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지 요시노: 커버링

커버링
사회적으로 보호해야 할 소수자 집단 중 대표성을 가지는 집단을 꼽아보자면 여성, 장애인, 소수인종, 성적소수자 정도가 있을 것이다. 이들은 어느 나라에나 반드시 존재하지만, 어느 나라에서도 완전히 평등한 대우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동성애자 결혼이 합법화되고 소수인종에 대한 차별금지법이 강화되는 등 국가에 따라 이들에 대한 법적 보호장치가 선진화되는 흐름을 엿볼 수 있지만, 한국을 비롯한 많은 사회에서 이들 소수자 그룹은 아직도 다양한 차원의 차별을 감수하며 살아가고 있다. 소수자에 대한 ‘보호’와 ‘차별’의 개념이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달라지고 있음을 염두에 둘 때, 소수자 집단에 대한 보이지 않는 억압이 시대적으로 어떻게 변화, 또는 진화해왔는지 관찰하는 작업은 소수자 보호를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한다는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켄지 요시노는 일본 출신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생김새는 영락없는 아시아인이었던 요시노는 미국에서 정규교육을 받았지만 부모의 방침에 따라 방학마다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의 문화도 익혀야 했다. 다문화 사회에서 소수인종이 받는 차별보다 요시노에게 개인적으로 더 중요했던 것은  성적 정체성 문제였다. 남들과 다른 성정체성을 부모를 포함하여 그가 속한 사회에 고백하는 과정에서 그는 집단 내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억압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이후 하버드, 옥스퍼드, 예일 등에서 수학한 뒤 성공한 법학 교수이자 유명 소수자인권 활동가로 살아오며 요시노는 소수자의 민권을 억압하는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폭력에 천착하게 되었고, 그 고민의 결과를 일반 대중을 위해 쉽게 풀어쓴 첫번째 저작이 바로 [커버링]이다.

이 책에 따르면 ‘커버링(covering)’은 비주류, 혹은 소수로 낙인찍힌 개인에게 사회가 가하는 억압의 세번째 단계다. 첫번째 단계는 ‘전환(conversion)’의 요구다. 비교적 최근까지 동성애는 의학계에서 정신질환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동성애가 치료 가능한 대상이라는 의미였기에 당시 많은 동성애자들이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성애자로 전환되는 ‘치료’를 받아야 했다. 동성애 행위는 불법으로 인식되었고 동성애자들은 공개적으로 처벌받았다. 이후 의학계를 중심으로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사회는 동성애자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서 ‘존재의 인식’까지 인정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억압의 두번째 단계는 그래서 ‘패싱(passing)’이다. 최근까지 논란이 되었던 미군내 규율인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 규정이 대표적인 패싱 사례다. 이는 군내 동성애자를 식별하기 위한 공식적 조사행위를 금지하되,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군인에 대해서는 불이익을 감수하라는 규정이다. 패싱은 주변에 소수집단이 존재함을 알고 있지만 그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회적 욕망의 그릇된 발현인 셈이다. 이 패싱으로 인해 많은 소수자들이 명시적인 피해를 감수해야 했고 법은 최근까지 이 패싱을 옹호해 왔다. 이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회적 욕구가 거세지고 소수자들의 집단적 행동과 이에 대한 사회적 지지가 더해져 소수자들이 다수자들과 명시적으로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무르익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태어난 세번째 억압의 단계가 바로 커버링이다.

커버링은 조금 더 교모한 형태로 행해진다. 소수자를 명시적으로 차별하지 않지만, 소수자로 하여금 그가 속한 사회에 적극적으로 동화되기를 강요한다. 노멀(normal) 동성애자와 퀴어(queer) 동성애자 집단 간 논쟁이 좋은 예다. 노멀 동성애자는 동성애자 간 결혼의 합법화를 지지한다. 결혼이라는 사회적 관습을 차별없이 동등하게 누리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쪽이다. 퀴어 동성애자는 역사적으로 결혼은 이성애자 간 결합을 사회적으로 용인하는 편향된 사회적 장치로 기능해왔으므로 이를 적극적으로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성애자만의 사회적 표현이 존재함을 강조하고자 하는 쪽이다. “너는 참 여성스럽게 행동하는구나. 자연스러워”와 같은 말도 커버링을 강요하는 폭력의 한 형태가 된다. ‘여성스러움’을 은연중에 강조함으로써 여성이라는 소수자의 고정관념을 떠안기를 강요하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커버링의 사회적 결과는 조직 내 관리자급 이상의 직위를 획득한 여성 중 상당 비율이 출산 경험이 없다는 통계 자료에서 잘 드러난다. 사회적으로 남성과 동등한 수준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출산을 포기해야 하며, 이렇게 출산(‘여성의 고유한 역할’)을 포기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낮은 단계에 머물 수 밖에 없다는 주장 역시 그래서 커버링의 한 형태가 된다. 아이를 낳고 낳지 않고는 전적으로 개인의 영역에서 결정될 사안이다. 그리고 그 결정과정에서 사회적 억압이 존재하면 아니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 책은 소수자 개인과 그가 속한 다수자가 지배하는 사회 사이에 맺어지는 불평등 계약관계를 조망하며 다양한 판례를 예시로 제시하고 있다. 미국 판례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아주 가끔 일본의 판례도 등장하긴 한다) 우리나라의 상황에 직접적으로 대입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현재 더 교묘하게 진행되고 있는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억압과정에 법적장치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이 긴장관계를 완화해야 한다는 저자의 의지는 확실히 읽을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고백하는 방식을 통해 논리전개과정을 보다 쉽게 전달한다. 그의 경험과 판례를 번갈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전환-패싱-커버링으로 이어지는 억압의 세 단계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큰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는 빈약하다. 2006년에 처음 발표된 이 책에 이어 요시노는 2016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세번째 책인 [Speak Now: Marriage Equality on Trial]을 발표했는데, 아마도 이 책에서 젠더 이슈를 조금 더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나 싶다. [커버링]은 소수자 개인에 대한 사회적 억압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다수자를 위한 책이다. 체험하지 않았기에, 체득하지도 못한 다수자는 광범위하게 행해지는 이러한 폭력행위에 대해 최소한 글을 통해서라도 이해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동성애에 대한 혐오, 소수인종에 대한 멸시, 여성에 대한 억압, 장애인에 대한 무시가 너무나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는, 소수자 민권의 사각지대와 같은 나라다. 다수자들의 반성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커버링]은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지적으로 아주 잘 쓰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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