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 오렌지가 필립 글래스를 만났을 때

아래 영상은 NPR에서 제공한 6분짜리 짧은 인터뷰를 담고 있다. 인터뷰어는 블러드 오렌지로 잘 알려진 데브 헤인즈, 인터뷰이는 클래식과 팝의 경계선상을 넘나드는 피아니스트 필립 글래스(Philip Glass)다. 헤인즈와 글래스 모두 장르의 구분을 무색하게 만드는 범용적인 음악을 구현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인터뷰 내용 중 필립 글래스가 음악을 시작하게 된 배경이 재미있다. 아버지는 기계수리공이었는데 창고에서 라디오를 계속 고치다보니 어느새 음반을 팔기 시작했고, 음반을 팔기 시작하다 아예 작정하고 음반가게를 차리게 되었다고 한다. 글래스는 그런 아버지를 따라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그에게 음악은 그저 음악일 뿐, 클래식 음악도, 팝 음악도 존재하지 않았다. 볼티모어에서 태어나고 자란 글래스는 57년, 21살 때 줄리어드 음대에 진학하여 뉴욕으로 올라왔다. 뉴욕에서 처음 가진 직장은 가구 배달업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피아니스트로의 삶을 선택했을 때 평생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녀야 할 것이라며 걱정했다. 글래스는 그 말을 듣고 “그거 참 괜찮은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헤인즈 역시 약 21살 무렵 무작정 런던에서 뉴욕으로 건너왔다. 지하철에서 먹고 자며 노숙생활을 하던 그는 뉴욕의 “맥박”에 끌려 아직까지도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한 시대를 풍미한 거장이 새롭게 떠오르는 뉴욕 인디씬의 대표주자를 만나 들려주는 이 짧은 대화에서 서로에 대한 충분한 존경심을 확인할 수 있다.

Iron & Wine: Beast Epic

iron and wine
샘 빔(Sam Beam)이 아이언 앤 와인(Iron & Wine)의 이름으로 발표한 첫 세 장의 음반은 서브팝(Sub Pop)에서 나왔는데 이 때가 밴드의 첫번째 전성기였다. 2004년작 [Out Endless Numbered Days]는 아이언 앤 와인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서늘한 미국식 포크 정체성을 처음으로 드러낸 상징적인 작품이었고, 이어진 [The Shepherd’s Dog]은 그러한 밴드의 색깔을 더 깊고 그윽하게 정제한 수작이었다. 이후 밴드는 서브팝을 떠나 메이저 음반회사인 워너 브라더스와 계약하고 그 산하 레이블인 논서치(Nonesuch Records) 등에서 세 장의 정규 음반을 더 발매했는데, 이 시기의 아이언 앤 와인의 음악은 웬지 손이 덜 가게 되는 음악을 만들었다. 지나치게 많은 소리가 삽입되어 쉽게 집중할 수 없었고 주제의식 또한 불분명해 샘 빔이 이야기하는바를 쉽게 형상화시킬 수도 없었다. 이 때를 밴드의 ‘침체기’라고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산뜻한 커리어 초기와 비교하여 음반의 완성도 측면에서 분명히 구분되는 지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후 아이언 앤 와인은 서브팝으로 돌아와 최근 일곱번째 정규음반 [Beast Epic]을 발매했다. 음악적 고향으로 돌아온 밴드는 이 음반에서 그들의 첫번째 서브팝 시절 음악을 좋아하던 이들에게 좋은 선물을 안긴 듯 보인다. 음악은 다시 단순해졌고 간단해졌지만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의외의 묵직함이 느껴진다. 복잡한 악기구성이나 화려한 화음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오직 샘 빔의 목소리와 어쿠스틱 기타가 무대의 정중앙에 자리잡고 있고, 나머지 목소리나 악기들은 이 둘을 충실히 뒷받침하는 역할에 머무르고 있다. “less is more”의 아이디어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이 음반에서는 더 적은 것에 집중하고자 하는 샘 빔의 의지가 형식적인 측면에서의 도움을 받아 최근 전작들에 비해 훨씬 더 효율적인 완성도와 아름다운 소리의 성취로 이어지고 있다. 마치 [The Age of Adz]로 자신의 음악세계가 극단적으로 확장되는 경험을 한 뒤 소박한 사운드의 [Carrie & Lowell]로 새로운 차원의 성취를 이룬 수프얀 스티븐스의 커리어를 보는 듯 하다. 한두개의 튀는 곡들이 음반을 이끌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곡들이 조화롭게 얽히며 음반 전체적으로 균일한 완성도를 보여준다는 점도 만족스럽다. 아이언 앤 와인이 선사하는 지적인 포크음악을 높은 수준에서 다시 접할 수 있어서 반갑다.

The National: Sleep Well Beast

sleep well beast
더 내셔널(The National)의 7번째 정규 음반 [Sleep Well Beast]를 최근 반복해서 꽤 많이 들었다. 애플뮤직에 몇 곡이 선공개되었을 때부터 들었고, 아마존에서 음반을 주문한 뒤 아마존 음악 앱으로 음반 전체를 계속 들었다. 그리고 어제 바이닐이 집으로 배달된 뒤 집에서 스피커를 통해 조금 더 큰 소리로 한번 더 들었다. 사실 지금도 듣고 있다. 세상의 모든 좋은 음악이 그러한 것처럼, 더 내셔널의 음악 역시 반복해서 들을 때마다 좋은 점이 새롭게 발견된다. 질리지 않고 계속 들을 수 있고 또 계속 듣고 싶게 만드는 음악이 세상에는 참 많이 있는데, 더 내셔널의 새 음반 [Sleep Well Beast] 역시 그러한 매력을 품고 있다.

이들의 신보는 색깔이 조금 달라졌다. 우선 음반의 제작과정에서 전작들과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 ‘마음만 먹으면’ 스타디움급 공연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대중성을 획득한 이들은 뉴욕 교외지역의 오래된 교회를 개조하여 자신들만의 스튜디오를 마련했다.(하지만 여전히 미국 투어에서만큼은 중소규모의 공연장을 선호한다고 한다) 보컬 맷 버닌저(Matt Berninger)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듯,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교외에서 평화로운 풍경을 하루종일 바라본다면 밴드 멤버 간에 싸울 일도 훨씬 줄어들 것이고 음악에 대한 집중도 역시 전과 다를 것이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 새로운 환경은 이들 음악의 결, 혹은 톤까지 새로운 방향으로 틀어놓았다.

the national new studio

밴드의 기타리스트/키보디스트 애런 데스너(Aaron Dessner)가 주도하여 만든 더 내셔널의 새로운 스튜디오 내부 모습.

더 내셔널의 음악을 들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고약한 유머를 던지는 점잖은 신사의 얼굴이다. 힘든 세상에서 어떻게하면 즐겁게 살지를 고민했던 이들의 음악은 파더 존 미스티(Father John Misty)처럼 위악스럽지 않게, 하지만 플릿 폭시스(Fleet Foxes)처럼 지나치게 근심스러운 표정을 짓지도 않은 채 회색빛의 도시 풍경을 세심하게 묘사해왔다. 지난 여섯장의 음반은 버닌저의 읊조리는 보컬과 이를 탄탄하게 뒷받침하는 데스너 형제와 데빈돌프(Devendorf) 형제의 전통적인 록음악 구조를 통해 더 내셔널이라는 밴드의 고유한 색깔을 청중에게 분명히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Sleep Well Beast]는 조금 깊어진 밴드의 고민이 엿보인다. 힘든 세상에서 즐겁게 살지를 고민하기보다 이렇게 힘들어진 세상이 대체 ‘왜’ 이모양이 되었는지를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과 같은 굵직한 이벤트가 미국에 사는 개개인의 미시적 삶에 어떻게 침투하는 과정을 탐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이들의 달라진 태도는 “The System Only Dreams in Total Darkness,” “Nobody Else Will be There,” “I’ll Still Destroy You” 등 음반의 대표적인 곡들에서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Walk it Back”에는 부쉬 전 대통령의 참모였던 칼 로브(Carl Rove)의 스피치가 직접 삽입되어 있기도 하다. 부쉬 시대 이야기를 10년도 더 넘게 지난 지금 다시 꺼낸다는 것은, 페이크뉴스와 보호무역주의, 이민자추장정책 등 오늘날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각종 사회적 이슈들의 뿌리가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떻게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눈여겨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닐까. 이들이 [Fake Empire] 시절부터 천착해온 실존의 문제, 혹은 군중 속의 고독과 같은 주제와 일맥상통하는 지점이다.

이와 함께 형식적인 면에서 전작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가 눈에 띈다. 드럼루프나 전자 신디사이저의 적극적인 사용,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리듬악기처럼 쓰이는 기타, 더 낮게 가라앉은 버닝어의 목소리와 여성 코러스의 등장 등은 다채롭게 구성된 음반의 곡들에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다. 더 내셔널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색채, 혹은 이미지는 큰 틀에서 변화하지 않았다. 다만 조금 더 무거워진 주제를 조금 더 다채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노력이 돋보인다. 쉽게 질리지 않는 이들 음악의 매력은 결코 시끄럽게 내지르거나 화려하게 꾸미지 않는 담백함에 많은 부분 기인하고 있다. 이번 음반도 마찬가지다. 주제는 조금 더 무거운 듯 보이지만 형식적으로는 조금 더 재미있어졌다. 좋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더 내셔널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최고작은 아직 나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Sufjan Stevens, Nico Muhly, Bryce Dessner, James McAlister: Planetarium

planetarium
당대의 젊은 음악가 네 명이 모여 만든 프로젝트 음반 [Planetarium]은 유사한 컨셉을 가진 구스타프 홀스트(Gustav Holst)의 작품 [The Planets]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그와 차별되는 지점 역시 분명히 가지고 있는 흥미로운 음반이다. 우선 음반의 탄생과정부터 여러 음악팬의 구미(?)를 자극시킬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한 사람은 니코 멀리(Nico Muhly)다.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은 후 대중음악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음악가인 그는 조아나 뉴섬(Joanna Newsome)과 아노니(Anohni) 등의 음반 제작에 참여하기도 한 각광받는 작곡가라고 한다. 그러너 그의 아이디어에 적극적으로 동조한 이가 같은 클래식 음악을 기반으로 현대 대중음악의 최전선에서 활약중인 더 내셔널(The National)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스 데스너(Bryce Dessner)와 말하면 입만 아픈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아티스트 수프얀 스티븐스(Sufjan Stevens)였다. 스티븐스와 멀리는 2006년 무렵부터 더 내셔널의 음반 제작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 왔고 데스너와 멀리는 클래식 음악이라는 공통된 자양분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 세 명이 의기투합하는 과정에서 방해가 되었을 법한 것은 스케쥴 조정 정도였을 것이다. 여기에 스티븐스가 [Illinois] 시절부터 투어 퍼커셔니스트로 함께 해온 제임스 맥알리스터를 끌어들여 4명의 프로젝트 그룹이 완성됐다.

이들이 만들어낸 음악을 하나의 장르로 묶는 일은 무척 어려울 뿐 아니라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반응은 아마도 같은 ‘우주’라는 테마를 가지고 만든 구스타프 홀스트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와 비슷하다. 실제적인 경험이 전무한, 어쩌면 평명적인 이미지만으로 상상력을 동원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표현해야 하는 행성과 우주에 대한 음악은 아티스트에게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왔을 것이지만 이와 동시에 음악을 듣는 청자에게도 전과 다른 긴장감을 선사하는 구석이 있는 셈이다.  네명의 젊은 음악가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을 기존의 음악적 문법으로 표현하기 위해 애쓴다기 보다는 우주라는 ‘개념’ 자체를 소리로 재구성하는 쪽을 택한 것처럼 보인다. 흔히 우주를 상상할 때 떠올릴 수 있는 광활함과 공허함, 막연한 두려움과 신비로움같은 개념에 더해 따뜻함이나 쓸쓸함같은 인간적인 감정이 함께 느껴지는 것은 이들이 우주를 피상적인 대상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음악 안에서 재구성되는 적극적인 상호작용의 대상으로 고려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흥미로운 흔적이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 필요한 여러 요소, 예컨대 스티븐스의 팔세토 창법이라던지 드레스너의 맑고 고운 기타톤, 멀리의 장르를 뛰어넘는 작곡법 등이 무리없이 어우러져 하나의 ‘플래너터리움’ 사운드를 완성시킨다. 현대 대중음악의 위치를 한단계 격상시킬 정도의 파격적인 완성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젊은 음악가들의 재미있는 도전치고는 의외로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Japanese Breakfast: Soft Sounds from Another Pl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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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의 두번째 정규음반 [Soft Sounds from Another Planet]의 표지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는 개인적으로 특별한 감정으로 다가오는 프로젝트다. 음반을 구입하기 전 메타크리틱 등 다양한 리뷰 사이트를 훑어보는 편이지만, 역시 좋은 음반을 발견하는 최고의 방법은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로부터의 추천이라고 생각한다. 음악 자체를 깊게 사랑하는 사람이 좋게 들었다고 타인에게 권하는 음반은 그 사람이 가진 특유한(idiosyncratic) 음악적 취향을 떠나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매력을 함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유명한 평론가가 화려한 언변으로 채색한 음반 리뷰보다 친한 음악친구가 “존나 좋아”라고 추천하는 음반을 선택하면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는 셈이다.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는 이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후 현재 서로의 집에 못을 박아주거나 페인트칠을 해주는 사이로까지 발전한 지기형의 추천으로 알게 되었다. 필라델피아에서 이모 밴드 리틀 빅 리그(Little Big League)로 활동하던 미셸 자우너(Michelle Zauner)가 어머니의 투병소식을 듣고 고향 오레곤으로 돌아온 후 방구석에서 시작한 이 솔로 프로젝트의 데뷔 음반 [Psychopomp]가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유의미한 성취를 이뤘기 때문에 아마도 지기형이 언급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알게 되었을 확률이 높긴 하지만 그런 가정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아무튼, 나를 포함해 형과 함께 음악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 거의 모두가 이 프로젝트의 아주 초창기 시절부터 열렬한 팬이 되었는데, 당시에는 이 음반이 아이튠즈나 아마존에서도 유통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밴드캠프를 통해 직접구매를 하는 방식으로 음반을 구매했다. 지기형은 음반과 함께 미셸 자우너가 직접(!) 쓴, 음반을 구매해주어서 고맙다는 친필 쪽지를 받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흥분한 내가 같은 방식으로 구매를 시도였지만 불행히도 나는 자우너가 아닌 그냥 업체 직원이 무미건조하게 쓴 쪽지만을 받았을 뿐이라는 슬픈 에피소드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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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젝트의 데뷔 음반 [Psychopomp]의 표지에 있는 여자 중 한명은 암으로 세상을 떠난 미셸 자우너의 어머니다. 음반 제목은 ‘저승사자’라는 의미. 


데뷔 음반 [Psychopomp]는 미셸 자우너가 필라델피아에서의 인디 밴드 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오레곤으로 돌아와 암투병생활을 하는 어머니를 간호하며 만든 음반이다. 홈레코딩 방식의 솔로 프로젝트라고 폄하할 수 없는 꽤나 단단한 완성도를 자랑하는데, 인디 감성이 물씬 풍기는 슈게이징 사운드가 댄서블한 리듬과 잘 어울리며 풍성한 사운드를 차곡차곡 쌓아올리고 있다. 나는 음반의 첫 곡 “In Heaven”을 특히 좋아한다.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우너는 음반에 실린 가사가 어머니의 죽음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지는 않는다고 이야기했지만, 어머니의 투병과 자우너의 간호 생활이 음반 작업 과정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In Heaven”은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방식으로 풀어낸 삶과 죽음에 대한 관조로 해석할 수 있는 셈이다. 이 외에도 음반의 첫 절반, 즉 LP로 치면 A면에 실린 노래들이 특히 좋다. 뒤로 갈수록 호흡이 떨어지는 경향이 느껴지긴 하지만, 이정도면 충분히 좋은 음악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노래들이 잔뜩 실려있다.

두번째 음반 [Soft Sounds from Another Planet]에는 데뷔 음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조금 더 편해진 미셸 자우너가 펼쳐놓는 드림팝 세계가 가지런히 펼쳐져 있다. 사운드는 조금 더 단단해졌고 음반의 전체적인 완성도도 훨씬 균일해졌다. “In heaven”처럼 한 귀에 쏙 박히는 노래는 없지만 다양성 측면에서 이리저리 고심한 흔적이 많이 느껴져서 지루함은 줄어들었다. 디스코나 펑키한 리듬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1집에서 들려주었던 소박한 팝의 느낌은 잃지 않았다는 사실도 마음에 든다. 1집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내밀하게 전달하는 방식이었다면 2집은 훨씬 더 커진 음악적 공간감 안에서도 여전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무리없이 풀어낼 수 있다는 자우너의 자신감이 느껴지는 음반이다. 퍼지한 기타사운드와 80년대 신스팝으로부터 물려받은 정서적 유산에 더해 재패니스 브렉퍼스트의 음악을 특유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미셸 자우너의 보컬이다. 키치적인 B급 감성을 품격있게 전달할 수 있는 특유의 음색과 표현력이 사랑스럽다. 그런 자우너의 보컬을 서울에서 실제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12월 14일, 재패니즈 브렉퍼스트가 내한공연을 갖는다. 이제 서울에서 이런 공연도 볼 수 있다.

검정치마: Team Ba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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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데뷔 음반에 이어 최신 영미 인디팝 기류에 한국적인 포크 선율과 한국적인 뽕 리듬을 적절하게 버무린 2집까지 검정치마는 늘 현명하고 말끔한 음악을 해왔다. 실패하지 않을 정도로 대범했고 이해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예상을 빗나갔으며 충분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수준의 감성을 함부로 포기하지 않았다. 검정치마의 이러한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현명함’은 “Antifreeze”를 젊은이들의 새로운 송가로 만들었고  “International Love Song”을 생각지도 못한 어린 세대의 이어폰에서 울려퍼지게 만들었다. 이제 사람들은 어느정도 아이돌화된 조휴일의 새로운 음악을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요구하게 되었지만, 되려 그는 예상보다도 훨씬 더 긴 침묵을 이어나갔다. 1집과 2집이 그가 한국음악씬에 성공적으로 안착했음을 알리는 징표와도 같은 것이었다면, 그 다음에 발표하게 될 3집은 ‘새로움’과 ‘적응’이라는, 검정치마의 커리어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만 했던 두 테마가 이미 충분히 소비된 상황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제시해야 한다는 숙제를 태생적으로 안고 있었다. 태어나기도 전부터 말이다. 정확한 한 수를 두어야만 한다는 고민에 빠지기 쉬운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고, 그것이 음반 작업기간을 지나치게 늘어지게 만든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추측해볼 수도 있는 것이다.

검정치마가 선택한 다음 단계는 지역화(localization), 혹은 개인화(personalization)로 보인다. 3집 [Team Baby]의 표지사진은 오래된 가족사진이다. 이 사진에서 누군가는 조휴일 개인의 이야기가 노골적으로 들려지게 될 것을 예고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전형적인 한국 문화를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한 듯한 느낌을 더 강하게 받았다. 즉, 이 음반은 조휴일이, 검정치마가 한국음악씬 뿐 아니라 한국사회에 ‘재정착’하는 과정을 담아내는 에세이처럼 읽힌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조휴일 개인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희미하게 들린다는 점이고, 서울, 혹은 한국이라는 장소가 조금 더 명징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내 고향 서울엔”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는 주인공이 부재한 상황에서 전달되는 막연한 재정착의 정서는 2집과 3집 사이에 존재하는 물리적 시간에 의해 조금 더 확실한 심증을 획득한다. 음악적으로도 검정치마는 한국음악의 전통성에 한발자국 더 가까워진 듯 보인다. “나랑 아니면”은 생각보다 더 자주 언급되어야 하는 좋은 트랙이다. 흔히들 말하는 조휴일의 천재성이 번뜩이는 “헤야”같은 곡도 흥미롭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음반은 힘이 좀 빠져 있다. 어줍잖은 말장난으로 무게감을 괜히 더 떨어뜨리게 되는 노래도 꽤 된다. 하이그라운드라는 새로운 둥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당황스러운 면도 자주 포착되는데, 아마도 현재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어떤 유행과 조휴일이 가지고 있는 음악적 뿌리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메우기 위해 고심한 흔적처럼 느껴진다. 결과는 별로 좋지 못하다. 검정치마는 자신들이 이전과 같은 수준의 좋은 노래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그들이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사회는 같은 음악을 5년이나 기다려줄만큼 참을성이 대단하지 못하다. 그러한 시대의 흐름까지 파악하고 급격한 물살에 몸을 잘 맡겨보는 것까지가 큰 차원에서의 ‘재정착’이라면, 검정치마는 아직 더 고민할 지점이 남아 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조휴일은 김동률이나 이적처럼, 늘 같은 음악만 반복해서 만들어도 면죄부를 받는 그런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죽지 않은 뮤지션이기 때문이다. 아직 검정치마에 대한 기대치가 남아있고, 그 기대치는 매너리즘이나 유행가같은 개념에 기반하지는 않을 것이다.

The War on Drugs: A Deeper Understa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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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의 네번째 정규 음반이자 대형 음반사인 애틀랜틱 레코드와 체결한 두 장의 정규음반 계약 중 첫번째에 해당하는 [A Deeper Understanding]에 대한 기대와 우려는 남달랐다. 전작 [Lost in the Dream]으로 비로소 만개하기 시작한 필라델피아 출신 6인조 밴드 워 온 드럭스(The War on Drugs)의 다음 행보에 대한 큰 기대감과 함께 안정적인 대형 음반사의 배급망이 주는 ‘압박’이 이들의 정체성을 얼마나 훼손시킬지에 대한 걱정이 함께 했던 것 같다. 결과는 낙관적이다. 밴드가 최초로 공개한 노래가 전형적인 워 온 드럭스 리듬을 고스란히 간직한 11분(!)짜리 곡 “Thinking of a Place”였다는 사실만 봐도 이 밴드가 음반 제작과정에서 자율성을 여전히 담보받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음반의 전체적인 구성도 좋다. 68분여의 러닝타임에 꾹꾹 눌러담은 10개의 곡들 에서 밴드는 마치 시대착오적으로까지 느껴질법한 고집스러움을 보여준다. 음반의 기본적인 방향은 밴드가 전작에서 잘 해오던 것들을 조금 더 명확하게 만들면서 살을 조금씩 붙여나가는 식이다. 덕분에 각각의 노래에서 워 온 드럭스의 색깔이 조금씩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음반을 처음 들으면 귀에 확 들어오지 않지만 몇번을 반복해서 듣다보면 어느새 밴드 특유의 청량하면서도 일렁거리는 리듬이 온몸을 에워싸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아름다운 리버브 사운드도 여전하다. “밥 딜런이 슈게이징을 했다면 이런 사운드가 나왔을 것”이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 “Red Eyes”처럼 귀에 확 꽂히는 킬링 트랙은 없지만 무심결에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명곡은 차고 넘친다. 하모니카와 색소폰 등 색다른 사운드를 입힌 곡들에서 작은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Grizzly Bear: Painted Ruins

grizzly bear painted ruins
그리즐리 비어는 2002년 데뷔 음반 [Horn of Plenty]를 발표한 이후 근작 [Painted Ruins]까지 총 다섯장의 음반을 발매했다. 15년이라는 커리어는 생각보다 길게 느껴지고, 다섯장의 음반수는 생각보다 적게 느껴진다. 다작을 하는 밴드는 아닌 셈이다. 그리즐리 비어와 비슷한 시기 데뷔한 뮤지션 중 뉴욕 인디씬을 재조명받게 만든 수퍼스타들이 꽤 있었다. 2001년 스트록스(The Strokes)가 데뷔 음반 [Is This It]을 발표했고 2002년 인터폴(Interpol)이 데뷔 음반 [Turn on the Bright Lights]를 발매했다. 이들보다 조금 늦게 브레이버리(The Bravery)가 2005년 동명의 데뷔음반을 들고 혜성같이 나타났다. 같은 뉴욕 출신인 이들이 화려한 데뷔 음반을 발판으로 각종 페스티벌에서 헤드라이너를 장식할 동안 그리즐리 비어는 2006년 두번째 음반 [Yellow House]을 발표하기 전까지 상대적으로 조용한 주목에 만족해야 했다. 롤링스톤즈 정도가 짤막하게나마 이들의 데뷔를 축하해주었을 뿐이다.

위에 언급한 세 밴드를 비롯해 뉴욕 인디씬의 선두에서 전세계적인 인지도를 자랑했던 많은 뮤지션들이 말그대로 ‘사라져갔다’. 스트록스와 인터폴은 두번째 음반까지 짧은 전성기를 보낸 후 빠른 속도로 잊혀져갔다. 최근까지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그 때의 명성으로 근근히 먹고 산다는 느낌을 받을 뿐 신선한 기운은 찾아볼 수 없다. 브레이버리는 심지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조차 알 길이 없다. 그리즐리 비어는 데뷔 이후 지금까지 조금 더 느리게, 조금 더 조용하게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앞서 발매한 네 장의 음반 모두 평단과 팬들 모두에게서 호평을 받았다. 2009년작 [Vckatimest]와 2012년작 [Shields]는 그리즐리 비어만의 음악스타일을 완성시킨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2002년 브루클린의 작은 선술집에서 공연을 시작한 이들이 2012년 음반 발매 후 2014년까지 2년에 걸쳐 진행한 [Shields] 투어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마무리됐다. 전세계 음악팬 중 그들의 음악을 모르는 이는 이제 거의 없을 것이고, 그들의 음악을 인정하지 않는 팬도 거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뉴욕 인디씬을 대표하는 밴드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이제 많은 이들이 그리즐리 비어의 이름을 떠올릴 것이다.

5년만에 발표한 5번째 정규 음반 [Painted Ruins]는 이미 완성된 줄 알았던 그리즐리 비어의 음악이 한단계 더 성숙해졌음을 알리는 수작이다. 이들은 큰 변화 없이 묵묵히 원래 해오던 것, 잘 해오던 것을 할 뿐이지만 그 안에서 독창적인 리듬과 훅을 만들어내며 귀와 마음이 즐거운 소리를 잔뜩 만들어낸다. 비워야 하는 지점에서 정확하게 빈 공간을 만들어내고 채워야 하는 곳에서는 빈틈없이 꽉 찬 음악을 선보인다. 극단적이지 않기 때문에 더 쉽게 질리지 않는다. 소위 ‘안티-피치포크’적 음악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실제로 피치포크는 이 음반에 73점을 매겼다), 전통의 단절을 굳이 시도하지 않으면서도 부드럽게 미래로 나아가는 이들의 모습에서 낭만주의와 모더니즘의 좋은 면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 90년대적 향수가 2010년대에 다시 생명을 얻은 느낌이다. 이들이 비단 ‘살아남았기 때문에’ 뉴욕씬의 강자가 된 것이 아니라, 살아남을 만큼 뛰어난 내공을 쌓아왔기 때문에 현재 이 씬의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음반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이들에게 ‘작가’라는 칭호를 붙여도 좋을 것 같다. 그리즐리 비어의 세계는 창조된 후 지금까지 계속 확장되고 있다.

언니네 이발관: 홀로 있는 사람들

언니네이발관
내 나이 또래의 “리스너”들이라면 언니네 이발관의 이름에서 특별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한국 독립음악의 역사 그 자체인 이들의 커리어에서 리스너 개인의 역사를 거울처럼 비추어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소한 나에게는 이들이 개인적으로 다가온다. 첫번째 음반 [비둘기는 하늘의 쥐]부터 [후일담], [꿈의 팝송], [순간을 믿어요], [가장 보통의 존재]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음반 한장 한장에 내가 살아온 삶의 흔적이 짙게 배어있다. 더이상 이들을 음악만으로, 좋아하는 음악인만으로 대할 수 없을 만큼 나는 이들의 커리어와 함께 섞여들어가 살아왔다. 홍대의 공연장 어디에선가 이들의 음악이 울려퍼질 때 내가 있었고, 학교 도서관 어디에선가 이어폰으로 이들의 음악을 듣는 내가 있었다. 그 순간 순간 나의 감정과 그 당시의 냄새, 코 끝에 닿던 공기의 촉감, 내 앞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표정까지 다 기억난다. 그래서 언니네 이발관은, 이석원은 매우 개인적이고 매우 고마운 존재다.

그들의 마지막 음반이 나왔다. 제목은 [홀로 있는 사람들]. 앞으로 다시 이들의 공연을 볼 수 있을까,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쉽지 않다. 이미 충분히 오랜 시간 함께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석원은 이번 음반에서도 여전히 담담한 문체로 수필을 쓰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찌질이답게 지나치게 소심하고 필요 이상으로 사려깊다. 그런 그를 탓할 수도 없고 욕할 수도 없는 것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조금씩 자리잡은 “보편적인” 비겁함과 부끄러움에 대해 용기있게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그의 수필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의 음악은 좋아한다. 아주 이상한 음악으로 가득찬 음반을 발표했을 때도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음악이 충분히 사려깊었고 또 필요 이상으로 소심했기 때문이다. 단 한번도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에 열광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매몰차게 뒤돌아서지도 못했다. 이들의 음악을 듣다보면 나 역시 소심해지고 사려깊어지게 되는걸까. 음반은 좋다. 매우 좋다.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알고 들어서인지 괜히 더 좋게 들린다. 음반의 처음을 장식하는 “너의 몸을 흔들어 너의 마음을 움직여”부터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날카로움이 느껴진다. 아이유와 함께 불렀다는 “누구나 아는 비밀”이 가장 무료하게 느껴질만큼 이석원다운 위트있는 가사와 훅이 잔뜩 살아있는 기타팝 사운드가 음반을 가득 채운다. 러닝타임이 너무 짧아서 혹시 히든트랙이 없는지 숨죽여 기다리게 된다. 더이상 이들의 새로운 음악은 들을 수 없는 것일까, 그렇다 하더라도 아쉽지 않다.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주었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Offa Rex: The Queen of He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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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포크 음악(folk music)’이라고 부르는 음악 장르와 잉글랜드 민속음악(folk music of England)이 분명히 구분되는 지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아일랜드인들이 미국으로 건너오며 함께 대륙을 넘은 잉글랜드 민속음악은 흑인 노예들의 종교음악과 서부개척시대의 노동요 등으로 변형되는 시기를 거쳐 오클라호마, 뉴올리언스, 텍사스 등 남부의 지역적 특색과 만나면서 미국 포크 음악만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포크 음악 장르를 ‘각 지역의 민속음악으로부터 발전한 현대음악’ 정도로 광범위하게 정의할 경우 잉글랜드 민속음악을 포크음악에 포함시킬 수 있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한 현대 포크음악’으로 그 범위를 좁게 잡을 경우 잉글랜드 민속음악은 현대 포크음악의 뿌리로 기억될 수 있는 셈이다. 최근까지도 영국을 중심으로 셜리 콜린스(Shirley Collins) 등 잉글랜드 민속음악으로부터의 유산을 면확하게 드러내는 포크 음악 뮤지션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영국과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미 오레곤주 포틀랜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인디 밴드 디셈버리스츠(The Decemberists)는 개인적으로 그들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하는 [The Crane Wife] 시절부터 전통적인 장르의 재해석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밴드의 리더 콜린 멀로이(Colin Meloy)가 영국의 포크 뮤지션 올리비아 샤네이(Olivia Chaney)를 발견한 것은 그래서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올리비아 샤네이는 2015년에 데뷔 음반 [The Longest River] 한 장만을 발표한 신진 뮤지션이었고, 경력면으로 보나 유명세로 보나 멀로이가 이끄는 디셈버리스츠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정도였다. (다만 로버트 플랜트와 셜리 콜린스 등 일부 동료 뮤지션들이 극찬했다고 한다) 우연히 샤네이의 음반을 접한 멀로이는 디셈버리스츠의 2015년 투어에 그녀를 초청했고, 투어 도중 그녀를 위한 밴드로 활동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결과적으로 디셈버리스츠 멤버들로 구성된 밴드 위에 샤네이의 보컬이 얹힌 새로운 프로젝트 밴드가 탄생하게 되었는데 그 이름이 Offa Rex, 700년대 잉글랜드 지역에 있던 Mercia 왕국의 왕의 이름이라고 한다.

이들의 데뷔 음반 [The Queen of Hearts]는 처음부터 작정하고 6,70년대 풍의 잉글랜드 민속음악을 되살리고자 하는 의도로 만들어진만큼 잉글랜드의 옛 향기를 진하게 느낄 수 있다. 12곡 중 8곡에서 들리는 샤네이의 목소리가 음반 전체를 장악하고 있으며, 가끔 들리는 멀로이의 목소리와 밴드 특유의 코드 진행에서 디셈버리스츠의 영향력을 미세하게나마 확인할 수 있다. 이 음반이 가진 최고의 미덕은 아마도 하프시코드, 하모니움 드론(harmonium drones) 등 옛 악기를 그대로 사용하는 등 철저히 ‘과거의 장르’ 안에서 움직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의 노래에서 새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포크 음악을 하기 위해 정제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운 샤네이의 목소리를 밴드의 탄탄한 사운드가 잘 감싸안아준다. 음반의 구성 역시 지루하지 않게 다채롭다. 블랙 사바스가 연상되는 70년대 록음악 코드가 툭 튀어나오기도 하고 피아노만으로 단촐하게 구성된 인스트루멘탈 곡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어느 한 곡도 이질적이지 않게 잘 어우러져 있다. 어쩌면 최근 매너리즘에 빠진 듯한 디셈버리스츠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또한 좋은 포크 뮤지션을 미국 음악씬에 알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나빠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