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지 요시노: 커버링

커버링
사회적으로 보호해야 할 소수자 집단 중 대표성을 가지는 집단을 꼽아보자면 여성, 장애인, 소수인종, 성적소수자 정도가 있을 것이다. 이들은 어느 나라에나 반드시 존재하지만, 어느 나라에서도 완전히 평등한 대우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동성애자 결혼이 합법화되고 소수인종에 대한 차별금지법이 강화되는 등 국가에 따라 이들에 대한 법적 보호장치가 선진화되는 흐름을 엿볼 수 있지만, 한국을 비롯한 많은 사회에서 이들 소수자 그룹은 아직도 다양한 차원의 차별을 감수하며 살아가고 있다. 소수자에 대한 ‘보호’와 ‘차별’의 개념이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달라지고 있음을 염두에 둘 때, 소수자 집단에 대한 보이지 않는 억압이 시대적으로 어떻게 변화, 또는 진화해왔는지 관찰하는 작업은 소수자 보호를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한다는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켄지 요시노는 일본 출신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생김새는 영락없는 아시아인이었던 요시노는 미국에서 정규교육을 받았지만 부모의 방침에 따라 방학마다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의 문화도 익혀야 했다. 다문화 사회에서 소수인종이 받는 차별보다 요시노에게 개인적으로 더 중요했던 것은  성적 정체성 문제였다. 남들과 다른 성정체성을 부모를 포함하여 그가 속한 사회에 고백하는 과정에서 그는 집단 내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억압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이후 하버드, 옥스퍼드, 예일 등에서 수학한 뒤 성공한 법학 교수이자 유명 소수자인권 활동가로 살아오며 요시노는 소수자의 민권을 억압하는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폭력에 천착하게 되었고, 그 고민의 결과를 일반 대중을 위해 쉽게 풀어쓴 첫번째 저작이 바로 [커버링]이다.

이 책에 따르면 ‘커버링(covering)’은 비주류, 혹은 소수로 낙인찍힌 개인에게 사회가 가하는 억압의 세번째 단계다. 첫번째 단계는 ‘전환(conversion)’의 요구다. 비교적 최근까지 동성애는 의학계에서 정신질환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동성애가 치료 가능한 대상이라는 의미였기에 당시 많은 동성애자들이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성애자로 전환되는 ‘치료’를 받아야 했다. 동성애 행위는 불법으로 인식되었고 동성애자들은 공개적으로 처벌받았다. 이후 의학계를 중심으로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사회는 동성애자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서 ‘존재의 인식’까지 인정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억압의 두번째 단계는 그래서 ‘패싱(passing)’이다. 최근까지 논란이 되었던 미군내 규율인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 규정이 대표적인 패싱 사례다. 이는 군내 동성애자를 식별하기 위한 공식적 조사행위를 금지하되,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군인에 대해서는 불이익을 감수하라는 규정이다. 패싱은 주변에 소수집단이 존재함을 알고 있지만 그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회적 욕망의 그릇된 발현인 셈이다. 이 패싱으로 인해 많은 소수자들이 명시적인 피해를 감수해야 했고 법은 최근까지 이 패싱을 옹호해 왔다. 이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회적 욕구가 거세지고 소수자들의 집단적 행동과 이에 대한 사회적 지지가 더해져 소수자들이 다수자들과 명시적으로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무르익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태어난 세번째 억압의 단계가 바로 커버링이다.

커버링은 조금 더 교모한 형태로 행해진다. 소수자를 명시적으로 차별하지 않지만, 소수자로 하여금 그가 속한 사회에 적극적으로 동화되기를 강요한다. 노멀(normal) 동성애자와 퀴어(queer) 동성애자 집단 간 논쟁이 좋은 예다. 노멀 동성애자는 동성애자 간 결혼의 합법화를 지지한다. 결혼이라는 사회적 관습을 차별없이 동등하게 누리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쪽이다. 퀴어 동성애자는 역사적으로 결혼은 이성애자 간 결합을 사회적으로 용인하는 편향된 사회적 장치로 기능해왔으므로 이를 적극적으로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성애자만의 사회적 표현이 존재함을 강조하고자 하는 쪽이다. “너는 참 여성스럽게 행동하는구나. 자연스러워”와 같은 말도 커버링을 강요하는 폭력의 한 형태가 된다. ‘여성스러움’을 은연중에 강조함으로써 여성이라는 소수자의 고정관념을 떠안기를 강요하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커버링의 사회적 결과는 조직 내 관리자급 이상의 직위를 획득한 여성 중 상당 비율이 출산 경험이 없다는 통계 자료에서 잘 드러난다. 사회적으로 남성과 동등한 수준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출산을 포기해야 하며, 이렇게 출산(‘여성의 고유한 역할’)을 포기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낮은 단계에 머물 수 밖에 없다는 주장 역시 그래서 커버링의 한 형태가 된다. 아이를 낳고 낳지 않고는 전적으로 개인의 영역에서 결정될 사안이다. 그리고 그 결정과정에서 사회적 억압이 존재하면 아니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 책은 소수자 개인과 그가 속한 다수자가 지배하는 사회 사이에 맺어지는 불평등 계약관계를 조망하며 다양한 판례를 예시로 제시하고 있다. 미국 판례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아주 가끔 일본의 판례도 등장하긴 한다) 우리나라의 상황에 직접적으로 대입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현재 더 교묘하게 진행되고 있는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억압과정에 법적장치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이 긴장관계를 완화해야 한다는 저자의 의지는 확실히 읽을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고백하는 방식을 통해 논리전개과정을 보다 쉽게 전달한다. 그의 경험과 판례를 번갈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전환-패싱-커버링으로 이어지는 억압의 세 단계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큰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는 빈약하다. 2006년에 처음 발표된 이 책에 이어 요시노는 2016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세번째 책인 [Speak Now: Marriage Equality on Trial]을 발표했는데, 아마도 이 책에서 젠더 이슈를 조금 더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나 싶다. [커버링]은 소수자 개인에 대한 사회적 억압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다수자를 위한 책이다. 체험하지 않았기에, 체득하지도 못한 다수자는 광범위하게 행해지는 이러한 폭력행위에 대해 최소한 글을 통해서라도 이해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동성애에 대한 혐오, 소수인종에 대한 멸시, 여성에 대한 억압, 장애인에 대한 무시가 너무나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는, 소수자 민권의 사각지대와 같은 나라다. 다수자들의 반성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커버링]은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지적으로 아주 잘 쓰인 책이다.

벨 훅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bellhooks
저명한 페미니즘 이론가인 벨 훅스(bell hooks)가 쓴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페미니즘 이론의 개론서라기 보다는 페미니즘 운동의 선언서(manifesto)처럼 읽힌다. “페미니즘은 ~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라는 분석적 문장보다는 “남성은~ 여성은~ ~해야 한다”의 형식을 갖는 정언명령적 신념이 느껴지는 문장이 훨씬 많이 존재하는 책이다. 아마도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그게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다’라는 정의로부터 출발하여 이 정의를 확장시키는데 집중하는 이 책이 가진 태생이 그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성차별주의’에 반대하는 하나의 ‘운동’에 대한 개괄서로 충실히 기능하고 있다. 때문에 학문적인 엄밀성, 혹은 중립성을 이 책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오히려 수필에 가깝게 읽힌다. 먼저 벨 훅스가 주장하는 페미니즘이 이룩한 대부분의 성취는 아무런 자료로 뒷받침되지 않고 오로지 훅스와 그 주변 사람들의 경험에 의존한다. 주장에 대한 근거를 상상력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학자로서 벨 훅스가 받는 대부분의 비판 역시 이러한 모호성에 기인하고 있다. 그녀의 책에는 주석이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학문적 전문용어(jargon)가 의도적으로 배제되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최대한 많은 대중에게 읽혀지기 위해서” 이러한 글쓰기 방식이 고수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녀의 책을 읽는 대중의 수준을 – 전문용어의 장벽을 넘을 수 없을 정도로 – 낮추어 보는 것 아니냐는, 즉 학자적 엘리트주의의 기형적 발현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학문적 전문용어는 미세한 차이조차 뭉뚱그려 대충 넘어가지 않으려는 학자적 완고함에 기인할 뿐이다. 상아탑에 스스로를 가두고 일반인의 접근을 차단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한다는 주장은 지나친 비약일 수 있다. 어쩌면 이제 주류 페미니즘 학계에서 비주류로 밀려난 노학자가 더이상 동료 학자를 상대로 글을 쓰지 않고 대중을 상대로 글을 쓰기 시작할 때 가장 손쉽게 택할 수 있는 옵션이 이러한 방식의 글쓰기일 것이다.

또한, 이 책은 ‘혁명적 페미니즘’의 시선에서 쓰였다. ‘개혁적 페미니즘’은 가부장제도, 혹은 남성중심주의와 함께 이 책에서 주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저자와 다른 생각을 가진 페미니즘 운동은 “기회주의적”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페미니즘의 실천은 상호성의 토양을 만드는 우리 사회의 유일한 사회운동이다”라는 저자의 주장이 무색해지는 순간을 자주 마주치게 될 정도로 적대적인 자세를 견지한다. 책을 읽으면서 이것이 어쩌면 페미니즘이 가진 한계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차별주의’ 에 반대하는 운동으로 정의된 벨 훅스의 페미니즘은 반대하는 대상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는 상대적 개념에 가깝다. 혁명적 페미니스트는 현 체재를 전복시키고 페미니즘에 근거해 새로운 시스템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유토피아적 세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정교한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더 나아가 혁명적 페미니즘이 반대한다는 ‘성차별주의’에 대한 정의, 혹은 자세한 묘사가 생략되어 있다는 점 역시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반대할 대상이 구체적일수록 목적은 분명해지고 공격은 정교해진다. 성차별주의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자세히 알기도 전에 선동적 문구에 의해 고무를 당하면 어리둥절해질 뿐, 쉽게 몸과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많은 이들에게 널리 읽혀질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전세계에 만연해 있고 우리나라에도 뿌리깊게 박혀있는 부조리한 남녀 불평등 구조를 깨기 위해 페미니즘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할 사회적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 유일한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페미니즘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보다 존재하는 세상이 훨씬 더 살만하다는 생각에는 쉽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82년생 김지영’들이 오늘도 고군분투하며 유리천장에 머리를 찧고 있다. 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페미니즘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페미니즘은 세상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남녀 차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는 좋은 프리즘으로 작동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벨 훅스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신념은 페미니즘이 자만에 빠지지 않게 만들어주는 좋은 채찍질과도 같다. 페미니즘은 계급투쟁과 인종차별 반대운동을 거친 서구사회가 투쟁 속에서 노골적인 남녀차별을 경험한 뒤 발생한 역사적 부산물이다. 때문에 백인, 중산층, 지식인에 의해 초기 페미니즘이 주도될 수 밖에 없었고, 노동계급, 유색인종, 저학력계층은 초기 페미니즘 운동에서 주변에 위치할 수 밖에 없었다. 벨 훅스는 초기 페미니즘이 가지고 있던 계급적, 인종적 한계를 극복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고 그 결과 페미니즘은 외연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이 책은 페미니즘이 현 시대에 당면하고 있는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안, 혹은 비판에 대한 반론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마지막 두 장에서 ‘영성’과 ‘교육’으로 성급히 결론내릴 때 힘이 약간 빠질 정도였다) 그 대신 벨 훅스와 그 주변인들이 성취한 운동의 성과물을 나열하고 그 결과 훅스가 갖게 된 신념의 뿌리가 무엇인지 설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훅스의 이론 자체가 페미니즘의 역사와 함께 한다면, 그녀가 가진 페미니즘에 대한 신념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이 페미니즘 운동이 어떠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대략적으로 파악하는 데에 약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패티 스미스: 저스트 키즈

저스트키즈
패티 스미스(Patti Smith)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그리고 그녀의 사진을 보았을 때 시대를 읽을 수 없었다. [Horses]가 70년대 중반 발표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깜짝 놀랐고, 그녀가 당시 서른살에 가까운 나이었으며 나의 아버지보다도 나이가 많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았다. 그녀의 음악은, 그녀가 풍기는 아우라는 시대를 지워버릴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나는 패티 스미스를 시대를 앞서나가다 못해 시대를 다시 정의내린 전설적인 뮤지션으로만 알고 있었지만 사실 그녀는 뛰어난 시인이자 퍼포먼스 아티스트, 혹은 인기있는 에세이스트이기도 하다. 그녀의 화려한 레쥬메를 보면 태어날때부터 예술가라는 직함을 부여받고 찬란한 꽃길만 걸어왔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직접 쓴 회고록 [저스트 키즈]는 약간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저스트 키즈]는 패티 스미스가 젊은 시절 동반자이자 평생의 소울메이트였던 로버트 메이플소프가 함께 살아온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패티 스미스는 시카고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교대를 중퇴하고 빈털터리 상태로 뉴욕으로 건너올 때까지 그녀의 삶에서 대중이 유명 예술가의 유년시절을 추측할 때 흔히 등장하는 독특한 환경같은 것은 딱히 찾아볼 수 없다. 다만 그녀는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조금 더 가혹한 가난을 택했고, 그 대가로 60년대 중반 뉴욕의 들끓는 공기를 체험할 수 있었다. 공원에서 노숙을 하고 길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주워 끼니를 해결하는 삶을 살던 중 역시 뉴욕의 길거리에서 방황하던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만났고, 각자의 외로웠던 가난은 두명이 함께 하는 희망섞인 가난으로 그 색깔을 달리하게 되었다.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뉴욕의 중산층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프랫에서 예술을 전공했지만 정식으로 학위를 마치지는 못하고 뉴욕 이곳 저곳을 떠돌던 터였다. 이 둘은 뉴욕의 뒷골목을 전전하며 생계를 위해 일해야 했지만 그 와중에도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나갔다. 이 책은 지나가던 노부부가 “쟤네 그냥 애들(just kids)이잖아”라고 부른 한 젊은 남녀가 혹독한 가난과 싸우며 시대를 뒤흔든 예술가로 성장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의 대부분은 60년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패티 스미스가 [Horses]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음악 커리어를 시작한 시기, 그리고 로버트 메이플소프가 특유의 관능적이고 탐미적인 흑백사진으로 뉴욕 사진계에서 명성을 획득하기 시작한 시기는 70년대 중반 이후로, 당시 이 둘은 동거관계를 정리하고 각자 다른 연인과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있을 때였다. 즉, 스미스와 메이플소프가 적극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을 획득하던 시기는 이들의 전성기와 제법 시차가 있는 편이다. 때문에 스미스가 대중적인 인지도를 회복한 이후의 모습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뉴욕 펑크씬의 대모로 불리우는 스미스의 회고록에서 음악팬이 쉽게 기대할 수 있는 것들, 그러니까 당시 뉴욕 음악씬의 생생한 묘사라던가 전설적인 아티스트와의 교류같은 이야기 역시 사실 이 책의 중심내용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그저 간략하게, 스쳐지나가듯 묘사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은 패티 스미스가 어떻게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만났고, 어떻게 함께 가난과 싸워 나갔으며, 얼마나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사랑했고 또 어떻게 이별하게 되었는지, 헤어진 이후에도 어떻게 관계를 지속해 나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메이플소프는 89년 에이즈에 의한 합병증으로 사망하기 전 스미스에게 자신과 스미스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이 책은 그 유언에 대한 스미스의 실행인 셈이다. 그래서 그녀가 발표한 그 어떤 작품보다 개인적이고 진솔하다. 패티 스미스는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메이플소프에게만 집중하고 있다. 풋내기 예술가에 불과한 이 둘이 서로의 작품활동에 깊게 관여하면서 각자의 재능을 온전히 쏟을 수 있는 전문영역을 발견하는 과정, 그리고 연인으로 시작했지만 메이플소프가 성정체성 및 성적취향을 깨달은 뒤 이를 받아들이고 소울메이트로 관계를 서서히 변화시켜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패티 스미스는 평론으로 시작해 퍼포먼스, 시를 거쳐 음악이라는 영토에 당도했고, 메이플소프는 콜라쥬와 폴라로이드를 지나 핫셀블라드를 만났다. 서로가 없었다면 결코 7,80년대의 영광에 도달할 수 없었을 것이기에, 찬란하지만 가난했고 아름답지만 비참했던 60년대 젊은 시절에 대한 기록이 소중하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사망하기 며칠 전, 침대에 누운 메이플소프가 스미스에게 물었다. “패티, 우리가 진정 예술을 찾은 걸까?” 눈길을 피한 패티 스미스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두 명의 예술가가 함께 걸어온 길, 그 길의 끝에서 확인하고픈 것은 예술적 성취의 물리적 결과물같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함께 걸어온 길이 나쁘지 않았음을, 사실은 참 좋았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는 미국판 표지.

justkids

최진영: 해가 지는 곳으로

최진영
좋은 한국 소설을 읽었다. 최진영의 [해가 지는 곳으로]는 서사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진 작가의 손에서 나온 아름다운 문장들로 이루어진, 인간에 대한 작가의 근심과 애정을 오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소설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라고 불리는 장르 위에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알몸 그대로의 인간사회를 펼쳐 놓은 뒤,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그 폐허 속에서도 반드시 살아남아야만 하는 이유를 명확히 제시하는 작가의 방식이 무척 우직하게 느껴진다. 과장되지 않게 느껴지는 가정들을 차곡 차곡 쌓아 나가며 그 위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본질적 요소를 간결하게 드러내는 작가의 방법론에 저절로 동의하게 된다. 오래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데, 결코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가슴을 탁 치게 만드는 문장을 한 작품에서 이렇게나 많이 만나게 되는 경험을 한 것도 참 오랜만인 것 같다. 그런 문장들이 촘촘히 모여 허술하지 않은 서사를 이루고, 그 서사를 통해 단 하나의 단어,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추상적인 그 단어 하나로 주제의식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책을 읽을 때 설렁설렁 빠르게 읽어내려가는 습관이 있는데 이 소설의 경우 조사 하나 빠트리지 않고 천천히 읽었다. 그렇게 읽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커피를 처음 배우는 단계에서 참고한 책 세 권

직장을 옮기고 난 후 우리 부부에게는 작은 변화가 몇가지 생겼다. 우선 소비패턴을 조금 더 현실화(..)시켜야 했다. 나의 경우 지출항목 중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줄일 여지가 있었던 부분은 커피값과 택시값이었다. 택시야 타지 않으려는 의지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했지만 커피의 경우 한국에서 직장인으로 살기 시작한 이상 의지와 상관없이 줄일 수 없는 항목이 되어버렸기에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때부터 거의 매일 아침 로스터리 숍에서 산 원두를 직접 내려서 두 보온병에 나누어 담은 다음 아내에게 하나를 주고 나도 하나를 가지고 출근하기 시작했다. 나의 드립 실력이야 바닥을 기는 정도지만 신선하고 좋은 원두만 있으면 최소한 아내의 입맛에는 맞출 수 있었고, 다행히 서울에는 좋은 로스터리 숍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회사가 있는 여의도에도 스티머스라는 좋은 커피숍이 있고 서강대교만 건너면 펠트, 테일러, 리이슈, 매뉴펙트 등 많은 좋은 원두를 취급하는 많은 커피숍이 기다리고 있다. 덕분에 일주일 단위로 다양한 원두를 맛볼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었지만 그에 따른 고민도 뒤따랐다. 다양한 커피의 ‘맛’을 표현하고 싶은데 마땅한 표현수단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컵 노트에 적힌 “플로럴”, “와인”, “자스민”과 같은 표현이 대체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맛에 대한 감각이 많이 발달하지 못한 탓에 ‘풍미 휠’에 나온 다양한 맛을 애써 머리로 암기한다 해도 그 맛을 혀 끝으로 ‘구별’해낼 자신도 없었다. 또한 커피를 매일 습관적으로 내리기 시작하면서 과연 내가 내리는 방식이 맞는 것인지, 귀한 원두가 간직한 고유한 풍미를 나의 미숙한 솜씨로 날려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에티오피아산 커피와 케냐산 커피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르며 어떻게 좋은 원두를 찾아내는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커피를 처음 접하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가질법한 이러한 종류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 이곳 저곳을 뒤져 발견한 세 권의 책으로부터 도움을 받기로 했다.

스페셜티 커피 감별법

테드 알 링글: 스페셜티 커피 감별법

먼저 풍미 휠의 분류 기준과 분류에 따른 풍미의 구별 방법을 배우는데 큰 도움을 준 책은 미국 스페셜티커피협회(SCAA) 공동 창립자 중 한 명인 테드 링글이 쓴 [스페셜티 커피 감별법]이었다. 이 책은 커핑(cupping)을 위한 가이드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커피의 풍미를 표현하는 다양한 용어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올바른 커핑의 방법과 SCAA가 제시하는 커핑 점수 기준표까지 제시하고 있다. 커핑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상상만으로 커핑 현장을 떠올리며 책을 읽어나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마냥 복잡하게만 보였던 풍미 휠을 단계적으로 분류하는 기준을 얻게 되었다는 점에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아직도 커피에서 “양파”와 “오이” 아로마를 분리해낼 수는 없지만 최소한 지금 마시고 있는 커피가 “과일향”과 “캐러맬향”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읽은 뒤 전에 몰랐던 새로운 감각이 솟아난 것은 아니다. 이전부터 커피를 마셔오며 느꼈던 풍미를 공통적인 언어를 통해 정의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것이 결코 작은 변화는 아니다. 내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그 커피의 향은 이름을 갖지 못할테니까 말이다.

커피중독

아네트 몰배르: 커피 중독

이 책은 원두의 산지별 특징과 추출 도구별 커피의 분류, 다양한 커피 만들기 방법 들을 개괄적으로 소개하는 커피 개론서에 가깝다. 때문에 커피를 오랫동안 마셔온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터득했을 일종의 ‘상식’들이 보기 좋게 나열되어 있을 뿐이라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큼지막하고 선명한 그림과 함께 산지별 원두의 특징이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고 다양한 종류의 커피 레시피를 한 곳에 모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보로서의 가치는 적지 않은 편이다. 새로움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커피의 거의 모든 것을 한 눈에 바라보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커피마스터클래스

신기욱: 커피 마스터클래스

이 책에는 실제로 커피숍, 혹은 로스터리숍을 운영하거나 커피숍에서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할 것 같은 내용이 담겨져 있다. 커피콩을 고르는 방법부터 로스팅 방법, 핸드 드립 커피를 내릴 때 필요한 유용한 기술들, 그리고 에스프레소머신을 이용한 다양만 메뉴 개발 방법(?)까지 커피와 관련된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들을 나열하고 있다. 나의 경우 집에 머신을 따로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핸드 드립 부분에서 참고할만한 정보를 몇가지 얻을 수 있었다. 한국인이 쓴 한국어 책 답게 커피와 관련된 기술적인 부분들이 너무나 한국적인(..) 어조로 묘사되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핸드 드립의 경우 ‘올바른 팔의 자세’가 몇 장의 사진과 함께 등장하는데 중고등학교 시절 참고서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흥미로웠다. 이 책에 등장하는 위와 같은 교과서적 묘사들이 ‘궁서체’로 진지하게 진행된다는 점이 재미를 배가시키는 요소다.

포틀랜드 여행에 참고한 책 두 권

극동의 작은 나라에서 포틀랜드라는 미국의 크지 않은 도시로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사람은 아마도 그곳에서 그랜드캐년이나 뉴욕시티와 같은 전형적인 관광상품을 발견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스텀프타운과 킨포크처럼 요즘 시대의 ‘전형’이 되어버린 상품의 원형을 목도하고 그 앞에서 인스타그램 사진 한 방 찍을 생각으로 굳이 부족한 휴가일수를 써가며 그 곳까지 가는 것도 그리 현명한 생각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모르긴 몰라도 스텀프타운과 킨포크 그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해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포틀랜드를 위한 한국어 여행 도서는 생각보다 많이 없는 편이다. 짐작컨대 포틀랜드에서 불고 있는 새로운 흐름이 전세계적으로 조명을 받기 시작한지도 몇 년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흐름을 실시간으로 포착하고 이를 한국인의 편리성 선호성향에 부합하는 하나의 ‘여행 코스’로 개발할 여유를 가진 담당자가 많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우리 부부 역시 포틀랜드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상태에서 그곳으로의 여행을 계획했고, 그 와중에 두 권의 한국어 도서를 가지고 그 곳으로 향했다.

매거진B_58_Portland

[B]: Portland

매거진 [B]에서 마침 최근 포틀랜드를 주제로 책을 펴냈다. 이 책의 필진들이 포틀랜드에서 시간을 보내며 경험한 포틀랜드의 색깔을 ‘Good Living,’ ‘Craftmanship,’ ‘DIY,’ ‘Alternative,’ ‘Weirdness’ 다섯가지 주제로 분류하고 각각의 주제에 어울리는 공간과 사람을 찾아가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필진들의 꼼꼼한 관찰력과 풍부한 인터뷰 덕분에 포틀랜드의 ‘현재’을 빠른 시간 내에 익히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다만 외부인의 시각에서 포틀랜드라는 독특한 도시를 ‘관찰’한다는 한계 역시 명확히 가지고 있다. 전형적인 관광 상품을 짧은 시간에 휙 돌아보는여행보다 조금 더 깊게 한 도시를 들여다보고 싶은 이들에게 꽤 괜찮은 지침서로 쓰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여행객이 쉽게 만날 수 없지만 포틀랜드라는 도시를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포틀랜드 ‘거주민’들의 인터뷰를 비중있게 다루고 있고 포틀랜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너무 가볍지 않은 톤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여행자를 위한 책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이 책은 [B]의 관점에서 관찰할 만하다고 생각한 포틀랜드라는 독특한 유기체에 대한 좋은 소개서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부부는 이 책에 나온 공간 중 포틀랜드의 파머스 마켓, 뱀부 스시(Bamboo Sushi), 하트 로스터스(Heart Roasters), 코아바 커피 로스터스(Coava Coffee Roasters), 올림피아 프로비전스(Olympia Provisions), 터스크(Tusk)를 방문했고 모든 곳이 만족스러웠다.

살아보고싶다면 포틀랜드

이영래: 살아보고 싶다면 포틀랜드

이 책은 [B]의 포틀랜드 특집과는 달리 실제 포틀랜드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쓴 포틀랜드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포틀랜드에 살아본 경험이 없는(그래서 잠재적 여행객으로 간주되는) 대다수의 한국인 독자들을 위해 책에 소개된 공간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제공되고 있다. 충분히 예상되는 잠재적 독자층의 성향 탓에 이 책은 표지에 적힌 “라이프 스토리”로서의 성격보다는 현지인의 에피소드를 가미한 개괄적인 포틀랜드 소개서 정도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가 전문 수필가가 아닌 이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이 가지는 미덕은 [B]의 필진들이 시간을 내어 찾아보기 힘들었을, 즉 현지인만이 알고 있는 좋은 공간에 대한 힌트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우리 부부는 이 책에 소개된 캐넌 비치(Cannon Beach)에 가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물론 캐넌 비치는 그 자체로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호텔 로비에 비치된 팜플렛에 관광지로 소개된 것과 한국어를 하는 사람이 “거기 정말 좋으니까 꼭 가봐요”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우리 부부가 짧은 기간 경험한 포틀랜드의 정체성과 분위기는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과 거의 일치했다. 한국인 여행객으로서 ‘잠깐’ 이 도시에 머무르고 맛보는 느낌을 꽤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틀랜드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읽으며 감을 잡기 적당한 책이다.

Bob Boilen: Your Song Changed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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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일주일에 5천원의 용돈을 받았다. 일주일 내내 딱히 돈을 쓸 일이 없던 나는 그 5천원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토요일 오전수업이 끝나면 친구 진우와 함께 효자동에 있는 레코드샵에 가서 테이프 하나를 샀다. 그 테이프를 일주일 내내 들으며 쉬는 시간마다 진우와 음악 이야기를 했다. 가끔 돈이 보너스처럼 더 생길 때에는 테이프를 하나 더 사거나 [핫뮤직]이나 [서브]같은 음악 잡지를 사서 읽고 또 읽었다. 중학교 3년 생활이 끝날 때 쯤 내 방에는 약 300개의 테이프와 수십권의 음악잡지가 쌓여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고나서는 테이프가 아닌 CD를 사기 시작했고, 대학생이 되면서 MP3 음악을 다운받아 듣다가 유학시절부터 다시 CD를 사기 시작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 요즘에는 CD보다 바이닐을 더 많이 산다. 물론 애플뮤직 등을 이용해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기도 한다.

요즘 듣는 음악들도 물론 나를 매번 즐겁게 해주지만, 사춘기 시절 들었던 음악들이 이후 내 삶에 미친 영향은 즐거움과 같은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지금은 음악이 삶의 습관이자 생활의 일부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부분으로 자리잡았지만 당시에는 음악이 내 삶의 거의 전부였고 중심이었다. 음악을 듣기 위해 일주일을 살았고, 테이프 속지에 적힌 음반 해설과 [핫뮤직]에 거의 매달 실렸던 “~ 명반 50선”의 리스트를 외우는 일이 기말고사 준비보다 더 중요했다. 당시 좋아했던 뮤지션들의 언행은 내 삶의 표지였고 당시 좋아했던 음악이 삶의 태도를 결정했다. 나같은 일개 음악팬도 그정도였는데 시대를 빛낸 뮤지션들의 어린 시절은 오죽했을까. 그들의 삶을 바꾸어놓은 음악이 무엇이었는지 살짝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NPR에서 [All Songs Considered]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밥 보일렌(Bob Boilen)은 뮤지션이자 엔지니어이자 프로듀서이기도 하지만 1년에 약 500개의 공연을 보는 엄청난 음악 매니아이기도 하다. 그는 뛰어난 인터뷰어이기도 한데, 그런 그가 당대의 뛰어난 여러 뮤지션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음악 커리어, 더 나아가 삶 자체를 바꾸어 놓은 음악을 정리해놓은 책이 [Your Song Changed My Life]다. 한국 음악팬들에게 해외 뮤지션들은 상대적으로 약간 먼 거리에 위치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홍대나 한남동의 술집에서 옆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도 없고 말을 걸 수도 없다. 보고 싶을 때마다 공연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몇 남아있지 않은 않은 국내 음악매체에 자주 노출되지도 않기 때문에 해외 뮤지션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이 책은 그 간극을 매워주는 소중한 인터뷰 모음집이다.

이들이 어린 시절 어떻게 성장했는지, 어떤 음악을 듣고 자랐는지, 현재의 음악 커리어를 형성한 근간은 무엇이었는지 그들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을 때의 쾌감이 생각보다 짜릿하다. 거의 대부분의 젊은 뮤지션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환경 요소도 분명해 보이지만(부모님이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거나 엄청난 음악 애호가이거나) 꽤 많은 뮤지션들의 경우 음악을 업으로 삼기로 결정한 이유나 배경이 예상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세인트 빈센트의 경우 집 앞을 지나가던 배달 트럭이 우연히 떨어트린 박스에 담긴 음반들이 그녀가 접한 첫번째 음악이었다. 제임스 블레이크는 학교 기숙사 친구의 방에서 우연히 접한 1960년대 소울/R&B 아티스트 샘 쿡(Sam Cooke)의 음악을 듣고 충격을 받아 현재와 같은 음악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밥 보일렌에 의하면 코트니 바넷의 초창기 음악은 매우 평범했고 밴드의 공연도 미숙하기 짝이 없었지만, 투어 도중 윌코의 음악을 반복해서 들으며 현재와 같은 바넷 특유의 기타 테크닉과 가사 창작법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런 디엠시 등 올드스쿨 힙합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컨트리-블루스 싱어 제니 루이스의 고백도 재미있다. 현재 2,30대로 음악적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호지어(Hozier), 아스게이어(Ásgeir) 등 많은 뮤지션들의 사춘기 시절 영웅이자 워너비는 너바나와 펄잼이었다. 나도 너바나와 펄잼을 들으며 성장했기에 더 반갑게 느껴졌다.

책을 읽으며 만약 나를 닮은 자녀가 생긴다면 나는 어떤 음악을 들려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생일선물로 악기를 선물해줄 수도 있고, 저녁 시간 내내 음악을 틀어놓고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흥미롭게 관찰해보고 싶기도 하다. 음악을 전혀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상관없다. 하지만 만약 나를 닮은 그 친구가 음악을 좋아하기 시작한다면 상당히 짜릿한 기분을 느낄 것 같다. 내 아버지가 젊은 시절 모아두었던 산울림의 음반을 내가 다시 찾아내어 재생했을 때 아버지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을까, 문득 궁금해지기도 한다.

카텔 뮐레르·조제 루이 보케: 몽파르나스의 키키

키키
마리옹 꼬띠야르가 주연한 [라 비앙 로즈]를 보고 에디뜨 삐아프의 생애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요즘보다 더 심한 남녀차별이 존재하던 시기 가난과 불운을 온 몸으로 받아 내며 치열하게 살다 간 한 여인의 생은 그 자체로 이미 영웅의 서사가 아닌 불완전한 인간의 완벽한 서사였다. 그녀가 남긴 것은 비단 아름다운 음악만이 아닐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역사적 증거로서 그녀의 생 전체가 읽힐 수 있다. 삐아프보다 조금 더 일찍 같은 빠리라는 공간에서 태어나 삐아프만큼이나 치열하고 아픈 사랑의 증거로 기록될 삶을 살다간 여성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여러 남성 예술가의 뮤즈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독립적인 여성 예술가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돈 많은 남성을 유혹하며 생계를 유지했던 창녀로 기억되는 알리스 프랭(Alice Prin), 혹은 “몽파르나스의 키키(Kiki de Montparnesse)”라고 불린 이 여성의 삶은 너무나 드라마틱해서 그 연표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질 지경이다. [몽파르나스의 키키]는 아방가르드 사진작가 만 레이의 연인이자 후지타 츠구하루, 모이즈 키슬링 등 당대 유명 예술가의 뮤즈였던 그녀의 삶을 그래픽 노블로 옮긴 작품이다.

그림을 그리는 카텔 뮐레르와 글을 쓰는 조제 루이 보케는 [에디트 피아프], [올랭프 드 구즈] 등 역사에 남을만큼 뜨거운 삶을 산 여성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을 함께 만들었다. 2007년 발간된 [몽파르나스의 키키]는 아버지 없이 애정 없는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알리스 프랭이 가난과 무관심을 뚫고 빠리의 몽파르나스를 거점으로 당시 예술계의 뮤즈로 떠올랐다가 마약과 건강악화로 일찍 세상을 등지는 순간까지 그녀의 주요 사건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의 상처를 안고 성장한 키키는 빠리에서 생존을 위해 몸을 팔기도 하고 외설적인 노래를 부르기도 하지만 화가들의 모델로 발탁되어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본인의 전시회를 개최하고 영화에 출연하는 한편 음반을 발매하는 등 독립적인 예술가로서의 삶도 영위한다. 하지만 한 남성에게 정착하지 못하는 뜨거운 열정과 한평생 따라다닌 마약이라는 덫이 그녀의 발목을 서서히 잡아 끌어내리고, 결국 마약과 알콜중독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50세 초반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녀는 당시 빠리 예술, 사교계의 스타였다고 한다. 만 레이와 후지타 츠구하루 외에도 모딜리아니, 헤밍웨이, 피카소 등이 그녀를 직간접적으로 스쳐 지나간 예술가들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리저리 비틀리는 삶을 산 불완전한 인간이기도 했다. 동침하는 남성은 수시로 바뀌었으며 그 중에는 상습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이도 있었다. 누군가는 그녀를 자유롭고 독립적인 영혼이라고 부를 것이고, 다른 이는 현명한 선택을 하지 못한 불행한 인간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 무엇이 되었든, 주체적인 삶을 뜨겁게 살아간 여성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조제 루이 보케는 다사다난한 그녀의 삶을 장소와 시간별로 묶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되 하나의 차원에서 해석되지 않도록 사려깊게 표현했다. 카텔 뮐레르는 키키의 자유분방한 성격을 드러내듯 한껏 활기찬 이미지의 빠리를 특유의 그림체로 그려냈다. 키키를 둘러싼 역사속 주요 이벤트들을 만화적으로 잘 재현하기도 했다. 쉽게 읽히지만 결코 가볍게 읽히지 않는 작품이다.

프레드 울만: 동급생

동급생
내가 좋아하는 미국 작가 앤드루 포터는 아이오와 작가협회에서 퓰리처상 수상자인 메릴린 로빈슨(Marilynne Robinson)을 사사했다.  포터가 작가로서 성공적으로 데뷔한 후 “소설의 첫 문장에 가장 많은 공을 들여라. 그 문장이 작품을 대변해야 한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항상 마음에 두고 집필활동을 한다고 밝힌 인터뷰를 인상 깊게 읽었다(읽었는지 팟캐스트로 들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이후 거의 모든 픽션을 접할 때마다 작품의 첫 문장을 유심히 읽게 된다. 작품을 처음 접할 때의 첫 문장이 어떤 색을 띠는지, 작품을 다 읽고 난 후 첫 문장을 다시 읽었을 때 느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을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좋은 첫 문장을 가진 작품은 긴 시간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게 되더라.

1971년 처음 출판된 이 짤막한 중편 소설(novella) [동급생]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 

이후 르누아르, 혹은 고갱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게 묘사되는 도시에서 그보다 더 아름답게 펼쳐지는 두 소년의 우정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위의 첫 문장이 그저 성인이 된 한 남자의 기억 속에 이쁘장하게 자리잡은 기억의 한 조각 정도는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시오니즘의 광기어린 유대인 사냥과 그로 인해 갈갈이 찣겨진 소설 속 화자의 가족 이야기를 담담히 전해오는 작품의 마지막 즈음에 다다랐을 때 이미 독자의 마음은 무겁게 내려앉아 있을 수 밖에 없으며, 급기야 마지막 문장에 다다르면 위의 첫 문장이 완전히 새롭게 읽히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다. 더 나아가 작품의 마지막 문장과 첫 문장의 마술적인 호응에 의해 소설의 크기, 혹은 차원이 완전히 달라지게 됨을 느끼게 된다.

그저 호감어린 상대에게 잘 보이고 싶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어줄 수도 있을 것만 같은 십대 시절의 풋풋한 감정, 수채화처럼 묘사된 두 소년이 살아간 도시, 마냥 아름다울 것만 같던 서사를 헝클어 버리는 암울한 시대적 환경, 그리고 그 시대를 버티어 낼 수 있게 만든 두 소년의 우정. 작품을 다 읽고 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모든 문장을 손으로 한땀 한땀 더듬어가며 다시 읽게 된다. 소년은 소년에게 무엇을 주었을까. 화자가 기록하지 않은 그 빈틈들 사이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한 소년이 다른 소년의 삶 속으로 들어와 영원히 떠나지 않음으로 인해 숭고한 인간성은 그렇게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일까. 책을 덮은 후 많은 것을 천천히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마쓰이에 마사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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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ㅈㅎ씨와 “몹시 덥고 습기로 가득한 일본의 여름날씨를 마치 뽀송뽀송하고 상쾌한 것처럼 포장하는” 일본영화의 특성에 대해 농담조로 성토한 적이 있다. 한국보다 미세먼지가 적게 배출되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영화속 일본의 여름하늘은 유난히 푸르고 맑아보인다. 강한 햇살을 받아내는 거리와 사람들의 모습에서 더위에 찌들어 지친 모습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10년 전 GRE 시험을 치루기 위해 함께 도쿄를 찾은 당시 스터디 멤버는 “집단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며 차분히 가라앉은 일본의 도시풍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언뜻 보이는 일본의 거리는 조용하게 정리되어 있다. 사람들은 말 없이 빠르게 서로를 스쳐지나간다. 상대방에게 어떻게든 영역표시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의 시선에서 일본사회의 풍경은 솔직하지 못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많은 한국인 독자들의 평처럼 담백하고 잔잔하다. 존경하는 건축가가 운영하는 건축사무소에 들어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사무소의 일상을 함께 체험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작가의 풍부한 배경지식과 꼼꼼한 묘사에 힘입어 마지막까지 일정한 호흡을 유지한다. 마치 나오코 오기가미의 영화들, 예컨대 [카모메 식당]이나 [안경], 혹은 오모리 미카의 [수영장]과 같은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한여름 일본의 풍경이 선선하거나 담백할리 없지만, 많은 독자들이 그렇게 느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단단한 내공에 의존한 유려한 문체덕분일 것이다. 담담하지만 끈기있게 이어지는 만연체의 문장들 속에서 독자들은 어쩌면 잠시 공기좋은 산자락 어딘가로 피서를 떠난 듯한 느낌을 받았을런지도 모르겠다.

다만, 주변의 많은 호평과 달리 개인적으로 이 소설이 크게 와닿지 않았던 이유는 이 작품이 태생적으로 버리지 못하는 보수성이 불편했기 때문이고, 지나치게 영화적인 이 작품의 성격에서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는 높은 습기를 의도적으로 지워버린 듯한 일본영화의 화면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작품 속 여성 캐릭터들은 수동적이고 순종적이다. 주인공 역시 수동적인 것은 마찬가지이긴 하다. 대부분의 캐릭터가 전형적이고 평면적이다. 일본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보수성이 삶의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뭍어나온다. 소설은 두시간짜리 영화로 만들면 딱 좋은 서사구조와 규모를 가지고 있다. 소설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은 풍부한 건축 배경지식 설명 정도일텐데, 이 부분은 픽션이라기 보다는 논픽션에 가까운 영역이라 이조차 문학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번역이 썩 매끄럽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중 화자인 주인공의 독백 부분에서 습관적으로 구어체 표현을 사용하고 있고 현재형과 과거형 어미를 한 문단에서도 번갈아가며 사용하고 있는데 원문이 정말 이런 표현들을 사용한 것인지, 반드시 필요한 표현이었는지 궁금하다. 소설을 읽다보면 딱히 필요하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