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우리.

결혼한지 이제 막 1년이 지나 아직 경험이 일천하긴 하지만, 지난 1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1년이었다. 걱정했던 것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았고,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에서 더 많은 행복이 찾아왔다. 그래서인지 결혼생활에 대해 묻는 주변 지인들에게 내가 경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주기만 해도 ‘결혼 전도사’처럼 비추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결혼은 철저히 개인의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하며, 그 누구에게도 결혼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결혼이라는 생활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잠재적 갈등 유발 요인을 수면 아래로 가라앉힐 수 있는 ‘합’이 맞는 사람과 결혼했기 때문에 결혼생활을 “행복하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지, 보편적인 결혼생활의 진리, 혹은 규칙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아이 두명을 아파트 아래로 던져 살해하고 본인도 스스로 생명을 끊은 한 젊은 어머니에 관한 뉴스를 읽었다. 세 명의 생명을 포기할 정도로 절망적인 결혼생활도 있을 수 있다.

지난 1년 간 결혼생활을 행복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찾아 보자면, 먼저 ‘나’를 버리고 ‘우리’를 추구한 삶의 근원적인 변화를 들고 싶다. 지독한 개인주의자이자 가끔 이기적일 때도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보다 더 우선시되는 가치에 헌신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이들이 퇴근 후 한잔의 술, 휴일 낮 한번의 게임, 월급의 일부분을 할애하면 살 수 있는 예쁜 옷 등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나의 경우, 결혼 이후 존재하기 시작한 가정이라는 가치가 그 모든 개인적인 욕망보다 상위에 존재할 수 있음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친구를 만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 충실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멀어지게 된다. 무언가를 포기함으로써 얻게 되는 가치는 기회비용의 크기에 따라 후회나 아쉬움과 같은 감정적인 비용을 지불해야 할 때가 많다. 그래서 포기와 희생은 어렵고 힘들다. 그런데 가정에의 헌신, 혹은 ‘내’가 아닌 나와 아내로 구성된 ‘우리’라는 또다른 자아로부터 시작되는 주체적인 판단은 그 어떠한 희생이나 포기도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자아이며, 나를 버림으로써 새롭게 얻게 되는 놀라운 기회의 출발점이다. 가정 안에서 내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면 나를 지키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도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며, 나의 개인적인 욕심과 가정에 대한 의무 사이에서 갈등할 이유도 없다. 이러한 삶의 변화가 무척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직장에서의 나, 사회적 관계 안에서의 나, 부모나 형제와의 관계에서 존재하는 나는 존재할지언정, 그 모든 나를 떠받드는 근원이자 본체인 가정에서의 나는 철저히 ‘우리’로부터 출발한다. 이 ‘서열’이 한번 정해지면 생활 속에서 개인적인 욕심과 가정에 대한 의무 사이에서 고민을 할 이유가 현격하게 줄어든다. 모든 것을 아내에게 이야기하고 아내와 함께 결정하면 될 일이다. 단순히 서로의 속내를 적당히 ‘공유’하는 사이가 아니라 ‘공동체’로서 함께 모든 것을 함께 결정하고 실천하는 관계로 부부를 정의하기 시작하면서 삶이 훨씬 편해지고 밝아졌다. 아내의 밝고 건강한 기운을 왜곡없이, 오롯이 전부 다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나 역시 전과 다르게 세상을 보기 시작했고, 아내를 닮아가면서 다른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다. 나의 절반은 아내로 채워질 것이고, 아내의 절반도 나로 채워질 것이다. 그렇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우리’가 조금씩 완성되어 갈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결혼은 ‘우리’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다.

부모와 함께 지내는 시기부터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유학생활까지 삶이 늘 ‘혼자’였다고 느끼며 살아온 내게 아내를 만나 완전히 다른 자아로 새출발을 한다는 것은 전에 없는 삶의 큰 변화였다. 그래서 지금도 적응 중이고, 아직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있다. 한없이 부족하고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기에 이 거대한 변화를 단기간에 완벽하게 체화시키는 일이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러하기 때문에 노력이 중요하고 또 중요하다.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진득하게 아내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나와는 너무나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고 많이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이기에 닮아가는 과정에도 많은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닮아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하다. 재미있고 행복하다.

2018년의 목표

목표는 원래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세우기 위해 있는 것이다. 목표로 했던 계획이 틀어지는 와중에 겪게 되는 일들이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다음의 다섯가지 목표는 꼭 지켜졌으면 좋겠다.

1. 처음보다 더 많이 아내를 사랑하겠다.

2. 가족의 수를 늘리고 싶다.

3. 양가 부모님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많이 보겠다. 한번이라도 더 자주 손을 잡아드리겠다.

4. 내집 마련의 기틀을 마련하겠다.

5. 논문을 세편 이상 쓰겠다. 그 중 한편 이상은 반드시 SSCI급 이상을 쓰겠다.

개인적인 취미생활에 대해서라면, 52장의 음반과, 52권의 책과, 52편의 영화를 접하고 싶다. 일주일에 한 장의 음반, 한 권의 책, 한 편의 영화 정도라면 마음의 가난함을 달래줄 수 있는 최소한의 목축임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래서 블로그에 52장의 음반에 대한, 52권의 책에 대한, 52편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17년의 기억들

  • 올해의 사람: 정지은

2016년말 정지은과 결혼하여 1년여를 함께 살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1년이었고, 가장 충만한 1년이었다. 아내로 인해 내 인생 최고의 1년을 보낼 수 있었다. 아내와 함께라면 평생 지치지 않고, 패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용기가 생겼다. 나에게도 지켜야 할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이 인생의 방향 전체를 획기적으로 바꾸어놓았다. 이제 더이상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고, 아내가 웃는 모습만으로도 기운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아차상: 없음

  • 올해의 장소: 경상남도 창원시

태어난 후 창원을 최초로 방문했고, ‘창원의 사위’가 되었다. 나는 아마도 그곳에서 오랜 인연을 이어나갈 것이다.

아차상: 서울시 성동구 금호동

  • 올해의 선택: 이직 결정

2017년 2월 이직을 결정하였고 4월 현재의 직장으로 적을 옮겼다. 이후 세편의 논문을 게재하였고, 업무 과정에서 소중한 가르침을 많이 받았다. 만약 내가 전직장에 계속 머물렀다면, 아마도 지금보다 물리적으로는 조금 더 풍족했을지 몰라도 마음의 가난함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현재 직장에서 오래 머물 생각은 없다. 좋은 징검다리 정도라고 생각한다. 다만 현재까지 프로페션을 이어오는 과정에서 당시 이직 결정이 결정적인 방향 선회의 기회를 제공해준 것 같다.

아차상: 비트코인을 구입하지 않은 것

  • 올해의 식당: 오키나와 류쿠노우시

음식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아내 덕분에 미각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된 한해였다. 한해동안 맛있는 음식을 참 많이 먹었는데, 그 중에서도 최고의 음식은 연말 오키나와 여행에서 등장했다. 지금까지 먹어본 모든 종류의 육식 중 최고였다. 음식을 먹으며 짜릿한 감동을 느끼는 체험을 할 줄은 몰랐다.

아차상: 포틀랜드 터스크(Tusk)

  • 올해의 햄버거: 청담동 쉑쉑버거

서울에서도 맛있는 햄버거를 찾아 다니며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한 한해였다. 청담동의 쉑쉑버거는 뉴욕에서 경험했던 그 맛을 거의 그대로 옮겨 놓아서 반가웠다. 참고로 나는 파이브가이스 > 쉑쉑> 인앤아웃 순으로 좋아한다. 파이브가이스가 빨리 한국으로 들어와 한국인들에게 칼로리만으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아차상: 홍대앞 아이엠어버거

  • 올해의 책: 권여선의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의 소설은 처연하게 아름답다. 등장인물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손길이 아름답고, 그녀의 문장 속에서 비틀거리며 춤을 추는 인물들의 삶의 결이 아름답다. 올해 초 읽은 이 책을 뛰어넘을 정도로 좋은 소설을 만나지 못했다.

아차상: 김애란의 소설집 [바깥은 여름]

  • 올해의 화장품: 이솝(Aesop)의 제라늄 리프 바디 클랜저, 레쥬비네이트 인텐시브 바디 밤

이솝의 제품을 끈질기게 써보고자 노력했던 한해였다. 결과적으로 스킨제품은 실패였고, 바디와 헤어 제품은 궁합이 제법 잘 맞았다. 샴푸는 명성이 헛되지 않음을 알게 되었지만 제품별 특징을 강하게 느끼지는 못했다. 볼류마이징 샴푸라고 해서 정말 머리가 풍성해지는 느낌을 받기 힘드니까.. 핸드워시는 그냥 아, 이솝 핸드워시구나, 하는 정도였고, 의외로 만족감이 높았던 분야는 바디워시와 바디 밤 쪽이었다. 향과 농도가 확연하게 구분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았다. 이솝의 바디제품을 사용하고 난 후 몸에서 발생하는 트러블이 줄어들었다.

아차상: 아내가 선물해준 아이브로우 펜슬

  • 올해의 음반: Big Thief의 [Capacity]

수프얀 스티븐스에게 [Carrie & Lowell]이 그의 음악커리어에서 전환점을 마련해주었다면 빅 띠프는 그 변곡점을 커리어 초기에 맞이하는 행운을 잡았다. 그들 스스로 이룩한 성취의 결과물이기에 행운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 같다. 올해 나온 음반들 중 가장 완벽한 음반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아름답다. 음악은 엔지니어링이기 전에 감정의 문제이기에 나에게는 이 음반이 베스트다.

아차상: The National의 [Sleep Well Beast]

  • 올해의 커피: 리이슈의 브라질 카르모 에스테이트

좋은 커피를 찾아 열심히 돌아다닌 한해였다. 그리고 한국의 소매상에서 로스팅되는 커피의 대부분이 모두 비슷한 산지로부터 비슷한 경로를 거쳐 도착한다는 씁슬한 사실을 확인한 한해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서울에서 맛볼 수 있는 ‘좋은’ 커피의 대부분은 비슷한 맛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연남동의 리이슈는 조금 다른 풍미의 커피를 제공한다. 그 중 아주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원두가 하나 있었다. 사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당시 내 필터드립이 유난히 성공적이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코와 입으로 커피가 전해지는 순간 완전히 다른 차원을 경험했다.

아차상: 여의도 스티머스에서 그동안 모은 쿠폰으로 공짜로 얻어 마신 필터드립 커피 한 잔

  • 올해의 골목: 태평동 일대 골목

처남의 집을 알아보다가 알게 된 골목이다. 지금까지 가본 적 없는 거주환경을 목격했고, 부끄럽지만 충격을 받았다. 이후 다시 가보지 않았지만 그때 각인된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다. 지금도 그런 환경에서 많은이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가끔 머리의 한쪽이 지긋이 눌려온다.

아차상: 금호역부터 금남시장 교차로까지 이어지는 장터길

  • 올해의 영화: 베리 젠킨스 감독의 [문라이트]

압도적이었고, 황홀했다. 영화가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경지를 목격했다.

아차상: 조던 필레 감독의 [겟아웃]

  • 올해의 인스타그램 포스팅: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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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상: 아래와 같다(영상인데 캡쳐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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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의 하루: 11월 11일

창원 부모님을 모시고 효자동에서 점심을 먹고 청와대와 경복궁을 구경한 후 63빌딩에 가서 저녁식사를 했다. 금호동 집으로 돌아와 주무실 자리를 펴드렸다. 뭉클함에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순간이 많이도 스쳐지나갔다. 나의 한해를 요약한 하루처럼 느껴졌다. 2017년이 나에게 준 모든 것이 그 하루에 녹아들어가 있었다.

아차상: 8월 19일

  • 올해의 TV쇼: [비밀의 숲]

황시목이 돌아왔으면 좋겠다.

아차상: [프로듀스 101 시즌2]

  • 올해의 하늘: 6월 4일

아차상: 7월 29일과 8월 4일

  • 올해의 성당: 옥수동 성당

옥수동 성당의 평범한 주일 교중미사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신부님의 첫미사를 우연히 함께 할 수 있었다. 먼길을 돌고 돌아 사제서품을 받은 신부님이 늙은 홀아버지를 꼭 안아주던 장면에서 왈칵 울음이 터져나왔다.

아차상: 명동성당

  • 올해의 지름: 엘지 트롬 건조기

우리 부부의 삶은 건조기를 구입하기 전과 후로 나뉜다. 세탁기가 여성을 주방에서 일정 부분 해방시켰다면, 건조기는 현대인의 삶을 한차원 높은 곳으로 끌어올렸다. 이제 우리의 다음 목표는 엘지 트롬 스타일러로 향해있다. 

아차상: 마르니 민소매 원피스

  • 올해의 여행: 포틀랜드

우리 부부는 아직 정착할 곳을 찾고 있다. 여행은 그런 의미에서 좋은 견학이기도 하다. 포틀랜드 여행 후 우리는 이 곳을 후보지로 올렸다. 특히 캐논비치는 잊지 못할 감정을 선사해주었다. 기분이 내킬 때 차를 끌고 캐논비치를 다녀올 수 있는 곳이라면 오래 살기에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차상: 제주도

  • 올해의 여드름: 10월부터 11월까지 오른쪽 눈 옆에 난 여드름

올해는 예년에 비해 유난히 많은 여드름이 난 한해였다. 아마도 새로 옮긴 직장의 환경이 피부에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그 중에서도 한달 넘게 아주 크게 눈 옆에 자리잡은 여드름이 기억에 남는다. 쉽게 터지지 않으면서 많이 부풀어올라 눈을 깜빡거리는데 지장을 초래할 정도였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흉터가 남아있다. 인생에 남을만큼 대단한 여드름이었다.

아차상: 양 관자놀이에 만성적으로 자리잡은 작은 여드름 모음들

  • 올해의 실수: 결국 참지 못하고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한마디 한 것

아차상: 후진하다가 화물차량과 충돌한 것

면접에서 깨달은 것들

어제 개인 사정으로 잠시 반차를 내고 일을 본 뒤 짬을 내어 면접을 하나 봤다. 민간그룹 산하 연구소였다. 발표를 잘 하지는 못했다. 많이 더듬거렸고, 중간에 내용을 까먹기도 했다.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한 것도 많았다. 어제 집으로 돌아와서 잠들 때에도, 오늘 아침에도 계속 어제 면접에서 실수한 것들이 떠올라 스스로를 자책했다. 면접 당사자가 이렇게 명확하게 인지할 정도면 심사위원들은 바닥까지 훑어 내려갔을 것이다. 이미 떨어진 것은 기정사실처럼 느껴진다.

면접의 실패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관건은 왜 실패했는지 파악하는 일이다. 우선 어제 와이프가 정확하게 지적한 바와 같이 절실함이 없었다. 대학원을 졸업할 당시 첫직장은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였다. 그곳에 취직하지 못하면 실업자가 될 수 밖에 없었고, 타는 듯한 절실함으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올해 초 첫직장에서 나올 때에도 그에 못지 않게 절실했다. 연구를 더이상 지속할 수 없는 환경에서 마치 생명줄이 끊어진 듯한 비참함을 느꼈고, 지금의 직장에서 뜻밖의 오퍼가 왔을 때 하나의 동아줄처럼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한번의 취직과 한번의 이직과정에서 ‘플랜B’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직장에 들어가거나 더 나빠지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이번에는 케이스가 조금 달랐다. 우선 현 직장이 나를 죽일 듯이 괴롭히지는 않는다. 이 직장이 보여주는 비전이 명확한 한계를 가지고 있고 고용도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 당장 어디론가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적당한 업무량 사이를 비집고 열심히 짬을 내면 개인연구도 어느정도 할 수 있다. 늘 부족하게 느껴지는 봉급과 계약직이라는 신분이 마음 한켠에 늘 불안감을 갖게 하지만, 어차피 평생직장은 아니라는 생각에 미래를 위해 꾸준히 연구성과를 쌓는다면 어디로든지 갈 곳이 없겠냐는 낙관적인 생각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정말 내가 원하는 직장에서 면접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는 어제와 같이 안일한 자세로 임하면 안되겠다고 느꼈다. 왜 면접을 보는지, 왜 이직을 원하는지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본 어제의 면접은 생명력을 잃은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심사위원들에게 절실함을 보여주는 것 이상의 어필은 없을 것 같다.

이와 함께 아직 나의 내공이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느꼈다. 심사위원들의 질문은 내 발표를 듣다보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상식 수준의 질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황한 나머지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어제 밤 샤워를 하면서 그 질문들이 다시 떠올랐고 충분히 괜찮은 답변도 함께 떠올랐다. 좋은 답변을 그 자리에서 즉시 할 수 없었던 것은 단순히 순발력 부족에 따른 불운의 문제가 아니라 평소에 충분히 학문적인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 필연적인 참사였다. 책장 한켠에는 아직도 배달되어 온 학술지들이 포장도 뜯겨지지 않은채 쌓여 있다. 공부를 게을리 하는 학자는 세상에 아무런 쓸모가 없다. 곡학아세를 하던가 룸펜이 되던가 해야 한다. 나는 둘 다 하고 싶지 않다. 하고 싶은 말을 조리있게 하되 그 말이 세상에 인정을 받고 선의를 의해 쓰이는 모습을 경험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공을 더 많이 쌓아야 한다. 그 내공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좋은 논문을 써야 한다. 퇴근 후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아이돌 방송을 보고 있을 게으름 따위는 아직 허락되지 않은 것 같다. 그 사이 또 많이 나태해진 것이다. 이번 면접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다잡아야겠다. 2018년 이맘때에 똑같은 후회를 다시 하게 된다면, 그 때에는 정말 더이상 발전이 없다는 절망감을 현실로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

another step, although if it’s very small

몇개월 전 스스로 한심한 생각이 들어 마음을 다잡는 차워에서 일기를 하나 쓴 적이 있다. 이후 여전한 게으름과 두려움으로 인해 논문작업은 차일피일 미루어졌지만, 어찌어찌 하다 보니 나름의 성과도 거둘 수 있었다. 우선 한국학술등재지에 논문 한편을 게재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이 논문 역시 박사학위 졸업논문을 각색한 것이다. 여름 내내 이 논문을 다시 펼치지 못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다 데드라인을 미루고 또 미뤄서야 겨우 수정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고, 지난 등재지 게재 과정과 비슷하게 수정본을 제출한 뒤 불과 사나흘만에 게재 확정 소식을 들었다. 수정 확인 작업을 레프리가 꼼꼼하게 하는게 아니라 편집위원장이 레프리의 사전동의를 구해 게재 확정 여부를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쨌든, 나의 2017년 실적은 논문 세 편이다. 그 중 국내학술등재지는 두 편.

‘포인트를 쌓기 위한 삶은 살지 말자’라고 다짐했지만, 논문 실적, 혹은 포인트라는 것은 공부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쌓이기 마련이다. 내가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했고 그 연구 성과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하나의 지표이기도 하다. 나의 2017년은 과거 박사학위 시절 공부한 바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이었다. 이에 더해 전 직장에서 새롭게 관심을 가진 분야에 대해 기초적인 지식을 정리한 시기이기도 했다. 이제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전 직장에서 발굴한 새로운 먹거리를 논문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지금 클라우드 드라이브에는 국내 등재지에서 거절당한 질 낮은 논문 두편과 아직 밖으로 꺼내 놓지 않은 거친 초고가 하나 있다. 이 중 한 편은 빠른 수정을 거친 후 최근 학술등재후보지로 격상된 전직장에서 발간하는 학술지에 내볼 생각이고, 다른 (거절당한) 논문 한 편은 조금 더 장기적인 계획 하에 완전히 뜯어고칠 생각이다.

시간상 가장 먼저 작업에 들어갈 논문은 거친 초고 상태의 논문인데, 왜냐하면 이 논문의 ‘가능성’이 “국제적으로 명성이 있는 학술지”, 혹은 우리가 SSCI(Social Science Citation Index)라고 부르는 목록에 포함된 학술지에 도전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등에서 실시하는 국내 대학평가에서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국제 학술지에 논문이 얼마나 기재되는가, 또 그 논문이 얼마나 인용되는가, 라고 한다. 서울에 위치한 한 사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SSCI급 논문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만이 오직 중요할 뿐 국내등재지 논문은 포인트를 채우기 위한 수단 밖에 안된다고까지 이야기했다. 결국 경제학과의 경우 신임 조교수에게 요구되는 연구역량의 질적 수준까지 참고하겠다는 뜻이다. 이제 나도 내 연구가 질적으로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이 거친 상태의 초고는 우선 DSGE를 이용해 이제 막 학계에서 파기(digging) 시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방법론적으로나 잠재적 공헌도 면에서나 가능성이 있긴 있는 셈이다. 갈 길이 멀긴 하지만 말이다. 10월 말까지 현 직장에서 쓰고 있는 공동 보고서를 끝내고 11월 초까지 다른 보고서 하나를 끝내면 12월 말까지 잠시 숨돌릴 틈이 생긴다. 그 기간에 바짝 달려야 한다.

커리어를 생각할 때마다 되새기는 조언이 하나 있다. 저리로 가기로 마음 먹었다면 저기 근처로 가기만 해도 나쁘지 않은 것이라는 말. 반대방향으로만 가지 않는다면, 정확히 그 위치가 아니어도 실패한 인생은 아니지 않냐는 한 선배의 조언.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고 또 많이 느리고 많이 비틀거리고 있다. 부끄러운 삶이다. 하지만 최소한 반대 방향으로는 가지 않고 있다. 방향이 틀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마다 손해와 희생을 감수해가며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 길의 끝에 기대보다 덜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아직 그 길 위에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2017년 추석맞이 여행

아내와 나는 지난해 4월 처음 만났고 9월 즈음에 결혼을 결정하여 12월에 식을 올렸다. 좋게 말하면 화끈하게 ‘눈이 맞은’ 셈이고 조금 덜 좋게 말하면 꽤 급하게 서두른 셈이다. 남들이 한참 연애를 하며 서로를 알아가기도 바쁜 시점에 결혼을 선택한 우리는 아직 서로 모르는 것들이 많다. 상대방에 대해 몰랐던 것을 새롭게 알아가고 배우며 관계를 더 견고하게 만들어가는 과정 역시 결혼생활의 큰 기쁨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지라 일상에서 사소한 차이들을 발견하는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편인데,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평소에 쉽게 알아내기 힘든 부분이 존재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예를 들면 ‘뿌리’가 그렇다. 이건 주로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아내와 내가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그 역사를 공유하는 것은 우리의 주된 대화주제 중 하나다. 결혼 후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아내가 형성해온 정체성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역추적해나가는 일인데, 한국에서 쉽게 발견하기 힘든 독특한 아내의 성격은 내가 결혼을 서두른 가장 큰 이유이자 요즘 내 삶의 가장 큰 즐거움이기에 그녀의 성격이 꽃망울을 맺기 전 물과 햇빛을 흡수하며 자란 ‘뿌리’가 어떤 모양인지 찾고 싶은 마음도 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몇 대에 걸친 한 가족의 역사는 한 시대의 기록일 수도 있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명절 연휴에 가족을 만난다는 것은 이런 면에서 좋은 기회일 수 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만나기 전 함께 살던 이들의 모습을 접하고 그들의 삶에 함께 부대끼며 시간을 보내다보면 현재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나를 만나기 전의 아내의 모습을 마음과 머릿속에서 복원해나가는 과정은 그녀의 가족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정석인 셈이다.

이번 추석은 개천절과 한글날, 임시공휴일 등과 함께 어우러져 꽤나 긴 연휴를 선사해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자동차를 이용해 창원과 함양 두 곳에 계신 부모님댁에서 각각 두번의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창원에서 평소보다 긴 기간 머무르는 동안, 평소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지 못했을 분들을 만났고 평소에는 안부를 묻기 바빠 꺼내기 힘들었을 이야기를 들었다. 그 과정에서 아내의 밝고 넘치는 긍정 에너지가 어디로부터 흘러 들어왔는지 조금 더 소상히 알 수 있었다. 아내와 닮은 얼굴을 가진 분들을 만났고 아내와 비슷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분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들과 같은 공기를 마시고 함께 밥을 먹는 것은 지금의 나에게 몹시 소중한 경험이다.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결혼생활의 통과의례가 아니라, 아내를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는 열린 기회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함양에서는 내가 잊고 있던, 혹은 내가 몰랐던 나의 과거를 가족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이와 함께 내가 알 수 없었고 그래서 아내에게 직접 전해줄 수 없었던 내 가족의 뿌리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증조부에 대한 이야기부터 할아버지에 대한 아버지의 기억까지, 그 과정을 아내와 함께 할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함양에서 만난 조카들이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던 것과 늙은 고모님들을 뵐 수 있었던 것 역시 큰 영광이었다. 새롭게 자라나는 생명을 지켜보는 일은 언제나 황홀하다. 그것이 사랑하는 내 누니의 자식들이라면, “삼촌”과 “외숙모”라고 부르며 품에 안기는 경험까지 선사해준다면 이보다 더 큰 기쁨을 찾기도 힘들 것이다. 예전에는 높고 커보이기만 했던 고모님 세 분은 작년 삼촌이 돌아가신 후 부쩍 더 야위고 늙어 보였다. 너무 빨리 떠난다며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노인이 된 셋째 고모는 무릎이 아파 잘 일어서지도 못하면서 땅콩을 한가득 삶아 검은 봉다리에 담아 우리 손에 쥐어주었다. 그녀가 나에게 선물한 2002년식 렉스턴은 아직 잘 굴러가고 있다.

우리는 창원과 함양에서 기분 좋게 살이 쪄서 돌아왔다. 나의 뿌리와 아내의 뿌리에 대한 조금 더 강한 확신과 함께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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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각기 다른 천성을 타고난다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 첫째 조카 건이는 맑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의 부모는 그 어린 영혼이 상처받지 않도록 잘 보살펴주고 있다. 건이가 “외삼촌”과 “외숙모”를 그려주었다. 액자로 만들어 걸어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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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만나기 전 창원을 방문해 본 적이 없는 나는 아직 이 도시의 많은 것들이 새롭고 재미있다. 부모님이 거주하시는 오래된 아파트 역시 나에게는 아내와 그녀의 가족의 채취가 짙게 묻어있는 소중한 역사적 공간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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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디션이 좋지 않아 방에서 쉬고 있던 아내를 굳이 주방으로 끌어내어 요리를 부탁했다. 아내는 누나네 부부가 사온 돼지 삼겹살을 이용하여 두루치기를 뚝딱 만들어냈다. 나는 밥을 망쳤지만 두루치기가 너무 훌륭했던 덕분에 아무도 질척이는 밥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아내가 만든 두루치기 덕분에 우리 모두는 막걸리에 거나하게 취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여드름도 인생의 동반자인가

열네살 이후 지금까지 여드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 중 하나였다. 매일 거울을 보아야 했기 때문에 여드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여드름이 특히 심하게 났던 중학생 시절 사진을 찍히기 싫어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당시에는 집 밖으로 나가는 것, 아니 내 방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싫었다. 고등학교 입학을 확정지은 뒤 열심히 병원을 다닌 결과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조금 나아질 수 있었고 대학교에 다닐 때 쯤엔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었지만 얼굴에 여드름이 하나도 없던 날은 열네살 이후 지금까지 단 하루도 없었다. 화농성이라고 불리우는 새끼 손가락 손톱만한 크기의 빨간 여드름이 얼굴 어딘가에 반드시 최소한 하나는 존재해왔다. 이런 류의 여드름은 단순히 크고 흉해보이는 것 뿐 아니라 실제로 많이 아프다. 얼굴을 찡그릴 수밖에 없을 정도의 통증이 함께 한다.  그 큰 여드름이 혹여나 밖에서 터질 때면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피와 고름이 주륵 흘러내려 얼굴을 더렵혔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을 수도, 수건으로 얼굴을 시원하게 닦을 수도 없다. 나도 좁쌀만한 여드름 하나 정도로 불평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지난 20여년 동안 거의 매일 했다. 대화의 상대방이 내 얼굴 어딘가에 있는 여드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무덤덤해졌고 심지어 “피부 좋아졌다”고 축하해주는 중학교 시절 친구들의 인사에 기분이 좋아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열네살 이후 단 하루도 얼굴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본 적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얼굴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면 사람을 만나는 일에도 용기를 내야 하고 더 나아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일에도 굳은 결의가 필요하다. 내 자신감의 상당 부분을 여드름이 빼앗아간 것이다. 성격은 조금 더 심하게 내성적이 되어갔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거의 확실하게 유전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이 여드름을 물려준 아버지의 얼굴에 최근까지 여드름이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어머니는 아토피를 물려주었고 아버지는 여드름을 물려주었다. (물론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게 그보다 더 나은 것들을 많이 물려주었다. 그래서 딱히 원망하지 않는다) 몸과 얼굴을 괴롭히는 피부 트러블은 아마도 평생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오늘 아침 아내는 내게 “여드름을 평생 함께 하는 친구처럼 생각해보라”는 충고를 해주었다. 맞는 말이다. 존경하는 교수님 한 분은 몇년 전 “암을 이기려 하지 말고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처럼 생각했다”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결국 암으로 돌아가셨지만 마지막까지 절망하지 않으셨다. 여드름이 사람을 죽이는 질병은 아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충분히 공존의  여지가 있는 녀석이다. 이 커다란 여드름이 인생의 2/3 가량을 따라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도 했으니 충분히 성공한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기운이 빠지는 이유는 여드름의 존재 자체때문은 아니다. 여드름과 함께 잘 살아보기 위해 그동안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 친구는 그런 나의 노력을 가볍게 무시하듯 늘 자기 영역을 확장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여드름에게 어느 정도 공간을 내어주고 함께 살고 싶지만, 그는 늘 내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아무런 예고 없이 자리잡고 앉아 지칠때까지 물러나지 않는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게 부풀어 오르고 제발 사라져달라고 빌고 또 빌어도 생각보다 항상 더 오래 남아 있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 펑- 하고 터져 피와 고름으로 얼굴을 더럽힌다. 살면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참 많지만 그 중 역시 가장 어려운 상대는 내 얼굴에 나는 여드름이다.

나도 가끔은 말끔하게 보이고 싶을 때가 있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일년에 한두번 정도는 깔끔한 얼굴로 살아보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 찰나의 멋부림조차 허락하지 않는 여드름이 때로 야속하고 밉기까지 하다. 내 여드름의 근원적 성정을 탐구하기 위해 피부과 의사가 되었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만난 수많은 피부과 전문의 중 그 누구도 내 여드름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는 경험을 통해 현대의학의 한계 또한 절실히 느낀다!) 피부 하나때문에 이런 저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기운 빠지는 일이다. 아버지처럼 나도 환갑이 넘은 나이까지 깨끗한 얼굴을 가질 수 없는 운명이라면, 20년 넘게 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얼굴 위 여드름을 통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면, 대체 어찌해야 하는걸까.

출퇴근길 올림픽대로

요즘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자동차를 운전해서 출퇴근하고 있다. 구구절절한 이유야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간단히 적자면 이직 이후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삶에 상당한 피곤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직 이후 본격적으로 더워지기 시작한 날씨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혹은 같은 여의도 안에서의 이직, 동쪽에서 서쪽으로 불과 몇키로 움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15분 이상 늘어난 출퇴근 시간이 괜히 억울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더운 여름 기간 아침과 저녁 시간을 자동차 안에서 보내는 중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 우선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시간을 포기한 대신 듣고 싶은 것을 더 잘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출퇴근길은주로 팟캐스트가 함께 한다. 15년이나 된 차라 AUX 하나 없고 스피커도 좋지 못해서 음악을 한시간 정도 듣다 보면 귀가 쉽게 피로해진다. 차라리 영어 듣기 능력이나 계속 유지시키자 싶어 음악, 스포츠, 경제 등 다양한 주제의 팟캐스트를 듣는다. 팟캐스트에서 배우는 것이 상당히 많다. 요즘 회사 업무가 바쁜 편이라 시간을 내어 책이나 신문을 읽지 못하는 편인데 운전하는 동안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이것저것 좋은 정보를 전달받게 된다. 즐겨 듣는 팟캐스트 중 하나인 [NPR All Songs Considered] 진행자가 최근 이런 말을 했다. 음악을 여유있게 들을 수 있어서 가끔 출퇴근길 교통체증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전적으로 동의한다. 앞으로는 오디오북을 들으며 다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주일 운전하면 책 권은 다 듣지 않으려나?

운전을 하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보다 출퇴근 시간을 드라마틱하게 줄이지는 못했다. 출근길은 예전 한시간에서 45분쯤으로 약 15분 정도 줄어들었고, 퇴근 시간에는 정시 칼퇴근의 경우 운전할 때가 더 오래 걸린다.  야근을 하고 9시쯤 회사를 나서면 집까지 30분에 갈 수 있어서 좋긴 하지만 이 것때문에 야근을 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는 생각에 막히더라도 일이 없으면 일찍 나오는 편이다. 집에 도착할 때 쯤엔 무릎이 시큰거리지만,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면 이 편이 훨씬 낫다고 느낀다. 시간적인 요소를 떠나 운전을 매일 하면서 좋은 것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부대끼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요즘들어 갈수록 신경질적이 되어가고 있다. 타인에게 화를 낼 기회만을 엿보는 것처럼 보일 때도 많은데, 특히 출퇴근길에 주변의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나에게 꽤나 큰 스트레스였다. 물론 운전을 해도 비슷한 상황을 마주치긴 한다. 깜빡이를 켜지 않고 끼어드는 차량은 너무나 쉽게 발견되어 마치 일상의 공기처럼 느끼게 되었다. 한국인의 창의적이고 빠른 두뇌회전 능력이 모두 얌체 운전으로 몰빵된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의지와 관계없이 불쾌한 신체접촉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운전이 주는 기쁨을 충분히 느끼고 있다.

무엇보다 출퇴근길 운전을 하면서 얻은 최고의 기쁨이자 전혀 예상치 못한 즐거움은 올림픽대로라는 서울의 오래된 도로를 새롭게 발견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주로 강변북로를 이용했다. (나는 강북-made product니까!) 당연히 강변북로를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금호로-뚝섬로-서빙고로를 따라 나가서 한남동 근처에서 강변북로에 합류한 뒤 공덕에서 마포대교를 건너서 여의도 둔치주차장으로 가는 길이 일반적인 루트였다. 하지만 8시 출근길 강변북로는 너무 막힐 뿐 아니라 재미도 없었다. 왼쪽편으로 보이는 한강은 그리 예뻐보이지 않았다. 금호터널과 남산2호터널을 지나 삼각지를 통해 원효대교로 빠지는 시내를 관통하는 루트도 시도해봤지만 출퇴근길 시내운전은 넘치는 신호등보다 그보다 더 많은 불법 끼어들기 차량, 불법 주정차 차량 때문에 그리 즐겁지 않다는 사실을 오래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밑져야 본전의 심정으로 동호대교를 건너 올림픽대로를 타고 출근을 해보게 되었는데 이 길 위에서 신세계를 맞이했다. 생각보다 막히지 않아 시간도 꽤나 단축시킬 수 있었을 뿐 아니라(주차장에서 주차장까지 30분 이내에 주파한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한강과 강 건너 강북 풍경은 예상외로 아름다웠다. 퇴근길 고속터미널이나 한남대교 남단으로 진출하는 나들목은 서울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운전경험을 선사하지만, 평일 퇴근 러쉬아워만 피한다면(그리고 아마도 주말 오후시간도 피해야 할 것이다) 금호동과 여의도를 오가는 올림픽대로는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큰 스트레스 없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림픽대로를 지날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지하철과 기차가 다니는 한강철교와 한강대교를 지나칠 때이다. 날씨 좋은 날 올림픽대로를 지나갈 때 흘낏 올려 보게 되는 한강대교와 한강철교는 꽤나 인상적인 장면을 선사한다. 이건 근처 노들로에서 바라봐도 마찬가지일 것이지만, 노들로는 아파트들이 가로막는 구간이 꽤 될 뿐만 아니라 상습정체를 유발하는 구간이 있어 올림픽대로가 가장 좋은 목을 차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강철교 아래를 통과할때 들리는 지하철, 혹은 기차의 그림자와 바퀴소리는 마치 서소문근린공원 앞 건널목에서 통과하는 기차를 바라볼 때의 그 기분을 환기시키는 듯 해 기분이 묘해진다.  퇴근길 여의하류 나들목을 빠져나와 여의도를 왼쪽편에 끼고 한강철교 방향으로 향할 때의 밤풍경도 근사하다. 다른 곳보다 가로등이 많아 환할 뿐 아니라 왼쪽으로 보이는 여의도와 마포구의 아파트, 빌딩들이 함께 밤을 더 환하게 밝혀준다. 지하철과 자동차가 함께 강을 건너는 동호대교를 매일 두번 건널 수 있다는 점도 나쁘지 않다. 한강의 다리들은 아무런 특색이 없는 회색빛을 띠거나 LED 조명 따위를 달고 우습게 보일 정도로 유치해지기 쉽상인데 동호대교는 한강에서 몇 안되는 운치를 가지고 있는 다리다. 동호대교를 건널 때 쯤 이제 집에 다 왔구나, 싶어 마음이 놓이기 시작한다. 좁은 금남시장 골목을 통과할 때 시장바닥에서 보이는 사람 사는 풍경에서도 배우는 것이 있다.

한강은 서울이 가진 소중한 선물이다. 난개발이 망쳐놓은 스카이라인을 흉터처럼 가진 크기만 한 도시에 아름다움을 담보해주는 몇 안되는 보물이기도 하다. 그 한강변을 따라 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오래되고 무거운 디젤차량을 타고 다녀서 자연에 대한 미안함을 떨칠 길이 없지만, 요즘 아침과 저녁이 그리 많은 스트레스와 함께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감사한 마음이 더 크다. 얼른 친환경 차량으로 바꿔서 미안함을 덜어야겠다. (..??)

 

SNS에 등장하는 아기들의 얼굴

30대 중반의 나이대로 접어들다 보니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SNS의 계정들이 올리는 그들, 혹은 그들의 주변인들의 아기들의 사진을 자주 접하게 된다. 본인의 얼굴을 인터넷에 올리는 행위와 자신의 자식 사진을 올리는 행위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어 보인다. 먼저 사진을 올리는 주체와 공개되는 피사체가 다르다. 둘째, 온라인 상에 공개되는 아기들의 경우 대부분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진이 공개되는 경우가 많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나이대의 아기부터 SNS와 인터넷 매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나이대의 아이의 경우 부모가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사진 공개 의사를 타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더러 대부분 실제로 그들에게 의사를 물어보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마지막으로 (요즘 소위 “프로 불편러”들이 제기하는 것처럼) SNS에 등장하는 아기들의 사진은 자랑 일색이다. 사람에 따라서 본인의 사진을 올릴 때와는 확연히 다른 게시자의 ‘자세’, 혹은 ‘의지’가 느껴질수도 있을 정도다.

법적으로 부모의 보호 아래 있어야 하고 부모가 상당 부분 권리와 책임을 가져가는 나이대에 있는 미성년자의 경우 그들의 초상권이 부모에게 전적으로 귀속되는지의 문제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공인’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 미성년자의 초상권 문제가 어떻게 취급되는지 약간 궁금해지기도 했지만 귀차니즘으로 인해 자세히 찾아보지는 않았다. 다만, 본인의 허락 혹은 동의 없이 미성년자의 초상권이 부모에 의해 전용되는 상황을 윤리적인 차원에서 조금 더 고민해볼만한 지점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아내와 나 역시 아이를 무척 낳고 싶어한다. 우리는 매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에 다가올 것으로 기대하는 우리의 아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형체조차 존재하지 않는 아이에 대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해진다. 우리의 눈에 얼마나 예뻐보일지는 의심할 여지조차 없다. 아마도 대다수의 부모들이 우리와 비슷한 심정으로 자녀를 기다렸을 것이고, 그들이 태어난 이후 본격적으로 실제적인 애정을 쏟으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그 경험을 가까운 지인과 공유하고 싶을 것이다. 많은 지인들이 그들의 자녀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기 때문에, 즉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에 자녀의 사진을 공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인터넷과 모바일기기를 통해 굳이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지인을 닮은 그들의 자녀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편리한 부분이 존재한다. 하지만, 남의 눈에도 그 아이가 이뻐보이지는 않을 수도 있다. 세상의 모든 성인이 예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듯, 세상의 모든 아기가 예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타인에게는 식별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스쳐지나가는 어떤 얼굴로 기억될 수 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공개된 사진이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채 평범한 이미지로 소모되는 상황을 만약 그 아이가 성장한 후 알게 된다면? 그 아이가 기분이 좋을지 잘 모르겠다.

만약 자녀를 갖게 된다면, 나는 그(들)의 사진을 절대 인터넷에 공개하지 않을 생각이다. 우리 부부의 자녀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개인적으로 부탁하면 된다. 그 절차가 약간 번거로울지라도 불특정 다수에게 자녀의 사진을 공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우리의 자녀는 우리에게만 특별한 존재일 뿐 타인에게는 그정도로 가치있는 존재가 아닐 확률이 높다. 나는 나의 자녀가 온라인상 공간에서 의미없이 소모되기를 원치 않는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소모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하고 싶다. 나의 기준에서 그것은 윤리적으로 옳다고 이야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아이를 사랑하는 최선의 방법도 아니다. 나중에 의사소통이 가능한 나이가 되면 그 때 가서 상황을 충분히 이해시킨 뒤 사진을 공개할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그렇다고 오늘도 수없이 SNS에 올라오는 아기들의 사진에서 무력감을 느낀다거나 그 사진을 올리는 부모에게 책임을 묻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영역에서 발생하는 책임과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아이의 모습을 가까운 지인과 공유하는 것에서 더 중요한 가치를 느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관계된 사람 중 누구도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 과정은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옳은 일이다. 다만 나는 개인적으로, 내 자녀에 대한 책임을 확실히 지고 싶을 뿐이다. 아이가 성장했을 때 그에게 미안할 수도 있는 일은 되도록 만들고 싶지 않을 뿐이다.

사람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

지난 봄 직장을 옮기면서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고 월급을 잃었다. 전직장에서 인사상 원치 않는 곳으로 배치된 이후 매일 아침 출근길이 괴로웠다. 새로운 일 자체가 힘들지는 않았고 바뀐 업무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거의 없었다. 내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어차피 해야 할, 다른 누군가가 능히 할 수 있는, 전형적인 직장인의 업무였다. 괴로운 출근길의 한복판에는 미움의 감정이 자리잡고 있었다. 나를 그 자리로 보낸 사람에 대한 미움, ‘나에게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한 미움의 감정을 쉽게 정리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답답했고 위태로워 보였다. 지금까지 살면서 사람을 미워한 적이 거의 없었다. 가장 최근 미워한 사람은 이명박이었다. 그 정도로 나의 삶에서 적당히 멀리 떨어진 사람을 사회 구성원의 입장에서 이성적으로 미워하는 것과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을 개인적인 감정에 의지하여 미워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 미워함의 감정을 없애기 위해 이직을 선택했다. 적지 않은 금전적인 손해가 뒤따랐다. 그 손해가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내가 지불한 비용이다. 한 사람을 인생에서 지워버리기 위해 지불한 비용이 아니라 굳이 그 사람이 아니더라도 어떤 누군가를 미워하는 내 마음을 허락하지 않기 위한 비용이다. 다음에 전과 비슷한 일을 겪게 되면 조금 다른 방향으로 해결해보려 한다. 비용을 지불하고 마음을 정리하는 것도 충분히 자본주의적인 합리적인 접근방법이지만, 다음에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일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볼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지금부터 많은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후속조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