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ade Fire: Everything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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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이드 파이어의 신작 [Everything Now]에 대해 평이 엇갈린다. “사랑할 수는 없지만 꽤 좋은 음반”이라는 평부터 “그들 커리어에 흑역사로 기억될 음반”이라는 평까지 다양한데, 대체적으로 “커리어 사상 최고의 음반은 절대 아니다”라는 주장에는 동의하는 것 같다. 나는 상당히 안좋게 들은 쪽이다. 그들 커리어에서 최악의 결과물임은 분명해 보이며, [Funeral]과 [Suburbs]에서 쌓아올린 위상을 스스로 걷어차버린다는 점에서 일종의 후퇴로 읽을만한 지점까지 발견된다.

물론 윌 버틀러와 그의 친구들이 가진 기본적인 음악적 역량은 여전히 뛰어나다. 다양한 장르를 아케이드 파이어만의 자장(磁場) 안으로 껴안으면서도 밴드의 고유성을 전혀 훼손하지 않는다는 점은 충분히 인상적이다. 아케이드 파이어의 음악을 들으면 수많은 레퍼런스가 떠오르면서도 아무런 레퍼런스가 떠오르지 않기도 하는데, 이들이 픽시스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적통임에도 불구하고 아레나급 밴드로 성장할 수 있었던 재능이 어디에 있는지 이 음반에서도 여전히 확인할 수 있다.

다만, [Reflektor]에서부터 서서히 감지된 불안감이 이번 음반에서 드디어 터져버린 듯한 느낌을 받는다. 즉, 앞서 발매된 [Funeral]부터 [Suburbs]까지 쌓아올린 명성으로 인해 그들은 그래미에서 호명될 정도로 인디록씬 뿐만 아니라 현대 영미 록씬 전체를 대변하는 존재로 각인되어 버렸는데, [Reflektor]에서는 이러한 그들의 위상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구멍을 찾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노골적인 디스코 사운드의 차용, 의도적으로 한번 더 꼬아버린 듯한 메타포, 아케이드 파이어만의 광활한 공간감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꽉 막힌 사운드스케이프 등 전작에서 처음 시도된 다양한 모습들이 [Everything Now]에서 조금 더 명확하게 존재감을 어필하고 있다. 결과는 실망스럽다. 고구마를 먹은 듯한 답답한 사운드가 이어진다. 타이틀곡 “Everything Now”의 변주는 형식적인 부분에서만 이들의 전작들에서 발견되었던 대가적인 흔적을 찾을 수 있고, “Creature Comfort” 등 소수의 곡에서만 섬뜩하면서도 깊게 파고드는 밴드 특유의 날카로움이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시대가 아티스트에게 부여한 사회적 위상을 거부하고 그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오려는 시도는 과거에도 수없이 존재해왔다. 스스로를 풍자화시키거나 완전히 다른 장르로 나아가는 것 역시 수차례 목도한 현상이었다. 아케이드 파이어의 시도는 혼란스럽다. 의도를 알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래들이 그렇게 좋지 않다. 목적과 형식에 사로잡혀 음악의 본질을 살짝 망각한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걱정하게 된다. 윈 버틀러는 “우리 위니 하고 싶은 거 해”라는 익스큐즈를 받아도 좋을 만큼 안정적인 위치에 있었다. 매너리즘에 빠져 전작과 비슷한 음악을 만들어내도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앞으로 더 치고 나갈 수 있는, 아직 정점에 도달하지 않은 가능성이 있었다. 왜 스스로를 이렇게 빨리 포기하려 하는지 모르겠다. 더이상 [Funeral]과 같은 긴장감을 더이상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 허망하게까지 느껴진다.

Jlin: Black Orig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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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음반 [Dark Energy]로 시카고 풋워크씬의 판도를 완전히 흔들어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 인디애나 출신 프로듀서 Jlin의 두번째 음반 [Black Origami]는 시카고, 혹은 풋워크, 혹은 하우스라는 특정 지역과 특정 장르 안에 그녀의 음악을 묶어 두기에는 그녀 자신이 이미 너무 커져버렸음을 선언하는 하나의 징표로 읽힌다. 이 음반을 듣다보면 퍼듀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지만 음악을 업으로 삼기 전까지 철강정제소에서 블루칼라 노동자로 지낸 그녀의 독특한 경력이 어쩌면 흑인, 여성, 노동자라는 계급적 자아를 음악 속에 충실히 녹여낼 수 있는 배경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Black Origami]는 음악 그 이상의 강렬한 어떤 하나의 생명체라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극소수의 테마를 변주해가며 완벽한 음반의 구성을 유지해 내는 것도 신기한데 정신없이 몰아치는 리듬과 그 사이로 툭툭 뛰어드는 보컬(이라고 하기엔 하나의 외침, 혹은 중얼거림)만으로 음악이 줄 수 있는 극한의 감동을 선사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녀의 세계가 무한대로 확장되고 있음을 확신하게 한다. 아마도 제일린은 현대 음악이 갈 수 있는 최전선을 개척하고 있는 혁명가이자 음악 안에서 음악 그 이상의 세계를 펼쳐내고 있는 궁극의 멀티 아티스트일 것이다. 그녀가 선사하는 ‘불편함’은 우리가 얼마나 공고히 구축된 보수적인 세계에 길들여져 있는지 깨닫게 해주는 소중한 선물일 수 있다. 이건 예술이 사회에 공헌하는 가장 훌륭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경제학자 수백명이 달라붙어도 하지 못할 ‘느낌의 전달’을 음반 한장이 해낼 수 있는 것이다.  몇십년 뒤 우리가 2017년 음악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회고할 때 반드시 언급되어야 할 음반이다.

Lorde: Melod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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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rde의 2013년 데뷔 음반 [Pure Heroine]과 이 음반에 대한 대중과 매체의 열광적인 반응을 지켜보며 내가 가진 생각은 “가짜”, 한 단어였다. 그녀가 자신의 음악적 자아(self)를 형성하고 선전하는 방식은 알맹이 없는 껍질만으로 이루어진 듯 한 공허함을 감출 수 없었고, 당시 헝거게임-ish 한 십대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점과 맞아떨어지며 마이너 문화의 유산을 물려 받았다고 온몸으로 광고하는 스타성 가득한 십대소녀의 허세가 대중음악 산업에서 나름의 고유한 위치를 만들어내며 전세계적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 당시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Pure Heroine]은 지루하고 진부하다. 완성도나 맥락 등을 따지지 않는 어떤 부류의 대중에게는 잘 ‘먹힐 만한’ 음악을 장르에 상관없이 마구 때려박은 듯한 음반 구성때문에 음반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을 제대로 듣기조차 힘들 정도다. 그녀의 목소리는 위악적이고 깊이가 없다. 작곡방식은 어디선가 따온 것같은 의심을 지우지 못하게 만든다. 그런 ‘나쁜 인상’을 깊게 심어준 그녀의 두번째 음반 [Melodrama]가 만점에 가까운 찬사를 ‘다시 한번’ 이끌어내자 궁금증이 솟아올랐다. 그녀의 어떤 부분이 대체 십대 소녀팬부터 늙은 평론가까지 모두 한마음으로 그녀를 지지하게 하는 것일까?

감히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Melodrama]는 깔끔하게 정제된 대중음악 종합선물세트다. 소녀들의 걸크러쉬부터 삼촌팬들의 묘한 로리타 컴플렉스까지 두루두루 건드리는, ‘뉴질랜드의 아이유’ 쯤으로 평가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법한 무난하게 잘 만든 음반이다. 전작과 차별되는 점을 굳이 꼽자면 특정 프로듀서의 영향력에서 많이 벗어나 로드만의 고유한 색채를 조금 더 정착시켰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여전히 다양한 장르를 잡식성으로 마구 집어 삼키고 있지만, 몇몇 킬링 트랙(“Liability”, “Sober”, “Green light” 등)에서 보여주는 깜짝 놀랄 만한 훅은 그녀의 고유한 재능에서 나온 것이라는 심증을 굳혀준다. 또 하나의 진일보한 지점이라면 음반의 처음부터 끝까지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하나의 테마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일텐데, 굳이 노래 제목의 반복, 혹은 연작 구성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뮤지션 개인이 이 음반에 특정 주제의식을 불어 넣으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는 흔적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어디까지 성취했는지 판단하는 완성도의 문제는 별개다. [Melodrama]가 비욘세의 셀프타이틀 2013년작이나 2016년 [Lemonade] 정도 수준의 좋은 팝 음반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한국의 아이유가 현재 그러하고 있듯, 로드는 영미 팝시장에서 마이너리티 정서를 세일즈하며 독특한 위치를 잃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스스로를 아티스트라고 인식하는 젊고 설익은 뮤지션의 허세 넘치는 시도조차 무던히 받아넘겨줄 수 있을 정도로 로드 개인의 매력이 넘치는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할 길이 없다. 다만, 물려 받고자 하는 장르의 유산을 낮은 단계부터 차근차근 따라 올라갈 끈기가 존재한다면, 그녀의 5년 뒤, 10년 뒤 모습은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모습일 것이라는 예상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Girlpool: Powerpl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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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터커(Cleo Tucker)와 하모니 티비대드(Harmony Tividad) 두 명으로 이루어진 캘리포니아 출신 밴드 걸풀이 데뷔 EP와 첫번째 정규음반을 통해 지금까지 드러낸 음악적 색채는 무척 단순명료했다. 기타와 베이스만으로 이루어진 극단적으로 단순화된 악기 편성 위에 두 명의 보컬이 절묘하게 만들어내는 하모니가 음악의 흐름을 주도했고, 그 덕분에 이들이 풀어내는 이야기, 즉 가사가 차지하는 비중도 적지 않았다. EP와 첫번째 정규음반 사이에 큰 발전을 이루어냈다고 평가받는 이들이 두번째 정규음반 [Powerplant]에서도 이와 비슷한 수준의 성장속도를 지속할 수 있었을까? 음반의 첫인상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았다. 전작에 비해 한껏 풍성해진 사운드가 이들의 목소리에만 쏠렸던 관심을 사운드 전체로 넓게 분산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면, 전작을 지배했던 농축된 밝은 에너지가 음반 전체에 걸쳐 쉽게 찾아지지 않아 못내 아쉬웠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음반을 반복해서 계속 듣다보면 이들의 음악이 가지고 있던 미덕이 다른 모습으로 변화한 것일 뿐 에너지 레벨이 한차원 내려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두번째 음반의 주인공도 여전히 이들의 목소리다. 전작에 비해 다양한 악기를 동원해 훨씬 넓은 사운드스케이프를 펼쳐놓는 숙제를 스스로에게 부여했지만, 목소리와 하모니가 여전히 그 중심을 꽉 잡고 집중력을 잃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번 음반작업을 원래 윌코의 제프 트위디와 함께 작업하려고 했으나 일정 상의 문제로 무산되었다고 하는데,  트위디 특유의 마이너하고 나른한 감성이 간접적으로나마 전달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하이톤의 에너지에서 제법 무거워진 분위기로 전환된 음반의 색깔 역시 한결 이해하기 쉬워졌다. 여러모로 이번 음반은 흥미로운 구석이 많다. 기대했던 엄청난 발전을 이룩한 것은 아니고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엄청난 사운드가 숨어있는 것도 아니지만, 반짝 반짝 빛나는 별처럼 등장하여 많은 이들의 호감을 산 이들이 꾸준하게 좋은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더 커진 것도 사실이다.

Moonlight: Stills

결혼 후 아내와 함께하지 않는 첫번째 월요일, 유난히 잠들기 힘들었고 유난히 일어나기 힘들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출근길을 조심조심 지나 졸린 눈을 비벼가며 오전시간을 보내고 이제 점심시간이 되어 이어폰을 꽂고 얼마전 아마존에서 주문한 [Moonlight: Original Motion Picture Soundtrack]의 음원을 듣고 있는데, 이 영화를 본지 몇달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던 마음속 잔상이 다시 강해짐을 느낀다. 영화적으로도 완벽했지만 영화를 떠나 그저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었던 배우들의 눈빛과 숨소리를 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을 지긋이 감싸 안아주었던 Nicholas Britell의 사운드트랙도. 이 영화는 인간에게 영혼이 있음을 증명한 몇 안되는 기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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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eet Foxes: Crack-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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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장의 ‘기가 막힌’ 음반을 연속으로 발표하며 촉망받던 아티스트가 음악계를 5년 넘게 떠나 있었다면 그 시간은 결코 무시할 정도로 짧거나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그 기간동안 그 아티스트가 속해있던 밴드의 전직 드러머는 파더 존 미스티라는 이름으로 세 장의 음반을 발표하며 인디 음악계의 새로운 맹주로 떠올랐다. 어깨를 나란히 견주던 아케이드 파이어는 그래미상을 수상하며 인디씬 너머의 다른 차원으로 나아갔다. ‘Occupy Wall Street’ 운동은 트럼프의 당선이라는 결말과 함께 사그라들었다. 로빈 펙놀드가 ‘걱정’하고 ‘근심’하던 세상의 많은 일들은 해결되기는 커녕 조금씩 더 나빠져갔다. 시애틀 출신의 밴드 플릿 폭시스를 이끌던 그는 뉴욕 맨하튼에 위치한 컬럼비아 대학교의 “가장 독특한 행색의 신입생”이 되었다. 그가 대학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플릿 폭시스의 활동은 완전히 멈췄다. 펙놀드와 멤버들은 그들과 한 때 함께 밴드활동을 했던 드러머가 펙놀드의 수염을 흉내내며 희화화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고, 극우정당들이 세계적 대기업들과 함께 불평등을 심화시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도 그저 지켜봐야 했다. 그들이 발표한 지난 두 장의 음반에서 공통적으로 흐르는 정서가 근심, 혹은 걱정, 혹은 염려의 감정(anxiety)이었다면, 이제 음악계의 한쪽으로 살짝 비켜난 이들이 6년만의 새음반에서 간직해야 했을 정서는 무엇이었을까.

플릿 폭시스의 세번째 정규 음반이자 서브팝을 떠나 워너뮤직 산하 계열사인 Nonesuch와 계약 후 발표한 첫번째 음반인 [Crack-Up]은 지난 두 장의 음반과 그 성격을 명확히 달리 한다는 점에서 우선 주목할만하다. 물론 펙놀드의 목소리와 그 목소리를 둘러싼 멤버들의 화음, 플릿 폭시스만이 해낼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미국 포크 음악의 색깔은 여전하다. 다만 전작들에 비해 유난히 가라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정서가 음반 전체를 관통하고 있고, 음반에 실린 노래들이 매우 개인적이라는 점에서 그 차이 역시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Crack-Up]은 플릿 폭시스 프로젝트라기 보다는 로빈 펙놀드의 개인작업처럼 들린다. 음반작업의 모든 곡에 관여한 멤버는 펙놀드를 제외하면 Skyler Skjelset 한 명 뿐이다. 그리고 펙놀드는 그에게 “Third of May/Õdaigahara” 라는 노래를 헌정했다. (5월 3일은 Skjelset의 생일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이 음반이 통일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펙놀드는 전세계 그 어떤 아티스트도 따라하지 못하는 형태의 음악을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정서를 눌러 담아 만들 수 있는 몇 안되는 재능 중 한명이다. 음반에는 그가 뉴욕의 대학에서 보고 느꼈을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고, 그 결과물이 전과 달라(혹은 우리의 기대와 달라) 그 점이 명확하게 도드라져 보일 뿐이다.

음반을 여는 첫 곡 “I am All That I Need/Arroyo Seco/Thumbprint Scar”는 펙놀드 특유의 연곡 형식을 극단적으로 늘린 느낌인데, 그 정서가 몹시 우울해서 우선 한번 놀라게 된다. 아마도 펙놀드는 세상을 근심하는 시선에서 그 세상에 영향을 받은 자신과 그를 둘러싼 환경에 대응하는 자세에 대해 표현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노래는 명롱한 펙놀드의 목소리를 기대하는 청자를 완전하게 배신하며 낮은 톤의 spoken words로 이렇게 시작한다.

I am all that I need, and I’ll be, till I’m through
And I’m light on my feet, good to be, without you
Mute at midnight, she might look like the answer
but I’m all the I need

음반에서 가장 이질적인 곡이자 아마도 가장 멋진 곡 중 하나일 “If You Need To, Keep Time on Me”는 서브팝 시절의 플릿 폭시스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노래다. 이들 노래에서 이토록 명징하고 노골적으로 ‘나’를 드러낸 적이 있나 싶은데 심지어 타인에게 무언가를 직접적으로 부탁하는 듯한 후렴구는 펙놀드의 목소리가 더이상 불특정 다수를 향하고 있지 않음을 짐작하게 한다. 플릿 폭시스의 오랜 팬들이 가장 좋아할만한 트랙은 아마도 “Fool’s Errand”일 것이다. 음반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함과 동시에 전작들과의 연결고리를 적절하게 찾고 있다. 다만 이 노래에서도 화자는 “나”이고, “나”의 혼란스러운 경험과 감정이 노래를 휘젓고 있다.

이 음반은 플릿 폭시스의 커리어에서 가장 감정적이고 가장 개인적인 작품이다. 그만큼 목소리는 많이 떨리고 있고 입장은 모호하며 색깔은 다양하다. 완전히 놓아버린 지난 시간에 대한 회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상태에 대한 불안감, 그 안에서 계속 피어오르는 세상에 대한 근심, 그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개인의 고독과 극복의 문제. 파더 존 미스티가 풍자와 해학으로 세상을 그려내고 있다면 플릿 폭시스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명상(retreat)과 독백. 그 안에 플릿 폭시스만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존재한다.

Father John Misty: Pure Come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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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쉬 틸만의 프로젝트 파더 존 미스티의 세번째 정규작인 [Pure Comedy]는 그의 음악적 전성기가 본격적으로 도래했음을 알리는 견고하고 아름다운 음반이다. 최근 몇년 간 힙합, 블루스, 소울 등 흑인음악쪽으로 무게추가 급격하게 기울고 있는 현대 대중음악계에서 록과 포크 기반의 음악에서도 여전히 선구적인 창의성이 탄생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승전보와도 같은 음반이기도 하다.

조쉬 틸만이 전작들에서 보여준 뛰어난 가사전달능력은 그의 철학이 더 깊어지면서 하나의 고유한 브랜드로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현실의 모순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스스로 그 모순을 해부하고 파헤치는 ‘분석’의 깊이를 갖추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정치, 사회, 문화 등에서 퍼져있는 거시적인 문제점부터 인간 개인의 욕망 등 미시적인 부분까지 사정없이 건드리는 폭넓은 스펙트럼까지 갖추었으니, 이제 그를 ‘작가’라고 칭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그의 목표는 21세기의 밥 딜런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Pure Comedy]라는 음반명 뒤에는 그만의 반어법이 숨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는 더이상 뒤틀린 유머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때로는 직설적으로, 때로는 은유적으로 전달되는 그의 메시지는 음반 전체를 관통하며 코메디의 차원을 넘어선 진지함을 구축하고 있다.

사실 이번 음반에서 가사보다 더 크게 놀란 부분은 음악적 완성도가 기대 이상으로 뛰어나다는 점이다. 우리가 팝음악에서 ‘전통’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많은 요소들을 원형 그대로 재현하되 그 안에서 레퍼런스를 쉽게 떠올릴 수 없을 정도의 창의성을 부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파더 존 미스티는 그것을 해낸다. 그가 이 음반을 현대의 ‘고전’으로 만들고 싶어했는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과거의 고전들이 남긴 유전자를 성공적으로 계승하여 현대의 감성으로 되살린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로 확인할 수 있다. 음반의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하거나 빈 구석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한 곡 구성능력과 곡 간 긴밀한 연결관계를 보여준다.

데뷔 음반 [Fear Fun]에서 보여준 그만의 그로테스크한 유머 감각은 이번 음반에서 많이 희미해졌다. 대신 전보다 훨씬 더 굵어진 그만의 ‘선’이 느껴진다. 어쩌면 이번 음반을 통해 파더 존 미스티는 2010년대 인디음악계에 굵은 발자취를 남기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대가’라고 부르는 애니멀 컬렉티브, 그리즐리 비어, 윌코 등과 같은 위상을 갖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대로만 쭉 나아간다면 말이다.

Jesca Hoop: Memories are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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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ca Hoop의 커리어는 상당히 독특하다. 사실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에까지 전해질 정도의 뮤지션이 독특하지 않은 커리어를 갖기도 힘들지만, 훕이 걸어온 여정은 그녀의 음악 스타일을 결정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상당히 흥미로운 구석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녀는 캘리포니아의 따사로운 해변가에 위치한 독실한 몰몬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캘리포니아 걸”로 유복하게 자라던 그녀는 십대 시절 부모가 이혼하면서 와이오밍 등지를 떠돌며 몇년동안 그야말로 야생생활을 했는데, 여름에는 나무 밑에서 자고 겨울에는 닭장 속에서 닭들과 함께 생활했다고 한다. 그 경력(?)을 인정받아 애리조나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생존 프로그램의 강사로 돈을 벌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곡을 쓰기 시작했다. 이 시기 그녀의 커리어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을 제공해준 탐 웨이츠를 만나게 된다. 당시 탐 웨이츠 가족은 보모(nanny)로 제스카 훕을 고용해 한 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그녀에게 음악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음악적 커리어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 도움 중 하나가 훕의 음악작업이 공개될 수 있도록 음반회사 사람들과 훕을 직접 연결해준 것이다. 그 결과 훕은 2008년 Elbow의 투어 매니저인 Top Piper의 권유로 잉글랜드 맨체스터로 근거지를 옮기게 되고, 이후 엘보우, 아이언 앤 와인 등의 투어에 오프닝으로 참여하며 경력을 쌓은 뒤 2007년부터 뱅가드, 서브팝 등 유명 인디 레이블과 계약을 체결하여 지금까지 다섯장의 음반을 발매했다.

탐 웨이츠는 제스카 훕의 음악을 동전의 양면도 아닌, 동전의 네 면(“four sides of coins”)을 보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어느 하나의 장르로 정의내릴 수 없는 그녀의 음악은 “늦은 밤 조용한 호수에서 홀로 수영을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는 웨이츠의 표현대로 침묵과 고요 속에서 격정적인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마녀, 혹은 요정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Memories are Now]는 아마도 미국 네오포크씬의 가장 진화한 형태를 체험하기 원한다면 가장 좋은 샘플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소울, 일렉트로닉, 컨트리 등 다양한 장르를 받아들이는데 거침이 없는 그녀의 음악은 전통적인 미국식 포크음악의 형태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변주를 통해 지루함을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로운 사운드를 음반 전체에 가득 채워놓는다. 첫 곡이자 타이틀곡인 “Memories are Now”는 그래서인지 매우 선언적인 사운드를 보여준다. 이 음반을 듣기 시작하면 이 정도 긴장감은 각오하라는 듯한 당당함을 느낄 수 있다. 이 곡 외에도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않는 노마드의 삶을 살아온 그녀답게  모든 곡에서 어느 한 장르에 천착하지 않고 다양한 악기와 다양한 리듬, 다양한 사운드를 뒤섞으로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간다.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이 기분 나쁘지 않다. 그래서 “Pagasi”나 “Simon Says”같은 곡들이 “The Lost Sky”나 “Cut Connection”과 연결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녀는 평범하지 않은 살아왔고, 평범하지 않은 음악을 만든다. 제스카 훕만이 창조할 수 있는 칼날과 같은 서늘함, 혹은 섬세함이 잘 살아있는 음반이다.

Mac DeMarco: This Old D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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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 드마르코는 음악을 무척 잘 알고, 또 잘 하는 아티스트다. 인디씬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전작 [Salad Days]가 씬에서의 드마르코의 위상을 정립해준 작품이라면, 이번 신작 [This Old Dog]은 조금 더 개인적으로 침잠해들어간 드마르코의 또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발가벗고 찍은 뮤직비디오처럼, 혹은 팬티 한장만 걸치고 노래한 프리마 베라 무대처럼, 드마르코는 이번 작품에서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듯 보인다. 타고난 송라이터이자 뛰어난 스토리텔러이기도 한 그의 모습에 반한 일반 인디팬들이 그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미리 짐작이라도 했다는 듯, 그는 술술 자신과 그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근 조근 풀어놓는다.(그의 유쾌한 엄마에 대해 알게 된다면 아마도 확실히 그의 성장배경을 궁금해하게 될 것이다) 다만, 팬들이 듣고 싶어하지 않는 내용, 때론 불편할 수도 있는 내용에 대해서도 가감없이 이야기한다는 사실이 드마르코다운 기분좋은 배신으로 다가온다. 살짝 늘어난 테이프의 소리를 그대로 차용한 짦은 소품 “Sister”처럼 드마르코는 기억 저편으로 숨겨버리고 싶은 과거의 이야기들을 날것 그대로 꺼내놓고 그가 지금까지 축적한 아름다운 그만의 음악세계에서 달콤하게 요리해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음반은 수프얀 스티븐스의 기념비적인 음반 [Carrie & Lowell]과 정체성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스티븐스가 그만의 조용한 장광설을 개인사에 투영시키며 한 아티스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정점을 만들어냈듯, 드마르코는 그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개인사를 가장 그다운 방식으로 풀어내며 음악적 커리어의 극초반기를 정리하려는 듯 보인다.

맥 드마르코는 이 시대에 몇 남지 않은 진정한 크루너 중 한 명이다. 크루닝의 본질은 스토리텔링에 있다. 그때문인지 전작에 비해 자칫 심심해보일 수도 있는 음반 내 곡구성이 오히려 그의 음악적 정체성을 보다 확고하게 정립시키는 순기능으로 다가온다. “A Wolf Who Wears Sheeps Clothes”와 같은 경쾌한 노래가 “One More Love Song”, “On the Level” 등이 가진 멜랑꼴리한 정서와 무리없이 섞여 들 수 있고, “My Old Man”이 “This Old Dog”과 같은 음반의 타이틀곡 격인 노래를 소개하는 충실한 오프닝송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것도 이때문이다.  음반은 조금 더 차분해졌지만 지루하거나 뻔하지 않다. 여전히 그의 세계를 단단하게 반영하고 있다. 그는 이미 음악을 잘 알고 있었고, 여전히 음악을 잘 하고 있다. 이제 그의 팬들은 그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었을 것이다. 맥 드마르코 월드는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Slowdive: Slowd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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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de, My Bloody Valentine과 동시대에 활약했던 슈게이즈-인디록 밴드 Slowdive가 22년만에 셀프타이플 4집 음반을 들고 돌아왔다. 22년만에 새음반을 발매한 것도 놀랍지만 1991년 메이저 데뷔 후 지금까지 단 네 장의 정규 음반만을 기록한 심플한 디스코그래피가 더 놀랍다. 그만큼 슬로우다이브는 ‘듣기 쉽지 않은’ 밴드였다. 1993년작 [Souvlaki]와 1995년작 [Pygmalion]은 슈게이징, 혹은 브릿팝 팬이라면 한번쯤 들어봣을 명작이었지만 국내에 정식으로 발매되지 않아 비싼 수입반으로 챙겨두어야 했던 빘한 “필수템” 이었다.

2013년 돌아오기 전까지 단 세 장의 단촐한 디스코그래피를 자랑(..)하는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이 복귀작이자 네번째 음반 [m b v]를 통해 탄탄한 ‘기본기’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었듯, 슬로우다이브의 복귀작 [Slowdive] 역시 왜 이들이 짧은 활동기간에도 불구하고 슈게이즈/드림 계열에서 전설로 통하는지, 왜 이들의 음악이 2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인구에 회자되며 즐겨 플레이되고 있는지 명확하게 증명해내고 있다.

첫 곡 “Slomo”의 처음 30초에서 이미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의 서늘한 감동이 밀려오는데 이와 비슷한 높이의 감정적 파고가 음반이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90년대 해왔던 그 방식 그대로 노래를 제조하는데 그 안에 담긴 깊이는 22년동안 훨씬 성숙되었다. 똑같은 그릇을 만들어도, 똑같은 커피를 한잔 내려도 그 과정에 개입하는 사람의 손길에 따라 결과물의 차원이 달라지는 것처럼, 그 사람의 손길에 영향을 미치는 ‘숨결’, 혹은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의 깊이에 따라 손길의 차원이 달라지는 것처럼 슬로우다이브의 새음반은 전작들과 비슷하면서도 또 다르다. 다른 차원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요즘 음악들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시대착오적’인 순간들이 짙게 드리워져 있어서 더 그렇게 느끼는건가 싶다. 시대를 억지로 무시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시대의 눈치를 보지도 않는 초연함이 음반의 처음부터 끝까지 흐르는 일관된 정서 중 하나다. 이 초연함은 아마도 시간을 정직하게 흘려보낸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강점일 것이다. 대부분의 노래가 5분에 육박하고 8분의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곡이 있을 정도로 구성이 단순하지 않지만 매 곡을 소화하는데 아무런 무리가 없을 정도로 부드럽고 달콤하다. 서늘한 긴장감과 아름다운 포만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명반이다. “Star Roving,” “Everyone Knows,” “No Longer Making Time”과 같은 명곡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고, 어느 한 곡 버릴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