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은 국내 음반들

시간이 흐를수록 블로그에서 국내 음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국내 음악과의 ‘거리’ 설정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이 블로그에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 아주 최소한의 정보라고 제공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쓴다. 단순히 ‘존나좋군’ 정도에서 끝날 이야기라면 굳이 언어를 통해 정리된 글을 공개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보통 정보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의 객관성을 확보해야 할 것인데, 국내 음악에 대해 글 을 쓸 때 바로 이 부분에서 자신감을 갖기 어렵다. 해외 음악의 경우 나의 물리적 위치가 외부자적 시선에 머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를 완전히 체득하기 어렵다는 한계와 함께 자연스럽게 최소한의 객관성을 확보하게 되는 반면, 한국에 살면서 한국에서 발매되는 한국 음악을 듣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머리나 귀보다 마음으로 먼저 듣게 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블로그에 우리나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가 지우고, 썼다가 또 지우기를 반복하게 된다. 하지만 그냥 마음으로만 즐기며 살기에는 최근 국내에서 좋은 음반들이 많이 나온지라 이를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결코 객관적일 수 없는, 다른 말로 하면 마음부터 먼저 움직이게 되는 음악들이다.

 

김사월


김사월: 7102

김사월은 첫 음반을 발매한 후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마치 한국에서 독립 음악인이 음악으로만 먹고 사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절망에 담대하게 대응하는 것처럼 많은 공연장에서 노래를 불러왔다. 이건 마치 한국에서 여성으로, 또 여성 음악인으로 사는 것이 참 많이 피곤하고 불편하다는 사실에 대한 가장 적극적으로 정공법적인 대답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얻었을 것이고, 또 그만큼 달지만은 않은 현실을 삼켜야 했을 것이다. 김사월의 새음반은 기족의 곡들에 더해 새로운 노래들이 라이브 공연 실황녹음 형태로 담겨 있다. 김사월의 현재, 그리고 그녀가 살고 있는 한국의 현재를 담아내기 위한 가장 좋은 형태의 음반 구성이다. 또한 포크음악 장르의 생명력을 확인시켜 주는 가장 절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녀의 음악은 약간 변했다. 대중음악의 문법을 적극적으로 따르기도 하고, 무반주 독백처럼 하고 싶은 말을 조금 더 직설적으로 쏟아내기도 한다. 그녀는 지금도 서울을 여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생각해보면 벌써 멈추어 서서 정착하기엔 조금 더 살펴봐주었으면 싶은 마음의 구석들이 너무 많이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새소년 여름깃

새소년: 여름깃

많은 이들이 칭찬한 바로 그 새소년, 듣던대로 역시 좋은 요소들이 듬뿍 들어가 있는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실리카겔의 김한주와 함께 작업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조금은 몽실몽실한 드림팝의 색깔도 느낄 수 있어서 더 반가웠다. 내가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하는 이들의 음악을 들을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부분은 장르 안에서의 문법을 확실히 익히고 있는지의 여부보다는 개별 노래 안에서 확실한 훅 하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감각을 가지고 있느냐이다. 이건 어떻게 보면 유전자에 가까워서 가르칠 수 없는 부분처럼 느껴지기도 하다가도 노력을 게을리하다가는 평생 제대로 써먹지 못하는 아슬아슬한 재능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새소년의 [여름깃]에서는 살짝 미소짓게 하는 좋은 훅들이 많이 보인다. 이게 소속사와 프로듀서가 가진 좋은 상업적 감각덕분인지(마이 캐미컬 로맨스가 그렇게 끌려가다 망했지..) 뮤지션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재능에 기인한 것인지는 다음 음반에서 보다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전자양 던전

전자양: 던전

사실 전자양의 음악을 습관적으로 많이 듣는 편은 아니다. 우선 보컬의 톤에 대한 호불호에서 나는 불호에 가까운 편이고, 이들이 내세우는 사운드의 핵심 색깔이 ‘반드시 전자양이어야만 한다’처럼 느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전자양의 음악을 듣고 싶다면, 그와 비슷한 색깔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보다 더 좋은 음악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던전]은 조금 더 전자양만이 낼 수 있는 음악에 집중한 듯한 느낌이 들어 반가웠다. 조금 덜 불편하면서도 조금 더 확실해졌다. 그래서 전자양쪽으로 조금 더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게 된 것 같다. 몇몇 곡들은 눈이 확 떠질 만큼 정말 좋다.

 

아도이

아도이: Catnip

아도이의 [Catnip]은 최근 가장 좋게 들은 음반 중 하나다. 리얼 에스테이트(Real Estate)의 음악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청량감 넘치는 드림팝 사운드를 여기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적절한 수준의 고민과 적절한 수준의 깊이, 적절한 수준의 정체성 등을 야무지게 뭉쳐서 적절한 수준의 대중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장치를 잘 고안해낸 것 같다. 국내 음반을 들을 때 종종 느꼈던 공통적인 아쉬움이 “너무 레퍼런스가 뻔히 보인다”는 것이다. 아도이의 이번 음반은 나의 그러한 불평을 마치 꿰뚫고 있었다는 듯 정면돌파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했어. 좋으면 됐잖아. 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도 동의하게 된다.

 

실리카겔

실리카겔: SiO2.nH2O

실리카겔의 정규 1집은 지난해 가장 인상깊게 들었던 음반 중 하나였다. 남자 멤버들의 군 입대 전 마지막으로 내놓은 EP [SiO2.nH2O]는 1집에서 정돈이 다 된 것처럼 느껴졌던 이들의 사운드가 다시 자유롭게 날뛰기 시작하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이들의 음악을 듣다보면 익살맞음과 서정성이 묘한 방식으로 얽혀 드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이번 EP에서는 이들만의 그런 화학작용이 100% 잘 발휘되는 것 같아보이지는 않는다. 통일성을 찾기 힘들기 때문에 음반의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듣기도 힘들다. 하지만 실리카겔은 우리나라 인디씬을 말할 때 중요하게 언급되어야 할만한 가치가 있는 그룹이고, 이 음반은 이들이 잠시 활동을 멈추기 전 내놓은 마지막 기록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의미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을 하면 콩쿠르같은 과정을 통해 군면제를 받을 수 있는데 왜 대중음악은 그런게 없는지 모르겠다.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2 thoughts on “최근 들은 국내 음반들

  1. 전자양은 최고의 밴드입니다.;ㅅ; 저중에서 전 가장 압도적으로 좋았던게 전자양이군요..

    • 제가 아직 라이브를 보지 못해서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일 확률이 높죠. 음반만 들었을 때에는 확인할 수 없는 요소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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