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에가: 머리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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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에가(Miega)는 머리를 하러 가는 미용실이다. 하지만 머리만을 하러 가는 곳이 아니기도 하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되어 드나든지 2년 쯤 된 것 같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회사원으로 생활하면서 머리모양이 생활에서 꽤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미국에서는 대학원생 신분이었기에 그냥 하고 싶은대로 하고 다녀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지만, 한국은 사회적 규범이 개인의 머리모양을 상대적으로 강하게 구속하는 곳이기에 ‘적절한’ 머리모양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만 했다. 미용실을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조금씩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머리 모양이란 것이 단지 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해결하면(혹은 ‘때우면’) 되는 숙제같은 존재라고 하기엔 개인의 이미지와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식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미용이라는 정기적인 서비스를 제공받는 공간에 대해서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준오헤어스러운’ 프랜차이즈 미용실은 입장부터 머리감기, 미용, 퇴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기계적인 공장식 매뉴얼대로 진행되었기에 전혀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헤어 디자이너와의 상투적인 대화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된 매뉴얼에 나의 성향과 머리모양을 억지로 끼워맞추려는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찾아간 홍대 근처의 1인 미용실은 반대로 디자이너의 개성이 너무 강해 마찬가지로 아무런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내 머리를 하러 가는 곳인데 가게 주인의 욕망을 해소하는 오브제처럼 쓰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곳에서 마음 편히 내 머리를 맡길 수 없었다.

사실 머리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사적이고 은밀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신체의 일부를 다듬기 위해 무방비 상태로 다른 이의 손에 몸을 맡겨야 하기에 서비스 수요자는 심리적으로 충분히 안정된 환경을 원한다. 불특정 다수에게 그 과정을 노출하고 싶지도 않고 실패하면 되돌릴 수도 없는 머리카락의 특성 상 최대한 개인의 욕구가 헤어 디자이너를 통해 충실히 반영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용실의 경우 위의 두 사례와 같이 몰개성, 혹은 지나친 개성 사이에서 방황하기 마련이고, 이 과정에서 소비자는 무시되기 쉽다. 이도저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주 비싼 돈을 치루고 고급살롱에 가야 하는데 이 방안은 대중을 위한 자본주의 장치가 아니므로 딱히 고려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해답이 되어줄만한 곳이 미에가다. 이 곳은 한국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하는 미용실이다. 우선 이곳에서 ‘한국적 친절함’은 찾아볼 수 없다. 즉, ‘신속한’ 미용 서비스의 제공과 노동가치를 후려쳐서 뽑아낸 ‘저렴한’ 가격표는 없다. 자본주의 구조에서 소비자에게 보다 빠르게 저렴한 상품을 공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생산과정에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사람’의 자리를 지워버리는 것이다. ‘노동자의 기계화’는 상품의 가격을 낮추는 아주 쉬운 방법 중 하나다. 현재 한국사회의 소비문화를 가로지르는 키워드 중 하나가 이와 같은 노동자 소외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면, 미에가에는 빠름과 저렴함이라는 개념을 포기하는 대신 사람 그 자체를 지키려는 시도가 남아있다.

미에가의 문 앞에서 사장님 가족이 함께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경험할 수 있다. 손님을 맞이하고 일을 치루는 직장이라는 공간, 그리고 가족과 함께 일상을 영위하는 사적인 공간이 적당히 혼재되어 있고 적당히 분리되어 있다. 서로의 공간을 지나치게 침범하지 않는 가운데 적당한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서비스와 상품을 위해 사람을 지우기 보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의 삶의 오히려 적극적으로 함께 심어 놓았다. 덕분에 오직 머리를 하러 간다기 보다는 머리를 하는 김에 바깥 공기도 쐬고 사람도 만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게 된다.

위와 같은 경험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미에가가 제공하는 서비스와 공간의 차별성이다. 나는 이 곳의 공기를 친절한 개인주의, 정도로 이해했다. 이 역시 한국사회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성질의 어떤 ‘자세’일 것이다. 먼저 미에가는 어떤 머리를 하고 싶냐고 묻지 않는다.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지에 대해 묻는다.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미에가를 방문하면서 단 한번도 사장님께 어떤 머리를 해달라는 부탁을 드리지 않았다. 첫만남부터 지금까지 나에 대해 말씀드리고 그분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눈 것이 전부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머리가 완성되어 있었다. 타고난 달변가인 사장님은 때로는 커피나 차를 내어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인터넷으로 무언가를 보여주시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신다. 그 와중에 나에 대해, 나를 위한 머리에 대해 아이디어를 얻으시는 것 같아 보인다. 중요한 사실은 단 한번도 그분이 해주신 머리에 대해 불만을 가져본 적도 없으며, 지금까지 다녀본 수많은 미용실 중 이 정도의 만족감을 준 곳을 떠올릴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머리를 잘 하기 때문에 그 곳에 가는 것이 맞다.

공간 역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현재의 곤지암 가게로 이사오기 전 존재했던 성북동 가게는 공간 안에 작은 ‘집’들을 여러채 품고 있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머리하는 곳, 머리 감는 곳, 계산하는 곳, 그리고 사장님의 아들이 노는 곳과 그들 가족이 간단한 요리를 할 수 있는 공간까지 적당하게 분리되어 있었지만 그 어느 공간 하나 막혀있지 않았고 서로를 가로막고 있지도 않았다. 곤지암 가게는 기존에 있던 창고를 개보수해 만들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제약이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이 새로운 공간은 높은 층고와 큰 창문 등 널찍한 개방감을 얻게 되었다. 건물을 크게 양분하여 한쪽은 가족이 머무는 공간, 다른 한쪽은 머리를 하는 공간으로 삼되 그 사이에 적극적인 왕래를 가능케 했다. 건물과 함께 위치한 널찍한 마당은 쾌적함을 더한다. 성북동 가게와 곤지암 가게 모두 미에가의 철학이 담겨 있는 곳일 것이다. 개인적이되 폐쇄적이지 않으며 간섭하지 않되 불편함도 없을 것.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곳의 철학을 적극적으로 이해해줄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는 곤지암까지 한시간 걸려 차를 끌고 가야 하는 불편함과 높은 가격문턱을 감수하고서라도 당분간 이 곳으로 머리를 하러 와야겠다는 생각에 흔들림이 없다.

요즘 한국에도 좋은 미용실, 혹은 이발소가 많이 생기고 있다고 들었다. 미에가와 비슷한 철학을 가진 곳, 단순히 급하게 머리를 하러 가는 곳이 아닌 삶의 철학과 가치를 나누는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제공하고자 하는 이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누군가는 부암동에서, 다른 누군가는 한남동에서 좋은 경험을 하고 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처럼 아주 기본적인, 일상이 되어버린 루틴들이 조금씩 새롭게 이해되고 조명받았으면 좋겠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는 공간부터 장을 보는 공간까지, 가족과 함께 산책하는 공원부터 어쩌면 집안에 있는 화장실까지, 일상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곳일수록 더 깊은 철학적 의미가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게 사회가 축적한 전통이고 사회가 지켜야 하는 미덕이다. 우리가 관광을 가서 가장 먼저 접하는 공간, 혹은 카메라 셔터를 가장 바쁘게 누르는 공간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아닌, 보도블럭이나 커피숍, 혹은 호텔 화장실의 문고리같은 그 도시의 작은 흔적들이다. 그리고 그 흔적들은 그 도시, 그 사회가 오랫동안 쌓아온 경험과 전통의 증거물이다. 우리 사회도 이제 그런 것들을 조금씩 자랑할 때가 됐다. 미에가는 아마도 그러한 시간의 흐름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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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멋을 부리기 시작하는 금호동

결혼 후 삶에서 나아진 부분을 꼽으라면 많은 것에 대해 말할 수 있겠지만 그 중 역시 가장 좋은 점 한가지를 꼽자면 ‘같이 놀러 다니는 사람’이 항상 옆에 있다는 것이고 그 사람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을 입히고 싶고 가장 좋은 것을 먹이고 싶은 사람, 어떤 것이든 가장 먼저 이야기해주고 싶고 어떤 이야기든 가장 귀기울여 듣고 싶은 사람이 항상 옆에 있다는 것은 대단히 큰 축복이다. 어떤 연애든 연애 초기부터 “내 공간과 시간이 필요해”라고 딱 잘라 말했던 내가 어떤 사람과 함께 잠들고 함께 눈을 뜨는 생활에 익숙해지고 주말 내내 함께 붙어 있어도 딱히 피곤함을 느낄 수 없게 된 것은, 내가 변했다기 보다는 좋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환경과 장소에 민감한 동물인 내가 새로운 동네에 ‘정착’하는 과정은 삶에서 특별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그 경험을 가장 좋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다는 것도 그래서인지 대단히 큰 기쁨으로 다가온다. 성동구는 결혼 전까지 단 한번도 주거지로 고려해본 적이 없는 도시다. 딱히 특별한 지식이나 정보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인구가 적은 중구와 선거구가 합쳐졌다는 정도가 최근 내가 획득한 가장 유용한 정보였을 것이다. 아내와 나의 직장 위치와 출퇴근 동선을 고려해 최적점인 금호동을 선택한 것은 사랑하는 마포구를 떠나기 위해 생각해낸 가장 이성적인 이유였다. 둘 다 아침형 인간이 아니기에 바쁘고 정신없는 아침 시간은 하루 중 가장 피곤하고 힘든 때다. 금호동으로 이사온 이후 아내는 아침밥을 여유있게 해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나는 성산동 시절과 여전히 비슷한 시간에 출근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출퇴근 시간만을 고려하여 선택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닌 금호동에서의 생활이 6개월차로 접어들면서 옥수동과 행당동, 신당동에 둘러싸인 이 동네가 갖는 독특한 매력과 가능성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3호선 금호역과 5호선 신금호역을 끼고 있고 도심, 강남, 용산 등 주요 지역과 빠르게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임에도 불구하고 가파른 산 위에 자리잡은 주거지역과 좁은 도로, 더이상 발전이 어려운 금남시장 등 여러 요인에 의해 부동산 가격이 주변만큼 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몇년 간 재개발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우리와 같은 신혼부부 등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거주층의 변화가 발생하면서 동네의 공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 재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곳에는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곳에는 금남시장을 중심으로 몇십년 간 금호동을 지켜온 터줏대감들이 살고 있다. 하지만 이곳조차 멋을 부린 현관문과 멋을 부린 작은 자동차들이 좁은 골목 사이사이에 심심치 않게 보이는 것으로 보아 젊은 세대가 조금씩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새로 지어진 아파트 단지들에는 고급 외제차들이 눈에 띄게 많이 보인다. 이들이 고소득 전문직인지, ‘카푸어’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우리는 이들의 뿌리를 ‘압구정, 혹은 반포에 사는 부모님이 돈을 보태주어 독립한 젊은 부부’ 정도로 추측하고 있다. 다리 하나만 건너면 아이를 맡길 수 있고 광화문이든 서래마을이든 30분 이내에 놀러갈 수 있으면서도 집값은 강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이 곳이 이들에게는 최적의 선택지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보는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유입된 새로운 주거집단은 기존의 금호동 거주자들과 완연히 다른 소비성향을 보일 것으로 추측된다. 기존에 부모님 품에서 누리던 소비패턴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 욕망이 있을 것이고, 한남동-압구정-성수동 등 금호동을 둘러싸고 있는 ‘핫’한 강북 지역문화의 혜택도 누리고 싶을 것이다. 즉, 중산층의 계급적 지위를 유지하면서 강남의 비싼 부동산 가격을 감당하고 싶지는 않은 쁘띠 브르주아지 2세대 정도가 금호동의 새로운 주요 계층이라고 애둘러 표현할 수 잇을 것이다. 강남에는 문화가 없다. 소비만이 있을 뿐이다. 강북에는 문화가 있다. 소비수준이 조금 낮을 뿐이다. 이들 신거주층에게는 아마도 옥수동의 외곽지역 쯤으로 정의내려질 금호동은 강북의 고유한 문화를 보다 저렴한 가격에 소비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가진 장소로 여겨졌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부동산가격(=임대료), 문화적으로 단련된 새로운 주거집단, 지역문화의 특색을 간직한 주요 거점들과의 긴말한 연결성 등 금호동이 새로운 소비 중심지로 각광받을 수 있는 조건은 충분히 갖춰졌다. 물론 금호역과 신금호역 사이를 잇는 길이 가파른 오르막의 1차선 도로이고 성수역이나 행당역에서 금호역으로 이어지는 길도 복잡한 금남시장을 끼고 있는 1차선 도로라는 한계가 명확하긴 하지만, 연남동 골목길과 이태원 경리단길이 이처럼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많지 않았던 사실을 상기해보자면 이정도 걸림돌은 사실 그리 커보이지도 않는다. (어쩌면 이러한 도로적 특성이 금호동을 더 매력적으로 느끼게 해줄지도 모른다!) 아직 금남시장 골목에는 도우미들이 나오는 노래방과 철지난 유행을 머금은 호프집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이 가게들 사이에 새로운 시도를 하는 가게들이 하나 둘 문을 열고 있다. 겉으로 보면 참신한 시도처럼 보이지만, 이면을 들여다 보면 틈새를 노린 한 자본가의 전략적 요충지 확보 정도로 해석될 수준의 가게들이다.

먼저 금호역에서 나와 금남시장으로 향하는 장터길을 따라 걷다보면 이 길의 교통체증을 두 배로 심화시키는 주범인 회전식 원형교차로가 나온다. 여기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금호산길이 나오고 이 길을 따라 가파른 언덕을 넘다 보면 신금호역이 나온다. 이 삼거리가 어찌 보면 금남시장의 다운타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목화다방이 있다. 상호명에서조차 동네의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으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이 가게는 술과 가벼운 음식을 함께 내는 프렌치 비스트로다. 각종 와인과 칵테일을 구비하고 있는데 특이하게 쌍화탕을 마실 수 있다 하니, ‘다방’의 컨셉을 유지하는 동시에 금호동의 지역성을 살리고자 하는 나름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지역성’과 ‘차별성’이 요즘 서울의 힙스터를 정의내리는 두가지 키워드라면 목화다방은 그 키워드를 충실히 해석하는 수준에서 완성된 장소인 셈이다.

원형교차로를 지나쳐 조금 더 금남시장 안쪽으로 들어오면 금남시장의 실핏줄로 이어지는 아주 작은 골목들을 만날 수 있다. 그 중 하나인 장터5길로 올라가면 금남소공원 근처에 돼지미학이 있다. 이 곳은 금남시장에 있는 다른 고기집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고기를 공수해오고 다른 방식으로 고기를 익혀 내온다는 점을 강조한다. 밝고 화사한 커피숍 분위기의 깔끔한 인테리어로 시각적인 차별화를 시킨 다음 인덕션을 이용해 고기를 익혀 깔끔한 반찬과 함께 내어 나온다. 이 고기는 제주도에서 직접 공수해온 것이라고 한다. 불편한 자리에서 전투적으로 고기를 구워먹고 싶지 않은, 그러니까 ‘살이 찌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고기에 대한 욕망도 해소하고 싶은’ 세대에게 어필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장터길에서 금남시장 교차로를 끼고 돌아 독서당로를 타고 한남동 방향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금호대우아파트가 나온다. 이 아파트 상가에는 최근 문을 연 베르베르가 있다. 좁은 공간에 큰 사각 테이블 하나를 덩그러니 놓고 주방은 오픈 형태로 열어두었다. 음식을 먹는 사람과 요리를 하고 내어주는 사람이 공간과 동선을 공유한다.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지역에서 유행하는 전형적인 ‘요즘’ 식당 인테리어다. 적당한 가격대의 와인과 어울리는 서양 음식을 제공하는데 양은  많지 않고 간은 적당히 슴슴하다. 소주를 마시기엔 부담스럽고 공격적인 안주를 먹는 것도 꺼려지는 사람들을 위한 좋은 수다장소를 마련하려는 듯 보인다.

재미있게도 위의 세 음식점은 모두 장진우로부터 출발한 곳들이다. 금남시장이 간직하고 있던 전통적인 위치를 가볍게 전복시키려는 이 시도들이 모두 한 명의 자본가의 머리와 뱃살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백종원류의 ‘네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 일단 다 준비해봤어’ 식 브랜딩보다는 조금 더 파인 튜닝된 타게팅을 원하지만 매일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 갈 주머니 사정도 갖추지 못한 중산층-wannabe 집단이 장진우가 노리는 시장이 아닐까. 그렇다면 금호동보다 더 좋은 터는 없을 것이다. 이미 옥수동은 “옆구정동”이라고 불릴 정도로 압구정의 소비문화에 잠식당했다. 그만큼 부동산 가격도 많이 올랐다. 래미안 옥수리버젠과 옥수삼성아파트를 끼고 있는 독서당로에는 이미 셰프찬부터 초록마을까지 젊은 세대를 위한 소비패턴을 고려한 가게들이 다수 들어와 있다. 동호대교에서 올라와 터널을 두개나 통과해야 하는 약수, 혹은 신당동은 심리적 거리가 너무 멀다. 그곳은 이미 ‘너무 강북’이다. 성수동으로 다리 하나, 압구정으로도 다리 하나, 한남동은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의 금호동은 주차시설만 갖추어져 있다면 적당한 자본을 투하하여 차별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투자자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곳이다.

정작 금호동의 정체성을 지키는 맛집은 은성보쌈이나 원조칼국수보쌈과 같은 금남시장이 품고 있는 오래된 가게들이다.  혹은 이미 서울숲을 끼고 들어와 나름의 위치를 확보한 고메트리가 있다. 재래시장이 품은 오래된 식당과 장진우식 신식 다이너들과의 격차는 좁힐 수 없을 정도로 커 보인다. 금호동에서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 완전히 다른 두 주거집단의 색깔만큼이나 온도차가 심하다. 중요한 점 하나는 기존의 주거집단이 베르베르에 가서 식사를 할 일은 없지만 새로운 주거집단은 얼마든지 은성보쌈에서 한끼를 해결하며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릴 수 있는 소비력과 문화적 확장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요미식회에 한번 나오기만 하면 그곳은 힙스터들의 성지가 될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금호동은 신 주거집단의 문화적 정복이 멀지 않은 곳이다. 금호산길이 새로운 경리단길이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금남시장이 재래시장으로서 갖는 미래가 밝지 않다는 것만큼은 확실해보인다.  금호동은 이제 막 멋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 멋부림 속에 어느 정도의 정체성이 담보될지는 불확실해 보인다.  이미 우리 아파트 앞에도 해외 맥주 보틀샵이 하나 생겼다. 그 가게에서 몇십미터만 내려오면 직접 원두를 볶아서 판매하는 커피숍과 콘크리트 벽을 그대로 드러낸 인테리어를 뽐내는 듯한 커피숍이 연이어 위치하고 있다. 금호동 안에 위치한 이 새로운 형태의 가게들 사이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들쑥날쑥한 셀링 포인트와 특별하게 기억에 남지도 않는 맛들(고메트리는 맛있다, 고메트리는!). 하지만 최소한 어떤 시도의 흐름은 읽히고 있다. 그 흐름이 자본의 어깨에 올라 타서 특정 소비계층의 취향과 만나게 될 때 이 ‘동네’는 타지인들이 시간을 내어 방문하게 되는 관광지로 다시 태어나게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지금 현재 한 지역의 어떤 태동기를 목격하는 것 같아 흥미롭다.

테일러 커피: 플랫 화이트

FullSizeRender 2최근 테일러 커피 본점이 임대차 재계약을 무사히 마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앞으로 최소한 2년은 같은 자리에 있는 테일러 커피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홍대와 그 주변을 90년대 후반 무렵부터 지켜보면서, 진취적이고 용감한 분들이 애써 가꾸어 놓은 소중한 공간이 부동산이라는 무지막지한 돈놀이를 감당해내지 못하고 사그라드는 모습을 너무 많이 지켜봐 왔기에, 제발 이 곳만은 그런 방식에 의해 사라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테일러 커피는 내가 “단골”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로컬, 스페샬티 커피숍이다. 사실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부끄러운 것이, 단골이라 하면 매일같이 들려서 그곳을 지키는 분들과 가족처럼 지내야 하는 것이 마땅하거늘, 나는 요즘 홍대와 집이 조금 더 멀어졌다는 핑계로 몇주에 한번 겨우 찾아갈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가련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용기를 내어 “단골”이라고 칭하는 이유는, 이곳이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거의 유일한 전문 커피숍이기 때문이다. 내가 외롭고 힘들고 지칠 때마다 이곳에서 내어주는 음료를 마시며 힘을 내고 기운을 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기대와 희망을 안고 찾아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을 잘 알지도 못하고, 아까 썼듯 자주 찾아가지도 않는다. 하지만 테일러 커피 본점이라는 공간을 사랑하고, 그 공간에서 우러나오는 커피와 그 향기를 사랑하며, 그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이 흥미롭다. 워낙 커피맛으로 유명한 곳인지라 여기저기서 찾아오는 분들이 많아 ‘로컬’ 특유의 색깔은 의외로 희미한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이 곳이 홍대 스페샬티 커피숍의 오리지널리티를 강하게 간직하고 있는 이유는 그곳을 거쳐가는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중심을 지키고 있는 커피,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이곳에서 내어주는 플랫 화이트를 가장 좋아한다. 한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때였다. 비가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그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몹시 피곤했다. 눈이 시뻘개질 정도로. 하지만 이상하게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집에 가면 뻔한 저녁일과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그날만큼은 그 과정을 밟기가 싫었다. 그래서 무작정 테일러 커피로 향했다. 손에는 책조차 들려 있지 않았다. 책도 없이 커피숍에 가다니! 그런 미친 짓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날 해보았다. 그곳에서 플랫 화이트를 시켰고, 마셨다. 입술 끝에서부터 부드러움이 밀려 들어왔다. 거짓말을 조금도 보태지 않고, 눈물이 찡 하고 쏟아져 나왔다. 그날은 몹시 힘든 날이었고, 일주일의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던 평일 저녁이었다. 나는 빈속이었고, 카페인에 몹시 약한 탓에 저녁에는 절대 커피를 마시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날 그 한잔의 플랫 화이트는 정말,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몹시 고마웠다. 나는 ‘위로의 언사’를 신뢰하지 않는다. 내가 느끼는 무언의 고통과 슬픔을, 타인이 단어와 낱말과 문장으로 위로해준다는 것이 그렇게 와닿지 않는다. 그날 그 한잔의 플랫 화이트는 지치고 피곤한 나를 아무말 없이 너무나 잘 위로해주었다.

테일러 커피의 플랫 화이트는 어떤 바리스타가 어떤 날씨에 만들든 늘 일정한 맛을 보여준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부드러움과 코와 혀를 자극하지 않는 연한 향, 그러면서도 목구멍 저 너머까지 충실하게 채워주는 풍부한 맛. 마실 때마다 항상 만족하고,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 이건 집에서 절대 만들지 못한다. 내가 집에서 만들 수 있는 최선의 커피는 좋은 원두로 내린 핸드 드립 정도일까. 하지만 프렌치 프레스나 드립커피같은 집에서 마시는 커피가 절대 채워주지 못하는, 깊은 여운이 느껴지는 커피가 있다. 테일러 커피의 플랫 화이트는 나에게 그런 존재다. 깊은 위로.

우래옥: 물냉면과 불고기

허우샤오시엔의 영화 <빨간 풍선>의 오프닝 시퀀스를 보면서 ‘이 영화가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그 영화는 최소한 나에겐, 완벽한 영화는 아닐지 몰라도, 확실히 완전한 영화였다. (it might not be a perfect film to everyone, but was a truly complete one to me) 음식에도 그런 것이 있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우래옥의 물냉면을 꼽을 것이다. 우래옥의 물냉면은 욕심을 부리지 않지만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음식이다. 겸손하지만 뿌듯해지는 맛을 가지고 있다. 이건 아마도 우래옥이라는 공간이 안팎으로 품고 있는 공기의 밀도, 혹은 색깔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우래옥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의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 낡고 오래된 3,4층 정도 되는 작은 건물들 사이에 위치해있지만, 큰 길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자세로 소복히 앉아 있다. 실내에 있는 널찍한 의자와 식탁이 ‘회전율’을 대놓고 무시하듯 느긋하게 손님을 맞이한다. 직원들은 친절하다. 혼자 오는 손님들이 많으니 부득이 합석을 해야 할 때는 충분히 양해를 구한다. 불고기가 식으면 다시 데펴준다. 빨리 나가라고 닥달하지 않는 분위기다. 식당탐방 프로그램의 화면을 캡쳐한 요란스러운 광고문구나 이 곳을 찾은 유명인사들의 서명도 찾아볼 수 없다. 이곳이 유명한 식당일 것이라는 유일한 단서는 냉면만을 시킬 경우 적용되는 선불 요금제뿐이다.

우래옥의 공기는 가볍지 않다. 손님을 들뜨게 하지 않지만, 기대하게 만든다. 육수가 그러하다. 공간은 겸손하다. 가슴을 내밀고 자랑하지 않지만, 소리 높여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발견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면이 그러하다.우리가 ‘전통’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는 가치를 유지해오는 몇 안되는 식당일 것이다. 아마도 이 곳의 이러한 정체성을, 요란스러운 미디어와 변덕스러운 사람들의 입소문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을지로 4가라는 소규모 공장지대의 우직하고 소박한 땀방울들 덕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 냉면 두그릇과 불고기 2인분이라는 사치를 즐기고 나면 8만원이 넘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 서울에서도 꽤 비싼 가격에 속하는 한끼일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 맛을 반드시 느껴야만 한다면, 조금 더 지갑이 헐거워져도 속상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반드시 느껴봐야 한다. 처음 젓가락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해서 마지막 젓가락에서 아쉬움보다는 감사함을 느끼게 만드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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