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티 스미스: 저스트 키즈

저스트키즈
패티 스미스(Patti Smith)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그리고 그녀의 사진을 보았을 때 시대를 읽을 수 없었다. [Horses]가 70년대 중반 발표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깜짝 놀랐고, 그녀가 당시 서른살에 가까운 나이었으며 나의 아버지보다도 나이가 많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았다. 그녀의 음악은, 그녀가 풍기는 아우라는 시대를 지워버릴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나는 패티 스미스를 시대를 앞서나가다 못해 시대를 다시 정의내린 전설적인 뮤지션으로만 알고 있었지만 사실 그녀는 뛰어난 시인이자 퍼포먼스 아티스트, 혹은 인기있는 에세이스트이기도 하다. 그녀의 화려한 레쥬메를 보면 태어날때부터 예술가라는 직함을 부여받고 찬란한 꽃길만 걸어왔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직접 쓴 회고록 [저스트 키즈]는 약간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저스트 키즈]는 패티 스미스가 젊은 시절 동반자이자 평생의 소울메이트였던 로버트 메이플소프가 함께 살아온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패티 스미스는 시카고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교대를 중퇴하고 빈털터리 상태로 뉴욕으로 건너올 때까지 그녀의 삶에서 대중이 유명 예술가의 유년시절을 추측할 때 흔히 등장하는 독특한 환경같은 것은 딱히 찾아볼 수 없다. 다만 그녀는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조금 더 가혹한 가난을 택했고, 그 대가로 60년대 중반 뉴욕의 들끓는 공기를 체험할 수 있었다. 공원에서 노숙을 하고 길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주워 끼니를 해결하는 삶을 살던 중 역시 뉴욕의 길거리에서 방황하던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만났고, 각자의 외로웠던 가난은 두명이 함께 하는 희망섞인 가난으로 그 색깔을 달리하게 되었다.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뉴욕의 중산층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프랫에서 예술을 전공했지만 정식으로 학위를 마치지는 못하고 뉴욕 이곳 저곳을 떠돌던 터였다. 이 둘은 뉴욕의 뒷골목을 전전하며 생계를 위해 일해야 했지만 그 와중에도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나갔다. 이 책은 지나가던 노부부가 “쟤네 그냥 애들(just kids)이잖아”라고 부른 한 젊은 남녀가 혹독한 가난과 싸우며 시대를 뒤흔든 예술가로 성장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의 대부분은 60년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패티 스미스가 [Horses]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음악 커리어를 시작한 시기, 그리고 로버트 메이플소프가 특유의 관능적이고 탐미적인 흑백사진으로 뉴욕 사진계에서 명성을 획득하기 시작한 시기는 70년대 중반 이후로, 당시 이 둘은 동거관계를 정리하고 각자 다른 연인과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있을 때였다. 즉, 스미스와 메이플소프가 적극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을 획득하던 시기는 이들의 전성기와 제법 시차가 있는 편이다. 때문에 스미스가 대중적인 인지도를 회복한 이후의 모습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뉴욕 펑크씬의 대모로 불리우는 스미스의 회고록에서 음악팬이 쉽게 기대할 수 있는 것들, 그러니까 당시 뉴욕 음악씬의 생생한 묘사라던가 전설적인 아티스트와의 교류같은 이야기 역시 사실 이 책의 중심내용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그저 간략하게, 스쳐지나가듯 묘사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은 패티 스미스가 어떻게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만났고, 어떻게 함께 가난과 싸워 나갔으며, 얼마나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사랑했고 또 어떻게 이별하게 되었는지, 헤어진 이후에도 어떻게 관계를 지속해 나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메이플소프는 89년 에이즈에 의한 합병증으로 사망하기 전 스미스에게 자신과 스미스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이 책은 그 유언에 대한 스미스의 실행인 셈이다. 그래서 그녀가 발표한 그 어떤 작품보다 개인적이고 진솔하다. 패티 스미스는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메이플소프에게만 집중하고 있다. 풋내기 예술가에 불과한 이 둘이 서로의 작품활동에 깊게 관여하면서 각자의 재능을 온전히 쏟을 수 있는 전문영역을 발견하는 과정, 그리고 연인으로 시작했지만 메이플소프가 성정체성 및 성적취향을 깨달은 뒤 이를 받아들이고 소울메이트로 관계를 서서히 변화시켜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패티 스미스는 평론으로 시작해 퍼포먼스, 시를 거쳐 음악이라는 영토에 당도했고, 메이플소프는 콜라쥬와 폴라로이드를 지나 핫셀블라드를 만났다. 서로가 없었다면 결코 7,80년대의 영광에 도달할 수 없었을 것이기에, 찬란하지만 가난했고 아름답지만 비참했던 60년대 젊은 시절에 대한 기록이 소중하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사망하기 며칠 전, 침대에 누운 메이플소프가 스미스에게 물었다. “패티, 우리가 진정 예술을 찾은 걸까?” 눈길을 피한 패티 스미스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두 명의 예술가가 함께 걸어온 길, 그 길의 끝에서 확인하고픈 것은 예술적 성취의 물리적 결과물같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함께 걸어온 길이 나쁘지 않았음을, 사실은 참 좋았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는 미국판 표지.

justkids

최진영: 해가 지는 곳으로

최진영
좋은 한국 소설을 읽었다. 최진영의 [해가 지는 곳으로]는 서사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진 작가의 손에서 나온 아름다운 문장들로 이루어진, 인간에 대한 작가의 근심과 애정을 오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소설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라고 불리는 장르 위에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알몸 그대로의 인간사회를 펼쳐 놓은 뒤,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그 폐허 속에서도 반드시 살아남아야만 하는 이유를 명확히 제시하는 작가의 방식이 무척 우직하게 느껴진다. 과장되지 않게 느껴지는 가정들을 차곡 차곡 쌓아 나가며 그 위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본질적 요소를 간결하게 드러내는 작가의 방법론에 저절로 동의하게 된다. 오래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데, 결코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가슴을 탁 치게 만드는 문장을 한 작품에서 이렇게나 많이 만나게 되는 경험을 한 것도 참 오랜만인 것 같다. 그런 문장들이 촘촘히 모여 허술하지 않은 서사를 이루고, 그 서사를 통해 단 하나의 단어,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추상적인 그 단어 하나로 주제의식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책을 읽을 때 설렁설렁 빠르게 읽어내려가는 습관이 있는데 이 소설의 경우 조사 하나 빠트리지 않고 천천히 읽었다. 그렇게 읽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커피를 처음 배우는 단계에서 참고한 책 세 권

직장을 옮기고 난 후 우리 부부에게는 작은 변화가 몇가지 생겼다. 우선 소비패턴을 조금 더 현실화(..)시켜야 했다. 나의 경우 지출항목 중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줄일 여지가 있었던 부분은 커피값과 택시값이었다. 택시야 타지 않으려는 의지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했지만 커피의 경우 한국에서 직장인으로 살기 시작한 이상 의지와 상관없이 줄일 수 없는 항목이 되어버렸기에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때부터 거의 매일 아침 로스터리 숍에서 산 원두를 직접 내려서 두 보온병에 나누어 담은 다음 아내에게 하나를 주고 나도 하나를 가지고 출근하기 시작했다. 나의 드립 실력이야 바닥을 기는 정도지만 신선하고 좋은 원두만 있으면 최소한 아내의 입맛에는 맞출 수 있었고, 다행히 서울에는 좋은 로스터리 숍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회사가 있는 여의도에도 스티머스라는 좋은 커피숍이 있고 서강대교만 건너면 펠트, 테일러, 리이슈, 매뉴펙트 등 많은 좋은 원두를 취급하는 많은 커피숍이 기다리고 있다. 덕분에 일주일 단위로 다양한 원두를 맛볼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었지만 그에 따른 고민도 뒤따랐다. 다양한 커피의 ‘맛’을 표현하고 싶은데 마땅한 표현수단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컵 노트에 적힌 “플로럴”, “와인”, “자스민”과 같은 표현이 대체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맛에 대한 감각이 많이 발달하지 못한 탓에 ‘풍미 휠’에 나온 다양한 맛을 애써 머리로 암기한다 해도 그 맛을 혀 끝으로 ‘구별’해낼 자신도 없었다. 또한 커피를 매일 습관적으로 내리기 시작하면서 과연 내가 내리는 방식이 맞는 것인지, 귀한 원두가 간직한 고유한 풍미를 나의 미숙한 솜씨로 날려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에티오피아산 커피와 케냐산 커피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르며 어떻게 좋은 원두를 찾아내는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커피를 처음 접하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가질법한 이러한 종류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 이곳 저곳을 뒤져 발견한 세 권의 책으로부터 도움을 받기로 했다.

스페셜티 커피 감별법

테드 알 링글: 스페셜티 커피 감별법

먼저 풍미 휠의 분류 기준과 분류에 따른 풍미의 구별 방법을 배우는데 큰 도움을 준 책은 미국 스페셜티커피협회(SCAA) 공동 창립자 중 한 명인 테드 링글이 쓴 [스페셜티 커피 감별법]이었다. 이 책은 커핑(cupping)을 위한 가이드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커피의 풍미를 표현하는 다양한 용어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올바른 커핑의 방법과 SCAA가 제시하는 커핑 점수 기준표까지 제시하고 있다. 커핑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상상만으로 커핑 현장을 떠올리며 책을 읽어나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마냥 복잡하게만 보였던 풍미 휠을 단계적으로 분류하는 기준을 얻게 되었다는 점에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아직도 커피에서 “양파”와 “오이” 아로마를 분리해낼 수는 없지만 최소한 지금 마시고 있는 커피가 “과일향”과 “캐러맬향”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읽은 뒤 전에 몰랐던 새로운 감각이 솟아난 것은 아니다. 이전부터 커피를 마셔오며 느꼈던 풍미를 공통적인 언어를 통해 정의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것이 결코 작은 변화는 아니다. 내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그 커피의 향은 이름을 갖지 못할테니까 말이다.

커피중독

아네트 몰배르: 커피 중독

이 책은 원두의 산지별 특징과 추출 도구별 커피의 분류, 다양한 커피 만들기 방법 들을 개괄적으로 소개하는 커피 개론서에 가깝다. 때문에 커피를 오랫동안 마셔온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터득했을 일종의 ‘상식’들이 보기 좋게 나열되어 있을 뿐이라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큼지막하고 선명한 그림과 함께 산지별 원두의 특징이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고 다양한 종류의 커피 레시피를 한 곳에 모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보로서의 가치는 적지 않은 편이다. 새로움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커피의 거의 모든 것을 한 눈에 바라보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커피마스터클래스

신기욱: 커피 마스터클래스

이 책에는 실제로 커피숍, 혹은 로스터리숍을 운영하거나 커피숍에서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할 것 같은 내용이 담겨져 있다. 커피콩을 고르는 방법부터 로스팅 방법, 핸드 드립 커피를 내릴 때 필요한 유용한 기술들, 그리고 에스프레소머신을 이용한 다양만 메뉴 개발 방법(?)까지 커피와 관련된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들을 나열하고 있다. 나의 경우 집에 머신을 따로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핸드 드립 부분에서 참고할만한 정보를 몇가지 얻을 수 있었다. 한국인이 쓴 한국어 책 답게 커피와 관련된 기술적인 부분들이 너무나 한국적인(..) 어조로 묘사되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핸드 드립의 경우 ‘올바른 팔의 자세’가 몇 장의 사진과 함께 등장하는데 중고등학교 시절 참고서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흥미로웠다. 이 책에 등장하는 위와 같은 교과서적 묘사들이 ‘궁서체’로 진지하게 진행된다는 점이 재미를 배가시키는 요소다.

포틀랜드 여행에 참고한 책 두 권

극동의 작은 나라에서 포틀랜드라는 미국의 크지 않은 도시로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사람은 아마도 그곳에서 그랜드캐년이나 뉴욕시티와 같은 전형적인 관광상품을 발견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스텀프타운과 킨포크처럼 요즘 시대의 ‘전형’이 되어버린 상품의 원형을 목도하고 그 앞에서 인스타그램 사진 한 방 찍을 생각으로 굳이 부족한 휴가일수를 써가며 그 곳까지 가는 것도 그리 현명한 생각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모르긴 몰라도 스텀프타운과 킨포크 그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해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포틀랜드를 위한 한국어 여행 도서는 생각보다 많이 없는 편이다. 짐작컨대 포틀랜드에서 불고 있는 새로운 흐름이 전세계적으로 조명을 받기 시작한지도 몇 년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흐름을 실시간으로 포착하고 이를 한국인의 편리성 선호성향에 부합하는 하나의 ‘여행 코스’로 개발할 여유를 가진 담당자가 많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우리 부부 역시 포틀랜드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상태에서 그곳으로의 여행을 계획했고, 그 와중에 두 권의 한국어 도서를 가지고 그 곳으로 향했다.

매거진B_58_Portland

[B]: Portland

매거진 [B]에서 마침 최근 포틀랜드를 주제로 책을 펴냈다. 이 책의 필진들이 포틀랜드에서 시간을 보내며 경험한 포틀랜드의 색깔을 ‘Good Living,’ ‘Craftmanship,’ ‘DIY,’ ‘Alternative,’ ‘Weirdness’ 다섯가지 주제로 분류하고 각각의 주제에 어울리는 공간과 사람을 찾아가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필진들의 꼼꼼한 관찰력과 풍부한 인터뷰 덕분에 포틀랜드의 ‘현재’을 빠른 시간 내에 익히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다만 외부인의 시각에서 포틀랜드라는 독특한 도시를 ‘관찰’한다는 한계 역시 명확히 가지고 있다. 전형적인 관광 상품을 짧은 시간에 휙 돌아보는여행보다 조금 더 깊게 한 도시를 들여다보고 싶은 이들에게 꽤 괜찮은 지침서로 쓰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여행객이 쉽게 만날 수 없지만 포틀랜드라는 도시를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포틀랜드 ‘거주민’들의 인터뷰를 비중있게 다루고 있고 포틀랜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너무 가볍지 않은 톤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여행자를 위한 책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이 책은 [B]의 관점에서 관찰할 만하다고 생각한 포틀랜드라는 독특한 유기체에 대한 좋은 소개서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부부는 이 책에 나온 공간 중 포틀랜드의 파머스 마켓, 뱀부 스시(Bamboo Sushi), 하트 로스터스(Heart Roasters), 코아바 커피 로스터스(Coava Coffee Roasters), 올림피아 프로비전스(Olympia Provisions), 터스크(Tusk)를 방문했고 모든 곳이 만족스러웠다.

살아보고싶다면 포틀랜드

이영래: 살아보고 싶다면 포틀랜드

이 책은 [B]의 포틀랜드 특집과는 달리 실제 포틀랜드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쓴 포틀랜드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포틀랜드에 살아본 경험이 없는(그래서 잠재적 여행객으로 간주되는) 대다수의 한국인 독자들을 위해 책에 소개된 공간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제공되고 있다. 충분히 예상되는 잠재적 독자층의 성향 탓에 이 책은 표지에 적힌 “라이프 스토리”로서의 성격보다는 현지인의 에피소드를 가미한 개괄적인 포틀랜드 소개서 정도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가 전문 수필가가 아닌 이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이 가지는 미덕은 [B]의 필진들이 시간을 내어 찾아보기 힘들었을, 즉 현지인만이 알고 있는 좋은 공간에 대한 힌트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우리 부부는 이 책에 소개된 캐넌 비치(Cannon Beach)에 가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물론 캐넌 비치는 그 자체로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호텔 로비에 비치된 팜플렛에 관광지로 소개된 것과 한국어를 하는 사람이 “거기 정말 좋으니까 꼭 가봐요”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우리 부부가 짧은 기간 경험한 포틀랜드의 정체성과 분위기는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과 거의 일치했다. 한국인 여행객으로서 ‘잠깐’ 이 도시에 머무르고 맛보는 느낌을 꽤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틀랜드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읽으며 감을 잡기 적당한 책이다.

Bob Boilen: Your Song Changed My Life

bobboilen
중학교 시절 일주일에 5천원의 용돈을 받았다. 일주일 내내 딱히 돈을 쓸 일이 없던 나는 그 5천원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토요일 오전수업이 끝나면 친구 진우와 함께 효자동에 있는 레코드샵에 가서 테이프 하나를 샀다. 그 테이프를 일주일 내내 들으며 쉬는 시간마다 진우와 음악 이야기를 했다. 가끔 돈이 보너스처럼 더 생길 때에는 테이프를 하나 더 사거나 [핫뮤직]이나 [서브]같은 음악 잡지를 사서 읽고 또 읽었다. 중학교 3년 생활이 끝날 때 쯤 내 방에는 약 300개의 테이프와 수십권의 음악잡지가 쌓여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고나서는 테이프가 아닌 CD를 사기 시작했고, 대학생이 되면서 MP3 음악을 다운받아 듣다가 유학시절부터 다시 CD를 사기 시작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 요즘에는 CD보다 바이닐을 더 많이 산다. 물론 애플뮤직 등을 이용해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기도 한다.

요즘 듣는 음악들도 물론 나를 매번 즐겁게 해주지만, 사춘기 시절 들었던 음악들이 이후 내 삶에 미친 영향은 즐거움과 같은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지금은 음악이 삶의 습관이자 생활의 일부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부분으로 자리잡았지만 당시에는 음악이 내 삶의 거의 전부였고 중심이었다. 음악을 듣기 위해 일주일을 살았고, 테이프 속지에 적힌 음반 해설과 [핫뮤직]에 거의 매달 실렸던 “~ 명반 50선”의 리스트를 외우는 일이 기말고사 준비보다 더 중요했다. 당시 좋아했던 뮤지션들의 언행은 내 삶의 표지였고 당시 좋아했던 음악이 삶의 태도를 결정했다. 나같은 일개 음악팬도 그정도였는데 시대를 빛낸 뮤지션들의 어린 시절은 오죽했을까. 그들의 삶을 바꾸어놓은 음악이 무엇이었는지 살짝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NPR에서 [All Songs Considered]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밥 보일렌(Bob Boilen)은 뮤지션이자 엔지니어이자 프로듀서이기도 하지만 1년에 약 500개의 공연을 보는 엄청난 음악 매니아이기도 하다. 그는 뛰어난 인터뷰어이기도 한데, 그런 그가 당대의 뛰어난 여러 뮤지션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음악 커리어, 더 나아가 삶 자체를 바꾸어 놓은 음악을 정리해놓은 책이 [Your Song Changed My Life]다. 한국 음악팬들에게 해외 뮤지션들은 상대적으로 약간 먼 거리에 위치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홍대나 한남동의 술집에서 옆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도 없고 말을 걸 수도 없다. 보고 싶을 때마다 공연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몇 남아있지 않은 않은 국내 음악매체에 자주 노출되지도 않기 때문에 해외 뮤지션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이 책은 그 간극을 매워주는 소중한 인터뷰 모음집이다.

이들이 어린 시절 어떻게 성장했는지, 어떤 음악을 듣고 자랐는지, 현재의 음악 커리어를 형성한 근간은 무엇이었는지 그들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을 때의 쾌감이 생각보다 짜릿하다. 거의 대부분의 젊은 뮤지션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환경 요소도 분명해 보이지만(부모님이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거나 엄청난 음악 애호가이거나) 꽤 많은 뮤지션들의 경우 음악을 업으로 삼기로 결정한 이유나 배경이 예상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세인트 빈센트의 경우 집 앞을 지나가던 배달 트럭이 우연히 떨어트린 박스에 담긴 음반들이 그녀가 접한 첫번째 음악이었다. 제임스 블레이크는 학교 기숙사 친구의 방에서 우연히 접한 1960년대 소울/R&B 아티스트 샘 쿡(Sam Cooke)의 음악을 듣고 충격을 받아 현재와 같은 음악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밥 보일렌에 의하면 코트니 바넷의 초창기 음악은 매우 평범했고 밴드의 공연도 미숙하기 짝이 없었지만, 투어 도중 윌코의 음악을 반복해서 들으며 현재와 같은 바넷 특유의 기타 테크닉과 가사 창작법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런 디엠시 등 올드스쿨 힙합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컨트리-블루스 싱어 제니 루이스의 고백도 재미있다. 현재 2,30대로 음악적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호지어(Hozier), 아스게이어(Ásgeir) 등 많은 뮤지션들의 사춘기 시절 영웅이자 워너비는 너바나와 펄잼이었다. 나도 너바나와 펄잼을 들으며 성장했기에 더 반갑게 느껴졌다.

책을 읽으며 만약 나를 닮은 자녀가 생긴다면 나는 어떤 음악을 들려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생일선물로 악기를 선물해줄 수도 있고, 저녁 시간 내내 음악을 틀어놓고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흥미롭게 관찰해보고 싶기도 하다. 음악을 전혀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상관없다. 하지만 만약 나를 닮은 그 친구가 음악을 좋아하기 시작한다면 상당히 짜릿한 기분을 느낄 것 같다. 내 아버지가 젊은 시절 모아두었던 산울림의 음반을 내가 다시 찾아내어 재생했을 때 아버지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을까, 문득 궁금해지기도 한다.

카텔 뮐레르·조제 루이 보케: 몽파르나스의 키키

키키
마리옹 꼬띠야르가 주연한 [라 비앙 로즈]를 보고 에디뜨 삐아프의 생애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요즘보다 더 심한 남녀차별이 존재하던 시기 가난과 불운을 온 몸으로 받아 내며 치열하게 살다 간 한 여인의 생은 그 자체로 이미 영웅의 서사가 아닌 불완전한 인간의 완벽한 서사였다. 그녀가 남긴 것은 비단 아름다운 음악만이 아닐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역사적 증거로서 그녀의 생 전체가 읽힐 수 있다. 삐아프보다 조금 더 일찍 같은 빠리라는 공간에서 태어나 삐아프만큼이나 치열하고 아픈 사랑의 증거로 기록될 삶을 살다간 여성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여러 남성 예술가의 뮤즈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독립적인 여성 예술가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돈 많은 남성을 유혹하며 생계를 유지했던 창녀로 기억되는 알리스 프랭(Alice Prin), 혹은 “몽파르나스의 키키(Kiki de Montparnesse)”라고 불린 이 여성의 삶은 너무나 드라마틱해서 그 연표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질 지경이다. [몽파르나스의 키키]는 아방가르드 사진작가 만 레이의 연인이자 후지타 츠구하루, 모이즈 키슬링 등 당대 유명 예술가의 뮤즈였던 그녀의 삶을 그래픽 노블로 옮긴 작품이다.

그림을 그리는 카텔 뮐레르와 글을 쓰는 조제 루이 보케는 [에디트 피아프], [올랭프 드 구즈] 등 역사에 남을만큼 뜨거운 삶을 산 여성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을 함께 만들었다. 2007년 발간된 [몽파르나스의 키키]는 아버지 없이 애정 없는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알리스 프랭이 가난과 무관심을 뚫고 빠리의 몽파르나스를 거점으로 당시 예술계의 뮤즈로 떠올랐다가 마약과 건강악화로 일찍 세상을 등지는 순간까지 그녀의 주요 사건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의 상처를 안고 성장한 키키는 빠리에서 생존을 위해 몸을 팔기도 하고 외설적인 노래를 부르기도 하지만 화가들의 모델로 발탁되어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본인의 전시회를 개최하고 영화에 출연하는 한편 음반을 발매하는 등 독립적인 예술가로서의 삶도 영위한다. 하지만 한 남성에게 정착하지 못하는 뜨거운 열정과 한평생 따라다닌 마약이라는 덫이 그녀의 발목을 서서히 잡아 끌어내리고, 결국 마약과 알콜중독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50세 초반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녀는 당시 빠리 예술, 사교계의 스타였다고 한다. 만 레이와 후지타 츠구하루 외에도 모딜리아니, 헤밍웨이, 피카소 등이 그녀를 직간접적으로 스쳐 지나간 예술가들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리저리 비틀리는 삶을 산 불완전한 인간이기도 했다. 동침하는 남성은 수시로 바뀌었으며 그 중에는 상습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이도 있었다. 누군가는 그녀를 자유롭고 독립적인 영혼이라고 부를 것이고, 다른 이는 현명한 선택을 하지 못한 불행한 인간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 무엇이 되었든, 주체적인 삶을 뜨겁게 살아간 여성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조제 루이 보케는 다사다난한 그녀의 삶을 장소와 시간별로 묶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되 하나의 차원에서 해석되지 않도록 사려깊게 표현했다. 카텔 뮐레르는 키키의 자유분방한 성격을 드러내듯 한껏 활기찬 이미지의 빠리를 특유의 그림체로 그려냈다. 키키를 둘러싼 역사속 주요 이벤트들을 만화적으로 잘 재현하기도 했다. 쉽게 읽히지만 결코 가볍게 읽히지 않는 작품이다.

프레드 울만: 동급생

동급생
내가 좋아하는 미국 작가 앤드루 포터는 아이오와 작가협회에서 퓰리처상 수상자인 메릴린 로빈슨(Marilynne Robinson)을 사사했다.  포터가 작가로서 성공적으로 데뷔한 후 “소설의 첫 문장에 가장 많은 공을 들여라. 그 문장이 작품을 대변해야 한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항상 마음에 두고 집필활동을 한다고 밝힌 인터뷰를 인상 깊게 읽었다(읽었는지 팟캐스트로 들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이후 거의 모든 픽션을 접할 때마다 작품의 첫 문장을 유심히 읽게 된다. 작품을 처음 접할 때의 첫 문장이 어떤 색을 띠는지, 작품을 다 읽고 난 후 첫 문장을 다시 읽었을 때 느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을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좋은 첫 문장을 가진 작품은 긴 시간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게 되더라.

1971년 처음 출판된 이 짤막한 중편 소설(novella) [동급생]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 

이후 르누아르, 혹은 고갱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게 묘사되는 도시에서 그보다 더 아름답게 펼쳐지는 두 소년의 우정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위의 첫 문장이 그저 성인이 된 한 남자의 기억 속에 이쁘장하게 자리잡은 기억의 한 조각 정도는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시오니즘의 광기어린 유대인 사냥과 그로 인해 갈갈이 찣겨진 소설 속 화자의 가족 이야기를 담담히 전해오는 작품의 마지막 즈음에 다다랐을 때 이미 독자의 마음은 무겁게 내려앉아 있을 수 밖에 없으며, 급기야 마지막 문장에 다다르면 위의 첫 문장이 완전히 새롭게 읽히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다. 더 나아가 작품의 마지막 문장과 첫 문장의 마술적인 호응에 의해 소설의 크기, 혹은 차원이 완전히 달라지게 됨을 느끼게 된다.

그저 호감어린 상대에게 잘 보이고 싶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어줄 수도 있을 것만 같은 십대 시절의 풋풋한 감정, 수채화처럼 묘사된 두 소년이 살아간 도시, 마냥 아름다울 것만 같던 서사를 헝클어 버리는 암울한 시대적 환경, 그리고 그 시대를 버티어 낼 수 있게 만든 두 소년의 우정. 작품을 다 읽고 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모든 문장을 손으로 한땀 한땀 더듬어가며 다시 읽게 된다. 소년은 소년에게 무엇을 주었을까. 화자가 기록하지 않은 그 빈틈들 사이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한 소년이 다른 소년의 삶 속으로 들어와 영원히 떠나지 않음으로 인해 숭고한 인간성은 그렇게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일까. 책을 덮은 후 많은 것을 천천히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마쓰이에 마사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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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ㅈㅎ씨와 “몹시 덥고 습기로 가득한 일본의 여름날씨를 마치 뽀송뽀송하고 상쾌한 것처럼 포장하는” 일본영화의 특성에 대해 농담조로 성토한 적이 있다. 한국보다 미세먼지가 적게 배출되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영화속 일본의 여름하늘은 유난히 푸르고 맑아보인다. 강한 햇살을 받아내는 거리와 사람들의 모습에서 더위에 찌들어 지친 모습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10년 전 GRE 시험을 치루기 위해 함께 도쿄를 찾은 당시 스터디 멤버는 “집단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며 차분히 가라앉은 일본의 도시풍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언뜻 보이는 일본의 거리는 조용하게 정리되어 있다. 사람들은 말 없이 빠르게 서로를 스쳐지나간다. 상대방에게 어떻게든 영역표시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의 시선에서 일본사회의 풍경은 솔직하지 못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많은 한국인 독자들의 평처럼 담백하고 잔잔하다. 존경하는 건축가가 운영하는 건축사무소에 들어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사무소의 일상을 함께 체험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작가의 풍부한 배경지식과 꼼꼼한 묘사에 힘입어 마지막까지 일정한 호흡을 유지한다. 마치 나오코 오기가미의 영화들, 예컨대 [카모메 식당]이나 [안경], 혹은 오모리 미카의 [수영장]과 같은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한여름 일본의 풍경이 선선하거나 담백할리 없지만, 많은 독자들이 그렇게 느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단단한 내공에 의존한 유려한 문체덕분일 것이다. 담담하지만 끈기있게 이어지는 만연체의 문장들 속에서 독자들은 어쩌면 잠시 공기좋은 산자락 어딘가로 피서를 떠난 듯한 느낌을 받았을런지도 모르겠다.

다만, 주변의 많은 호평과 달리 개인적으로 이 소설이 크게 와닿지 않았던 이유는 이 작품이 태생적으로 버리지 못하는 보수성이 불편했기 때문이고, 지나치게 영화적인 이 작품의 성격에서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는 높은 습기를 의도적으로 지워버린 듯한 일본영화의 화면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작품 속 여성 캐릭터들은 수동적이고 순종적이다. 주인공 역시 수동적인 것은 마찬가지이긴 하다. 대부분의 캐릭터가 전형적이고 평면적이다. 일본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보수성이 삶의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뭍어나온다. 소설은 두시간짜리 영화로 만들면 딱 좋은 서사구조와 규모를 가지고 있다. 소설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은 풍부한 건축 배경지식 설명 정도일텐데, 이 부분은 픽션이라기 보다는 논픽션에 가까운 영역이라 이조차 문학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번역이 썩 매끄럽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중 화자인 주인공의 독백 부분에서 습관적으로 구어체 표현을 사용하고 있고 현재형과 과거형 어미를 한 문단에서도 번갈아가며 사용하고 있는데 원문이 정말 이런 표현들을 사용한 것인지, 반드시 필요한 표현이었는지 궁금하다. 소설을 읽다보면 딱히 필요하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을 수 없다.

김애란: 바깥은 여름

김애란 바깥은여름
김애란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녀는 장난으로 글을 쓰지 않는다. 다른 목적을 위해 글을 희생하지도 않는다. 김애란의 소설을 읽다보면 진짜 글을 쓴다는 확신이 든다. 그것은 그녀의 시선이 소설 속 인물들에 계속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창동이 그러하듯, 김애란도 작품 속 인물의 삶 중 한 부분만을 떼어 독자들에게 보여줄 뿐이지만 그 인물이 그 전에 살아온 삶,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해서도 시선을 쉽게 거두지 않음으로써 책임을 지려 한다. 이것이 그녀의 소설을 단지 기교나 표현의 영역에 한정하여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다.

[바깥은 여름]은 사랑하는 어떤 것, 혹은 강하게 존재했던 어떤 것과 멀어지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아이를 잃은 부부, 남편을 잃은 아내, 언어를 잃은 영혼, 개를 떠나보내야 하는 아이, 아들의 순결함을 의심하게 되는 엄마, 오랜 애인을 떠나야 하는 여자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들이 처한 상황은 결핍으로부터 시작되어 상실로 끝나기도 하고, 외로움으로 시작되어 낙담으로 끝나기도 한다. 모든 작품의 마지막에 남는 감정은 공통적으로 쓸쓸하다. 김애란의 이전 작품들에 비해 유머가 한결 줄어들었다. [침이 고인다], [달려라, 아비] 시절 알면서도 뻔뻔하게 모른척하며 지었던 한줌의 미소조차 사라졌다. 한결 어두워졌다. 어쩌면 많은 매체에서 주목하듯 물에 빠진 제자를 구하려다 함께 죽은 교사의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등장하고 아이를 잃은 부모의 심정이 적극적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에서 세월호 사건에 대한 문학적인 반응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약간의 유머조차 죄책감으로 되돌아오는 참담한 상황에서 김애란 역시 웃음을 의도적으로 거두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펄떡펄떡 뛰는 인물들의 생생한 숨소리는 여전하다. 우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비행운]의 “그 곳에 밤 여기에 노래”에 등장하는 ‘용대’와 비슷한 존재감을 뽐내는 “노찬성과 에반”의 찬성이가 있다. 이 가난한 소년은 늙은 개를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현실의 벽과 유혹 속에서 이리저리 비틀거린다. 단 돈 몇천원의 들락날락거림에 갈등하는 그의 영혼은 사랑하는 개의 마지막 순간을 위한 몸부림이라는 점에서 결코 가볍지 않다.

김애란은 현실의 어두운 면을 결코 에둘러 표현하려 애쓰지 않는다. 그 곳에서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시선에 조미료를 첨가하지도 않는다. 그저 있음직한 상황을 설정한 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담담히 기술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소설이 건조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녀의 시선때문이다.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그 낮은 자리를 비추고 있다. 우리의 삶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므로, 그 인물들의 삶 역시 계속 지속되고 있을 것이므로, 비록 피곤한 오늘을 사는 우리 중 그 누구에게도 그들에게 따뜻한 안부를 물어볼 여유가 허락되지 않을 수 있기에 더더욱, 김애란 그 자신이 조금 더 지긋한 시선으로 조용히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Zadie Smith: Swing Time

swing time
[NW] 이후 다시 도전한 제이디 스미스의 소설. 이번에도 길고 장황하다. 한달 넘게 붙들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기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마존이나 goodreads.com 등의 독자 리뷰에서 많은 이들이 이 책과 오랜 시간 씨름했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그 많은 독자들과 내가 이 책에서 공통적으로 경험하고 느낀 부분이 비단 소설의 분량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제이디 스미스는 아주 훌륭한 글쟁이지만, 뛰어난 소설가는 아니다. 이것이 이 책에 대한 나의 결론이자 앞으로 제이디 스미스의 소설은 당분간 도전하지 않기로 한 이유다.

그녀는 아마도 가장 발전된 형태의 영어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녀보다 더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 그녀만큼 더 정확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 그녀만큼 더 다양한 형태의 표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내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다. 소설의 첫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단 한 문장도 허투루 쓰였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모든 단어가 정확히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위치하고 있다. 문장이 미학적으로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다만, 아름다운 문장들이 모여서 아름다운 글이 되는 것은 아니며 아름다운 문장들의 기계적 총합이 훌륭한 소설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제이디 스미스가 만들어내는 내러티브는 그녀의 문장만큼 아름답지 않다. 물론, [Swing Time]은 웬만한 다른 소설들보다 다층적이고 다차원적이다. 유색인종, 1%의 삶, 부족한 재능, 우정, 부모와 자식 간 관계, 치정까지 다양한 주제를 ‘춤’이라는 하나의 예술 형태를 중심으로 폭넓게 다루고 있다. 각각의 주제에 대한 작가의 고민 역시 결코 얕지 않다. 개별적인 문장이 가진 아름다움과 다양한 주제에 대한 깊은 고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몹시 지루하다. 이 지루함은 아마도 너무나 많은 것을 하나의 소설에 꾹꾹 눌러 담으려고 했던 스미스의 과잉에서 나온 것 같다. 문장은 지나치게 길고 불필요한 정보를 너무 많이 담고 있다. 서사는 균형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소설의 3/4은 캐릭터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 마지막 1/4 지점에 가서야 중요한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터져 나온다. 그 맥락이 설득적이지도 못하다. 때문에 두텁게 쌓인 캐릭터들의 매력이 얄팍한 서사구조에 의해 희석되어 버리고 만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상징적이다. 하지만 너무 영화적이다. 소설이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영화적이다보니 이 소설이 가진 ‘소설적인 부분’은 오로지 개별적인 문장이 가진 표현력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읽는 호흡이 너무 자주 끊긴다. 한 페이지를 두어개의 문장으로 채울 수 있는 자신의 재능을 작가가 너무 과신하지는 않았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