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에서 깨달은 것들

어제 개인 사정으로 잠시 반차를 내고 일을 본 뒤 짬을 내어 면접을 하나 봤다. 민간그룹 산하 연구소였다. 발표를 잘 하지는 못했다. 많이 더듬거렸고, 중간에 내용을 까먹기도 했다.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한 것도 많았다. 어제 집으로 돌아와서 잠들 때에도, 오늘 아침에도 계속 어제 면접에서 실수한 것들이 떠올라 스스로를 자책했다. 면접 당사자가 이렇게 명확하게 인지할 정도면 심사위원들은 바닥까지 훑어 내려갔을 것이다. 이미 떨어진 것은 기정사실처럼 느껴진다.

면접의 실패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관건은 왜 실패했는지 파악하는 일이다. 우선 어제 와이프가 정확하게 지적한 바와 같이 절실함이 없었다. 대학원을 졸업할 당시 첫직장은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였다. 그곳에 취직하지 못하면 실업자가 될 수 밖에 없었고, 타는 듯한 절실함으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올해 초 첫직장에서 나올 때에도 그에 못지 않게 절실했다. 연구를 더이상 지속할 수 없는 환경에서 마치 생명줄이 끊어진 듯한 비참함을 느꼈고, 지금의 직장에서 뜻밖의 오퍼가 왔을 때 하나의 동아줄처럼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한번의 취직과 한번의 이직과정에서 ‘플랜B’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직장에 들어가거나 더 나빠지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이번에는 케이스가 조금 달랐다. 우선 현 직장이 나를 죽일 듯이 괴롭히지는 않는다. 이 직장이 보여주는 비전이 명확한 한계를 가지고 있고 고용도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 당장 어디론가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적당한 업무량 사이를 비집고 열심히 짬을 내면 개인연구도 어느정도 할 수 있다. 늘 부족하게 느껴지는 봉급과 계약직이라는 신분이 마음 한켠에 늘 불안감을 갖게 하지만, 어차피 평생직장은 아니라는 생각에 미래를 위해 꾸준히 연구성과를 쌓는다면 어디로든지 갈 곳이 없겠냐는 낙관적인 생각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정말 내가 원하는 직장에서 면접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는 어제와 같이 안일한 자세로 임하면 안되겠다고 느꼈다. 왜 면접을 보는지, 왜 이직을 원하는지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본 어제의 면접은 생명력을 잃은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심사위원들에게 절실함을 보여주는 것 이상의 어필은 없을 것 같다.

이와 함께 아직 나의 내공이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느꼈다. 심사위원들의 질문은 내 발표를 듣다보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상식 수준의 질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황한 나머지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어제 밤 샤워를 하면서 그 질문들이 다시 떠올랐고 충분히 괜찮은 답변도 함께 떠올랐다. 좋은 답변을 그 자리에서 즉시 할 수 없었던 것은 단순히 순발력 부족에 따른 불운의 문제가 아니라 평소에 충분히 학문적인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 필연적인 참사였다. 책장 한켠에는 아직도 배달되어 온 학술지들이 포장도 뜯겨지지 않은채 쌓여 있다. 공부를 게을리 하는 학자는 세상에 아무런 쓸모가 없다. 곡학아세를 하던가 룸펜이 되던가 해야 한다. 나는 둘 다 하고 싶지 않다. 하고 싶은 말을 조리있게 하되 그 말이 세상에 인정을 받고 선의를 의해 쓰이는 모습을 경험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공을 더 많이 쌓아야 한다. 그 내공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좋은 논문을 써야 한다. 퇴근 후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아이돌 방송을 보고 있을 게으름 따위는 아직 허락되지 않은 것 같다. 그 사이 또 많이 나태해진 것이다. 이번 면접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다잡아야겠다. 2018년 이맘때에 똑같은 후회를 다시 하게 된다면, 그 때에는 정말 더이상 발전이 없다는 절망감을 현실로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

6 thoughts on “면접에서 깨달은 것들

  1. 저도 예전에 이직준비하면서 비슷한 경험이 참 많았습니다. 글에서 느껴지는 교훈으로 봤을때
    이번 면접이 꼭 실패라고 보이진 않네요. 사람이 항상 뜨거울 수 만 있나요. 결혼 후 잠시 안정기를 보내셨으니 내년에는 더 멋진 성장의 한해가 되시리라 믿습니다. 연말에 저희 꼭 맛있는 커피 먹으러가요 ㅎㅎ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당.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훌륭한 직장은 없는 것 같아요 ㅎ 무엇을 택하고 무엇을 포기할지 정리를 잘 해둔 뒤 이직을 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11월 중에 자리를 마련하려고 했는데 정신없이 지나가버렸네요. 12월 중에는 꼭 만나요!

  2. 안녕하세요 지나가다가 들렀습니다. 3일 뒤 대학면접을 앞둔 한 청년입니다.
    면접준비를 하면서 스스로 대학지원의 명확한 이유와 절실함이 없어서 불안해하고 있던 차에 우연히 글을 발견했습니다. 말씀하시는 내용,정말 크게 공감하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자신을 돌아보며 어떻게 변화할지 다짐하시는 모습을 본받고 갑니다. 저도 분발하겠습니다.

    •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면접 화이팅입니다.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 한가지 희망(?)을 드리자면 결국 저 위의 면접 결과는 합격이었습니다. 임원면접까지 한번 더 보고 최종결과 기다리고 있어요. 부디 행운이 함께 하기를!

    • 저 합격했습니다!!! 꼭 합격하면 댓글로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면접준비를 하며 힘들 때 이 글을 보면서 위로를 받고 덩달아 열심히 준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행운을 빌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축하합니다! ^^ 앞으로도 좋은 일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면접결과가 좋았다니 저도 기쁘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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