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떨어져 보낸 한 달

이번 주 토요일 오후, 비행기를 타고 아내가 있는 샌프란시스코로 간다. 캘리포니아에서 7월초부터 계속된 원치 않던 솔로 생활을 마무리하는 셈이다. 아내의 장기 출장이 결정된 후 많은 주변인들이 이를 “자유”에 비유하며 축하(?)를 건넸지만, 나는 이 한달이 몹시 무료하고 외로웠다. 고백하자면 아내가 출국한 그 날 딱 하루 약간 홀가분한 기분이 들어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 배경에는 아마 넓은 침대 위를 혼자 뒹굴거릴 때 느껴진 상대적인 -그리고 곧 사라질- 광활함과 팬티만 입고 돌아다녀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저급한 자유로움이 도사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후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결코 즐겁지 않았다. 결혼이라는 하나의 관문을 거치며 나의 삶은 참 많이 달라졌는데, 친구, 술, 그 밖의 외부활동에 대한 관심이 거의 완전히 사라진 요즘 아내가 없을 때 누릴 수 있는 이점은 사실상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결혼 이후 나의 삶의 대부분은 나와 아내만을 위해 존재해왔다. 이 둘은 각자 독립적인 존재이기도 했지만, 결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하나의 ‘팀’으로 존재할 때가 더 많았다. 때문에 아내가 없는 금호동 아파트에서 혼자 존재하는 것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참 힘들었다. 집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아내가 돌아왔을 때 그녀가 떠나기 전과 비슷한, 혹은 더 나은 환경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 정도였다. 매주 화요일에 하던 분리수거를 여전히 혼자 하고 빨래도 밀리지 않고 꼬박 꼬박 해두었다. 전에는 아내와 나누어서 하던 일을 혼자 할 뿐 집에서의 루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말동무가 사라져서 훨씬 더 재미가 없었을 뿐이다. 대신 아내가 꼬박 꼬박 챙겨 사오던 빵을 사오지 않게 되어 아침을 거를 때가 많아졌고 저녁식사도 유학시절로 돌아가 간단한 원디쉬 스타일로 때우게 되었다. 피곤한 하루를 끝내고 침대에 서로 몸을 포개고 누워 시시껄렁한 대화를 나누지 못해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자동차로 출퇴근하기 시작했는데도 삶의 질이 훨씬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아내가 없는 동안 만났던 친구들은 아내가 있어도 충분히 만날 수 있던 친구들이었다. 아내는 내가 친구를 만나고 늦게 들어오는 것에 인색하지 않다. 내가 친구가 너무 없어서 오히려 걱정을 하는 편이다. 지난 한달동안 친구를 만난 횟수는 약 다섯번, 모두 ‘더이상 만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절박함’이 작용해 만난 사람들이었다. 친구와 우정을 쌓는 행위에 대해 가치를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편이다. 어쩌다 친해지면 그 시간을 즐기면 되는 것이지, ‘만나기 위해 만나는’ 행위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 다섯번의 만남조차 모두 자정 이전에 마무리하고 집에 들어왔다. 주말을 세번 쯤 보내자 혼자 살던 시절의 공기가 떠올라 더 우울해졌다. 그 당시 느꼈던 자유로움보다 혼자 살 것을 각오하던 무렵 마주해야 했던 외로움이 더 크게 떠올랐다.

지난주부터 본격적으로 여행준비를 하면서 비로소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우리는 먼저 베가스에서 스캇과 크리스, 캐런을 만나 2박 3일을 함께 보내기로 했다. 사실 샌프란시스코나 그 주변이 훨씬 좋지만(베가스에서 뭘 하고 놀아야 할지 모르는 1인) 한푼이라도 더 싼 항공편이 있다고 하는 베가스에서 만나는 것을 허락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미국에 온다고 하니 동부에서, 남부에서 날라와주는 친구들이 고마울 뿐이다. 이후 우리는 포틀랜드로 날아가 자동차를 대여해서 포틀랜드 주변을 좀 구경할 계획이다. 그곳에서 3박 4일을 머문다. 여행계획을 들은 어머니가 “킨포크의 향기를 느끼고 와라”고 했는데 누나도 똑같은 말을 했다. 한국인에게 킨포크란 무엇인가. 내가 아내에게 제시한 여행 테마는 아웃도어 활동과 커피 투어다. 포틀랜드까지 갔으니 폭포도 보고 장미꽃도 보며 조금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포틀랜드의 커피문화도 체험하고 싶어 인터넷 여기저기를 뒤져가며 약 열 곳 정도의 커피숍을 구글맵에 찍어두었다. 하루에 세잔씩만 마시면 다 맛볼 수 있다. 우리 여행의 마지막 3일은 시애틀에서 보낼 계획인데, 두번의 밤은 각각 공연(Amadou & Miriam)과 야구경기(Angels at Mariners)로 채워질 예정이다. 시애틀은 언제 들려도 좋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커피처럼 차분하게 가라앉은 사람들의 표정에서 카페인과 같은 약간의 흥분감을 느낄 수 있다.

항공권과 호텔 바우처, 공연과 렌트카 영수증 등을 출력해 가지런히 챙겨 보니 이번 여행도 결국 내 뜻대로 준비된 것 같아 아내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무엇을 해도 함께 하는 것이 더 나은 관계가 되었다. 물론 그 와중에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함께 있다가 가끔 혼자 있는 것과 늘 혼자 있다가 가끔 함께 하는 것에는 심리적으로 큰 간극이 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사는 것이 결코 나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 아님을, 오히려 나 자신을 더 높고 넓은 사람으로 만드는 지름길임을 이번 결혼을 통해 배우고 있다. 이제 사흘만 더 보내면 아내를 볼 수 있다.

4 thoughts on “아내와 떨어져 보낸 한 달

  1. 제가 직장 입사하고 오년 간 매일 같이 들어오던 블로그입니다. 저도 서강대 나오고(한참 후배겠지요ㅋㅋ)경제학 거기에 가톨릭 신자(?!) 에다 평생 주저하며 살아서 재밌게 봤습니다. 그런데… 올해 회사 그만두고 경제학 박사 나왔습니다 ㅋㅋㅋ 늘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글은 처음 쓰지만.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잘 적응하고 계실거라 믿습니다. 혹시나 도움이 필요하시면 jongheuk@gmail.com 으로 연락주세요. 유학을 마치고 미국을 떠난지 꽤 되어서 제가 드릴 수 있는 도움이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바닥이 좁고도 좁은지라 혹시 현재 계신 곳에 지인이 있으면 소개라도 시켜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늘 건승하시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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