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ese Breakfast with ADOY at V-Hall in Seoul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첫번째 서울 공연에 대한 기억은 꼭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공연시간이 너무 짧아 채 달아오르기도 전에 끝나버린 느낌이 들었고 피드백 소음이 거의 매 곡마다 발생하는 등 사운드도 개판이었기 때문에(이 피드백때문에 무대 위 연주자들도 완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인상을 받았다) 내 생애 최고의 공연이었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이들의 한국 공연이 확정된 이후 공연을 준비한 당사자들부터 나를 비롯한 관객까지 우리 모두가 조금은 더 감정적이 되었던 것 같고, 아마도 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잊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여운이 강하게 남아 있기에 어제 저녁의 기억을 꾹꾹 담아두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미쉘 ‘정미’ 자우너는 무대 위에서 많이 행복해보였다. 유난히 무대 위에서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아보였는데, 그녀가 여러번 밝혔듯 이 공연이 매우 감정적일 수 밖에 없는 많은 이유들이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어제 서울 공연은 재패니즈 브렉퍼스트가 2017년 가진 120여 차례의 투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공연이었다. 미쉘 개인으로서는 며칠 뒤 파라솔 공연에 게스트로 참여할 예정이긴 하지만, 어쨌든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화려하고도 잊지 못할 2017년 투어는 어제부로 종료되었기에 조금은 감정적이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안도감같은 것이 그녀에게 찾아왔던 것 같다. 또한 이 공연은 그녀에게 매우 사적(personal)인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어제가 (외)할머니의 10주기이기도 했고, 그녀의 큰이모와 작은이모가 공연장을 직접 찾아와 주었으며, 3년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모국이자 미쉘 본인이 태어난 곳에서 갖는 첫번째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는 말을 전하자 큰이모는 “어떤 회사에 다니길래 그런 지원을 해주니?”라고 물었고, 미쉘은 서울 공연장에 사람이 들어차지 않을 것을 매우 걱정했다고 한다. 다행히 어제 공연장은 사람들로 꽉 들어찼고, 미쉘은 아마도 “최고의 회사 식구들”과 함께 퍽 안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연은 감정적인 부분을 떠나 약속에 의해 철저하게 맞추어진 여러 요소들을 결합시키며 진행되는 기술과 공학의 영역이기도 하다. 재패니즈 브렉퍼스트 멤버들은 무대 위에서 완벽하게 프로페셔널했다. 피드백이나 하울링 등 기술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두 음반의 대표곡들을 무리없이 연주해냈다. 여러 매체에서 상찬을 받은 두번째 음반 [Soft Sounds from Another Planet]의 시작을 알리는 “Diving Woman”으로 공연의 문을 연 이들이 두번째 곡으로 “In Heaven”을 선택했을 때, 공연의 절정을 장식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노래가 너무 빨리 나와서 약간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Oh, do you believe in heaven? Like you believe in me”로 시작하는 후렴구가 미쉘 자우너 특유의 비음 섞인 목소리와 함께 나올 때 그녀의 사생활과 전혀 관계없는 나까지 코끝이 찡해졌고, 그녀 역시 그 곡으로 무언가를 털어버린 듯 이후 곡들에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며 무리 없이 노래와 연주를 소화해냈다. 공연 중 가장 인상깊었던 곡은 육중한 쇳소리를 내는 “Jane Cum”이었다. 음반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자우너의 폭발적인 성량을 유감없이 경험할 수 있었고, 그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가 공연장을 압도해버리는 순간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함께 무대에 선 남편을 위한 노래 “The Woman That Loves You”, 긴 투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느껴지는 감정을 담았다는 “This House”도 인상깊었고, 오토튠을 입힌 보컬과 전자음악의 요소를 잔뜩 첨가한 이질적인 트랙인 “Machinist”로 공연을 마무리한 점도 흥미로웠다.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도 스튜디오형 밴드가 아닌 공연장형 밴드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넘치는 재능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꽤 긴 커리어를 보낼 이들의 첫 발걸음을 목격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미쉘 자우너가 첫 곡을 끝내고 한 멘트가 마음에 깊이 남아있다. 첫번째 음반 [Psychopomp]를 만들 당시 아마도 이 음반을 끝으로 꽤 오랫동안 음악 프로젝트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올해에만 120번의 공연을 한 끝에 자신이 태어난 서울에까지 당도할 수 있었다고, 단 한번도 자신을 종교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진 않았지만 어디선가 돌아가신 어머니가 자신들을 지켜봐주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는 그 말이 나로 하여금 그들을 오랫동안 응원하고 싶게 만들었다. 코아첼라나 파노라마같은 A급 페스티벌에 가야 겨우 만날 수 있는 이 떠오르는 신예 뮤지션을 서울의 작은 공연장에서 볼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아 참, 오프닝 공연을 한 아도이도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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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은 국내 음반들

시간이 흐를수록 블로그에서 국내 음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국내 음악과의 ‘거리’ 설정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이 블로그에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 아주 최소한의 정보라고 제공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쓴다. 단순히 ‘존나좋군’ 정도에서 끝날 이야기라면 굳이 언어를 통해 정리된 글을 공개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보통 정보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의 객관성을 확보해야 할 것인데, 국내 음악에 대해 글 을 쓸 때 바로 이 부분에서 자신감을 갖기 어렵다. 해외 음악의 경우 나의 물리적 위치가 외부자적 시선에 머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를 완전히 체득하기 어렵다는 한계와 함께 자연스럽게 최소한의 객관성을 확보하게 되는 반면, 한국에 살면서 한국에서 발매되는 한국 음악을 듣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머리나 귀보다 마음으로 먼저 듣게 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블로그에 우리나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가 지우고, 썼다가 또 지우기를 반복하게 된다. 하지만 그냥 마음으로만 즐기며 살기에는 최근 국내에서 좋은 음반들이 많이 나온지라 이를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결코 객관적일 수 없는, 다른 말로 하면 마음부터 먼저 움직이게 되는 음악들이다.

 

김사월


김사월: 7102

김사월은 첫 음반을 발매한 후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마치 한국에서 독립 음악인이 음악으로만 먹고 사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절망에 담대하게 대응하는 것처럼 많은 공연장에서 노래를 불러왔다. 이건 마치 한국에서 여성으로, 또 여성 음악인으로 사는 것이 참 많이 피곤하고 불편하다는 사실에 대한 가장 적극적으로 정공법적인 대답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얻었을 것이고, 또 그만큼 달지만은 않은 현실을 삼켜야 했을 것이다. 김사월의 새음반은 기족의 곡들에 더해 새로운 노래들이 라이브 공연 실황녹음 형태로 담겨 있다. 김사월의 현재, 그리고 그녀가 살고 있는 한국의 현재를 담아내기 위한 가장 좋은 형태의 음반 구성이다. 또한 포크음악 장르의 생명력을 확인시켜 주는 가장 절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녀의 음악은 약간 변했다. 대중음악의 문법을 적극적으로 따르기도 하고, 무반주 독백처럼 하고 싶은 말을 조금 더 직설적으로 쏟아내기도 한다. 그녀는 지금도 서울을 여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생각해보면 벌써 멈추어 서서 정착하기엔 조금 더 살펴봐주었으면 싶은 마음의 구석들이 너무 많이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새소년 여름깃

새소년: 여름깃

많은 이들이 칭찬한 바로 그 새소년, 듣던대로 역시 좋은 요소들이 듬뿍 들어가 있는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실리카겔의 김한주와 함께 작업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조금은 몽실몽실한 드림팝의 색깔도 느낄 수 있어서 더 반가웠다. 내가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하는 이들의 음악을 들을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부분은 장르 안에서의 문법을 확실히 익히고 있는지의 여부보다는 개별 노래 안에서 확실한 훅 하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감각을 가지고 있느냐이다. 이건 어떻게 보면 유전자에 가까워서 가르칠 수 없는 부분처럼 느껴지기도 하다가도 노력을 게을리하다가는 평생 제대로 써먹지 못하는 아슬아슬한 재능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새소년의 [여름깃]에서는 살짝 미소짓게 하는 좋은 훅들이 많이 보인다. 이게 소속사와 프로듀서가 가진 좋은 상업적 감각덕분인지(마이 캐미컬 로맨스가 그렇게 끌려가다 망했지..) 뮤지션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재능에 기인한 것인지는 다음 음반에서 보다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전자양 던전

전자양: 던전

사실 전자양의 음악을 습관적으로 많이 듣는 편은 아니다. 우선 보컬의 톤에 대한 호불호에서 나는 불호에 가까운 편이고, 이들이 내세우는 사운드의 핵심 색깔이 ‘반드시 전자양이어야만 한다’처럼 느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전자양의 음악을 듣고 싶다면, 그와 비슷한 색깔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보다 더 좋은 음악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던전]은 조금 더 전자양만이 낼 수 있는 음악에 집중한 듯한 느낌이 들어 반가웠다. 조금 덜 불편하면서도 조금 더 확실해졌다. 그래서 전자양쪽으로 조금 더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게 된 것 같다. 몇몇 곡들은 눈이 확 떠질 만큼 정말 좋다.

 

아도이

아도이: Catnip

아도이의 [Catnip]은 최근 가장 좋게 들은 음반 중 하나다. 리얼 에스테이트(Real Estate)의 음악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청량감 넘치는 드림팝 사운드를 여기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적절한 수준의 고민과 적절한 수준의 깊이, 적절한 수준의 정체성 등을 야무지게 뭉쳐서 적절한 수준의 대중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장치를 잘 고안해낸 것 같다. 국내 음반을 들을 때 종종 느꼈던 공통적인 아쉬움이 “너무 레퍼런스가 뻔히 보인다”는 것이다. 아도이의 이번 음반은 나의 그러한 불평을 마치 꿰뚫고 있었다는 듯 정면돌파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했어. 좋으면 됐잖아. 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도 동의하게 된다.

 

실리카겔

실리카겔: SiO2.nH2O

실리카겔의 정규 1집은 지난해 가장 인상깊게 들었던 음반 중 하나였다. 남자 멤버들의 군 입대 전 마지막으로 내놓은 EP [SiO2.nH2O]는 1집에서 정돈이 다 된 것처럼 느껴졌던 이들의 사운드가 다시 자유롭게 날뛰기 시작하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이들의 음악을 듣다보면 익살맞음과 서정성이 묘한 방식으로 얽혀 드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이번 EP에서는 이들만의 그런 화학작용이 100% 잘 발휘되는 것 같아보이지는 않는다. 통일성을 찾기 힘들기 때문에 음반의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듣기도 힘들다. 하지만 실리카겔은 우리나라 인디씬을 말할 때 중요하게 언급되어야 할만한 가치가 있는 그룹이고, 이 음반은 이들이 잠시 활동을 멈추기 전 내놓은 마지막 기록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의미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을 하면 콩쿠르같은 과정을 통해 군면제를 받을 수 있는데 왜 대중음악은 그런게 없는지 모르겠다.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Mogwai: Every Country’s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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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지고 있는, 혹은 한번이라도 들어본 모과이(Mogwai)의 음반을 세어보았다. 대충 짐작해보아도 8,9장 정도는 넉넉히 들어본 느낌이다. 모과이는 단 한번도 나의 ‘최애’ 뮤지션이었던 적이 없다. 포스트록으로 장르를 국한지어도 항상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이나 익스플로전스 인 더 스카이(Explosions in the Sky)의 이름이 이들 앞에 먼저 나왔다. 심지어 모노(Mono)의 음반 몇 장을 더 인상깊게 들었다고까지 말할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과이보다 더 많은 수의 음반을 내 선반에 꽂게 만든 동시대 뮤지션은 찾기 힘들다. 상 중 으뜸상이 개근상이라고 했던가. 모과이는 내가 음악을 처음 듣기 시작하던 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내 곁에서 멀리 떨어진 적이 없었다. 내 음악듣기 인생의 개근상같은 밴드다.

이들은 4,5년에 한 장씩 음반을 발표하는 천년기념물같은 밴드가 아니다. 2년, 아니 어쩌면 1년에 한장씩 새로운 음반을 꾸준히 발표해 왔다. 첫번째 정규음반 [Young Team]을 1997년에 발표한 뒤 20년 가까이 활동을 한 이 스코틀랜드 출신 밴드의 모든 정규음반 수는 (라이브 음반과 영화음악까지 합치면) 16장에 이른다. 보통 음반을 준비해서 발표하고 투어를 돌면 2,3년의 시간은 훌쩍 지나기 마련이다. 거기에 개별적으로 휴식을 취하거나 개인활동을 하게 되면 음반과 음반 사이 간격이 4,5년씩 벌어지는 것도 그리 비정상적인 일은 아니다. 모과이는 근래 보기 드물 정도로 근면성실하게 음악을 만들어왔다. 정말 놀라운 점은 그렇게 정력적으로 많은 음악을 쏟아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모과이의 음악을 꾸준히 들어 왔다는 사실이다.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 음반을 매년 발표하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구매목록에서 쉽게 삭제되지도 않는다. 늘 구미를 당기는 음악을 만들어내고 또 실제로 지갑을 열어 이들의 새 음반을 구매하게 만든다.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이정도 수준의 창작력을 꾸준히 보여주었던 뮤지션이 얼마나 있나 세어본다면 그 수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모과이는 최근 새음반 [Every Country’s Sun]을 발표했다. 영화음악을 제외하면 2014년작 [Rave Tapes]이후 3년만이다. 밴드의 첫 출발부터 함께 했던 기타리스트이자 주축 멤버였던 존 커밍스(John Commings)가 탈퇴한 이후 발표하는 첫번째 음반이기도 하다. 무언가 큰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모과이의 열렬한 팬이 아닐 것이다. 20년동안 모과이는 늘 모과이의 음악을 해왔다. 슈게이징의 끝물이 세상을 휩쓸 때에도, 핌프록같은 선정적인 음악이 세상을 지배할 때에도, 말랑말랑한 기타팝이 인디씬을 휩쓸 때에도 모과이는 모과이의 음악을 해왔고, 모과이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을 해왔다. 이번 음반에서도 마찬가지다. [Hardcore Will Never Die, But You Will] 이후 조금씩 감지되어 온 새로운 ‘리듬’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어 모과이 음악이 주축으로 자리잡은 것 정도가 표면적으로 느껴지는 변화라고 할 수 있지만, 1997년 데뷔 음반의 질감을 떠올리게 하는 트랙이 발견될 정도로 이들이 유지해온 고유한 감정, 혹은 음악적 공간감은 일정한 수준 안에서 잘 간직되어지고 있다. 앞서 말했듯 이러한 꾸준함이 정체로 읽히지 않는다는 점이 이들의 위대함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이 음반은 ‘올해의 음반’ 목록에서 쉽게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정도의 파괴력은 없다. 하지만 모과이의 오랜 팬들의 귀를 즐겁게 할만한 요소를 충분히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에도 별다른 고민없이 지갑을 열었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얻었다.

Joshua Redman & Brad Mehldau: Near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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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소포니스트 조슈아 레드먼(Joshua Redman)과 피아니스트 브래드 멜다우(Brad Mehldau)의 협연은 90년대 초반 레드먼 쿼탯 투어에 멜다우가 참여하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이 두 명의 음악가는 우정을 나누어오며 서로에 대한 영향을 주고 받았는데, 2011년 본격적으로 하나의 팀을 이루어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들의 음악은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게 된다. [Nearness]는 두 재즈 음악가의 유럽 투어 실황을 녹음은 라이브 음반이다. 스페인, 스위스, 독일, 노르웨이, 네덜란드에서 가진 공연에서 연주된 음악들이 실려있다. 찰리 파커(Charlie Parker)와 털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의 고전을 새롭게 해석한 곡들도 들어있고 두 음악가가 직접 작곡한 현대적인 노래들도 들어있다. 재즈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나조차 이 두 음악가가 공연에서 성취한 경지가 매우 높은 수준에 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음반을 듣다 보면 레드먼과 멜다우가 연주를 통해 매우 재미있고 치열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멜다우가 리드미컬한 피아노 연주를 트랙을 열면 레드먼이 격렬한 섹소폰 연주로 회답한다던지, 레드먼이 작곡한 섹소폰 위주의 트랙에 멜다우가 자신만의 색깔로 피아노 소리를 덧칠한다던지 하는 식으로 전개되는 이들의 연주는 음악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몇번을 반복해서 들어도 지겹지 않고, 거기에 더해 몇번을 더 반복해서 듣고 싶게 만든다.

Valerie June: The Order of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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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들어 가장 큰 주목을 받은 뮤지션을 꼽다보면 그 중 발레리 준(Valerie June)은 반드시 포함될 것 같다. 그녀는 테네시에서 태어나 19살 무렵부터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테네시를 떠나 집시 뮤지션으로 전국을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는데, 2013년 발매된 첫번째 정규음반 [Pushin’ Against the Stone]의 곡 대부분은 이시절 기차나 지하철, 버스 안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후 테네시로 돌아와 올해 초 발표한 두번째 정규음반 [The Order of Time]은 그녀의 음악세계가 드디어 활짝 만개했다는 평가와 함께 대중적으로도 좋은 호응을 이끌어냈다. 밥 딜런의 직접적인 영향력이 느껴지는 그녀의 음악은 미국 포크음악을 기반으로 소울, 블루스, 가스펠 등 흑인음악을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 그녀의 음악에서 내가 대단하다고 부분은 위와 같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그녀의 목소리 안에 꾹 눌러담는 카리스마와 아우라다. 그 어떤 음악 장르도 그녀의 목소리를 거치면 그녀의 음악으로 자연스럽게 다시 태어난다. 하나의 장르로 정의내릴 수 없는 편안하고 아름다운 노래들이 오직 ‘발레리 준의 음악’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두번째 음반만에 대단한 성취를 해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공연으로 들으면 훨씬 더 좋다고 한다.

Mitski: Puberty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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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권 음악을 한국에서, 혹은 한국인의 입장에서 듣는 우리들은 종종 그 음악을 감싸고 있는 지역의 문화적 환경, 혹은 음악을 만든 뮤지션이 가진 개인적인 감수성(이 역시 문화적 환경에 영향을 받았겠지만)을 음악 자체와 분리시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까 한국, 혹은 한국 문화라는 프레임 안에서 영미원 음악을 받아들일 때 발생하는 독특한 반응같은 것이 존재하는데,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과 같은 새로운 장르(?)의 발현도 이와 비슷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영미권 문화 바깥에서 성장한 뮤지션이 그 지역의 자장 안에서 영미권 음악을 만들 경우 느껴지는 고유한 감수성도 있다. 우리로 치면 검정치마가 대표적인 경우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알라바마 공장에서 ‘아제라’ 간판을 달고 나온 그랜저의 느낌이랄까. 분명 한국인이 만든 한국음악으로 들리는데 영미 대중음악의 ‘국적’ 역시 느껴지는 음악 말이다.

미츠키(Mitski)는 출산 당시 콩고에 살고 있던 그녀의 어머니가 자녀에게 일본 국적을 물려주기 위해 일본으로의 원정출산(?)을 감행하는 바람에 일본에서 태어났다. 출생 직후 콩고로 돌아와 그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이후 성인이 될 때까지 가족과 함께 약 12개국에서 생활했다. 20세가 되어 뉴욕에 있는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은 뒤에야 비로소 ‘정착’이라는 것을 할 수 있었다.  1990생이니 이제 만 27살이 된 그녀는 7년째 뉴욕주 브루클린에 머물며 음악을 만들고 있다. 2016년에 발표된 데뷔 정규음반 [Puberty 2]는 하나의 ‘국적’으로 그녀를 규정할 수 없는 위와 같은 물리적 배경을 음악적으로도 잘 느낄 수 있는 음반이다. 이 음반이 나온 뒤 거의 대부분의 매체에서 호평이 이어졌고 주요 음악매체에서는 이 음반을 ‘올해의 음반’ 목록에 올려놓았다. “Your Best American Girl”은 그해 가장 많이 들려진 인디 파워발라드 중 하나였을 것이다.

나는 미츠키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좋긴 하지만 흔하기도 한 인디 음악’ 정도로 받아들였다. 퍼지한 기타를 바탕으로 하는 곡 전개방식도, 세인트 빈센트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독특한 음색도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소리였다. 탄탄한 음반의 구성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미츠키만의 특징을 잘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미츠키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그녀의 개인적인 삶을 들여다볼 기회를 얻게 되면서 미츠키의 음악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평생을 무국적자처럼, 혹은 경계인처럼 떠돌아다닌 그녀가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가감없이 풀어놓는 과정에 공감하게 되었고, 그러한 26년의 삶에서 그녀가 느끼고 극복했을 감정들이 [Puberty 2]에서 아주 솔직한 방식으로 전달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음반은 개인적이지만 동시에 확장적인 음반이기도 하다. 문학계에서 이제 꽤 인기있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은 디아스포라 문학의 정체성을 인디음악의 형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면 [Puberty 2]는 미츠키가 해낼 수 있는 디아스포라 인디음악의 단단한 결과물이다. 영미 음악의 경계선을 인종과 지역이라는 고전적인 틀 바깥의 영역으로 조금 더 확장시킨 셈이다. 미츠키는 그녀의 삶 자체로 ‘탈지역화’된 음악을 들려준다. 검정치마의 음악과는 또 다른 형태의 탈국적화한 영미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 [Puberty 2]는 뮤지션을 둘러싼 환경 안에서 태어난 음악이 역설적으로 그 환경의 견고한 영향력을 무력화시키는 과정을 목격할 수 있는 흥미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블러드 오렌지가 필립 글래스를 만났을 때

아래 영상은 NPR에서 제공한 6분짜리 짧은 인터뷰를 담고 있다. 인터뷰어는 블러드 오렌지로 잘 알려진 데브 헤인즈, 인터뷰이는 클래식과 팝의 경계선상을 넘나드는 피아니스트 필립 글래스(Philip Glass)다. 헤인즈와 글래스 모두 장르의 구분을 무색하게 만드는 범용적인 음악을 구현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인터뷰 내용 중 필립 글래스가 음악을 시작하게 된 배경이 재미있다. 아버지는 기계수리공이었는데 창고에서 라디오를 계속 고치다보니 어느새 음반을 팔기 시작했고, 음반을 팔기 시작하다 아예 작정하고 음반가게를 차리게 되었다고 한다. 글래스는 그런 아버지를 따라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그에게 음악은 그저 음악일 뿐, 클래식 음악도, 팝 음악도 존재하지 않았다. 볼티모어에서 태어나고 자란 글래스는 57년, 21살 때 줄리어드 음대에 진학하여 뉴욕으로 올라왔다. 뉴욕에서 처음 가진 직장은 가구 배달업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피아니스트로의 삶을 선택했을 때 평생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녀야 할 것이라며 걱정했다. 글래스는 그 말을 듣고 “그거 참 괜찮은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헤인즈 역시 약 21살 무렵 무작정 런던에서 뉴욕으로 건너왔다. 지하철에서 먹고 자며 노숙생활을 하던 그는 뉴욕의 “맥박”에 끌려 아직까지도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한 시대를 풍미한 거장이 새롭게 떠오르는 뉴욕 인디씬의 대표주자를 만나 들려주는 이 짧은 대화에서 서로에 대한 충분한 존경심을 확인할 수 있다.

Iron & Wine: Beast Epic

iron and wine
샘 빔(Sam Beam)이 아이언 앤 와인(Iron & Wine)의 이름으로 발표한 첫 세 장의 음반은 서브팝(Sub Pop)에서 나왔는데 이 때가 밴드의 첫번째 전성기였다. 2004년작 [Out Endless Numbered Days]는 아이언 앤 와인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서늘한 미국식 포크 정체성을 처음으로 드러낸 상징적인 작품이었고, 이어진 [The Shepherd’s Dog]은 그러한 밴드의 색깔을 더 깊고 그윽하게 정제한 수작이었다. 이후 밴드는 서브팝을 떠나 메이저 음반회사인 워너 브라더스와 계약하고 그 산하 레이블인 논서치(Nonesuch Records) 등에서 세 장의 정규 음반을 더 발매했는데, 이 시기의 아이언 앤 와인의 음악은 웬지 손이 덜 가게 되는 음악을 만들었다. 지나치게 많은 소리가 삽입되어 쉽게 집중할 수 없었고 주제의식 또한 불분명해 샘 빔이 이야기하는바를 쉽게 형상화시킬 수도 없었다. 이 때를 밴드의 ‘침체기’라고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산뜻한 커리어 초기와 비교하여 음반의 완성도 측면에서 분명히 구분되는 지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후 아이언 앤 와인은 서브팝으로 돌아와 최근 일곱번째 정규음반 [Beast Epic]을 발매했다. 음악적 고향으로 돌아온 밴드는 이 음반에서 그들의 첫번째 서브팝 시절 음악을 좋아하던 이들에게 좋은 선물을 안긴 듯 보인다. 음악은 다시 단순해졌고 간단해졌지만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의외의 묵직함이 느껴진다. 복잡한 악기구성이나 화려한 화음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오직 샘 빔의 목소리와 어쿠스틱 기타가 무대의 정중앙에 자리잡고 있고, 나머지 목소리나 악기들은 이 둘을 충실히 뒷받침하는 역할에 머무르고 있다. “less is more”의 아이디어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이 음반에서는 더 적은 것에 집중하고자 하는 샘 빔의 의지가 형식적인 측면에서의 도움을 받아 최근 전작들에 비해 훨씬 더 효율적인 완성도와 아름다운 소리의 성취로 이어지고 있다. 마치 [The Age of Adz]로 자신의 음악세계가 극단적으로 확장되는 경험을 한 뒤 소박한 사운드의 [Carrie & Lowell]로 새로운 차원의 성취를 이룬 수프얀 스티븐스의 커리어를 보는 듯 하다. 한두개의 튀는 곡들이 음반을 이끌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곡들이 조화롭게 얽히며 음반 전체적으로 균일한 완성도를 보여준다는 점도 만족스럽다. 아이언 앤 와인이 선사하는 지적인 포크음악을 높은 수준에서 다시 접할 수 있어서 반갑다.

The National: Sleep Well Beast

sleep well beast
더 내셔널(The National)의 7번째 정규 음반 [Sleep Well Beast]를 최근 반복해서 꽤 많이 들었다. 애플뮤직에 몇 곡이 선공개되었을 때부터 들었고, 아마존에서 음반을 주문한 뒤 아마존 음악 앱으로 음반 전체를 계속 들었다. 그리고 어제 바이닐이 집으로 배달된 뒤 집에서 스피커를 통해 조금 더 큰 소리로 한번 더 들었다. 사실 지금도 듣고 있다. 세상의 모든 좋은 음악이 그러한 것처럼, 더 내셔널의 음악 역시 반복해서 들을 때마다 좋은 점이 새롭게 발견된다. 질리지 않고 계속 들을 수 있고 또 계속 듣고 싶게 만드는 음악이 세상에는 참 많이 있는데, 더 내셔널의 새 음반 [Sleep Well Beast] 역시 그러한 매력을 품고 있다.

이들의 신보는 색깔이 조금 달라졌다. 우선 음반의 제작과정에서 전작들과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 ‘마음만 먹으면’ 스타디움급 공연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대중성을 획득한 이들은 뉴욕 교외지역의 오래된 교회를 개조하여 자신들만의 스튜디오를 마련했다.(하지만 여전히 미국 투어에서만큼은 중소규모의 공연장을 선호한다고 한다) 보컬 맷 버닌저(Matt Berninger)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듯,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교외에서 평화로운 풍경을 하루종일 바라본다면 밴드 멤버 간에 싸울 일도 훨씬 줄어들 것이고 음악에 대한 집중도 역시 전과 다를 것이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 새로운 환경은 이들 음악의 결, 혹은 톤까지 새로운 방향으로 틀어놓았다.

the national new studio

밴드의 기타리스트/키보디스트 애런 데스너(Aaron Dessner)가 주도하여 만든 더 내셔널의 새로운 스튜디오 내부 모습.

더 내셔널의 음악을 들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고약한 유머를 던지는 점잖은 신사의 얼굴이다. 힘든 세상에서 어떻게하면 즐겁게 살지를 고민했던 이들의 음악은 파더 존 미스티(Father John Misty)처럼 위악스럽지 않게, 하지만 플릿 폭시스(Fleet Foxes)처럼 지나치게 근심스러운 표정을 짓지도 않은 채 회색빛의 도시 풍경을 세심하게 묘사해왔다. 지난 여섯장의 음반은 버닌저의 읊조리는 보컬과 이를 탄탄하게 뒷받침하는 데스너 형제와 데빈돌프(Devendorf) 형제의 전통적인 록음악 구조를 통해 더 내셔널이라는 밴드의 고유한 색깔을 청중에게 분명히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Sleep Well Beast]는 조금 깊어진 밴드의 고민이 엿보인다. 힘든 세상에서 즐겁게 살지를 고민하기보다 이렇게 힘들어진 세상이 대체 ‘왜’ 이모양이 되었는지를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과 같은 굵직한 이벤트가 미국에 사는 개개인의 미시적 삶에 어떻게 침투하는 과정을 탐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이들의 달라진 태도는 “The System Only Dreams in Total Darkness,” “Nobody Else Will be There,” “I’ll Still Destroy You” 등 음반의 대표적인 곡들에서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Walk it Back”에는 부쉬 전 대통령의 참모였던 칼 로브(Carl Rove)의 스피치가 직접 삽입되어 있기도 하다. 부쉬 시대 이야기를 10년도 더 넘게 지난 지금 다시 꺼낸다는 것은, 페이크뉴스와 보호무역주의, 이민자추장정책 등 오늘날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각종 사회적 이슈들의 뿌리가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떻게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눈여겨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닐까. 이들이 [Fake Empire] 시절부터 천착해온 실존의 문제, 혹은 군중 속의 고독과 같은 주제와 일맥상통하는 지점이다.

이와 함께 형식적인 면에서 전작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가 눈에 띈다. 드럼루프나 전자 신디사이저의 적극적인 사용,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리듬악기처럼 쓰이는 기타, 더 낮게 가라앉은 버닝어의 목소리와 여성 코러스의 등장 등은 다채롭게 구성된 음반의 곡들에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다. 더 내셔널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색채, 혹은 이미지는 큰 틀에서 변화하지 않았다. 다만 조금 더 무거워진 주제를 조금 더 다채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노력이 돋보인다. 쉽게 질리지 않는 이들 음악의 매력은 결코 시끄럽게 내지르거나 화려하게 꾸미지 않는 담백함에 많은 부분 기인하고 있다. 이번 음반도 마찬가지다. 주제는 조금 더 무거운 듯 보이지만 형식적으로는 조금 더 재미있어졌다. 좋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더 내셔널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최고작은 아직 나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Sufjan Stevens, Nico Muhly, Bryce Dessner, James McAlister: Planetarium

planetarium
당대의 젊은 음악가 네 명이 모여 만든 프로젝트 음반 [Planetarium]은 유사한 컨셉을 가진 구스타프 홀스트(Gustav Holst)의 작품 [The Planets]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그와 차별되는 지점 역시 분명히 가지고 있는 흥미로운 음반이다. 우선 음반의 탄생과정부터 여러 음악팬의 구미(?)를 자극시킬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한 사람은 니코 멀리(Nico Muhly)다.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은 후 대중음악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음악가인 그는 조아나 뉴섬(Joanna Newsome)과 아노니(Anohni) 등의 음반 제작에 참여하기도 한 각광받는 작곡가라고 한다. 그러너 그의 아이디어에 적극적으로 동조한 이가 같은 클래식 음악을 기반으로 현대 대중음악의 최전선에서 활약중인 더 내셔널(The National)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스 데스너(Bryce Dessner)와 말하면 입만 아픈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아티스트 수프얀 스티븐스(Sufjan Stevens)였다. 스티븐스와 멀리는 2006년 무렵부터 더 내셔널의 음반 제작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 왔고 데스너와 멀리는 클래식 음악이라는 공통된 자양분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 세 명이 의기투합하는 과정에서 방해가 되었을 법한 것은 스케쥴 조정 정도였을 것이다. 여기에 스티븐스가 [Illinois] 시절부터 투어 퍼커셔니스트로 함께 해온 제임스 맥알리스터를 끌어들여 4명의 프로젝트 그룹이 완성됐다.

이들이 만들어낸 음악을 하나의 장르로 묶는 일은 무척 어려울 뿐 아니라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반응은 아마도 같은 ‘우주’라는 테마를 가지고 만든 구스타프 홀스트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와 비슷하다. 실제적인 경험이 전무한, 어쩌면 평명적인 이미지만으로 상상력을 동원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표현해야 하는 행성과 우주에 대한 음악은 아티스트에게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왔을 것이지만 이와 동시에 음악을 듣는 청자에게도 전과 다른 긴장감을 선사하는 구석이 있는 셈이다.  네명의 젊은 음악가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을 기존의 음악적 문법으로 표현하기 위해 애쓴다기 보다는 우주라는 ‘개념’ 자체를 소리로 재구성하는 쪽을 택한 것처럼 보인다. 흔히 우주를 상상할 때 떠올릴 수 있는 광활함과 공허함, 막연한 두려움과 신비로움같은 개념에 더해 따뜻함이나 쓸쓸함같은 인간적인 감정이 함께 느껴지는 것은 이들이 우주를 피상적인 대상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음악 안에서 재구성되는 적극적인 상호작용의 대상으로 고려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흥미로운 흔적이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 필요한 여러 요소, 예컨대 스티븐스의 팔세토 창법이라던지 드레스너의 맑고 고운 기타톤, 멀리의 장르를 뛰어넘는 작곡법 등이 무리없이 어우러져 하나의 ‘플래너터리움’ 사운드를 완성시킨다. 현대 대중음악의 위치를 한단계 격상시킬 정도의 파격적인 완성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젊은 음악가들의 재미있는 도전치고는 의외로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