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과 서민

정치권에서 툭하면 나오는 구호가 “우리는 서민을 사랑해요” “우리는 중산층을 위한 정책을 가지고 있어요” 같은 문구들이다. 이런 문구들이 한나라당에까지 보편화된 이유로는 재정학에서 흔히 등장하는 median voter theorem 같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현 민주주의 체제하에서의 투표 규칙을 따르다 보면 양극단을 점점 피하게 되고 중위투표자의 의사에 의해 승자가 결정된다는 이론인데, 이 이론에 따르면 극단적인 정치 구호 – 극좌나 극우 – 를 가급적 피하고 중도적인 정책에 대한 선전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투표자들은 자신이 한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중간의 어디쯤에 속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산층” 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집단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에서 발표한 중산층의 정의에 따르면 연봉이 8,000 이상은 되어야 중산층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현재 한국에서 연봉 8,000만원 이상인 사람은 전체 인구의 약 3.1% 라고 하는데, (정확하지 않다. 아마 이보다는 좀 많을 듯) 그렇다면 이건  더이상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는 계급을 나타내는 단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중산층의 정의는 마르크스 이론까지 타고 올라가야 가능하다.  고전적인 맑시즘에 따르면 中産層 은 유산계급과 무산계급 사이에 위치한 중간 계층을 지칭한다. 프롤레타리아와는 달리 사유재산을 보유하고 있지만 자본가는 아닌 계층, 요즘말로 하면 화이트칼라쯤 될까? 맑시즘에 따르면 이들 역시 프롤레타리아에 포함되는데, 왜냐하면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보자면 자본가 계층에게 노동력을 공급해야만 잉여를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는 케인즈 이후 본격적인 자본주의의 심화와 노동조합의 발달에서 현대적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굵직한 국책사업들이 실행되고 자본가들의 덩치가 커지면서 노동계급과 자본계급 사이에 갈등이 심화됐고, 자본계급이 노동조합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하면서 이 두 계급 사이에 중간자적인 위치의 새로운 계급을 탄생시키고 육성시킨 것이 바로 오늘날의화이트칼라, 즉 중산층이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막기 위해 극단적인 갈등을 줄여주며 완충 작용을 해주는 존재로 가치를 인정받아 온 것이 이 중산층 계급이다. 사유재산의 축적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노동자 계급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본자 계급으로의 신분 상승또한 쉽지 않은, 적당한 수준의 소비 수준을 유지하면서 예술적, 문화적 영역에서의 소비 수준은 노동자 계급을 능가하는 계층이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런 원초적인 기원들을 따지고 들어가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회사에 다니면서 지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월급쟁이들을 어느 카테고리에 넣어야 할지 약간 애매해진다.

왜냐하면 “서민” 에 대한 정의는 따로 없기 때문이다. 서민은 모든 일반 국민을 지칭하기도 하고, 역사적으로 볼때 천민층 바로 위에 위치했던 상인층이 성장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수입 수준이나 사유 재산의 축적 유무로는 오늘날 판단을 내리기 힘든 측면이 있거니와, 현대처럼 직업의 분화가 극단적으로 심화된 세상에서 노동의 종류로 분류를 해내기도 쉽지 않다. 결국 뭉뚱그려서 중산층이 서민이라는 더 큰 카테고리에 포함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서민” 에 속한다는 것을 그리 달갑게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왠지 이 단어에서 느껴지는 뉘앙스가 그리 고급스러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직관적으로 생각할 때 한국 사람들은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을 조금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공장에 나가는 노동자, 혹은 고졸 출신 노동자가대졸 출신 대기업 회사원과 중매를 통해 결혼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사회학 이론중에 social distance 라는 것이 있다. 막말로 내가 부암동에 산다고 해도 바로옆 청와대에 사는 대통령과 길에서 마주치거나 커피를 한잔 할 확률은 제로에 수렴한다. 사회적 계층에 따라 접촉할 확률과 그들만의 그룹을 형성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이론이다.

결국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모두가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제 그들이 얼마나 이 계급에 대해 알고 있는지는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어쩌면 이들은 중산층 혹은 서민의 정의에 대해 전혀 생각해보지 않고 마구 말들을 뱉고 있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대다수 국회의원들은 자본가 계급 출신이기 때문이다.  social distance 이론에 따르면 현직 국회의원중 실제 서민 생활을 체험해 본 사람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현 민주주의 제도하에서는 자본의 힘이 국회의원 당선 확률과도 관계가 깊다. 결국 특정 소수 계층에서 육성된 인원들이 전체 다수의 의견을 수렴하고 그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본질적인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결국 혁명인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