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 macro-related or general topic SSCI journal list

AMERICAN ECONOMIC JOURNAL-MACROECONOMICS

AMERICAN ECONOMIC REVIEW

ASIAN ECONOMIC JOURNAL (0.211)

ASIAN ECONOMIC POLICY REVIEW (0.28)

ASIAN-PACIFIC ECONOMIC LITERATURE (0.333)

B E JOURNAL OF MACROECONOMICS (0.244)

BROOKINGS PAPERS ON ECONOMIC ACTIVITY

CANADIAN JOURNAL OF ECONOMICS

CESIFO ECONOMIC STUDIES (0.561)

ECONOMETRICA (3.823)

ECONOMIC MODELLING (0.557)

ECONOMIC POLICY (2.688)

ECONOMIC THEORY

EMERGING MARKETS FINANCE AND TRADE (1.190)

EMERGING MARKETS REVIEW (1.167)

EUROPEAN ECONOMIC REVIEW (1.331)

FEDERAL RESERVE BANK OF ST LOUIS REVIEW

IMF ECONOMIC REVIEW

INTERNATIONAL ECONOMIC REVIEW (1.162)

INTERNATIONAL FINANCE (0.6)

JOURNAL OF BANKING & FINANCE (1.287)

JOURNAL OF DEVELOPMENT ECONOMICS (2.253)

JOURNAL OF ECONOMIC DYNAMICS & CONTROL (0.807)

JOURNAL OF ECONOMIC THEORY (1.069)

JOURNAL OF FINANCE

JOURNAL OF FINANCIAL ECONOMICS

JOURNAL OF FINANCIAL STABILITY  (1.463)

JOURNAL OF INTERNATIONAL ECONOMICS (2.086)

JOURNAL OF MACROECONOMICS (0.589)

JOURNAL OF MONETARY ECONOMICS (1.649)

JOURNAL OF MONEY CREDIT AND BANKING (1.104)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JOURNAL OF THE ASIA PACIFIC ECONOMY

JOURNAL OF THE EUROPEAN ECONOMIC ASSOCIATION (2.049)

KOREAN ECONOMIC REVIEW

MACROECONOMIC DYNAMICS (0.420)

OPEN ECONOMIES REVIEW

PACIFIC ECONOMIC REVIEW (0.722)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5.278)

REVIEW OF ECONOMIC DYNAMICS (1.625)

REVIEW OF ECONOMIC STUDIES

REVIEW OF INTERNATIONAL ECONOMICS (0.708)

SCANDINAVIAN JOURNAL OF ECONOMICS

SCANDINAVIAN JOURNAL OF ECONOMICS

SOUTHERN ECONOMIC JOURNAL (0.480)

WORLD ECONOMY (0.872)

 

1.069

버블, 버스트, 실질, 명목 가치.

조금 나이브하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전세계 경제의 가장 큰 문제가 명목 가치와 실질 가치가 일치하지 않는 가격 왜곡 현상이라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맑스는 여전히 옳다. 이러한 왜곡 현상의 기저에는 가장 밑바닥에서 신음하고 있는 저평가된 노동가치가 있다.

http://bit.ly/12ex9fO

예가체프 커피 한잔이 미국이나 한국의 카페 테이블에 도착하는 동안 이 커피를 실질적으로 재배하고 수확해서 다음 유통업자에게 건네는 1차 생산자는 굶어죽기 일보 직전의 상황에 놓여있다.

http://bit.ly/18nuamF

박근혜 대통령은 “시간제 일자리도 좋은 일자리” 라며 사회적 편견을 거두어내기 위해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니클로나 자라같은 브랜드들의 옷을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것, 현대 IT 기술이 집약된 아이패드나 아이폰을 단 몇백불에 구입할 수 있는 것은 혁신적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원자재 생산비 절감때문이 아니다. 원단이나 원자재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임금히 형편없이 낮기 때문이다. 생산 원가를 낮추는 일등공신은 턱없이 낮은 노동 가치 지불에 있다. <Poor Economics> 에서 케이스 스터디를 통해 잘 밝혀내고 있는 것처럼 제3세계 국가에서 하루 $10 를 벌지 못해 굶어 죽어가는 노동자가 부지기수다. 이들의 노동가치는 정말 이토록 낮은 것일까? 이들에게 하루 세끼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쥐어주지도 못하는 다국적 기업들이 그들의 임원들에게는 몇백만달러의 보너스를 쥐어주는 것을 보면 이들의 재정상태가 썩 나빠보이는 것 같지도 않다.

대기업들은 다수의 소비자들을 상대로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 너희들과 아무 상관없는 중국이나 방글라데시의 노동자가 굶어죽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너희들이 먹고 써야 하는 이 상품에 대한 가격을 두배 더 지불해야 해, 라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본능적 이기심을 극단적으로 이용해 윽박지르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그냥 눈 딱 감고 자신의 안녕을 위해 이기적인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한달에 이, 삼만원씩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채 꽤 쿨해 보이는 자선단체에 기부하고서는 자신의 할일을 다 했다는 식의 표정을 짓곤 할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쿨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은 교보문고에 가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따위의 쓸데없는 책을 읽고는 비분강개해 하는 척을 하겠지. 책 제목이 살짝 보이게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은 덤.)

경제 활동의 원칙이 무시당하는 상황이다. 지구상의 모든 것들은 태양 에너지에서부터 시작되듯, 현대 사회에서 생산되는 모든 상품들은 인간의 노동력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니까 모든 가격 결정의 첫번째 원칙은 한 상품이 판매 완료되는 시점까지 모든 과정에 개입한 모든 노동력에 대한 올바른 가치를 측정하는 데에 있다. 이것이 왜곡되기 시작하면 명목 가치와 실질 가치가 달라지게 되고 부의 올바른 재분배가 실현되지 못하게 된다. 권력 관계 (요즘은 갑질이라고들 표현하던데..) 가 이 가격 결정 과정에서 작용한다. 갑중 갑인 다국적 기업은 치열한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원가를 어떻게든 낮추어야 한다. 손해를 보고 팔 수는 없는데 (아마존같은 경우 컨텐츠 판매를 촉진시키기 위해 킨들을 원가보다 더 낮은 가격에 판매하기도 했다) 원가를 획기적으로 낮추는 기술 혁신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 대부분의 최종 판매 시장은 과점 이상의 경쟁성이 있으므로 한 기업이 시장 가격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도 없다. 그러니까 결국 힘없는 공장 노동자들만 쥐어짜게 되는 것이다. 이들 가난한 노동자들은 그들의 입장을 대표할 수 있는 힘있는 단체도 없고 언론의 파워도 없으며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을 관뒀을때 쉽게 그 수입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도 딱히 없다. 입에 풀칠이나 할 수 있으면 다행인 그런 상황의 노동자들을 요리조리 구워 삶으며 임금 상승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 다국적 기업들의 흔한 갑질이다. (이건 한국 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다수의 노동자들은 더 적은 수입을 가져가게 되고, 다국적 기업은 결국 그토록 원하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 더 많은 수입을 가져가며, 이들이 만들어내는 상품을 구매하는 다수의 소비자들도 치열한 가격 경쟁이 혜택을 보는 수혜자가 된다. 즉 다수의 소비자들만 그들이 소비하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노동자들의 상황을 무시해 버리기만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소비자들도 혜택을 받는 것처럼 보이는 이 상황이 장기적으로는 부메랑처럼 돌아와 그들의 가슴에 비수를 던질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이폰을 구입하는 대다수의 소비자들, 예가체프 커피를 먹는 다수의 소비자들 역시 한낱 임금 노동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받는 임금 역시 그들이 제공하는 노동 가치에 비해 현격하게 낮게 평가되고 있다. 결국 자신들도 누군가에게 피를 빨아 먹히는 것을 모른채 다른 사람의 피를 빨아 먹음으로써 생산해낸 상품을 맛있게 소비하고 있는 셈이다. 그 위에 군림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과 일부 수퍼갑들에게 돌아가는 부의 불공평한 재분배의 최종 희생양이 자신인줄도 모르고 말이다.

결국 박근혜가 이야기하는 시간제 일자리의 장점은 유연한 노동시장이 기업들에게 주는 리스크 감소에 근거하고 있다. 쉽게 말해 임금 계약이 초단기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뉴 케인지안쪽에서 말하는 임금의 경직성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고, 조금 더 완전한 노동 시장에 가까워지다 보면 기업쪽에서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쉬워진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짜르기 쉬운” 노동 시장 구조가 기업들에게는 조금 더 구미가 당기는 쪽인 셈이다. 여기에 더해 한국은 시간당 임금이 턱없이 낮게 책정되어 있다. 한시간에 오천원씩 벌어서는 서울에서 생존하기 어렵다. 음식이나 기름값, 의류 따위의 생활 물가는 몇년 사이 엄청나게 치솟았는데 그에 반해 시간당 최저 임금은 더딘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의 주장대로 시간제 일자리가 “좋은” 일자리이냐, 하면 그건 전적으로 기업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나이브한 의견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일단 최저 임금을 현재의 두배 이상으로 책정해야 뭔가 나댈수 있는 껀덕지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부동산도 그렇고 물가가 상승하는 모양새도 그렇고 한국의 경제 상황은 버블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그 땅과 집이 가지는 가치보다 부동산 유리 벽면에 붙은 가격표는 턱없이 높은 액수를 제시하고 있다. 간장 게장 세마리에 6만원을 넘는 장바구니 물가는 사실상 한국 은행이나 정부가 물가 조절에 완전히 실패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은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고 실질적인 부동산 거래는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으며 주식 시장은 개미들의 무덤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이 외부 충격에 취약한 경제 구조속에서 암덩어리처럼 점점 제 살집을 키워 나가고 있는데 만약 한국의 경제 건전성이 외부 충격을 더이상 견뎌낼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면? 그때에는 일본처럼 20년짜리 장기 불황속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할말이 없을 것이다. 이른바 버스트다. 청년 실업은 50% 를 넘나들게 될 것이고 대기업들은 연쇄 부도속에서 외국의 기업들에게 팔려 나갈 것이다. 환율은 치솟을 것이고 하루 두끼만 먹자는 캠페인이 벌어질 수도 있다. 당장 돈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은행 앞에 장사진을 칠 것이고 은행들은 소위 요구되는 인출 금액을 마련하지 못하는 뱅크런 상황에 놓여 붕괴될 것이다. 극우파들은 활개를 칠 것이고, 외국인 노동자들은 매일 폭력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범죄율은 치솟고 자살율은 압도적으로 세계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다.

그런 상황이 올때 한국이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아무 것도 없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세계 경제는 이미 노동 가치를 지난 수십년동안 무시해 오며 끊임없이 가격을 교란해 왔기 때문이다. 한국도 그중 하나이 톱니바퀴로 들어간지 오래이고, 때문에 지금 현재 한국이 할 수 있는 것은 조금 더 최선을 다해 외부 충격에 버티어낼 수 있는 경제 구조를 만드는 것 밖에는 없다.

수출과 수탈 사이

일제침략기간동안 한국이 일본에게 수탈을 당했는지, 아니면 일본의 도움으로 한국이 근대화 사회로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을 닦게 되었는지는 현재 한국 현대사를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첨예하게 대립되는 주제이다. 수탈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일본의 컨트롤 아래에서 한국에서 생산된 것들에 대한 이익이 일본인과 그들에게 협력했던 소수의 한국인들에게만 집중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불평등이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36년동안 일본이 건설한 수많은 인프라스트럭쳐와 그들이 전수한 기술들이 후에 한국이 성장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을 뿐더러, 그 일제 기간동안에도 한국의 생산성을 큰폭으로 향상되었다고 주장한다.

경제학적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는 몇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쌀 생산량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것은 팩트다. 문제는 이렇게 향상된 쌀 생산량의 benefit 이 어디로 갔는지를 추적하는 것이다. 당시 한국에서 외국으로 수출된 쌀의 대부분은 일본으로 향했다. 이때 일본으로 수출된 쌀의 평균 가격을 구할 수 있다면, 그 가격과 당시 국제 거래되던 동아시아 쌀 시장의 평균 가격을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형편없이 낮은 가격에 일본으로의 쌀 수출이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수탈이다. 왜냐하면 당시 한국은 일본이 아닌 다른 국가로 쌀을 더 높은 가격에 수출할 수 있는 기회비용을 가지고 있었고, 그 기회를 일본의 강압적인 지배하에서 박탈당했기 때문에 낮은 가격으로 일본으로 쌀을 보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국제무역 이론에 따르면 이것은 효율성을 크게 위배하는 행위이고, 올바른 시장 질서라고 할 수 없다. 즉 일제에 의해 시장이 교란된 것이다. 만약 일본으로의 쌀 수출 가격이 국제 시장과 큰 차이가 없는 상태라면 이 쌀 수출 시장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 단계는 이렇게 쌀 수출로 벌어들인 수익이 어떻게 재분배되는지 그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다. 이것은 첫번째 단계보다 약간 더 복잡할 수 있다. 유통과정에서 마진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관찰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또한 유통의 어느 단계부터 일제에 협력한 한국인들이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있었는가를 따지는 일은 상당히 지난하고 까다로운 연구 과정이 요구될 것이다. 이것을 확인하는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은 역시 한국 근처 식민지 국가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가능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대만이나 만주의 자료를 구할 수 있다면, 당시 소작농들의 평균 임금 상승률을 따져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혹은 다른 변수를 확실하게 통제한다는 가정하에 당시 제국주의 식민지들의 소작농 형태를 비교 분석해 한국의 수탈 수준을 간접적으로 드러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 가톨릭 교회와 정치, 경제

미국 가톨릭 신자는 전체 인구의 2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중 6~70% 정도가 “정기적” 으로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미국에는 꽤 많은 추기경과 주교들이 있는데 이는 전체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많은 돈이 미국 가톨릭 교회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로마 교황청 재정의 상당 부분은 미국 교회쪽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 가톨릭 교회의 한해 예산은 GE 의 1년 매출액을 능가하고, 가톨릭 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와 병원은 미국의 모든 학교와 병원중 10% 가 넘는다. 이들 기관에서 교회가 고용하는 사람들의 수는 월마트의 -파트 타임을 포함한- 모든 피고용인 숫자보다 많다. 즉 미국 가톨릭 교회는 미국에서 가장 큰 조직이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문제는 미국 가톨릭 교회뿐만 아니라 전세계 모든 가톨릭 교회가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적인 한계가 현실과 충돌할 때 발생한다. 최근 오바마 정부는 미국 가톨릭 교회와 한차례 충돌을 겪었다. 오바마는 모든 학교와 병원에 콘돔등의 피임 도구를 의무적으로 배치하고 이 기관에 속한 사람들에게 피임에 대한 도움을 의무적으로 제공할 것을 강제했다. 문제는 위에 기술한 것처럼 전체의 10% 가 넘는 가톨릭계 학교와 병원에서 이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톨릭은 피임 자체를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교리에 따라 잉태된 모든 생명은 반드시 태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피임도 일종의 낙태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 충돌은 결국 가톨릭계 학교와 병원에 보험을 제공하는 보험 회사들이 간접적으로 피임에 대한 도움을 주는 것에 합의함으로써 일단락되었지만, 모양새가 우스꽝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이후 오바마는 동성애를 지지한다는 발언을 역대 미국 대통령중 최초로 하게 된다. 그리고 미국 가톨릭 주교 회의 의장이자 전체 수장인 티모시 돌란 추기경이 공화당 전당 대회에서 마침 기도를 해주기로 결정했다. 돌란 추기경은 만약 민주당에서 비슷한 제의를 해온다면 당연히 응하겠다고 말했지만 민주당에서 그에게 그러한 부탁을 할지는 미지수다.

공화당 티파티 단체들은 줄기차게 pro-life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여전히 낙태 문제가 선거에서 중요한 이슈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번 선거가 경제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과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인 롬니, 라이언 모두 비지니스와 조세쪽에 특화된 인물이라는 사실조차 무색할 정도로 공화당내 극보수 세력은 끊임없이 가족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오늘 파이낸셜 타임즈의 오피니언란에 나온 것처럼 롬니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그가 속한 정당이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그는 꽤 괜찮은 대통령 후보이지만, 그가 속한 정당의 극단적인 세력의 압박에 계속해서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폴 라이언의 부통령 후보 임명은 아주 단적인 예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내 가톨릭 신자들의 투표 성향은 정확히 50 대 50으로 갈리고 있다는 것이고, 지역별/성별/나이별로 쪼개 봐도 아주 일반적인 미국인들으 투표 성향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즉 가톨릭 교회의 교리라던가 미국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이 사실상 가톨릭 신자 개개인에게는 거의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지난 2008년 대선에서 미국 가톨릭 신자들은 – 다른 전체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 오바마를 지지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보다는 약간 더 공화당쪽으로 기울고 있다. 다른 모든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로마 교황청은 낙태와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결코 포기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교리를 반드시 받아 들여야 하는 미국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 역시 변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리버럴한” 가톨릭 신자들이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이다. 스패니쉬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이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 계층에 속한다. 감세같은 공화당의 정책에는 동조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약자에 대한 배려에 조금 더 친화적인 민주당을 지지할 확률이 높다. 애리조나에서 공화당이 통과시킨 이민자들에 대한 불심검문에 대한 스패니쉬 이민자들의 반대는 대표적인 사례다. 대부분의 스패니쉬 이민자들은 맥시코에서 넘어 온다. 맥시코는 인구의 95% 가 가톨릭 신자일 정도로 국교 자체가 가톨릭이다. 즉 로마 교황청과 미국 가톨릭 주교 회의가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이들은 점점 그들의 신자들로부터 고립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들이 단기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바꿀 수 없다면, 최소한 동성애나 낙태가 정치 선거에서 이슈가 되는 상황을 막는다던지 하는 식의 기술적인 대처가 필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난주 이코노미스트지에 나온 것처럼 미국 가톨릭 교회도 점점 재정적인 압박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매 주일마다 미사에 참석해 헌금을 내는 신자들의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요즘과 같은 경기 침체에 학교나 병원에서 나오는 돈을 굴려서 적자를 해소하는 방법도 시원치 않다. 지난해 미국 가톨릭 교회 전체 예산이 130억불이었는데 이중 30억불이 신자들의 헌금에서 나왔다. 작지 않은 비율이다.

Barry Eichengreen: Globalizing Capital

Barry Eichengreen, Globalizing Capital: A History of the International Monetary System, Princeton University Press, Second Edition, 2008.

이 책의 저자 베리 아이켄그린은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경제학과의 석좌 교수다.  학자가 출간을 목적으로 책을 집필할 때에는 독자층을 미리 상정해 놓기 마련이다. 같은 주제를 다룬다고 해도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일반 대중을 상대로 쓸 것인지 이 책의 저자와 같이 상아탑에 오래 머물러 있는 “동업자”들을 대상으로 쓸 것인지에 따라 책의 성격이 많이 변하게 된다. 아이켄그린은 머리말에서 이 책의 대상 독자층이 “거시 경제학과 국제 경제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이론들의 역사적 배경을 알고 싶어하는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들”  이라고 밝히고 있다. 더불어 “국제 금융 시스템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조금 더 깊은 레벨에서 알고 싶어하는 일반 독자층” 도 이 책에서 도움이 될만한 정보들을 얻어가기를 “희망” 한다고도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이 목적하고자 하는 바는 국제 금융 시스템이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했는지 그 과정을 역사적으로 간략하게 밝히고자 하는 것이고, 이 책의 대상 독자들에 일반 대중들도 포함되므로 수학적인 수식이나 엄밀한 증명같은 것은 등장하지 않는다고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무런 경제학적 배경 지식없이 도전할 만큼 호락호락한 책은 아니다.  저자는 19세기 말 등장한 금본위제도부터 2000년대 전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까지 약 130여년간의 국제 금융 시스템이 어떻게 구성되거나 무너져 갔는지 각 시대별로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는데, 단순히 역사적 사실들만을 나열하고 기록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경제학적 해석까지 곁들이고 있다. 이 책이 가지는 미덕, 혹은 관련 학계에 기여하는 바는 전적으로 후자의 ‘해설’이 제공하는 경제학적 통찰력에 기반하고 있고, 때문에 거시경제학과 국제 무역, 국제 금융에 대한 학부 수준의 지식은 있어야 이책을 보다 폭넓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00년이 넘는 현대 국제 금융 시장에 대한 역사를 한권의 책에 담고 있기 때문에 아쉬운 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서구 학자들의 책들에서 흔히 느끼는 그런 감정이긴 하지만, 이 책 역시 서구 중심의 서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제 무역처럼 국제 금융 시장도 미국-유럽 중심의 서구 사회와 일본-중국 중심의 동양 사회가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 받게 되기까지 (1차 세계 대전이 지나서야 일본이 비로소 등장하고, 1970년대 이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한국과 중국등 동아시아 시장에 대한 언급이 간략하게 나마 등장한다) 동양 사회의 금융 시장 발전에 대한 기술이 전혀 없는건 그 중요성과 국제적 위치를 차치하고서라도 너무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경제학을 전공하게 만들었던 90년대말 아시아 금융 위기에 대한 서술도 마지막장에 단 몇페이지만으로 성급하게 마무리지어버린다. 둘째, 국제 금융 시장에 집중한 책의 목적때문이겠지만, 국제 금융 정책이 각국의 정치적 입장과 다른 정책들과의 이해 관계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는 점에 기초해 볼때 각 시대에 여러 국가들이 맺고 있던 정치적인 함의들을 단지 외부적인 충격으로 치환해 분석하는 이론적인 한계에 대한 아쉬움도 남는다. 물론 저자는 정치적인 변화가 어떻게 금융 시장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가에 대해 이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하지만 민주주의라는 대부분의 서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근간이 경제적으로 올바른 방향을 반드시 제시하지는 않는다는 사실과 1990년대까지 이데올로기의 충돌이 서구 사회 곳곳에서 빈번하게 발생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경제학적 이론을 약간 포기하더라도 정치/사회학적인 접근에 조금 더 집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해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에겐 굉장한 책이다. 나는 현시대에 존재하는 경제 주체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를 공부하는 학생이지만, 현재에 발현되는 현상들도 일정 부분 분명 통시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마도 사학자인 아버지에게 받은 영향일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이 주는 ‘넓은’ 시선은 내가 보다 큰 그림을 그리게 하는 데에 엄청난 힌트를 가져다 주었다. 이 책에 대한 헌사중 더글라스 어윈이 상찬한 것처럼 “미래의 클래식” 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내가 지근거리에 놓고 수시로 펼쳐보게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Abhijit V. Banerjee and Esther Duflo, Poor Economics: A Radical Rethinking of the Way to Fight Global Poverty

Financial Times 에서 ‘올해의 책’ 으로 선정했다는 기사를 읽고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이에 더해 이 책에 대한 추천사중 <괴짜 경제학> 으로 유명한 Steven Levitt 이 쓴 “경제학이 (이 세상에)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것” 이라는 문구가 결정적으로 마음을 움직였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세상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은 경제학을 공부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 고민해 보았음직한 문제이고, 그중 거의 대부분이 평생토록 명쾌한 해답을 내놓을 수 없는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모든 학문은 세상에 무언가를 공헌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사회과학, 그 중에서도 먹고 사는 문제과 직결되는 경제 현상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경제학이 현대에 가지는 존재 가치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은 이 학문을 업으로 삼기로 결심한 이후 내가 거의 매일같이 생각하는 주제이다. 그에 대한 해답은 아닐지언정 어떤 힌트는 들어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감같은 것이 이 책을 읽게 만들었다.

전 세계의 거의 대부분은 빈곤에 시달린다. 세계 인구의 13%가 하루에 1달러가 채 되지 않는 돈으로 연명한다.  이 책은 부제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어떻게 하면 전세계적으로 만연해 있는 빈곤을 가장 효과적으로 퇴치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하는 책이다. ‘준비한다’ 라는 단어를 억지로 가져다 쓴 것은, 이 책이 그 자체로서 어떤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이 책은 가장 올바른 해답을 찾기 위한 출발점으로서 기능한다. 즉 ‘왜 빈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와 ‘그렇다면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라는 두가지 큰 질문이 있다면, 이 책은 전자에 거의 모든 노력을 소진한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그러하듯이, 이 책은 쉽게 해답을 내지 못하고, 그럴 생각도 별로 없어 보인다. 다만 특정 문제를 야기시키는 원인에 대한 효과적인 분석을 행하는 것만으로도 그 다음 단계에 행해져야 할 대안의 마련을 조금 더 용이하게 만든다. 그 대안은 각국 정부의 정책 변화가 될 수도 있고, 시민 의식구조의 개혁이 될 수도 있으며, 선진국에 의한 원조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이 책의 저자 두사람의 몫은 아닌 셈이다.

빈곤 퇴치에 대한 상이한 시각 두개가 존재한다. 하나는 Jeffrey Sachs 라는 컬럼비아대 교수에 의해 대표되는 공급 중심의 시각이다. Sachs 는 선진국에 의한 원조에 의해 빈곤에서 탈출하는 가장 기본적인 해결책이 열린다고 주장한다. 즉 아주 기본적인 위생 문제를 해결하고 한사람이 하루에 먹고 살 수 있는 기본적인 의식주를 무상으로 제공할 수 있다면 이를 토대로 빈곤에 시달리는 국가들은 그 다음 레벨 – 빈곤 이후의 자생적인 경제 모델의 발전 – 로 나아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UN 에서 활동하는 안젤리나 졸리도 이쪽이다. 다른 하나는 William Easterly 라는 뉴욕대 교수에 의해 주창되는 수요 중심의 시각이다. 그는 무분별한 원조 프로그램은 오히려 자생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인 시장 구조를 왜곡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러한 원조 프로그램이 빈곤을 악화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는 원조 이전에 시장 구조를 보다 확실하게 정립하자고 주장한다. 삭스와 이스털리는 같은 맨하튼에 적을 두고 있고, 이 주제로 매년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이 책의 저자인 Banerjee 와 Duflo 는 이들과 한발 떨어진 매사추세츠 보스턴 근처의 MIT 에 재직하는 교수들이다. 그리고 이들 저자는  <Poor Economics> 에서 공급이 먼저냐 수요가 먼저냐로 다투기 이전에 훨씬 중요한 것이 있다고 주장한다. 간단하게 “그때 그때 달라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의 주장은 사실 그리 간단치가 않다.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것이 이들의 핵심 결론이기도 하다. 수요 중심의 해결책이 먹히지 않을 때도 있고, 공급 중심의 해결책이 통하지 않을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왜” 그러한 노력들이 실패로 돌아갔는지 일일이 나누어 살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들은 놀라울 정도의 방대한 케이스 스터디를 통해 각각의 이슈들에 대한 검증을 한다. 아이보리 코스트, 인도와 중국, 브라질과 방글라데시등 빈곤층을 상당 부분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을 직접 발로 돌아 다니며 실제 빈곤층에 속한 계층을 일일이 인터뷰했다. 각각의 정책들이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미시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그 이후 이들의 삶은 경제학적으로 재해석하고, 경제학적인 “도구” 들을 이용해 원인을 분석한다. 한가지 놀라운 점은 이들이 경제학적 방법론으로 빈곤 현상을 분석할 때 사용하는 도구들은 아주 간단한 것들이라는 것이다. 경제학원론 수준의 경제학적 지식만을 이용해 세부적인 현상들에서 하나의 일관된 아이디어를 만들어 낸다. 그 과정에는 논리적인 비약도 없고 억측이나 과장도 없다. 철저히 인터뷰와 통계 수치만을 이용해 도출해낸 결과들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반박하기 힘들다. 이들이 그 이후 제시하는 해결책, 혹은 대안이라고 불릴만한 아이디어들은 원인 분석에 비해 훨씬 추상적이며 얄팍하지만 그 것이 이 책의 큰 흠집이 되지는 않는다.

간단하게나마 이 책의 “결론이자 또다른 연구의 출발점” 이 될만한 내용을 적어 본다. 즉 “왜” 빈곤층은 계속해서 빈곤한 상태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한 대략적인 이유 다섯가지다.  첫째, 빈곤층의 대부분은 충분한 올바른 정보를 얻을 기회가 없다. 이들은 또한 옳지 않은 정보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인 위생 문제부터 섹스, 마약, 식습관등 기본적인 것들에서조차 이들은 제대로 교육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살아간다. 둘째, 이들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것들에 대해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즉 더 많은 부양 가족과 더 적은 유산, 더 불안정한 일자리등의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셋째, 이들을 빈곤으로부터 탈출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몇몇 시장들이 제대로 정의되거나 설립되어 있지 않다. 이는 정부의 부패부터 논리적으로 타당하게 수렴되는 경제학적 행동들까지 다양한 이유들로부터 형성된다. 넷째, 빈곤층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상대적으로 적다. 원래부터 가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지와 이데올로기, 저항등의 이유때문이기도 하다. 다섯째, 이들은 다음 수준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믿음과 기대를 가지고 있다. 즉 혁신이나 도전등 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해 필요한 모멘텀이 상대적으로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다시 처음 이 책을 구입하기로 마음먹을 당시 가졌던 질문으로 돌아가본다. 이 책이 경제학이 세상에 해줄 수 있는 그 어떤 가치를 제공해주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내 개인적인 대답은 그렇다, 이다. 이 책은 경제학이라는 학문 안에 갇혀 있지 않다. 즉 이 책의 저자들이 결론을 대신하는 마지막 장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이들은 현대 경제학이 자랑하고 내세우는 수학적인 엄밀성이나 현상들에 대한 일반화에 관심이 없을 뿐더러 그러한 경제학의 경향성을 배척하기까지 한다. 이들의 목적은 오로지 한가지, 지금 이시간에도 굶어 죽어 가고 있는 수많은 이들을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찾는 데에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경제학이라는 수단을 사용하고 있는 것 뿐이다. 즉 이 책은 한 학문 분야라는 “바닥” 에서 내공을 인정받기 위해 쓰는 추상적인 언어 유희가 아니다.  Duflo 가 대학원 시절 실제 인도에 가서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며 시작된 이 책은 그러한 실제적인 접근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결코 성급하게 앞서가지 않는다. 지루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치밀한 현상 고증과 통계적 수치를 제시하면서 그 안에 담겨져 있는 경제학적 함의를 차근 차근 설명한다. 그리고 그 치밀한 논증 위에 그들이 원래 하고 싶었던 주장을 얹는다. 과격하지 않지만 분명한 어조로 전달한다. 행동해야 한다고. 그냥 행동하면 안되고, 아주 잘, 조심스럽고 현명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그래서 이 책의 부제가 완성된다. 빈곤과 “싸우기” 위한 “극단적”인 “생각”. “싸운다” 혹은 “극단적” 이라는 단어가 이 책의 말미에 이르러서는 그리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전적으로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논리적인 엄밀함덕분이다. 그 안에 수학 공식은 존재하지 않고, 어려운 경제학적 개념도 등장하지 않는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쉽게 읽히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 치열한 고민을 요구하고, 뒤이어 뜨거운 가슴도 요구한다. 경제학이, 아니 학문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실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이런 책을 쓰는 것이 아닐까.

찾아보니 아직 국내에 번역이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하루 빨리 번역되어 소개되기를 바란다. 이제 한국은 세계 20위권의 “부자나라” 이고, 빈곤에서 가장 빨리 탈출한 모범 사례로 종종 소개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 나라가 가진 노하우를 더 발전해야 하는 나라들에게 전달하고 도움을 줄 때가 왔다. 세계에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맡을 수 있는 역할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이 책은 그런 고민을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여담. 젊은 경제학자가 받을 수 있는 영예로운 상들이 여럿 있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상 두가지는 매년 40세 이하 경제학자중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긴 한명에게 수여하는 John Bates Clark Medal 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아주 젊은 학자에게 수여하는 MacArthur “genius” Fellowship 일 것이다. 이책의 공저자인 프랑스인 Duflo 는 이 두개의 상을 모두 받았다. 한마디로 천재라는 얘기다. 천재가 머리를 좋은 방향으로 쓸 때 세상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여담2. 유학오기 전 만났던 여자친구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라는 책을 읽고 있다고 내게 잠깐 보여준 적이 있다. 유심히 살펴 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 이후로 그 여자친구를 가끔 떠올리 때마다 이상하게 그 책이 함께 떠올랐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 친구는 무척 이뻤고, 이쁜 만큼 옷도 잘 입었고, 명품도 좋아하는 친구였다. 내게 항상 생각없이 산다고 구박을 들었고, 편하게 먹고 살기만 하면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친구이기도 했다. 그랬던 친구가 왜 그 책을 20대 중반이던 그 당시 읽고 있었는지 이 책을 읽고나서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왜 그랬을까?

Korean stature changes under Japanese Colonial period

저번에 언급한 Skeckel 의 논문은 여러가지 한계점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한 집단의 평균 신장을 이용해 그 집단의 영양 상태와 living standard 를 comparative 한 방법으로 접근한 공헌은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Fogel 과 Skeckel 의 선행적 연구 이후 이러한 시도가 경제사학계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졌고, 이는 즉 각 지역별로 case study 가 꽤 다양한 층위로 이루어졌음을 뜻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과연 일제 시대 한국인들이 정말 열악한 환경에 놓였는가, 라는 질문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질문이며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는지의 여부는 한국에 한국 국적으로 살고 있는 한 사람의 정체성이라던가 철학 따위를 ‘커밍 아웃’ 하는 가장 좋은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 앉아서 컴퓨터로 한국에서 발표된 논문을 읽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데, 왜냐하면 빌어먹을 한국 논문 검색 사이트들이 구글 스콜라와 연동을 전혀 하지 않고 있거나 구글 스콜라가 겨우 찾아낸다고 해도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한국에서 발간되는 학술지들을 구매했을 가능성은 제로로 수렴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분야에 대한 꽤 선구적인 논문들은 영어로 번역되거나 아예 영어권 학술지에 발표되기도 하는데, 궁여지책으로 그러한 자료들을 몇개 찾아 읽어 봤다.

거의 대부분의 논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는 데이터의 협소성이다. 길인성 전 교수님의 논문은 일제 시대 한국인의 신장을 측정하기 위해 두가지 자료를 사용하고 있는데, 하나는 당시 학교에 등록된 학생들의 신체검사 기록지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의료 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사람들의 신장을 이용해 당시 신장을 역추적해 나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20년에 태어난 사람은 1990년 의료보험 기록에 70세로 기록되어 있을 것이고, 만약 이 사람이 1990년 현재 80세의 사람, 즉 1910년에 태어난 사람보다 키가 작다면 1910년부터 1920년 사이에 평균 신장의 상승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 갖는 문제점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첫째 selection bias. 당시 학교에 등록되어 있던 학생이나 의료보험에 기록되어 있는 사람은 비교적 상류층에 속한다. 하위 계층이 outlier 로 통계에서 제외될 확률이 높다. 둘째 기록의 부정확성. 추측은 언제나 틀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아무튼, 길 전 교수님의 논문의 결론은 일제 식민 지배가 본격화되는 1920년부터 1940년 사이에 significant 한 신장의 감소 현상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즉 이를 영양분 섭취의 감소로 볼 수도 있고, 당시 큰 폭으로 증가했던 한국으로부터 일본으로의 쌀 수출 현상을 설명하는 자료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중요한 건 당시 일본인들의 신장과 직접적으로 비교해 과연 얼마나 신장의 감소폭이 ‘상대적으로’ 이루어졌느지를 밝혀내는 일이다. 이를 확장해 당시 대만이나 만주의 표본과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이다.

아무튼, 내 생각에 당시 일본인들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피지배계층의 정보를 입력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당시 한국인들에 대한 자료를 지금 현재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을 가능성보다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얘기다. 이걸 과연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당장 월요일에 사학과 건물로 뛰쳐 올라가 교수님들 바짓가랭이 붙잡고 매달려야 하나..

slave nutrition issue

이번 학기에 수강중인 과목중 하나인 Economic History of North America 를 위해 방금 읽은 논문의 주제는 미국 노예들의 삶의 질에 관한 문제다. 독립전쟁을 전후로 미국에는 몇가지 다른 형태의 노동력이 존재했다. 먼저 영국등 유럽에서 이민온 사람들, 그들중 미국까지 가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를 저당잡혀서 넘어온 indentured labor, 유럽에서 징벌적인 이유로 인해 강제로 넘어온 convict,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수입된 slave 등. 이들은 모두 다른 형태의 노동 계약을 맺었고 그에 따라 노동 환경도 상이했으며 하는 일도 달랐을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이 바로 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이 과연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을 제공해야 했느냐의 문제다. 왜냐하면 당시 존재했던 상이한 형태의 노동 계약에 대한 이론중 상당 부분은 이러한 노동 형태가 각각의 계급이 처한 환경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요일에 내가 발표했던 Fenoltea 의 1984년 논문이 대표적인 예다. Fenoltea 는 처벌과 감시에 의해 규제되는 강제적인 형태의 노동과 임금을 통해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는 자발적 노동으로 당시 노동 형태를 나누고 처벌과 감시에 의한 강제적 노동의 경우 더 높은 효율과 더 낮은 주의력(carefulness) 를 불러오는 효과가 있다고 가정했다. 즉 효율을 중시하는 산업일 경우 노예를 써서 강제적으로 일을 시키는 것이 더 높은 이익을 보장하는 반면 꼼꼼하고 높은 기술을 요구하는 산업의 경우에는 자유로운 신분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편이 경제적으로 더 좋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논문의 경우 노예가 정말 강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을 제공해야 했느냐는 가정의 사실판단 여부가 중요하게 다루어 질 수 밖에 없다.

Steckel 의 1986년 논문은 이런 의미에서 선구적이다. 그는  1820년부터 1860년까지 존재했던 흑인 노예 5만여명의 자료를 분석해 그들의 평균 신장을 추정해 냈다. 신장이 인간의 영양 상태를 나타내는 좋은 지표라고 가정할 때, 평균 신장은 그 집단의 전체적인 영양 상태를 추정할 수 있는 좋은 표본이 될 것이다. Steckel은 이 평균 신장을 현대의 평균 신장과 비교해 얼마나 큰 차이를 나타내는 지를 살펴 본다면 당시 흑인 노예들의 평균적인 영양 상태및 노동 환경을 추측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저자는 사실상 성인이 된 후의 신장 비교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영아부터 성장이 마무리되는 20세 전후까지의 기간만 조사했다. 두번째 칼럼이 당시 노예들의 평균 시장을 추측한 값, 네번째 칼럼이 1960년대 현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평균 신장 값, 다섯번째 카럼은 이 두 값 사이의 차이를 나타낸 것이다. 단위는 인치(inch) 다. 위의 표에서 중요한 건 마지막 칼럼이다. 마지막 칼럼은 당시 노예의 평균 신장이 현대의 신장 기준과 비교해 백분위로 어디에 속해 있는가를 나타낸 것이다. 예를 들어 4.5세의 평균적인 흑인 노예는 현대 기준으로 하면 백분위로 0.2% 에 속한다. 즉 가장 열악한 0.2% 에 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21.5세가 되면 23.3% 로 상승한다. 하위 23.3% 에 속한다는 뜻이다. 이 결과는 19세기 초중반의 흑인 노예들은 영아때는 극심하게 열악한 영양상태에 속하지만 성장하면서 점차 영양 상태가 개선되었다고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이들이 태어날 때 상대적으로 열악한 영양 상태였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태어날 때보다 더 나은 영양분을 섭취함으로써 신장면에서 개선이 이루어졌다고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영양 상태가 점차적으로 개선된 이유가 무엇일까? Steckel 은 두가지 이론을 제시한다. 첫째, 노예주인이 경제적 투자의 개념으로 노예들을 잘 먹였다는 것이다. 일단 자신의 노예들이 건강해야 그에 따라 돌아오는 return 도 많을테니까 어린 노예들을 잘 먹여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expected return 과 expected outlay 를 비교해 본 결과 투자에 비해 돌아오는 리턴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둘째, 노예 주인의 altruism, 즉 이타적인 마음에 기인한다는 가정이다. 한마디로 노예 주인이 착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논문에서 Steckel 은 당시 흑인 노예들의 personality 가 영양 상태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그는 영양 상태가 좋지 못했기 때문에 성마르고 반항적이며 예의가 바르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Steckel 은 Fogel 의 제자이다. Fogel 은 사회주의자이며,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알려져 있다.  뭐 어쨌건.

영양 상태와 삶의 질을 연결시키는 건 현대 경제 사학자들에게 널리 퍼진 이론이다. 이 이론은 Fogel 과 Steckel 이후 점차 정교화되기 시작해서 최근에는 당시 생존했던 이들의 뼈나 머리카락을 분석, 이들이 섭취했던 영양소를 분류해 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아무튼 이 이론을 이용해 국내의 식민사관론자들이 자신들의 이론을 확장시켰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즉, 일제 식민 시대동안 한반도에 거주하고 있던 한국인들의 영양 상태는 크게 개선되었으며, 때문에 일제의 식민 통치가 사실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일제 식민 통치가 한국을 발전시켰다는 논리)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자료의 정확성같은 기본적인 통계적 오류 가능성을 차치하고서라도 몇가지 반박할 구석이 없는 건 아니다. 첫째, 영양 상태, 특히 신장의 경우에는 유전적인 요인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꽤 크다. 즉 아빠와 엄마가 크면 아들 딸도 클 확률이 아빠 엄마가 작았을 경우보다 크다. data 의 span 을 앞뒤로 확 늘려야 이야기가 조금 더 그럴듯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둘째, 한 시기의 평균적인 신장을 영양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로 가정하고 이를 무언가와 비교해 결론을 도출해 내고자 한다면 동시대 다른 환경에 처해 있던 다른 집단과의 비교를 해야지, 완전히 다른 시대의 다른 환경에 있는 집단과 비교하면 컨트롤해야 하는 변수들이 너무 많아진다. 통계적인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이건 비교 집단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저자의 정치적인 경해가 개입할 여지가 너무 많아진다는 의미도 된다. 예를 들어 식민시대 한국인들의 영양상태를 현대의 가장 못사는 지역에서 추출한 표본과 비교하면 당연히 좋아 보인다. 셋째, 인류는 항상 발전해 왔다. economic growth rate 는 장기적으로 하락한 적이 1500년 이후로 한번도 없었다. 단기적인 fluctuation 은 있을 수 있으나, 3,40년의 장기적인 기간을 대상으로 한다면 한 집단이 경제적으로 더 열악한 상태에 놓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즉 거시적인 성장률이 그 집단의 영양 상태에 영향을 주는 대표적인 요인이라면 (식민사관론자들의 핵심적인 가정이 이것이다) 그 성장률은 이유를 불문하고 항상 성장할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조선시대에도 경제는 항상 큰폭으로 성장해 왔다. 즉, 식민 시대에 한반도에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의 신장이 상승한 건 당연하다는 거다. 만약 이들이 식민 시대 전 100년 정도 기간의 신장 상태 기록을 확인하고 정리하여 식민 시대의 신장 성장률과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또 달라지겠지만, 사실상 그러한 비교는 현재 나와 있는 자료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넷째, 심지어 일본 식민 통치가 당시 한반도의 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고 가정한다고 하더라도, 이 거시 경제 성장으로 인한 부의 축적이 어떻게 분배되었는가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평균 신장, 혹은 평균적인 영양 상태는 그리 썩 좋은 지표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영양 상태는 그야말로 subsistence level 이 유지되었는가를 설명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삶의 질이 하루 세끼를 해결하는 것으로 완전히 충족되는가? 나의 대답은 노, 다. 그 이상의 무언가를 일제 식민 통치가 제공해 주었는가를 밝혀 내기 위해서는 완전히 다른 자료가 필요하다.

References

Fenoltea, Stefano, “Slavery and Supervision in Comparative  Perspective: A model,” Journal of Economic History, 44 (1984): 635-69.

Richard Steckel, “A Peculiar Population: The Nutrition, Health, and Mortality of American Slaves from Childhood to Maturity,” Journal of Economic History, 46 (1986): 721-41.

남녀 관계에 대한 세가지 이론, and more..

공부하기 싫어서 내 가까운 친구들이 제시한 연애, 혹은 결혼에 대한 세가지 이론을 소개한다. 이들 이론들의 특징은 모두 계급주의적인 시각에 사로잡혀 있으며, 각자 계급을 정의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이라는 특수한 지역주의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마지막으로 이 이론들은 동성애자와 같은 특별한 경우를 배제하고 있다.

1. 키와 매력, 학력의 상관관계 – 여자친구 S 의 주장

대학교 1학년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10년전 (꺄악) 에 제시된 이론이다. S 는 한국에서 남자는 키가 클수록 매력이 증가하는 성향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매력이라는 함수의 종속 변수를 결정짓는 또다른 독립 변수로 학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즉 학력이 높을 수록 남자는 능력이 높은 것처럼 보이며, 이것이 여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력과 키의 상관관계는 무엇일까. 그녀는 키가 10cm 클수록 학력 하나를 상쇄한다고 가정했다. 즉 170cm 의 대졸 남성과 180cm 의 고졸 남성은 – ceteris paribus – 동등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어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키를 늘이고 가방끈도 길게 하는 것이다. 당신이 키가 작다면 학교를 더 다녀야 한다. S 는 대학교 1학년때부터 사귄 동갑내기 남성과 재작년 결혼했다. 남편되는 분은 키도 크고 학벌도 괜찮고 벌이도 괜찮다.

2. distorted market and miss-match theory – 남자친구 J 의 주장

J는 약 5년전 남자와 여자의 등급을 A, B, C 세가지로 나누어 각각의 등급이 상대 성의 어떤 등급에  매치되는지를 연구했고 이를 친구들에게 발표했다. 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성은 자신보다 한단계 높은 등급의 남자와 매치되기를 바란다. 즉 B 등급의 여자는 A 등급의 남자와 매치되기를 희망한다. 반면 남자는 자신과 반드시 동등한 등급의 여자를 만나야 한다는 의지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J 가 설정한 등급 기준은 학력과 수입, 외모와 배경등이다. J 의 이론에 따르면 B 등급의 여자는 A 등급의 남자와, C 등급의 여자는 B 등급의 남자와 매치된다. 그렇다면 시장에 남는 등급은 A 등급의 여자와 C 등급의 남자다. J 는 자신의 이론이 현재 한국에서 양산되고 있는 소위 골드 미스라고 불리워 지는 능력은 뛰어난 노처녀들과 능력없는 노총각들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J 는 현재 – 그의 등급 기준에 따르면 – A 등급의 여자와 연애중이다.

적어 놓고 보니까 인간도 “1등급 한우” 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3.  왜 시장에는 괜찮은 남자가 없는가 – 남자친구 H 의 주장

지난 여름 H 는 30대 전후의, 결혼을 염두에 두고 이성을 만나게 되는 연애 시장에서 “괜찮은 남자” 가 “괜찮은 여자” 에 비해 그 개체수가 현격하게 낮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친구들에게 알렸다. H 는 당시 이 시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demander 이자 supplier 였는데, H 가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가치에 비해 너무나 많은 인기를 독차지하게 된 데에서부터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실증 분석에 따르면 “꽤 괜찮은 남자는 다 짝이 있더라” 라는 말은 엄연한 사실이었고, 이태원과 홍대의 클럽 등지에서 “꽤 괜찮은 남자” 는 “정말 괜찮은 여자들” 에게 둘러 싸여 인기를 독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비슷한 나이대의 – 매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은 연령대의 – 여자들은 자신들의 선호 기준을 충족하는 남자를 만나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러한 기준을 충족하는 남자들은 “이미” 다 임자를 만나 시장에서 퇴출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괜찮은 남자는 다 유부남이더라” 라는 말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결과적으로 시장에 남아 있는 여성의 “퀄리티” 가 남성의 그것에 비해 훨씬 높은 비대칭적 상황이 빚어지게 되고, 여자는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계속 시장에 남아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H 는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일찍 사회에 진출하는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지적한다. 즉 여자는 남자에 비해 이 시장을 먼저 경험하고 여성 특유의 직감과 생존 능력으로 괜찮은 남자를 먼저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더 빠르게 습득한다는 것이다. H 는 현재 시장의 진입과 퇴출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며 이 시장의 특수성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J 와 H 의 이론에서 공통적으로 추론해 낼 수 있는 사실은 한국에서 결혼 적령기라고 불리우는 나이가 점점 상승하고 있으며, 이 현상은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겪고 있는 고령화 사회와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40세 이후로 임신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가능성은 제로로 수렴한다고 가정할 때 결혼 연령대가 높아질 수록 임신 가능성은 감소한다. 즉 젊은 인구는 적게 공급되고 과학의 발달로 인해 증가하는 인간의 평균 수명은 경제활동 인구가 부양해야 할 은퇴한 비경제 활동 인구 비중을 높게 만든다. 고령화 사회의 주된 이유로 증가하는 여성의 사회 진출을 뽑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먼저 한 가정이 맞벌이를 해야지만 먹고 살 수 있는 빈약한 사회 구조 문제를 지적해야 한다. 여기서 해묵은 논쟁이 벌어질 소지가 있다. 여성이 가정을 지키면서 더 많은 출산을 통해 미래의 노동력을 공급해야 한다는 의견과 여성 그 자체가 하나의 잠재적인 노동력이므로 이를 사회에서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 사이의 대립. 전자는 성차별적인 생각이 아니다. 오직 여성만이 임심할 수 있고 10개월 + /alpha 의 기간을 출산과 출산후 회복에 쏟을 수 밖에 없는 생물학적 특수성에 기반한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적 진출은 장려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약간의 수정만 가하면 이 두가지 의견은 대립이 아닌 하나의 통합적 결론으로 수렴할 수 있는데, 바로 국가가 공공서비스를 통해 이 두가지 주장을 모두 보조해 주는 것이다. 만약 사회 구조적인 시스템을 잘 디자인한다면, 여성의 노동력을 시장에 계속 공급함과 동시에 임신율과 출산율을 적정 수준에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면 여성의 임신/출산 휴가를 충분히 보장해 주고 이후 복직 보장과 근무간에 있어 불이익을 최대한 방지해 주는 것, 그리고 출산 후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무상 보육을 실시하는 것 등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일부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비정상적인 교육열이 평등한 수준의 보육 시스템을 침해할 소지는 다분하나, 먹고 사는 것이 당장 급한 대부분의 부모들은 공짜로 자신들의 자녀들을 돌봐 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큰 힘을 얻을 것이다. 최소한 친정과 시댁 부모들이 아기 하나때문에 절쩔 매며 노후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건 상당히 중요한 부분인데, 무상 보육 문제가 흔히 말하는 실버 산업과도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얘기를 덧붙이고 싶다. 지금 비경제 활동 인구로 잡히는 은퇴한 노인들은 손자 손녀들을 돌보며 사실상 무상으로 그들의 노동력을 공급하고 있다. 이건 GDP 에도 잡히지 않는 일종의 지하경제다. 국가가 만약 공공 보육 시스템을 크게 활성화해서 이렇게 음지에서 고생하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적정한 수준의 급여를 지급한다면? 내 새끼는 꼭 내 핏줄에게 맡겨야 안심할 수 있다는 생각만 갖고 있지 않다면 충분히 거시 경제적으로 이득을 챙길 수 있는 부분이다. 결국 정부에서 제공하는 부상 보육 시스템의 질적인 측면 역시 중요할 거라는 얘기다.

아무튼 지금 한국의 “노총각 노처녀 양산” 과정은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된 경제학자로는 “dismal economics” 의 창시자인 Malthus 를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저서 <인구론> 의 내용은 간단하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생산력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니 인류는 결국 멸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를 통제하기 위한 “check” 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질병과 기아, 전쟁등에 의해 death rate 을 통제하는 “positive check” 과 결혼 연령대와 결혼 가능성을 통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birth rate 을 통제하는 “preventive check” 이 그것이다.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난 맬서스는 사람이 최대한 많이 죽고 적게 태어나야 인류가 생존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생명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는 결과적으로 틀렸다. 과학 기술이 인구 증가율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져야 하는 질문은 멜서스가 주장했던 preventive check 이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이다. 또한 이에 덧붙여 만약 그것이 일어나고 있다면 대체 왜, 라는 질문도 가져야 한다. 나의 개인적인 답은 예스, 그리고 먹고 살기 힘들어서. 결국 국가에서 나서서 이 check 을 제거해 줘야 한다. 왜냐하면 시장에서는 이걸 효과적으로 컨트롤하고 있지 못하므로. 흔히 말하는 시장 실패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지 않고 아기를 갖지 않으면 한나라에 이보다 더 큰 재앙은 없다. 굳이 Solow 의 경제 성장 이론을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인구 증가율이 한나라의 경제 성장율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직관적으로 헤아릴 수 있다.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가적 임신율 억제 과정을 제거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을 것이다.

1. 거시정책: 굳이 맞벌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을 만든다. 즉 최저 임금 상승 및 보장, 물가 안정, 이자율 안정 등. (여기서 국가 경쟁력을 해친다느니 하는 불멘 소리를 기업쪽에서 한다면.. 엿먹어라)

2. 미시정책: 맞벌이를 하면서도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다. 즉 무상 보육 시스템 강화,  고용 안정 보장등.  (출산을 경험한 여성의 노동 생산성이 감소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무상 급식 대결을 보면서 사실 이게 제일 급한 문제는 아닐텐데.. 라는 생각을 했다. 아기들에게 맞히는 주사값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엄하게 명품 수입 유모차에 매기는 관세를 낮추라는 소리가 아니다. 그건 정신나간 엄마들이나 하는 짓이고. 아기들을 최소한 사회에 성공적이고 안정적으로 안착시키는 과정에서 국가가 기본적인 서비스를 시장에 공급해 주라는 것이다. 애기들 주사 공짜로 맞힐 수 있게 해주고, 기저귀값이나 분유값 보조해 주고, 보육원이나 유치원을 정부에서 운영하는 뭐 그런 것들. 초등학교에만 무사히 들여 보내면 그 다음부터는 또 다른 문제다. 그 전까지의 과정에서 엄마 아빠들이 힘 쏙 빼고 등골 휘지 않게 공공서비스의 공급을 확대하면 되는 것이다.

어제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유학생 형님 한분의 이야기가 흥미를 끌었다. 그 양반은 자신의 첫째 딸내미를 대학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보내고 있는데, 이 유치원의 설립 목적이 일종의 학문적 연구에 있다는 것이다. 즉 굳이 뒤르켐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발달 심리학이나 뉴로 사이언스를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유아의 성장 과정은 굉장히 중요한 관찰 대상이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여담이지만 이 유치원이 미국의 여타 유치원들과 다른 점은, 아이들이 울면 안아 준다는 것. 나도 어제 처음 알았는데 미국의 유치원은 아이가 울어도 안아 주지 않는단다. 아무튼, 정부에서 각 대학의 관련 학과에게 적정 수준의 연구 지원을 하고 대학들은 부설 유치원을 개설해 아이들을 돌봐 주면서 동시에 연구도 진행할 수 있다면, 대학은 지역 사회에 공헌하면서 연구도 할 수 있으니 일석 이조, 정부는 간접적으로 질적 수준이 높은 보육 시설을 개설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으니 공공 서비스의 질적 저하 문제를 해결, 엄마 아빠들은 저렴한 가격에 질이 높은 보육 시설을 이용할 수 있으니 이쪽도 좋고. 모두가 좋아질 수 있는 하나의 예일 뿐이지만 방법은 찾아보면 훨씬 다양할 것이다. 재원 마련? 사대강 안하면 된다. 끗.

인플레이션

인플레이션이 경제에 끼치는 나쁜 영향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본질적인 건 물가 상승에 따른 실질 소득 감소에 기반하고 있다. 즉 경제 주체는 물가 상승률보다 더 높은 수익률이 기대되는 상품에 투자를 하게끔 강요받고, 더 높은 수익률은 더 높은 리스크를 동반한다. 즉 경제 전반에 걸쳐 불안정성이 확대되는 것이다. 낮은 인플레이션하에서 안정적인 예금이나 채권에 투자하던 사람들은 이제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실질 소득이 감소하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펀드나 주식에 투자해야 한다. 만약 한 국가 수준에서 통제 불가능한 외부 충격에 의해 물가가 상승했다면 (예를 들어 미국의 양적 완화로 인한 전세계적인 유동성 과잉 현상같은) 최소한 국가 단위에서는 이러한 외부 충격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정책을 내 놓아야 한다.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이것은 대출을 받는 입장에서 물가 상승과 금리 인상의 이중고에 시달릴 수 있으므로 최적화된 정책은 아니다. 그리고 최소한 공공 서비스 요금을 기습적으로 인상하는 것이 나쁜 정책이라고는 이야기할 수 있다. 물가 상승을 부추기며 가격이 인상되는 공공 서비스를 주로 이용하며 그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중하위 계층에 대한 차별적인 정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역진세 개념이다.  또 하나, 퇴근 시간을 앞당겨 소비 가능 시간을 늘리자는 정책은 참으로 비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 억지로 소비를 하게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는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일종의 애완동물이나 기계 정도 수준으로 취급한다는 저급한 철학에 근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