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c DeMarco: This Old D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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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 드마르코는 음악을 무척 잘 알고, 또 잘 하는 아티스트다. 인디씬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전작 [Salad Days]가 씬에서의 드마르코의 위상을 정립해준 작품이라면, 이번 신작 [This Old Dog]은 조금 더 개인적으로 침잠해들어간 드마르코의 또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발가벗고 찍은 뮤직비디오처럼, 혹은 팬티 한장만 걸치고 노래한 프리마 베라 무대처럼, 드마르코는 이번 작품에서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듯 보인다. 타고난 송라이터이자 뛰어난 스토리텔러이기도 한 그의 모습에 반한 일반 인디팬들이 그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미리 짐작이라도 했다는 듯, 그는 술술 자신과 그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근 조근 풀어놓는다.(그의 유쾌한 엄마에 대해 알게 된다면 아마도 확실히 그의 성장배경을 궁금해하게 될 것이다) 다만, 팬들이 듣고 싶어하지 않는 내용, 때론 불편할 수도 있는 내용에 대해서도 가감없이 이야기한다는 사실이 드마르코다운 기분좋은 배신으로 다가온다. 살짝 늘어난 테이프의 소리를 그대로 차용한 짦은 소품 “Sister”처럼 드마르코는 기억 저편으로 숨겨버리고 싶은 과거의 이야기들을 날것 그대로 꺼내놓고 그가 지금까지 축적한 아름다운 그만의 음악세계에서 달콤하게 요리해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음반은 수프얀 스티븐스의 기념비적인 음반 [Carrie & Lowell]과 정체성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스티븐스가 그만의 조용한 장광설을 개인사에 투영시키며 한 아티스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정점을 만들어냈듯, 드마르코는 그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개인사를 가장 그다운 방식으로 풀어내며 음악적 커리어의 극초반기를 정리하려는 듯 보인다.

맥 드마르코는 이 시대에 몇 남지 않은 진정한 크루너 중 한 명이다. 크루닝의 본질은 스토리텔링에 있다. 그때문인지 전작에 비해 자칫 심심해보일 수도 있는 음반 내 곡구성이 오히려 그의 음악적 정체성을 보다 확고하게 정립시키는 순기능으로 다가온다. “A Wolf Who Wears Sheeps Clothes”와 같은 경쾌한 노래가 “One More Love Song”, “On the Level” 등이 가진 멜랑꼴리한 정서와 무리없이 섞여 들 수 있고, “My Old Man”이 “This Old Dog”과 같은 음반의 타이틀곡 격인 노래를 소개하는 충실한 오프닝송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것도 이때문이다.  음반은 조금 더 차분해졌지만 지루하거나 뻔하지 않다. 여전히 그의 세계를 단단하게 반영하고 있다. 그는 이미 음악을 잘 알고 있었고, 여전히 음악을 잘 하고 있다. 이제 그의 팬들은 그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었을 것이다. 맥 드마르코 월드는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Slowdive: Slowd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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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de, My Bloody Valentine과 동시대에 활약했던 슈게이즈-인디록 밴드 Slowdive가 22년만에 셀프타이플 4집 음반을 들고 돌아왔다. 22년만에 새음반을 발매한 것도 놀랍지만 1991년 메이저 데뷔 후 지금까지 단 네 장의 정규 음반만을 기록한 심플한 디스코그래피가 더 놀랍다. 그만큼 슬로우다이브는 ‘듣기 쉽지 않은’ 밴드였다. 1993년작 [Souvlaki]와 1995년작 [Pygmalion]은 슈게이징, 혹은 브릿팝 팬이라면 한번쯤 들어봣을 명작이었지만 국내에 정식으로 발매되지 않아 비싼 수입반으로 챙겨두어야 했던 빘한 “필수템” 이었다.

2013년 돌아오기 전까지 단 세 장의 단촐한 디스코그래피를 자랑(..)하는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이 복귀작이자 네번째 음반 [m b v]를 통해 탄탄한 ‘기본기’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었듯, 슬로우다이브의 복귀작 [Slowdive] 역시 왜 이들이 짧은 활동기간에도 불구하고 슈게이즈/드림 계열에서 전설로 통하는지, 왜 이들의 음악이 2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인구에 회자되며 즐겨 플레이되고 있는지 명확하게 증명해내고 있다.

첫 곡 “Slomo”의 처음 30초에서 이미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의 서늘한 감동이 밀려오는데 이와 비슷한 높이의 감정적 파고가 음반이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90년대 해왔던 그 방식 그대로 노래를 제조하는데 그 안에 담긴 깊이는 22년동안 훨씬 성숙되었다. 똑같은 그릇을 만들어도, 똑같은 커피를 한잔 내려도 그 과정에 개입하는 사람의 손길에 따라 결과물의 차원이 달라지는 것처럼, 그 사람의 손길에 영향을 미치는 ‘숨결’, 혹은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의 깊이에 따라 손길의 차원이 달라지는 것처럼 슬로우다이브의 새음반은 전작들과 비슷하면서도 또 다르다. 다른 차원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요즘 음악들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시대착오적’인 순간들이 짙게 드리워져 있어서 더 그렇게 느끼는건가 싶다. 시대를 억지로 무시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시대의 눈치를 보지도 않는 초연함이 음반의 처음부터 끝까지 흐르는 일관된 정서 중 하나다. 이 초연함은 아마도 시간을 정직하게 흘려보낸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강점일 것이다. 대부분의 노래가 5분에 육박하고 8분의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곡이 있을 정도로 구성이 단순하지 않지만 매 곡을 소화하는데 아무런 무리가 없을 정도로 부드럽고 달콤하다. 서늘한 긴장감과 아름다운 포만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명반이다. “Star Roving,” “Everyone Knows,” “No Longer Making Time”과 같은 명곡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고, 어느 한 곡 버릴 것이 없다.

Bobo Yéyé: Belle Époque In Upper Vol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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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이유들로 동시대에서 제대로 된 조명을 받지 못한채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진 숨은 명반을 찾아내 재발매하는 시카고 기반의 인디 레이블 누메로의 작업들은 명시적인 시대적 공헌 뿐 아니라 음반 자체의 높은 퀄리티로 많은 주목을 받아 왔다. 나 역시 이들이 발매하는 음반들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어 여유가 있을 때마다 한 장씩 구입한다. 193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오래된 음반들이 대부분이기에 정보나 지식이 현저히 부족한 나는 음반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반드시 읽는 편인데, 누메로가 밝히는 기본적인 정보들에서 음반의 주인공들의 삶에 대한 관심이 부쩍 생기는 음반들에 먼저 손이 가게 된다.

말리 음악에 대한 서구(및 우리나라) 음악팬의 관심은 지난 10,20년 간 부쩍 늘어났다고 말할 수 있지만, 말리와 접경해 있는 브루키나파소의 음악이 가진 세계적인 명성은 그보다는 조금 낮은 편인 것 같다. 이번에 누메로에서 내놓은 [Bobo Yéyé: Belle Époque In Upper Volta]는 1983년 군부 쿠데타에 의해 브루키나파소가 건립되기 전 동지역에 존재했던 오트볼타(Republic of Upper Volta)시절 음악들을 세장의 음반에 모아놓았다. 이웃나라 말리와 마찬가지로 볼타는 20세기초부터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고 1958년 독립했다. 프랑스 식민지배 기간동안 서구의 음악문화가  자연스럽게 많이 유입되었을 것이고, 독립 이후 Bobo-Dioulasso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클럽, 밴드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음반의 첫번째 장은 볼타 재즈 오케스트라(Orchestre Volta-Jazz)의 노래들 중 대표곡들을 엄선해서 뽑았다. 당시 오트볼타의 음악은 프랑스 식민지배세력 뿐 아니라 말리 음악씬으로부터도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 볼타 재즈 오케스트라의 초기 주축 멤버였던 Tiemoko Traoré 와 Tidiani Coulibaly 역시 말리에서 음악을 배워 와서 보보에서 음악을 시작했다. 보보 지역에서 첫번째 운전면허학원을 차려 재정적인 여유를 가지고 있던 Idrissa Koné가 매니지먼트를 총괄하기 시작하면서 밴드는 전성기를 맞기 시작한다. 볼타 재즈 오케스트라의 음악은 Senufo와 Mandingo라고 불리우는 지역 민속음악에 쿠바 리듬과 일렉트로닉 기타사운드를 뒤섞은 독특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가끔 신중현과 김정미같은 한국의 선구적인 록음악과 비슷한 색채를 느낄 수 있는데, 서구 음악의 유산을 짧은 식민지시대로부터 물려 받아 지역 전통음악(우리나라는 민요, 혹은 엔카-ish가 되려나)과 교배를 이룬, 완전히 독립적인 두 지역의 음악이  비슷한 결과물을 보여준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소위 말하는 식민지 정서, 혹은 한이라는 정서가 공통적으로 존재했는지, 그것이 음악에 영향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밴드의 전성기는 멤버 간 불협화음과 새로운 트렌드를 적극 받아들인 신진 세력들에 의한 위상 하락 등이 겹치면서 짧은 시간동안만 지속되었다. 1977년 Koné가 밴드의 이름으로 음반을 냈지만 사실상 혼자 제작하면서 밴드의 명맥은 끊기게 되었고, 1983년 쿠데타에 의해 사회주의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완전히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음반의 두번째 장은 볼타 재즈의 주축 멤버였던 Tidiani Coulibaly의 개인 작품들을 모았다. 말리 지역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티디아니 쿨리발리는 아이보리 코스트 지역에서 철도노동자로 일하다 1962년 볼타 재즈에 합류했다. 약 10년간의 볼타 재즈 활동을 정리하는 그는 이후 Dafra Star 앙삼블로 활동했다. 이 시기가 쿨리발리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두번째 음반을 제작하기 위해 보보에서 500마일 떨어진 곳까지 여행을 가야 했을 정도로 당시 볼타 음악가들의 사정은 그리 풍족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이런 저런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쿨리발리는 아름다운 음악들을 기록으로 남겼고, 누메로가 그 유산을 발견하여 말끔한 음반으로 재탄생시켰다. 쿨리발리의 음악은 볼타 재즈 오케스트라보다 조금 더 부드럽고 유연한 보컬 중심의 세련된 팝음악을 구사한다. 역시 만딩고 음악을 주된 뿌리로 삼지만 민속음악과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샹송과 아프로팝에 대한 애정을 강하게 드러낸다. 쿨리발리는 80년대 초 정권이 바뀌고 나라가 바뀌면서 음악계에서 은퇴를 선언했고 그로 인해 Djoliba National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National Treasure”라는 뜻이라고 한다.

세번째 장은 Echo-Del-Africa와 Les Imbattables Léopards의 음악이 섞여 있다. Echo-Del-Africa는 Dynamic Jazz로 활동했던 Yaya Konaté와 볼타 재즈에서 보컬리스트로 활동한 Antoine D’Albin이 주축이 되어 1974년 결성한 밴드다. Les Imbattables Léopards는 10대 시절부터 보보 지역 클럽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한  Idrissa Ouédraogo가 중심이 되어 1970년 결성된 빅밴드였다. 두 밴드는 보보 지역의 문화적 전성기였던 1970년대가 품었던 에너지의 수혜를 강하게 받았다고 한다. 이 두 밴드는 재즈와 팝, 만딩고와 세누포, 샹송과 아메리칸 록음악이 뒤섞여 볼타만의 독특한 음악적 정체성을 형성했다. 이 지역의 문화적 융성기는 앞서 말했던 바와 같이 사회주의 정권이 브루키나파소를 건립하고 프랑스 문화와의 단절을 선포하면서 빠르게 식어갔다. 이후 경제정책 실패와 끊임없는 내전으로 피폐해진 국가경제와 함께 볼타, 혹은 브루키나파소의 음악은 다른 아프리칸 음악들에 비해 더 빠르게 잊혀지게 되었다.

여행을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한국에서 태어나 서아프리카 연안 국가에 장기간 체류하며 그 나라의 음악을 깊이있게 들을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누메로의 복각 작업은 흥미로움을 넘어선 고마움까지 느끼게 만든다. 앞으로 여기에 곧 기록하게 될 Wee의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대학생을 총으로 살해한 혐의로 30년 째 복역중인 Norman Whiteside가 만든 Wee의 [You can Fly on My Aeroplane]은 소울의 정수를 담아낸 명반이다. 최근 그가 살해사건이 발생할 당시 사건 현장에 존재하지 않았고 방아쇠도 당기지 않았다는 조사결과가 밝혀지며 구명운동이 한참 벌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런 구구절절한 사연을 가진 음악가들의 음악을, 비록 3,40년이 지났지만 어쨌든 동아시아 끝단에 자리잡은 작은 나라에서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 좋은 시대에 태어났다.

Vagabon: Infinite Worl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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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룬 태생으로 십대 시절을 미국 뉴욕 근방에서 보낸 이민자 가정 출신의 Laetitia Tamko의 무대이름 Vagabon의 데뷔 음반 [Infinite Worlds]는 20분이 조금 넘을 정도로 아주 짧다. 2,3분 내외의 짦은 곡이 딱 8개 수록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임팩트는 결코 작지 않다. 아마도 올해 들어 제대로 된 ‘발견’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의 최초의 음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단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우선 음악적 완성도는 기본이다. 헤비한 인디록부터 인디포크까지 다양한 장르를 본인의 바탕 위에 무리 없이 풀어내고 있다. 악기 연주부터 녹음까지 거의 모든 부분을 본인 혼자의 힘으로 해낸, 요즘 보기 드문 DIY 음반임에도 불구하고 사운드의 품질은 결코 로파이하지 않다. 음악의 결이 성긴 것과 사운드의 질이 거친 것은 완전히 다른 의미인데, 배가본은 그 둘을 절묘하게 분리하며 각각의 지점에서 제대로 된 성취를 해내고 있다. 중요한 것은 가사인데, 단순히 이민자의 눈으로 바라본 미국사회, 혹은 디아스포라 예술 계열로 분리해버리기에는 그녀가 가진 섬세한 시선이 너무나 곱고 아름답다. 너무나 가볍게 스쳐지나치기 때문에 차마 가벼운 시선조차 주기 힘든 일상의 사소한 지점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그녀의 감성은 이 시대의 인디음악이 파고들어야 하는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음악의 형식부터 완성도, 음악 제작 과정, 그리고 메시지까지 한 색깔 위에서 가지런하게 공유하는 지점이 존재하며, 이 지점이 오직 배가본만이 창조해낼 수 있는, 그녀만의 오리지널한 세계라면, 우리는 그녀의 음악을 매우 소중하게 다루어야 할 사명감을 지니게 된다. 대단히 뛰어난 데뷔 음반이자 올해의 음반 목록에서도 반드시 거론되어야 하는 명반이다.

Charly Bliss: Gu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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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인디록 밴드 Charly Bliss의 데뷔음반 [Guppy]를 듣고 있다 보면 좋은 음악이 탄생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가 비단 개인의 재능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러니까 음악의 장르를 결정짓는 지역성, 문화적 인프라와 같은 잘 알려진 환경요소 뿐 아니라 무형의 문화적 배경이 개인의 재능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다. 코네티컷의 한 동네에서 좀 특이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아이로 유명했던 Eva Hendricks는 혼자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다 밴드를 만들고 싶어 사람을 찾던 중 한 인디밴드 공연장에서 Spencer Fox라는 사람을 만나 함께 합주를 시작한다. 마침 에바의 전 애인이었던 Dan Shure가 베이스를 칠 줄 안다고 해서 무작정 합류시켰고 드럼은 에바의 오빠인 Sam Hendricks에게 맡겼다. 그러다가 에바가 NYU에 진학하면서 밴드는 근거지를 뉴욕으로 옮기게 되었고, 그곳에서 2013년부터 줄기차게 공연을 하면서 명성도 쌓고 EP도 내다가 슬리터-키니, 도쿄 폴리스 클럽 등의 오프닝을 맡으면서 계약을 체결하고 데뷔 음반도 냈다는, 그렇게 좋은 평를 받은 그 음반과 함께 지금 열심히 본인들만의 투어를 돌고 있다는, 전형적인 인디밴드 성공스토리를 써내려가고 있다. 어쩌면 미국에서는 아주 평범한, 1년에 수십 차례 가까이 등장하는 고만고만한 인디밴드의 성공적인 데뷔 뒷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만약 이들이 서울에 태어났다면,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에바의 경우 아마도 공부를 하느라 밴드를 해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아니 그 전에 음악은 무슨 음악이냐며 부모님께 혼나면서 풀이 많이 죽었을 것이다. 코네티컷과 뉴욕이라는 배경이 이들에게 어떤 기회를 준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이것이 재능으로 발전되는 ‘채널’이 한국보다 훨씬 잘 뚫려 있다는게 부러울 따름이다. 이것은 단순히 ‘열려 있는’ 사회구조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밴드를 하고자 마음먹으면 밴드를 할 수 있는 ‘단단한’ 사회적 뒷받침이 부러운 것이다.

이들의 음악에는 둔탁한 그런지 사운드와 밝은 팝 멜로디가 공존하고 있다. 에바 헨드릭스는 아마도 이 두 요소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본인의 목소리가 달콤한 멜로디라인에 잘 쓰일 수 있음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블 기타가 육중하게 내리찍는 얼터너티브 사운드에서 물려받은 유산을 거부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그 해결책으로 속도를 택한 듯 보인다. 모든 곡은 빠르게 시작해서 빠르게 끝난다. 좋은 훅을 가지고 있는 멜로딕한 후렴구와 시원하게 내지르는 두꺼운 기타사운드가 쉴새없이 몰아친다. 30분 정도에 불과한 짧은 러닝타임은 그래서 큰 흉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 아쉽지만, 더 길게 끌었다면 자칫 지겨울 뻔 했다. 시원하게 시작해서 깔끔하게 끝나는 좋은 구성의 음반이다. 그래서 두번째 음반에서 조금 더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숙제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밖에 없다.

Julie Byrne: Not Even Happ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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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장의 음반만으로 조니 미첼과 바쉬티 번얀의 재림이라는 찬사를 받는 줄리 번은 미국 뉴욕버팔로 출신의 포크 싱어송라이터다. 기타를 즐겨 치던 아버지에게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배웠고, 그 아버지가 동맥경화로 더이상 음악을 부를 수 없게 되자 집을 떠나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며 생활했다고 한다. 시카고에서 마트 점원으로 일하던 중 본격적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했고, 여기서 2014년 첫번째 음반 [Rooms with Walls and Windows]를 홈레코딩 방식으로 (테이프에!) 제작하여 시카고 인근 인디 레코드샵에 소량 배포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매체에서 그해 최고의 음반으로 선정되었다. 두번째 음반이자 레이블과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발매한 첫번째 음반 [Not Even Happiness]는 뉴올리언스로 건너와 만난 음악인들과 만들었는데, 이 음반 역시 그녀가 어렸을 때 살았던 버팔로의 부모님댁에서 홈레코딩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30분 남짓한 이 짧은 음반에서 그녀는 통기타와 바이올린 등 최소한의 악기 위에 깊고 그윽한 보컬을 얹어 정통 미국 포크 음악의 진수를 느끼게 만든다. 이제 막 데뷔한 그녀가 시적인 가사와 아름다운 멜로디를 매 노래마다 써내려갈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삶에 대한 애착과 관찰력이 아닐까 싶다. 짧은 뉴올리언스 생활을 마무리하고 뉴욕으로 돌아온 그녀는 센트럴 파크에서 공원 관리원(ranger)으로 일했다고 한다. 학위를 받지 못했지만 대학에서 공부한 전공도 환경과학(Environmental Science). 2017년 스테레오검과의 인터뷰에서 이미 “(공원은) 뉴요커에게 자연과의 연결점을 확보하는 지점일 뿐 아니라 동물들에게 삶의 피난처로 기능하기 때문에 이 자원봉사 활동을 좋아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자연과 인간을 동등하게 바라보는 그녀의 관조적 시선은 노래 곳곳에 잘 녹아들어있다. 음반을 듣는 내내 팽팽한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인상깊게 듣고 있는 음반들.

이직 후 생활리듬을 되찾기 시작하면서 음악을 다시 듣기 시작했다. 나에게 음악은 일상의 영역에 있기도 하지만 감정의 영역을 지배하는 주된 인자이기도 해서 감정이 고르지 못한 시기에는 음악이 잘 들리지 않는 경향이 있다. 마음이 한참 어지러웠던 지난 몇달 간 음악을 거의 듣지 못했다. 평이 좋은 신보만 대충 메타그리틱이나 앨범오브더이어에서 체크하고 넘어가는 정도였다. 새 직장에 무사히 안착하면서 최근 다시 음반을 주문했다. 그것도 한뭉텅이로. 올해 나온 좋은 음반들을 한꺼번에 주문하느라 그렇게 되었다. 운이 좋게도 보물같은 순간들이 많이 담겨 있었다. 하나 하나  되새김질하기 전에 간단하게 메모라도 해두고 넘어가야겠다 싶다.

Infinite Worlds by Vagabon

아마존에서 총 열장의 음반을 주문했는데 오토립 서비스를 통해 가장 먼저 들어본 음반이다.  거의 대부분의 매체에서 고르게 호평을 받고 있는데 이전까지 전혀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어서 호기심이 발동했다. ‘vagabond’의 의도적 오타일 것으로 짐작되는 이름은 카메룬 출신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Laetitia Tamko의 무대이름이다.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이민을 왔을 때 그녀는 고등학생이었고 그때부터 악기를 배우기 시작해 지난해 첫 EP를 냈다.  로파이 인디록이라고 뭉뚱그려 묘사할 수도 있겠지만 듣다보면 정제되지 않은 톤에서 남들과 다른 차원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그리고 그 거대한 에너지의 원천이 가사에서 나온다는 것이 이 음반이 가진 가치의 핵심이다. 우리가 쉽게 지나쳐가는 일상의 작은 파편들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그녀의 감성은 ‘인디’의 핵심 철학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것 같다.

The Order of Time by Valerie June

요즘 인디씬에서 가장 핫한 아티스트인 발레리 준의 두번째 음반인데 듣던 명성대로 탄탄한 소리를 들려준다. 미국 포크 음악에 블루스와 아프리칸 리듬을 끼얹은 사운드스케이프가 매력적이다. 소문에 의하면 스튜디오 음반보다 라이브 무대에서 진가가 드러난다고 한다. 음반으로 들어도 이미 꽉찬 사운드에 마음이 쉽게 풍성해지는데 공연은 또 얼마나 좋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Memories Are Now by Jesca Hoop

요즘 미국 인디 포크 씬이 심상치 않다. 특히 블루스, 일렉트로닉, 컨트리, 인디 록 등 이웃한 장르와 교배하여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제스카 훕은 그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다. 올뮤직의 평가대로 폴 사이먼, 조니 미첼, 바쉬티 번얀 등의 영향력이 느껴지지만 역시 그녀의 커리어를 이야기할 때 뺴놓을 수 없는 사람은 톰 웨이츠다. 몰몬 집안에서 성장한 그녀는 부모의 이혼으로 미국 여기저기를 떠돌게 되는데, 그 와중에 톰 웨이츠 가정의 가정부로 5년 간 생활하게 된다. 이 기간동안 제스카 훕의 스펙트럼도 극적으로 넓어지게 된다. 소위 조아나 뉴섬 류의 “new weird Americana” 카테고리에 묶일 수 있을 법 한 그녀의 음악은 현대 인디 포크 씬이 어디까지 진화했는지 보여주는 좋은 이정표로 읽힐 수 있다.

Sick Scenes by Los Campesinos!

이제 관록의 중견 인디록 밴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로스 깜페지노스!의 무려 일곱번째 정규 음반이다. Wichita 레이블로 옮긴 뒤에는 두번째로 내놓는 음반으로 전작 가 2013년에 나왔으니 그 간격이 4년 정도로 그들의 부지런함을 생각했을 때 꽤 긴 편이다. 에서 보여주었던 넘치는 에너지와 불안한 청년 정서의 묘한 공존이 불러일으키는 특유의 감성이 좋아서 이후 계속 찾아 듣고 있는데 에서는 그 힘이 조금 떨어진 느낌이 든다. 메이저 데뷔로부터 벌써 10년이 지났으니 이제 아저씨 아줌마가 된 이들이 전과 같은 수준의 에너지로 노래를 부를 것이라는 기대는 더이상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그래도 그 감성만큼은 여전하다. 범작의 범위를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팬들에게는 여전히 반가운 음반.

Heba by Lowly

덴마크 출신 드림팝 그룹의 데뷔 음반이다. 드림팝 장르는 왠만하면 다 좋다 좋다 이쁘다 이쁘다 하고 넘어갈 정도로 개인적인 선호도가 있는데, 이 음반 역시 오구오구 좋구나 좋구나 소리가 절로 나오는 곡들을 꽤 많이 가지고 있다. 꼭토 트윈스의 강한 영향력을 느낄 수 있는 이들의 음악은 현지에서 비치 하우스, 엠프레스 오브 등과 비교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들보다는 약간 더 일렉트로닉한 쪽으로 기운 드림팝을 하는 것 같다. 좋은 곡들이 많다. 곡들 간 편차도 꽤 있는 편이다.

Guppy by Charly Bliss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인디록 밴드의 데뷔 음반인데, 슬리터-키니, 도쿄 폴리스 클럽 류, 그러니까 ‘위저의 아이들’로 분류될 법한 기타 중심의 음악을 구사한다. 흥미로운 것은 매 트랙이 거슬림 없이 쉽고 부드럽게 넘어간다는 점인데 데뷔작에서 이정도의 능숙함을 구사한다는 것이 꽤 인상적으로 느껴진다. 아직 몇번 들어보지 않아서 조금 더 들어봐야 진가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Bandwagonesque by Teenage Fanclub

최근 애플뮤직에서 90년대 인디록 컴필레이션을 듣다가 귀에 확 꽂혀서 갑자기 주문장에 추가하게 되었다. 틴에이지 팬클럽의 음악은 항상 좋지만 이 음반이 가진 위력은 역사적이라고 할 만큼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악의 표지만큼이나 기억에 오래 각인될 음반.

Powerplant by Girlpool

친애하는 여성 듀오 걸풀의 두번째 음반이 나왔다. 기타와 베이스, 그리고 두 명의 하모니만으로 완성되는 사운드는 구성만으로 이미 독특한 정체성을 품고 있는 바, 이들 음악의 관건은 결국 어느 정도 수준의 에너지를 담아내느냐가 될텐데, 아쉽게도 전작에 비해 약간은 힘이 달리는 것이 느껴진다. 위트 넘치는 가사는 여전한데 조금 더 어두워진 느낌을 받는다. 위치타에서 안티-로 레이블을 옮겨서인지 뭐때문인지 잘 모르겠지만 암튼 색깔이 조금 더 차분해졌고 회색빛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아쉽지만, 여전히 NPR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서 충분히 사랑받을 것 같다.

Pleasure by Feist

NPR의 all music considered에서 언급이 되었던 바와 같이 파이스트의 새음반은 무척 잘 정체되어 있고 파인 튜닝되어있다. 이 음반이 새로운 청자들에게 얼마나 어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전작들을 꾸준히 들어온 이들에게는 대단히 반갑고 고마운 음반이 될 것 같다. 한단계 더 성장했음이 분명히 느껴진다. 그 성장곡선의 방향 자체에 반대한다면 할 말 없지만.

Damn by Kendrick Lamar

메이저 매체들에서 올해의 음반으로 거론되고 있는데 딱히 반대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게 잘 완성되어 있는 것 같다. 다만 이제 다음 행보부터는 분명히 매너리즘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가 하는 모든 음악이 항상 좋은 것도 사실이지만, 항상 좋은 것을 ‘항상’ 한다는 것은 ‘정체’로 읽힐 여지를 제공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 그에게 새로운 것에 대해 이야기할 힘이 아직 남아 있다고 믿는다.

Elwan by Tinariwen

알리 파루카 투레, 아마두와 마리암, 살리프 케이타 등 말리 출신 거장들의 음악이 영미씬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 기타를 중심으로 조금 더 로킹한 음악을 하는 티나리웬도 미국 안티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본격적으로 미국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미국에서 낸 여섯번째 스튜디오 음반 은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음반으로 거론되고 있고, 들어보니 과연 허언이 아니구나 싶을 정도로 홀딱 반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말리 음악을 파볼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볼빨간 사춘기: Red Pl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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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스케”와 “케이팝스타”를 보고 자라며 뮤지션의 꿈을 키운 세대가 있다. 아이돌을 꿈꾸다가 이러저러한 사연들로 인해 인디씬으로 흘러들어온 뮤지션도 있다. 이들이 꿈꿔온 음악관은 그 전 세대와 어떻게 다를까? 이 세대가 만들고자 하는 음악의 선과 결은 기존 대중음악 산업에서 고수되어온 소비방식과 여전히 맞닿아 있을까? 수년 간 급격하게 달라진 씬의 패러다임과 달리 전부터 음악을 들어온 사람들은 여전히 음악을 듣고 있다. 이들에게 새로운 세대의 음악은 여전히 “좋은” 느낌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볼빨간 사춘기의 데뷔 음반 <Red Planet>은 최근 한국 팝음악의 급격한 변화과정에서 한번 쯤 생각해봄직한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한 훌륭한 대답이다. “좋은 음악은 시대를 가리지 않는다”라는 단순한 명제가 최근 한국 음악시장에서도 성립할 수 있음을 증명한 대단히 뛰어난 음반이다. 이들의 음악에는 핸슨도 보이고 리한나도 보이고 아델도 보이는데 그 어느 레퍼런스 하나도 그대로 베껴쓴 티가 나지 않는다. 기존에 존재하는 팝음악의 문법을 뻔뻔하게 빌려 쓰면서도 그룹만의 정체성을 확실히 지킬 수 있는 요인으로 여러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역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보컬 안지영의 음색과 소화력일 것이다.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색깔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버해서 내세우지 않아 금방 질리지도 않는다. 그리고 보컬의 독특함을 십분 살려주는 훌륭한 작곡, 작사 능력을 빼놓을 수 없다. 볼이 쉽게 빨개지는 여리고도 당돌한 사춘기 시절의 감수성을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드러낸 가사와 이를 잘 녹여낸 멜로디 라인, 그리고 깔끔한 편곡까지, 음반에 수록된 거의 모든 곡들이 평균 이상의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평론가들은 가장 볼빨간 사춘기다운 노래인 “우주를 줄게”나 알앤비 장르를 훌륭히 소화한 “나만 안되는 연애”를 가장 선호할 것이고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혹은 막 통과한 팬들은 “You(=I)”같은 달달한 노래를 좋아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싸운날”이나 “반지”처럼 감수성 충만한 노래들이 좋다.

화려하지 않은 단순한 구성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고 꽉 찬 팝음반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소중한 음반이다. 이건 최근 양적 확대에만 치중한 나머지 속이 텅 빈 영혼없는 음악을 양산해내는 메이저 음반사들에게 적지 않은 충고가 될 것 같다. 좋은 비교대상으로 최근 오랜 커리어 끝에 최초의 솔로 음반을 발표한 태연의 예를 들 수 있다. 화려한 세션과 엔지이너 등을 대동한 채 화력을 쏟아부었지만 음반의 그 어떤 지점에서도 좋은 팝 음악이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미덕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그녀가 커리어 내내 대체 무엇을 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볼빨간 사춘기의 이 음반을 들으며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실감했으면 좋겠다. 이런 처지에 놓인 베테랑 메이저 뮤지션들은 비단 태연 뿐만이 아닐 것이다.

세계의 종말, 숙제의 시작. 

전혀 기쁘지 않았고 안도했다. 탄핵에 찬성한 다수의 시민과 그들의 요구에 순응한 다수의 국회의원 중 상당수는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를 지지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승리”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아보였다. 당신이 ‘우리나라’를 ‘48%’로 정의한다면 기쁨에 취해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데 시간을 할애해도 좋겠지만, ‘52%’까지 포함한 나라 전체와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어제의 판결은 우리가 오답을 찍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고통스러운 반성의 시작이자 그 잘못을 되돌리기 위해 치루어야 하는 많은 비용 중 일부였을 뿐이다. 그나마 안도할 수 있었던 것은 한 나라의 리더를 끌어내리는 이 엄청난 사건이 철저히 법의 테두리 안에서, 완전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물론 광장으로 뛰쳐 나온 수많은 시민의 목소리에 국회의원들이 겁먹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그 촛불의 목소리 또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 가능한 일이었으니 이 모든 과정의 완전함이 퇴색되지는 않을 것이다. 헌재의 판결문은 이 나라가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으며 그동안 쌓아올린 지식과 지혜의 힘이 한 부분을 굳건히 지탱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해준 소중한 자산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헌재의 판결문은 우리에게 앞으로 풀어 나가야 할 많은 숙제 중 첫번째 문제에 대한 해답도 일부분 가르쳐 주었다. 좌와 우의 대립을 넘어,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공동체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태극기를 들고 헌법을 조롱했던 이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그들의 우상과 함께 추종자들은 멸망하고 있다. 그들의 신은 인간에 의해 끌어내려졌으며, 신과 그의 가족이 창조한 세계는 역사의 치욕스러운 부분에 위치하게 되었다. 전체주의적 사고에 지배당하며 착취당하는 삶에 긍지를 느꼈던 이들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자식들은 어버이인 그들을 경멸하며, 세계는 너무 빨리 변해서 더이상 그들을 원하는 것 같지도 않다. 고령화 리스크, 장수 리스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쉽게 죽지도 않는 이들은 나라에서 골칫덩이 취급을 받는 것만 같다. 이들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자존심은 나라를 위해 평생을 바쳤다는 자부심이니, 그 ‘나라’의 존재를 잘못 정의한채 살아온 우를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성조기와 십자가를 태극기와 병렬로 연결하며 헌법을 무시하고 공공질서를 파괴하는 그들의 사고체계는 분명 정상이 아니다. 평생 착취당해온 삶을 인정하는 순간 그들에게 남는 것은 죽음뿐이기에 목숨을 걸고 박근혜와 그녀의 가족에게 자신들의 삶 전부를 투영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가난한 노년층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스스로 죽어서 세상에서 사라지든,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있음을 증명하며 불편한 한끼를 얻어먹든, 그들에게 선택지는 단 두가지 뿐이다. 지하철 노약자석에 집착하고 공원 무료 급식을 당연하게 얻어 먹는 이들에게 박근혜는 ‘삶의 의미’를 제시해준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신에 가까운 정치인이었다. 평생 그들을 착취한, 혹은 그들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한 독재자의 딸이었기에 신의 위치를 물려받을 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법에 의해 합법적으로 끌어내려지는 모습을 지켜본 그들이 온전히 삶을 지탱할 수 있을 것인가. 문제는 그들의 수가 결코 적지 않다는거다. 나라가 걱정해야 할 문제다. 단지 피해야 할 늙은 똥덩어리가 아니라 마땅히 보살펴야 할 취약계층이다. 

이들의 존재는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더 많은, 더 중요한 숙제가 잔뜩 남아있다. 한 세계는 종말했다. 그 세계는 현대 한국사를 지배한 무척 무거운 그림자였다. 마침 그 세계가 창조한 중공업, 제조업 중심의 산업체계도 붕괴하고 있다. 휴대폰과 자동차를 파는 세상은 곧 끝날 것이다.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일은 더이상 독재자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A Tribe Called Quest: We Got It from Here… Thank You 4 Your Serv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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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새벽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Show me the Money”라는 프로그램에 한국 뮤지션들이 나와서 하는 말들을 들었다. 원썬이라는 아주 긴 경력을 가진 래퍼가 나와서 오디션을 봤는데(“꼬마 달건이”를 기억한다면 당신도 그와 비슷한 정도로 늙었다고 할 수 있다) 1분도 채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탈락했다. 그보다 한참 뒤늦게 경력을 시작한 심사위원 비슷한 위치에 있던 다른 래퍼, 혹은 뮤지션들은 “시대에 뒤떨어졌다”, “오래 됐다”, “최신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 등의 탈락 이유를 밝혔다. 힙합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구조적 변화가 극심한 음악 장르의 경우 단순히 현재의 흐름을 쫓아가지 못한다는 사실만으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프로그램에 심사위원으로 나왔던 ‘현재의 흐름에 충실한’ 뮤지션들은, 18년만에 나온 A Tribe Called Quest의 신작을 듣고 어떤 평가를 내렸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현지 유력 평론가들로부터 “90년대 말 타임캡슐로 봉해졌다가 현재에 다시 꺼낸 듯 하다”는 평가를 받은 이 음반도 그저 현재의 흐름을 쫓아가지 못하고 화석으로 박제되어 버린 늙은 뮤지션들의 ‘올드 스쿨 찬양가’에 불과하다고 혹평할 수 있을까?

그 타임캡슐에서 막 꺼낸 듯 하다던 음반의 묘사의 바로 뒤에는 “과거의 영광스러운 업적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의 새로운 생명력으로 가득차 있다” 라는 극찬이 있었다. 원 멤버 Phife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데뷔 음반 <People’s Instinctive Travels and the Path of Rhythm> 발매 25주년을 기념한 The Tonight’s Show에서의 깜짝 재결합 공연은 18년만의 새로운 음반을 제작하기 위해 그동안 멤버들 사이에 남아 있던 불화와 앙금을 잠시 덮어두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제공했을 것이다. Q-Tip의 진두지휘 아래 그의 홈스튜디오 등에서 녹음된 이 음반은, 첫 곡의 첫 비트부터 올드 스쿨 힙합의 향수를 확 불러일으키는 장치들로 충만하지만, 그와 동시에 현시대 흑인음악의 위치와 위상을 현명하게 수용한 신중함도 엿보이는 수작이다. 90년대 흑인 음악판에서 가장 창조적인 공동체로 기억될 어 트라이브 투 콜드 퀘스트가 거의 완전한 오리지널 멤버의 구성으로 새로운 음반을 만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수많은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 거장들이 자진해서 이 음반 작업에 참여했다. 크레딧에 등장하는 이름들만 간단히 열거해봐도 켄드릭 라마, 앤더슨 박, 버스타 라임스, 안드레 3000, 잭 화이트(!), 엘튼 존(!!) 등 실로 대단한데, 이 음반의 놀라운 성취는 바로 이렇게 이름값만으로 대단한 뮤지션들을 초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기운에 눌리거나 휘둘리지 않고 오롯이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의 음악으로, 하나의 고유한 정체성 안에 이 모든 음악적 다양성을 잘 녹여냈다는 사실이다. 이건 전적으로 총괄 프로듀서를 담당한 큐팁의 공이라고 할 수 있다. 앤더슨 박이 객원 보컬로 참여한 음반의 열세번째 트랙 “Movin Backwards”와 잭 화이트, 엘튼 존 등이 참여한 음반의 네번째 트랙 “Solid Wall of Sound”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크레딧을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저 노래가 참 좋다~ 역시 대단한 그룹이야, 했을 정도로 객원 뮤지션의 이름이 노래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안드레 3000과 함께 한 “Kids” 역시 음반의 백미로 손꼽힐 정도로 훌륭하다. 자칫 “우리가, 우리 시대가 짱이었어!”라고 꼰대질을 하는 배나온 아저씨가 될 뻔한 이 음반은 그러한 ‘아재근성’을 슬기롭게 모두 피해가며 ‘그저 좋은 흑인 음악’이 무엇인지 후배들에게 한 수 잘 가르쳐 주고 있다. 그 가르침은 유행을 따라가지 않아도 좋은 음악은 얼마든지 창조될 수 있으며 현재와 충분히 소통하면서도 과거의 유산을 배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어쩌면 당연한 교훈이다. 하지만 그 당연한 진리를 음악 그 자체로 충실히 보여줄 수 있는 예술가는 세상에 손꼽을 정도로 적다. 이 전설적인 그룹의 마지막 음반은 그렇게 역사 속에 다시 한번 아로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