘 어울린다.

레이트먼 감독은 음악을 자신의 영화에 효과적으로 이용할 줄 아는 감독같다. <주노>만 봐도, 소닉 유스의 “superstar” 커버곡이 영화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상기하면 특이할만한 사항도 아니다. 레이트먼의 영화를 딱 두편 보았지만, 그가 인간이라는 생명체를 대하는 방식이 퍽이나 마음에 든다. 따뜻한 인간미를 발견해 내고 부각시키는 데 포크 음악만큼 어울리는 장르도 없다. 차가운 금속성의 비행기와 공항, 그리고 일반인과 다른 삶을 사는 ‘잘나가는’ 한 비지니스맨의 흔적을 쫓아가는 이 영화에 포크 음악이 광범위하게 쓰인다는 건 어찌보면 꽤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영화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이유는, 감독의 시선이 그 비지니스맨의 외향을 향하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조지 클루니의 눈동자가 그토록 따뜻해 보일 수 있었던 것도 다 같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요즘 잘나가는 곡은 “Help Yourself” 인 듯 한데, 나의 베스트 트랙은 “Be yourself” 다. 1971 년 데모버젼이라고 하니 감독의 덕후력이 대충 짐작이 간다. 유튜브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곡이다.

Jason Reitman : Up in the Air

[주노] 를 너무 인상깊게 봤는데, 사실 [주노] 를 보고 나서 머릿속에 각인된 사람은 감독인 레이트먼이 아니라 주연 배우였던 앨런 페이지와 각본을 썼던 디아블로 코디였던 것 같다. 하지만 디아블로 코디의 감칠맛 나는 대사를 화면으로 자연스럽게 옮기고, 앨런 페이지의 아이디어들을 받아들여 아름다운 하모니를 연출했던 사람은 바로 감독인 레이트먼이었다. [up in the air] 는 그의 후속작이다. 한국에서는 [마일리지] 라는 기괴한 이름으로 개봉한다던데, 이 영화를 나중에라도 보신다면 한국어 작명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무지에서 비롯되었는지 알게 되실 것이다. [up in the air] 를 그대로 가져다 쓰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내 아이디어는 [사랑도 마일리지가 되나요] 였다. 물론 한국어 제목을 듣고 비꼬듯이 한 말이다.

조지 클루니가 분한 라이언 빙햄은 특이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해고를 대행해 주는 일이다. 어느 회사나 해고를 할 때 얼굴을 마주 대하고 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문자나 이메일로 해고를 통보하는 건 미국식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으니, 라이언처럼 얼굴 괜찮고 말주변이 좋아 사람을 잘 달래는 재주를 가진 사람을 대신 고용해 해고를 하는 것이다. 경기가 불황일수록, 라이언은 더 바빠진다. 그는 집보다는 호텔이 훨씬 편하고, 검색대를 통과하는 데에 귀신이며, 패키지를 간편하게 꾸리는 데에도 선수다. 그의 커리어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서 ‘백팩’ 을 인생에 비유해 커리어 조언을 하는 강연을 겸하기도 한다. 경력이 특이하긴 하지만 잘나가는 비지니스맨이다. 그는 공항 호텔에서 알렉스 (베라 파미가가 분했다) 라는 매력적인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비슷한 시기에 나탈리라는 신참을 받아들여 함께 전국을 순회하며 그에게 ‘해고를 잘하는 법’ 을 가르친다. 그 와중에 라이언의 조카의 결혼식이 다가오고, 조카에게 선물할 재미있는 사진을 찍어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나름 반전이 있기 때문에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정도에서 그만 써도 될 듯 하다. 사실 줄거리가 중요한 영화는 아니다. 다만 대사는 하나도 놓치지 말고 잘 들어야 한다. [주노] 보다 더 감칠맛나고 현실적이며 동시에 통찰력있는 대사들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수십개의 미국 도시들이 배경으로 등장하지만 결국 세명의 배우에게만 집중해야 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나는 조지 클루니를 좋아하고, 베라 파미가를 무척 좋아하는데, 이 영화에서 이 두명의 연기 앙상블은 한마디로 “끝내준다”. Two thumbs up! 개인적으로 헐리우드에서 표정연기가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조지 클루니를 꼽는다. [마이클 클레이튼] 의 엔딩씬을 기억하시는지. 영원히 잊지 못할 그 표정에서 나는 조지 클루니가 가진 재능의 극한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영화는, 어찌보면 뻔한 가치를 결론으로 내세운다. 대사에서 찾을 수 있는데, 결혼에 회의적인 라이언이 조카의 신랑에게 하는 한마디.

“Life’s better with company.”

뻔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언제나 새겨 들을수 밖에 없는 그런 가치.. 라이언의 집의 황량하다 못해 인간미가 전혀 없다.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오마하에 자리잡고 있는 그의 집은 극단적으로 흰색이 강조되는데, 이 영화에 쓰인 흰색은 공허함, 혹은 외로움을 상징하는 색인 듯 하다. 그에겐 호텔 키가 집 열쇠보다 더 편하고, 항공사 1등 회원권이 운전면허증보다 더 좋은 신분증이 된다. American Airline 에서 10만마일 이상 여행한 고객에게 주는 황금카드를 선물받고 노령의 기장에게 어디에서 왔냐는 물음을 받았을 때 라이언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I’m from here.”

라고 대답한다. 그럴수밖에 없다. 그는 자신의 real life 를 갖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 왔으며, 고향과 가족없이 횡량한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조카의 결혼식에 알렉스와 함께 참석한 뒤 라이언은 그의 누나에게

“Welcome back.”

이라는 인사말을 건네받는다. 그는 가족과도 관계가 소원했다. 그는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자신의 real life 가 결국 사랑임을 깨닫고 알렉스에게 달려가지만, 알렉스는 그에게 이렇게 답한다.

“You are parenthesis.”

라이언은 그녀에게

“I thought I was part of your real life.”

라고 울먹이지만, 아무 소용없는 일. 하지만 전체적인 결론은 비극이 아니다. 라이언은 다른 누군가를 위해 그의 real life 로부터 깨달은 가치를 선물하게 된다. 너무 늦게 깨달은 단순하면서도 소중한 가치를,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해주려고 애쓰는 라이언의 모습에서 밝은 기운을 느꼈다.

라이언은 사람을 해고하면서 항상 말한다. “새로운 인생의 시작” 이라고. 하지만 영화의 처음과 끝에 실제로 해고당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나오는데, 이와는 다른것들을 많이 생각하게 했다.

이 외에도 인상적인 대사들이 많았는데, 내 영어가 짧은 관계로 옮기지 못하는 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영화는 대단히 좋다. 미국 독립영화 감독이 메이저로 올라와 좋은 배우들과 함께 하면 어떤 결과물을 내어 놓을지에 대한 훌륭한 대답이다. 공항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특히나 더 좋아하실 것이고, 미국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신 분들이라면 반가운 장면들이 많을 것 같다. 나는, 그저 조지 클루니와 베라 파미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했다. 음악이 좋은 것은 덤이다. [주노] 에서 이미 확인한 바이지만 레이트먼의 음악 선곡 센스는 대단히 탁월하다. OST 를 사야겠다고 다짐하며 나왔다.

추신. 나중에 혹여 보시거든, 영화가 끝나도 자막이 올라올때 계속 앉아서 기다리시길. 영화 제목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