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우리.

결혼한지 이제 막 1년이 지나 아직 경험이 일천하긴 하지만, 지난 1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1년이었다. 걱정했던 것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았고,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에서 더 많은 행복이 찾아왔다. 그래서인지 결혼생활에 대해 묻는 주변 지인들에게 내가 경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주기만 해도 ‘결혼 전도사’처럼 비추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결혼은 철저히 개인의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하며, 그 누구에게도 결혼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결혼이라는 생활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잠재적 갈등 유발 요인을 수면 아래로 가라앉힐 수 있는 ‘합’이 맞는 사람과 결혼했기 때문에 결혼생활을 “행복하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지, 보편적인 결혼생활의 진리, 혹은 규칙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아이 두명을 아파트 아래로 던져 살해하고 본인도 스스로 생명을 끊은 한 젊은 어머니에 관한 뉴스를 읽었다. 세 명의 생명을 포기할 정도로 절망적인 결혼생활도 있을 수 있다.

지난 1년 간 결혼생활을 행복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찾아 보자면, 먼저 ‘나’를 버리고 ‘우리’를 추구한 삶의 근원적인 변화를 들고 싶다. 지독한 개인주의자이자 가끔 이기적일 때도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보다 더 우선시되는 가치에 헌신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이들이 퇴근 후 한잔의 술, 휴일 낮 한번의 게임, 월급의 일부분을 할애하면 살 수 있는 예쁜 옷 등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나의 경우, 결혼 이후 존재하기 시작한 가정이라는 가치가 그 모든 개인적인 욕망보다 상위에 존재할 수 있음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친구를 만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 충실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멀어지게 된다. 무언가를 포기함으로써 얻게 되는 가치는 기회비용의 크기에 따라 후회나 아쉬움과 같은 감정적인 비용을 지불해야 할 때가 많다. 그래서 포기와 희생은 어렵고 힘들다. 그런데 가정에의 헌신, 혹은 ‘내’가 아닌 나와 아내로 구성된 ‘우리’라는 또다른 자아로부터 시작되는 주체적인 판단은 그 어떠한 희생이나 포기도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자아이며, 나를 버림으로써 새롭게 얻게 되는 놀라운 기회의 출발점이다. 가정 안에서 내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면 나를 지키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도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며, 나의 개인적인 욕심과 가정에 대한 의무 사이에서 갈등할 이유도 없다. 이러한 삶의 변화가 무척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직장에서의 나, 사회적 관계 안에서의 나, 부모나 형제와의 관계에서 존재하는 나는 존재할지언정, 그 모든 나를 떠받드는 근원이자 본체인 가정에서의 나는 철저히 ‘우리’로부터 출발한다. 이 ‘서열’이 한번 정해지면 생활 속에서 개인적인 욕심과 가정에 대한 의무 사이에서 고민을 할 이유가 현격하게 줄어든다. 모든 것을 아내에게 이야기하고 아내와 함께 결정하면 될 일이다. 단순히 서로의 속내를 적당히 ‘공유’하는 사이가 아니라 ‘공동체’로서 함께 모든 것을 함께 결정하고 실천하는 관계로 부부를 정의하기 시작하면서 삶이 훨씬 편해지고 밝아졌다. 아내의 밝고 건강한 기운을 왜곡없이, 오롯이 전부 다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나 역시 전과 다르게 세상을 보기 시작했고, 아내를 닮아가면서 다른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다. 나의 절반은 아내로 채워질 것이고, 아내의 절반도 나로 채워질 것이다. 그렇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우리’가 조금씩 완성되어 갈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결혼은 ‘우리’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다.

부모와 함께 지내는 시기부터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유학생활까지 삶이 늘 ‘혼자’였다고 느끼며 살아온 내게 아내를 만나 완전히 다른 자아로 새출발을 한다는 것은 전에 없는 삶의 큰 변화였다. 그래서 지금도 적응 중이고, 아직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있다. 한없이 부족하고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기에 이 거대한 변화를 단기간에 완벽하게 체화시키는 일이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러하기 때문에 노력이 중요하고 또 중요하다.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진득하게 아내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나와는 너무나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고 많이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이기에 닮아가는 과정에도 많은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닮아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하다. 재미있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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