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jongheuk

고학력 비정규직, 남편, 아들.

블러드 오렌지가 필립 글래스를 만났을 때

아래 영상은 NPR에서 제공한 6분짜리 짧은 인터뷰를 담고 있다. 인터뷰어는 블러드 오렌지로 잘 알려진 데브 헤인즈, 인터뷰이는 클래식과 팝의 경계선상을 넘나드는 피아니스트 필립 글래스(Philip Glass)다. 헤인즈와 글래스 모두 장르의 구분을 무색하게 만드는 범용적인 음악을 구현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인터뷰 내용 중 필립 글래스가 음악을 시작하게 된 배경이 재미있다. 아버지는 기계수리공이었는데 창고에서 라디오를 계속 고치다보니 어느새 음반을 팔기 시작했고, 음반을 팔기 시작하다 아예 작정하고 음반가게를 차리게 되었다고 한다. 글래스는 그런 아버지를 따라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그에게 음악은 그저 음악일 뿐, 클래식 음악도, 팝 음악도 존재하지 않았다. 볼티모어에서 태어나고 자란 글래스는 57년, 21살 때 줄리어드 음대에 진학하여 뉴욕으로 올라왔다. 뉴욕에서 처음 가진 직장은 가구 배달업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피아니스트로의 삶을 선택했을 때 평생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녀야 할 것이라며 걱정했다. 글래스는 그 말을 듣고 “그거 참 괜찮은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헤인즈 역시 약 21살 무렵 무작정 런던에서 뉴욕으로 건너왔다. 지하철에서 먹고 자며 노숙생활을 하던 그는 뉴욕의 “맥박”에 끌려 아직까지도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한 시대를 풍미한 거장이 새롭게 떠오르는 뉴욕 인디씬의 대표주자를 만나 들려주는 이 짧은 대화에서 서로에 대한 충분한 존경심을 확인할 수 있다.

Iron & Wine: Beast Epic

iron and wine
샘 빔(Sam Beam)이 아이언 앤 와인(Iron & Wine)의 이름으로 발표한 첫 세 장의 음반은 서브팝(Sub Pop)에서 나왔는데 이 때가 밴드의 첫번째 전성기였다. 2004년작 [Out Endless Numbered Days]는 아이언 앤 와인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서늘한 미국식 포크 정체성을 처음으로 드러낸 상징적인 작품이었고, 이어진 [The Shepherd’s Dog]은 그러한 밴드의 색깔을 더 깊고 그윽하게 정제한 수작이었다. 이후 밴드는 서브팝을 떠나 메이저 음반회사인 워너 브라더스와 계약하고 그 산하 레이블인 논서치(Nonesuch Records) 등에서 세 장의 정규 음반을 더 발매했는데, 이 시기의 아이언 앤 와인의 음악은 웬지 손이 덜 가게 되는 음악을 만들었다. 지나치게 많은 소리가 삽입되어 쉽게 집중할 수 없었고 주제의식 또한 불분명해 샘 빔이 이야기하는바를 쉽게 형상화시킬 수도 없었다. 이 때를 밴드의 ‘침체기’라고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산뜻한 커리어 초기와 비교하여 음반의 완성도 측면에서 분명히 구분되는 지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후 아이언 앤 와인은 서브팝으로 돌아와 최근 일곱번째 정규음반 [Beast Epic]을 발매했다. 음악적 고향으로 돌아온 밴드는 이 음반에서 그들의 첫번째 서브팝 시절 음악을 좋아하던 이들에게 좋은 선물을 안긴 듯 보인다. 음악은 다시 단순해졌고 간단해졌지만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의외의 묵직함이 느껴진다. 복잡한 악기구성이나 화려한 화음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오직 샘 빔의 목소리와 어쿠스틱 기타가 무대의 정중앙에 자리잡고 있고, 나머지 목소리나 악기들은 이 둘을 충실히 뒷받침하는 역할에 머무르고 있다. “less is more”의 아이디어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이 음반에서는 더 적은 것에 집중하고자 하는 샘 빔의 의지가 형식적인 측면에서의 도움을 받아 최근 전작들에 비해 훨씬 더 효율적인 완성도와 아름다운 소리의 성취로 이어지고 있다. 마치 [The Age of Adz]로 자신의 음악세계가 극단적으로 확장되는 경험을 한 뒤 소박한 사운드의 [Carrie & Lowell]로 새로운 차원의 성취를 이룬 수프얀 스티븐스의 커리어를 보는 듯 하다. 한두개의 튀는 곡들이 음반을 이끌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곡들이 조화롭게 얽히며 음반 전체적으로 균일한 완성도를 보여준다는 점도 만족스럽다. 아이언 앤 와인이 선사하는 지적인 포크음악을 높은 수준에서 다시 접할 수 있어서 반갑다.

The National: Sleep Well Beast

sleep well beast
더 내셔널(The National)의 7번째 정규 음반 [Sleep Well Beast]를 최근 반복해서 꽤 많이 들었다. 애플뮤직에 몇 곡이 선공개되었을 때부터 들었고, 아마존에서 음반을 주문한 뒤 아마존 음악 앱으로 음반 전체를 계속 들었다. 그리고 어제 바이닐이 집으로 배달된 뒤 집에서 스피커를 통해 조금 더 큰 소리로 한번 더 들었다. 사실 지금도 듣고 있다. 세상의 모든 좋은 음악이 그러한 것처럼, 더 내셔널의 음악 역시 반복해서 들을 때마다 좋은 점이 새롭게 발견된다. 질리지 않고 계속 들을 수 있고 또 계속 듣고 싶게 만드는 음악이 세상에는 참 많이 있는데, 더 내셔널의 새 음반 [Sleep Well Beast] 역시 그러한 매력을 품고 있다.

이들의 신보는 색깔이 조금 달라졌다. 우선 음반의 제작과정에서 전작들과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 ‘마음만 먹으면’ 스타디움급 공연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대중성을 획득한 이들은 뉴욕 교외지역의 오래된 교회를 개조하여 자신들만의 스튜디오를 마련했다.(하지만 여전히 미국 투어에서만큼은 중소규모의 공연장을 선호한다고 한다) 보컬 맷 버닌저(Matt Berninger)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듯,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교외에서 평화로운 풍경을 하루종일 바라본다면 밴드 멤버 간에 싸울 일도 훨씬 줄어들 것이고 음악에 대한 집중도 역시 전과 다를 것이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 새로운 환경은 이들 음악의 결, 혹은 톤까지 새로운 방향으로 틀어놓았다.

the national new studio

밴드의 기타리스트/키보디스트 애런 데스너(Aaron Dessner)가 주도하여 만든 더 내셔널의 새로운 스튜디오 내부 모습.

더 내셔널의 음악을 들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고약한 유머를 던지는 점잖은 신사의 얼굴이다. 힘든 세상에서 어떻게하면 즐겁게 살지를 고민했던 이들의 음악은 파더 존 미스티(Father John Misty)처럼 위악스럽지 않게, 하지만 플릿 폭시스(Fleet Foxes)처럼 지나치게 근심스러운 표정을 짓지도 않은 채 회색빛의 도시 풍경을 세심하게 묘사해왔다. 지난 여섯장의 음반은 버닌저의 읊조리는 보컬과 이를 탄탄하게 뒷받침하는 데스너 형제와 데빈돌프(Devendorf) 형제의 전통적인 록음악 구조를 통해 더 내셔널이라는 밴드의 고유한 색깔을 청중에게 분명히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Sleep Well Beast]는 조금 깊어진 밴드의 고민이 엿보인다. 힘든 세상에서 즐겁게 살지를 고민하기보다 이렇게 힘들어진 세상이 대체 ‘왜’ 이모양이 되었는지를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과 같은 굵직한 이벤트가 미국에 사는 개개인의 미시적 삶에 어떻게 침투하는 과정을 탐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이들의 달라진 태도는 “The System Only Dreams in Total Darkness,” “Nobody Else Will be There,” “I’ll Still Destroy You” 등 음반의 대표적인 곡들에서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Walk it Back”에는 부쉬 전 대통령의 참모였던 칼 로브(Carl Rove)의 스피치가 직접 삽입되어 있기도 하다. 부쉬 시대 이야기를 10년도 더 넘게 지난 지금 다시 꺼낸다는 것은, 페이크뉴스와 보호무역주의, 이민자추장정책 등 오늘날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각종 사회적 이슈들의 뿌리가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떻게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눈여겨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닐까. 이들이 [Fake Empire] 시절부터 천착해온 실존의 문제, 혹은 군중 속의 고독과 같은 주제와 일맥상통하는 지점이다.

이와 함께 형식적인 면에서 전작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가 눈에 띈다. 드럼루프나 전자 신디사이저의 적극적인 사용,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리듬악기처럼 쓰이는 기타, 더 낮게 가라앉은 버닝어의 목소리와 여성 코러스의 등장 등은 다채롭게 구성된 음반의 곡들에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다. 더 내셔널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색채, 혹은 이미지는 큰 틀에서 변화하지 않았다. 다만 조금 더 무거워진 주제를 조금 더 다채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노력이 돋보인다. 쉽게 질리지 않는 이들 음악의 매력은 결코 시끄럽게 내지르거나 화려하게 꾸미지 않는 담백함에 많은 부분 기인하고 있다. 이번 음반도 마찬가지다. 주제는 조금 더 무거운 듯 보이지만 형식적으로는 조금 더 재미있어졌다. 좋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더 내셔널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최고작은 아직 나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드니 빌뇌브: 블레이드 러너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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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니 빌뇌브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그을린 사랑] 이후 흥미로운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프리즈너스]를 거쳐 [시카리오]와 [컨택트]를 통해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다양한 장르에서 균일한 완성도로 발현될 수 있음을 증명했고, 그 결과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진 감독 대열에 합류하기에 이르렀다.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자 리들리 스콧이 직접 제작에 참여하고 원작의 주인공 역할을 맡았던 해리슨 포드가 데커드 역으로 돌아온 속편,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어쩌면 빌뇌브의 영화세계를 다른 차원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가장 탁월한 선택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는 원작 [블레이드 러너]의 말끔한 속편이자 빌뇌브의 필모그래피가 첫번째 절정에 도달했음을 선언하는 과시적인 작품이다.

우선,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시각적, 청각적으로 경쾌하고 유려하다. 원작의 이미지를 스토리 진행에 맞춰 계승, 발전시켰음은 물론 원작이 가지고 있는 느린 템포의 호흡까지 그대로 가져와 이 영화가 전작의 완벽한 속편임을 여러 측면에서 증명하고 있다. 주인공 K역을 맡은 라이언 고슬링의 표정과 의상은 원작의 데커드와 로이를 반반 섞은 캐릭터의 설정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고, 주된 배경이 되는 LA나 월러스사 내부의 경우도 원작의 설정을 충실히 따르는 범위에서 빌뇌브의 취향을 적절히 반영한 세련되고 정제된 형태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청각효과 및 배경음악 역시 무난한 수준으로, 반젤리스의 음악처럼 압도적인 느낌은 없지만 원작의 분위기를 ‘복사’하는 과정에서 충실히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 영화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아마도 이러한 시각적, 청각적 효과를 통해 원작의 느낌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점이며, 이 과정에서 빌뇌브 특유의 미니멀한 이미지 구현 역시 꽤 근사하게 성공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블레이드 러너 2049]가 갖는 미덕은 여기까지다. 빌뇌브는 자신이 구축한 필모그래피 바깥으로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을린 사랑]부터 시작된 반전에 대한 강박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되풀이되어 아마도 그의 근작들 중 가장 한심한 형태의 반전을 가진 얄팍한 서사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원작의 주제의식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온다는 점은 최근 블록버스터 속편 영화들의 수준과 비교하면 충분히 인상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원작에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중심 주제의식은 빌뇌브가 얼마나 주변적이고 기술적인 감독인지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도 할 수 있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일 수 있는 레플리컨트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중심 줄거리는 사실 뻔하지만 그만큼 묵직할 수 있다. 다만 빌뇌브는 이 중심 서사구조에 ‘출생의 비밀’과 ‘(충분히 하지 않을 수 있는데도 억지로 하게 되는) 착각’, ‘(전통적인 혈연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가치를 설파하는) 가족의 사랑’같은 질나쁜 양념을 첨가함으로써 그 무게감을 확연히 떨어뜨리고 있다. 그의 서사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컨택트] 감상평에서도 한 바 있는데, 빌뇌브가 가진 좋은 장점들, 예컨대 유려한 이미지 구현이라던가 탁월한 긴장감 조성, 흥미로운 캐릭터의 구축과 같은 감독으로서 가지는 소중한 재능들이 억지스러운 서사의 진행과 이미지의 과잉 전시에 따른 지루한 이야기 진행에 막혀 빛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이건 긴장감이 시종일관 팽팽하게 이어지는 [시카리오]나 주인공 역할을 맡은 에이미 애덤스의 호연에 정신이 팔려 쉴 틈이 없었던 [컨택트]에서는 상대적으로 두드러지지 않은 빌뇌브의 단점이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2시간 40분이 넘는 긴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고 이 중 상당 부분이 위에서 언급한 질나쁜 양념들을 위해 할애되고 있다.

영화 내내 일관되게 이어지는 이미지와 분위기는 앞으로도 SF영화 장르를 이야기할 때 계속 언급되어야 할 정도로 훌륭하다. 하지만 영화는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예술 장르다. 굳이 기승전결이 분명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말이 되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빌뇌브는 이야기에서 실패하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 실패하고 있다. 라이언 고슬링은 영화 내내 멋짐을 폭발시키지만 영화를 구원하지는 못했다. 빌뇌브의 영화를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떠오른다. 두 감독은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한 감독으로 떠오르며 나름의 공고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올리는 중이다. 그리고 그 한계 역시 분명한 감독들이다. 이 둘이 종이 아닌 횡으로만 자신들의 세계를 확장하고 있는 모습이 공통적으로 관찰되어 흥미롭다. 아마도 이들이 지금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일 것이다. 기존에 존재하는 전통적인 장르 위에 자신이 발전시킨 독보적인 색깔을 입힘으로써 감독으로서 위치를 공고히 함과 동시에 속한 장르의 외연을 확장시키는 데 일조하는 것, 이 작업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Sufjan Stevens, Nico Muhly, Bryce Dessner, James McAlister: Planetarium

planetarium
당대의 젊은 음악가 네 명이 모여 만든 프로젝트 음반 [Planetarium]은 유사한 컨셉을 가진 구스타프 홀스트(Gustav Holst)의 작품 [The Planets]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그와 차별되는 지점 역시 분명히 가지고 있는 흥미로운 음반이다. 우선 음반의 탄생과정부터 여러 음악팬의 구미(?)를 자극시킬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한 사람은 니코 멀리(Nico Muhly)다.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은 후 대중음악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음악가인 그는 조아나 뉴섬(Joanna Newsome)과 아노니(Anohni) 등의 음반 제작에 참여하기도 한 각광받는 작곡가라고 한다. 그러너 그의 아이디어에 적극적으로 동조한 이가 같은 클래식 음악을 기반으로 현대 대중음악의 최전선에서 활약중인 더 내셔널(The National)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스 데스너(Bryce Dessner)와 말하면 입만 아픈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아티스트 수프얀 스티븐스(Sufjan Stevens)였다. 스티븐스와 멀리는 2006년 무렵부터 더 내셔널의 음반 제작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 왔고 데스너와 멀리는 클래식 음악이라는 공통된 자양분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 세 명이 의기투합하는 과정에서 방해가 되었을 법한 것은 스케쥴 조정 정도였을 것이다. 여기에 스티븐스가 [Illinois] 시절부터 투어 퍼커셔니스트로 함께 해온 제임스 맥알리스터를 끌어들여 4명의 프로젝트 그룹이 완성됐다.

이들이 만들어낸 음악을 하나의 장르로 묶는 일은 무척 어려울 뿐 아니라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반응은 아마도 같은 ‘우주’라는 테마를 가지고 만든 구스타프 홀스트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와 비슷하다. 실제적인 경험이 전무한, 어쩌면 평명적인 이미지만으로 상상력을 동원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표현해야 하는 행성과 우주에 대한 음악은 아티스트에게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왔을 것이지만 이와 동시에 음악을 듣는 청자에게도 전과 다른 긴장감을 선사하는 구석이 있는 셈이다.  네명의 젊은 음악가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을 기존의 음악적 문법으로 표현하기 위해 애쓴다기 보다는 우주라는 ‘개념’ 자체를 소리로 재구성하는 쪽을 택한 것처럼 보인다. 흔히 우주를 상상할 때 떠올릴 수 있는 광활함과 공허함, 막연한 두려움과 신비로움같은 개념에 더해 따뜻함이나 쓸쓸함같은 인간적인 감정이 함께 느껴지는 것은 이들이 우주를 피상적인 대상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음악 안에서 재구성되는 적극적인 상호작용의 대상으로 고려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흥미로운 흔적이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 필요한 여러 요소, 예컨대 스티븐스의 팔세토 창법이라던지 드레스너의 맑고 고운 기타톤, 멀리의 장르를 뛰어넘는 작곡법 등이 무리없이 어우러져 하나의 ‘플래너터리움’ 사운드를 완성시킨다. 현대 대중음악의 위치를 한단계 격상시킬 정도의 파격적인 완성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젊은 음악가들의 재미있는 도전치고는 의외로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2017년 추석맞이 여행

아내와 나는 지난해 4월 처음 만났고 9월 즈음에 결혼을 결정하여 12월에 식을 올렸다. 좋게 말하면 화끈하게 ‘눈이 맞은’ 셈이고 조금 덜 좋게 말하면 꽤 급하게 서두른 셈이다. 남들이 한참 연애를 하며 서로를 알아가기도 바쁜 시점에 결혼을 선택한 우리는 아직 서로 모르는 것들이 많다. 상대방에 대해 몰랐던 것을 새롭게 알아가고 배우며 관계를 더 견고하게 만들어가는 과정 역시 결혼생활의 큰 기쁨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지라 일상에서 사소한 차이들을 발견하는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편인데,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평소에 쉽게 알아내기 힘든 부분이 존재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예를 들면 ‘뿌리’가 그렇다. 이건 주로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아내와 내가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그 역사를 공유하는 것은 우리의 주된 대화주제 중 하나다. 결혼 후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아내가 형성해온 정체성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역추적해나가는 일인데, 한국에서 쉽게 발견하기 힘든 독특한 아내의 성격은 내가 결혼을 서두른 가장 큰 이유이자 요즘 내 삶의 가장 큰 즐거움이기에 그녀의 성격이 꽃망울을 맺기 전 물과 햇빛을 흡수하며 자란 ‘뿌리’가 어떤 모양인지 찾고 싶은 마음도 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몇 대에 걸친 한 가족의 역사는 한 시대의 기록일 수도 있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명절 연휴에 가족을 만난다는 것은 이런 면에서 좋은 기회일 수 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만나기 전 함께 살던 이들의 모습을 접하고 그들의 삶에 함께 부대끼며 시간을 보내다보면 현재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나를 만나기 전의 아내의 모습을 마음과 머릿속에서 복원해나가는 과정은 그녀의 가족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정석인 셈이다.

이번 추석은 개천절과 한글날, 임시공휴일 등과 함께 어우러져 꽤나 긴 연휴를 선사해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자동차를 이용해 창원과 함양 두 곳에 계신 부모님댁에서 각각 두번의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창원에서 평소보다 긴 기간 머무르는 동안, 평소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지 못했을 분들을 만났고 평소에는 안부를 묻기 바빠 꺼내기 힘들었을 이야기를 들었다. 그 과정에서 아내의 밝고 넘치는 긍정 에너지가 어디로부터 흘러 들어왔는지 조금 더 소상히 알 수 있었다. 아내와 닮은 얼굴을 가진 분들을 만났고 아내와 비슷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분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들과 같은 공기를 마시고 함께 밥을 먹는 것은 지금의 나에게 몹시 소중한 경험이다.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결혼생활의 통과의례가 아니라, 아내를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는 열린 기회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함양에서는 내가 잊고 있던, 혹은 내가 몰랐던 나의 과거를 가족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이와 함께 내가 알 수 없었고 그래서 아내에게 직접 전해줄 수 없었던 내 가족의 뿌리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증조부에 대한 이야기부터 할아버지에 대한 아버지의 기억까지, 그 과정을 아내와 함께 할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함양에서 만난 조카들이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던 것과 늙은 고모님들을 뵐 수 있었던 것 역시 큰 영광이었다. 새롭게 자라나는 생명을 지켜보는 일은 언제나 황홀하다. 그것이 사랑하는 내 누니의 자식들이라면, “삼촌”과 “외숙모”라고 부르며 품에 안기는 경험까지 선사해준다면 이보다 더 큰 기쁨을 찾기도 힘들 것이다. 예전에는 높고 커보이기만 했던 고모님 세 분은 작년 삼촌이 돌아가신 후 부쩍 더 야위고 늙어 보였다. 너무 빨리 떠난다며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노인이 된 셋째 고모는 무릎이 아파 잘 일어서지도 못하면서 땅콩을 한가득 삶아 검은 봉다리에 담아 우리 손에 쥐어주었다. 그녀가 나에게 선물한 2002년식 렉스턴은 아직 잘 굴러가고 있다.

우리는 창원과 함양에서 기분 좋게 살이 쪄서 돌아왔다. 나의 뿌리와 아내의 뿌리에 대한 조금 더 강한 확신과 함께 돌아왔다.

2017추석2

사람마다 각기 다른 천성을 타고난다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 첫째 조카 건이는 맑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의 부모는 그 어린 영혼이 상처받지 않도록 잘 보살펴주고 있다. 건이가 “외삼촌”과 “외숙모”를 그려주었다. 액자로 만들어 걸어둘 생각이다.

2017추석3

아내를 만나기 전 창원을 방문해 본 적이 없는 나는 아직 이 도시의 많은 것들이 새롭고 재미있다. 부모님이 거주하시는 오래된 아파트 역시 나에게는 아내와 그녀의 가족의 채취가 짙게 묻어있는 소중한 역사적 공간으로 다가온다.

2017추석1

컨디션이 좋지 않아 방에서 쉬고 있던 아내를 굳이 주방으로 끌어내어 요리를 부탁했다. 아내는 누나네 부부가 사온 돼지 삼겹살을 이용하여 두루치기를 뚝딱 만들어냈다. 나는 밥을 망쳤지만 두루치기가 너무 훌륭했던 덕분에 아무도 질척이는 밥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아내가 만든 두루치기 덕분에 우리 모두는 막걸리에 거나하게 취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Japanese Breakfast: Soft Sounds from Another Pl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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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의 두번째 정규음반 [Soft Sounds from Another Planet]의 표지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는 개인적으로 특별한 감정으로 다가오는 프로젝트다. 음반을 구입하기 전 메타크리틱 등 다양한 리뷰 사이트를 훑어보는 편이지만, 역시 좋은 음반을 발견하는 최고의 방법은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로부터의 추천이라고 생각한다. 음악 자체를 깊게 사랑하는 사람이 좋게 들었다고 타인에게 권하는 음반은 그 사람이 가진 특유한(idiosyncratic) 음악적 취향을 떠나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매력을 함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유명한 평론가가 화려한 언변으로 채색한 음반 리뷰보다 친한 음악친구가 “존나 좋아”라고 추천하는 음반을 선택하면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는 셈이다.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는 이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후 현재 서로의 집에 못을 박아주거나 페인트칠을 해주는 사이로까지 발전한 지기형의 추천으로 알게 되었다. 필라델피아에서 이모 밴드 리틀 빅 리그(Little Big League)로 활동하던 미셸 자우너(Michelle Zauner)가 어머니의 투병소식을 듣고 고향 오레곤으로 돌아온 후 방구석에서 시작한 이 솔로 프로젝트의 데뷔 음반 [Psychopomp]가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유의미한 성취를 이뤘기 때문에 아마도 지기형이 언급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알게 되었을 확률이 높긴 하지만 그런 가정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아무튼, 나를 포함해 형과 함께 음악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 거의 모두가 이 프로젝트의 아주 초창기 시절부터 열렬한 팬이 되었는데, 당시에는 이 음반이 아이튠즈나 아마존에서도 유통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밴드캠프를 통해 직접구매를 하는 방식으로 음반을 구매했다. 지기형은 음반과 함께 미셸 자우너가 직접(!) 쓴, 음반을 구매해주어서 고맙다는 친필 쪽지를 받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흥분한 내가 같은 방식으로 구매를 시도였지만 불행히도 나는 자우너가 아닌 그냥 업체 직원이 무미건조하게 쓴 쪽지만을 받았을 뿐이라는 슬픈 에피소드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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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젝트의 데뷔 음반 [Psychopomp]의 표지에 있는 여자 중 한명은 암으로 세상을 떠난 미셸 자우너의 어머니다. 음반 제목은 ‘저승사자’라는 의미. 


데뷔 음반 [Psychopomp]는 미셸 자우너가 필라델피아에서의 인디 밴드 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오레곤으로 돌아와 암투병생활을 하는 어머니를 간호하며 만든 음반이다. 홈레코딩 방식의 솔로 프로젝트라고 폄하할 수 없는 꽤나 단단한 완성도를 자랑하는데, 인디 감성이 물씬 풍기는 슈게이징 사운드가 댄서블한 리듬과 잘 어울리며 풍성한 사운드를 차곡차곡 쌓아올리고 있다. 나는 음반의 첫 곡 “In Heaven”을 특히 좋아한다.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우너는 음반에 실린 가사가 어머니의 죽음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지는 않는다고 이야기했지만, 어머니의 투병과 자우너의 간호 생활이 음반 작업 과정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In Heaven”은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방식으로 풀어낸 삶과 죽음에 대한 관조로 해석할 수 있는 셈이다. 이 외에도 음반의 첫 절반, 즉 LP로 치면 A면에 실린 노래들이 특히 좋다. 뒤로 갈수록 호흡이 떨어지는 경향이 느껴지긴 하지만, 이정도면 충분히 좋은 음악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노래들이 잔뜩 실려있다.

두번째 음반 [Soft Sounds from Another Planet]에는 데뷔 음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조금 더 편해진 미셸 자우너가 펼쳐놓는 드림팝 세계가 가지런히 펼쳐져 있다. 사운드는 조금 더 단단해졌고 음반의 전체적인 완성도도 훨씬 균일해졌다. “In heaven”처럼 한 귀에 쏙 박히는 노래는 없지만 다양성 측면에서 이리저리 고심한 흔적이 많이 느껴져서 지루함은 줄어들었다. 디스코나 펑키한 리듬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1집에서 들려주었던 소박한 팝의 느낌은 잃지 않았다는 사실도 마음에 든다. 1집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내밀하게 전달하는 방식이었다면 2집은 훨씬 더 커진 음악적 공간감 안에서도 여전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무리없이 풀어낼 수 있다는 자우너의 자신감이 느껴지는 음반이다. 퍼지한 기타사운드와 80년대 신스팝으로부터 물려받은 정서적 유산에 더해 재패니스 브렉퍼스트의 음악을 특유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미셸 자우너의 보컬이다. 키치적인 B급 감성을 품격있게 전달할 수 있는 특유의 음색과 표현력이 사랑스럽다. 그런 자우너의 보컬을 서울에서 실제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12월 14일, 재패니즈 브렉퍼스트가 내한공연을 갖는다. 이제 서울에서 이런 공연도 볼 수 있다.

패티 스미스: 저스트 키즈

저스트키즈
패티 스미스(Patti Smith)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그리고 그녀의 사진을 보았을 때 시대를 읽을 수 없었다. [Horses]가 70년대 중반 발표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깜짝 놀랐고, 그녀가 당시 서른살에 가까운 나이었으며 나의 아버지보다도 나이가 많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았다. 그녀의 음악은, 그녀가 풍기는 아우라는 시대를 지워버릴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나는 패티 스미스를 시대를 앞서나가다 못해 시대를 다시 정의내린 전설적인 뮤지션으로만 알고 있었지만 사실 그녀는 뛰어난 시인이자 퍼포먼스 아티스트, 혹은 인기있는 에세이스트이기도 하다. 그녀의 화려한 레쥬메를 보면 태어날때부터 예술가라는 직함을 부여받고 찬란한 꽃길만 걸어왔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직접 쓴 회고록 [저스트 키즈]는 약간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저스트 키즈]는 패티 스미스가 젊은 시절 동반자이자 평생의 소울메이트였던 로버트 메이플소프가 함께 살아온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패티 스미스는 시카고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교대를 중퇴하고 빈털터리 상태로 뉴욕으로 건너올 때까지 그녀의 삶에서 대중이 유명 예술가의 유년시절을 추측할 때 흔히 등장하는 독특한 환경같은 것은 딱히 찾아볼 수 없다. 다만 그녀는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조금 더 가혹한 가난을 택했고, 그 대가로 60년대 중반 뉴욕의 들끓는 공기를 체험할 수 있었다. 공원에서 노숙을 하고 길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주워 끼니를 해결하는 삶을 살던 중 역시 뉴욕의 길거리에서 방황하던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만났고, 각자의 외로웠던 가난은 두명이 함께 하는 희망섞인 가난으로 그 색깔을 달리하게 되었다.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뉴욕의 중산층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프랫에서 예술을 전공했지만 정식으로 학위를 마치지는 못하고 뉴욕 이곳 저곳을 떠돌던 터였다. 이 둘은 뉴욕의 뒷골목을 전전하며 생계를 위해 일해야 했지만 그 와중에도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나갔다. 이 책은 지나가던 노부부가 “쟤네 그냥 애들(just kids)이잖아”라고 부른 한 젊은 남녀가 혹독한 가난과 싸우며 시대를 뒤흔든 예술가로 성장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의 대부분은 60년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패티 스미스가 [Horses]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음악 커리어를 시작한 시기, 그리고 로버트 메이플소프가 특유의 관능적이고 탐미적인 흑백사진으로 뉴욕 사진계에서 명성을 획득하기 시작한 시기는 70년대 중반 이후로, 당시 이 둘은 동거관계를 정리하고 각자 다른 연인과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있을 때였다. 즉, 스미스와 메이플소프가 적극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을 획득하던 시기는 이들의 전성기와 제법 시차가 있는 편이다. 때문에 스미스가 대중적인 인지도를 회복한 이후의 모습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뉴욕 펑크씬의 대모로 불리우는 스미스의 회고록에서 음악팬이 쉽게 기대할 수 있는 것들, 그러니까 당시 뉴욕 음악씬의 생생한 묘사라던가 전설적인 아티스트와의 교류같은 이야기 역시 사실 이 책의 중심내용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그저 간략하게, 스쳐지나가듯 묘사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은 패티 스미스가 어떻게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만났고, 어떻게 함께 가난과 싸워 나갔으며, 얼마나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사랑했고 또 어떻게 이별하게 되었는지, 헤어진 이후에도 어떻게 관계를 지속해 나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메이플소프는 89년 에이즈에 의한 합병증으로 사망하기 전 스미스에게 자신과 스미스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이 책은 그 유언에 대한 스미스의 실행인 셈이다. 그래서 그녀가 발표한 그 어떤 작품보다 개인적이고 진솔하다. 패티 스미스는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메이플소프에게만 집중하고 있다. 풋내기 예술가에 불과한 이 둘이 서로의 작품활동에 깊게 관여하면서 각자의 재능을 온전히 쏟을 수 있는 전문영역을 발견하는 과정, 그리고 연인으로 시작했지만 메이플소프가 성정체성 및 성적취향을 깨달은 뒤 이를 받아들이고 소울메이트로 관계를 서서히 변화시켜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패티 스미스는 평론으로 시작해 퍼포먼스, 시를 거쳐 음악이라는 영토에 당도했고, 메이플소프는 콜라쥬와 폴라로이드를 지나 핫셀블라드를 만났다. 서로가 없었다면 결코 7,80년대의 영광에 도달할 수 없었을 것이기에, 찬란하지만 가난했고 아름답지만 비참했던 60년대 젊은 시절에 대한 기록이 소중하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사망하기 며칠 전, 침대에 누운 메이플소프가 스미스에게 물었다. “패티, 우리가 진정 예술을 찾은 걸까?” 눈길을 피한 패티 스미스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두 명의 예술가가 함께 걸어온 길, 그 길의 끝에서 확인하고픈 것은 예술적 성취의 물리적 결과물같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함께 걸어온 길이 나쁘지 않았음을, 사실은 참 좋았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는 미국판 표지.

justkids

여드름도 인생의 동반자인가

열네살 이후 지금까지 여드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 중 하나였다. 매일 거울을 보아야 했기 때문에 여드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여드름이 특히 심하게 났던 중학생 시절 사진을 찍히기 싫어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당시에는 집 밖으로 나가는 것, 아니 내 방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싫었다. 고등학교 입학을 확정지은 뒤 열심히 병원을 다닌 결과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조금 나아질 수 있었고 대학교에 다닐 때 쯤엔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었지만 얼굴에 여드름이 하나도 없던 날은 열네살 이후 지금까지 단 하루도 없었다. 화농성이라고 불리우는 새끼 손가락 손톱만한 크기의 빨간 여드름이 얼굴 어딘가에 반드시 최소한 하나는 존재해왔다. 이런 류의 여드름은 단순히 크고 흉해보이는 것 뿐 아니라 실제로 많이 아프다. 얼굴을 찡그릴 수밖에 없을 정도의 통증이 함께 한다.  그 큰 여드름이 혹여나 밖에서 터질 때면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피와 고름이 주륵 흘러내려 얼굴을 더렵혔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을 수도, 수건으로 얼굴을 시원하게 닦을 수도 없다. 나도 좁쌀만한 여드름 하나 정도로 불평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지난 20여년 동안 거의 매일 했다. 대화의 상대방이 내 얼굴 어딘가에 있는 여드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무덤덤해졌고 심지어 “피부 좋아졌다”고 축하해주는 중학교 시절 친구들의 인사에 기분이 좋아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열네살 이후 단 하루도 얼굴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본 적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얼굴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면 사람을 만나는 일에도 용기를 내야 하고 더 나아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일에도 굳은 결의가 필요하다. 내 자신감의 상당 부분을 여드름이 빼앗아간 것이다. 성격은 조금 더 심하게 내성적이 되어갔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거의 확실하게 유전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이 여드름을 물려준 아버지의 얼굴에 최근까지 여드름이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어머니는 아토피를 물려주었고 아버지는 여드름을 물려주었다. (물론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게 그보다 더 나은 것들을 많이 물려주었다. 그래서 딱히 원망하지 않는다) 몸과 얼굴을 괴롭히는 피부 트러블은 아마도 평생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오늘 아침 아내는 내게 “여드름을 평생 함께 하는 친구처럼 생각해보라”는 충고를 해주었다. 맞는 말이다. 존경하는 교수님 한 분은 몇년 전 “암을 이기려 하지 말고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처럼 생각했다”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결국 암으로 돌아가셨지만 마지막까지 절망하지 않으셨다. 여드름이 사람을 죽이는 질병은 아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충분히 공존의  여지가 있는 녀석이다. 이 커다란 여드름이 인생의 2/3 가량을 따라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도 했으니 충분히 성공한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기운이 빠지는 이유는 여드름의 존재 자체때문은 아니다. 여드름과 함께 잘 살아보기 위해 그동안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 친구는 그런 나의 노력을 가볍게 무시하듯 늘 자기 영역을 확장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여드름에게 어느 정도 공간을 내어주고 함께 살고 싶지만, 그는 늘 내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아무런 예고 없이 자리잡고 앉아 지칠때까지 물러나지 않는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게 부풀어 오르고 제발 사라져달라고 빌고 또 빌어도 생각보다 항상 더 오래 남아 있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 펑- 하고 터져 피와 고름으로 얼굴을 더럽힌다. 살면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참 많지만 그 중 역시 가장 어려운 상대는 내 얼굴에 나는 여드름이다.

나도 가끔은 말끔하게 보이고 싶을 때가 있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일년에 한두번 정도는 깔끔한 얼굴로 살아보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 찰나의 멋부림조차 허락하지 않는 여드름이 때로 야속하고 밉기까지 하다. 내 여드름의 근원적 성정을 탐구하기 위해 피부과 의사가 되었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만난 수많은 피부과 전문의 중 그 누구도 내 여드름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는 경험을 통해 현대의학의 한계 또한 절실히 느낀다!) 피부 하나때문에 이런 저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기운 빠지는 일이다. 아버지처럼 나도 환갑이 넘은 나이까지 깨끗한 얼굴을 가질 수 없는 운명이라면, 20년 넘게 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얼굴 위 여드름을 통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면, 대체 어찌해야 하는걸까.

검정치마: Team Ba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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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데뷔 음반에 이어 최신 영미 인디팝 기류에 한국적인 포크 선율과 한국적인 뽕 리듬을 적절하게 버무린 2집까지 검정치마는 늘 현명하고 말끔한 음악을 해왔다. 실패하지 않을 정도로 대범했고 이해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예상을 빗나갔으며 충분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수준의 감성을 함부로 포기하지 않았다. 검정치마의 이러한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현명함’은 “Antifreeze”를 젊은이들의 새로운 송가로 만들었고  “International Love Song”을 생각지도 못한 어린 세대의 이어폰에서 울려퍼지게 만들었다. 이제 사람들은 어느정도 아이돌화된 조휴일의 새로운 음악을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요구하게 되었지만, 되려 그는 예상보다도 훨씬 더 긴 침묵을 이어나갔다. 1집과 2집이 그가 한국음악씬에 성공적으로 안착했음을 알리는 징표와도 같은 것이었다면, 그 다음에 발표하게 될 3집은 ‘새로움’과 ‘적응’이라는, 검정치마의 커리어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만 했던 두 테마가 이미 충분히 소비된 상황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제시해야 한다는 숙제를 태생적으로 안고 있었다. 태어나기도 전부터 말이다. 정확한 한 수를 두어야만 한다는 고민에 빠지기 쉬운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고, 그것이 음반 작업기간을 지나치게 늘어지게 만든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추측해볼 수도 있는 것이다.

검정치마가 선택한 다음 단계는 지역화(localization), 혹은 개인화(personalization)로 보인다. 3집 [Team Baby]의 표지사진은 오래된 가족사진이다. 이 사진에서 누군가는 조휴일 개인의 이야기가 노골적으로 들려지게 될 것을 예고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전형적인 한국 문화를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한 듯한 느낌을 더 강하게 받았다. 즉, 이 음반은 조휴일이, 검정치마가 한국음악씬 뿐 아니라 한국사회에 ‘재정착’하는 과정을 담아내는 에세이처럼 읽힌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조휴일 개인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희미하게 들린다는 점이고, 서울, 혹은 한국이라는 장소가 조금 더 명징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내 고향 서울엔”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는 주인공이 부재한 상황에서 전달되는 막연한 재정착의 정서는 2집과 3집 사이에 존재하는 물리적 시간에 의해 조금 더 확실한 심증을 획득한다. 음악적으로도 검정치마는 한국음악의 전통성에 한발자국 더 가까워진 듯 보인다. “나랑 아니면”은 생각보다 더 자주 언급되어야 하는 좋은 트랙이다. 흔히들 말하는 조휴일의 천재성이 번뜩이는 “헤야”같은 곡도 흥미롭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음반은 힘이 좀 빠져 있다. 어줍잖은 말장난으로 무게감을 괜히 더 떨어뜨리게 되는 노래도 꽤 된다. 하이그라운드라는 새로운 둥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당황스러운 면도 자주 포착되는데, 아마도 현재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어떤 유행과 조휴일이 가지고 있는 음악적 뿌리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메우기 위해 고심한 흔적처럼 느껴진다. 결과는 별로 좋지 못하다. 검정치마는 자신들이 이전과 같은 수준의 좋은 노래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그들이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사회는 같은 음악을 5년이나 기다려줄만큼 참을성이 대단하지 못하다. 그러한 시대의 흐름까지 파악하고 급격한 물살에 몸을 잘 맡겨보는 것까지가 큰 차원에서의 ‘재정착’이라면, 검정치마는 아직 더 고민할 지점이 남아 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조휴일은 김동률이나 이적처럼, 늘 같은 음악만 반복해서 만들어도 면죄부를 받는 그런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죽지 않은 뮤지션이기 때문이다. 아직 검정치마에 대한 기대치가 남아있고, 그 기대치는 매너리즘이나 유행가같은 개념에 기반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