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출산율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출산율 문제에 대해 이래저래 말들이 많은데, 내가 항상 주장하는 바는 젊은 부부들이 생각이 모자라서 애를 낳지 않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에서 애를 낳으라고 아무리 쪼아도 본인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해서 애를 낳을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낳지 않는 것이다. 내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려운 형편에 맞벌이는 당연히 해야 하고 아이를 낳으면 ‘이모님’이나 친정 어머니가 돌봐주셔야 하는데 그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아이를 어찌어찌 학교에 들여보낸다고 해도 초등학생이 미적분학을 공부해야 살아남는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거의 미친 짓에 가깝다. 그 과정까지 또 어찌어찌 성공적으로 살아남고 아이를 좋은 대학에 들여보낸다고 해도 졸업 후에는 5천만명이 살지만 2%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나라에서 150만원을 받는 1년짜리 인턴으로 취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미래가 뻔히 보이는데 누가 아이를 낳으려고 하겠는가? 아이를 낳지 않으면 맞벌이 부부가 열심히 노력해서 집 한채 얻는 것은 그나마 가시권으로 들어올 수 있다. 모성애, 부성애를 억지로 억누르고 너희끼리 잘 사는게 더 낫지 않겠느냐고 강요하는 사회가 정상적인가?

그리고 우리나라가 애를 낳지 않는 것은 어제오늘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1990년대 초반, 그러니까 거의 한세대 전부터 애를 적게 낳아 왔고 최근 그 경향이 더 두드러진 것도 아니다. IMF 위기 전까지 1.6명대였던 것이 위기 후 1.2~4명대로 떨어진 것이 전부다. 이게 엄청난 변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장기간 ‘유교 탈레반’에 의해 억압되면서 마치 우리나라에서 2~3명씩 순풍순풍 낳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으로 받아들여져 온 것이 오히려 비정상이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서 사회활동을 하기 시작하면 국가가 정책적으로 출산을 해도 괜찮다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그게 전혀 되지 않았다. 여성의 사회활동은 가시화되는데 정부는 여전히 출산과 육아를 여성에게 일임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낮은 출산율이다. 이게 아이를 낳는 사람들의 탓인지 그들을 둘러싼 전근대적인 사회적 공기와 후퇴적인 정부 정책 탓인지 따져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최근 이 문제가 마치 심각한 사회문제인 것처럼 대두되는 것이 약간 불편할 정도다. 곧 은퇴시기로 접어드는 베이비붐 세대와 그 바로 밑 세대가 자신들의 노후를 떠받들어 줄 연금제도의 부실화가 걱정되어 출산율을 독려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랫 세대가 계속 돈을 벌어야 지급되는 것이 윗 세대의 연금이다. 2008년을 기점을 경제성장률이 7%대에서 2%대로 뚝 떨어지면서 연금 재원의 급속한 고갈은 예상되기 시작했다. 이게 급속한 고령화와 맞물려 ‘혹시 내가 죽기 전에 연금이 떨어지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늙은이들의 온 몸을 휘감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더해, 아이를 낳지 않으면서 역삼각형으로 변해가는 인구구조에서 대부분의 베이비붐 세대가 수도권에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된다. 즉, 이들은 자신들의 자산 가격이 떨어질 것을 두려워해 ‘잠재적 아파트 구매자’를 만들어내라고 닥달하고 있는 것이다. 창의적인 생각 1도 안보태고 그저 시키는대로 묵묵히 노예처럼 일한 대가로 받아든 것이 수도권 아파트 한채가 전부다. 이걸로 어떻게든 죽기전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누군가는 내 아파트를 비싼 값을 치루고 사야 하는데 점점 잠재적 수요층이 줄어드니 어찌 불안하지 않겠는가. 이들은 아파트를 팔아 창조적인 사업을 꾸릴만한 능력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후배 사원 닥달하고 종업원 닥달하고 자식새끼 닥달해서 무언가를 짜내는 것이 이들이 가진 유일한 재능이다. 현재 연금도 그렇게 짜내려고 하고 있다.

낮은 출산율은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결과다. 젊은 부부들은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사회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수준의 신생아를 만들어내어 왔다.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것은 노인들이 생각보다 일찍 죽지 않는 고령화 현상이다. 생각보다 더 오래 살아남게 되니 골칫거리가 된 셈이다. 문제는 이들이 생산활동에 기여하는 바가 현격히 낮다는 점이다. 폐지를 줍는 일을 아직까지 노인들이 하고 있다는 사실은 비극이다. 이들이 적극적으로 생산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에 모든 역량이 집중되어야 한다. 50세만 되어도 대기업에서 나가야 하는 환경 자체가 비정상이다. 아파트 경비를 남성노인이 독점하는 구조도 이상해보인다. 능력있는 30대 부장이 70대 대리에게 명령하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더 낫지 않겠는가. 내 마음속의 꼰대 유교문화만 거세할 수 있다면 고령화 문제의 대부분이 풀릴 수 있다.

“생산인구가 급속히 줄고 있는 것이 문제다”라는 주장은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일을 할 수 있는 인구의 비중이 줄어들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경제 전체가 주저앉게 될(뿐 아니라 일 안하는 노년층을 먹여살릴 방법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는 가정을 근거로 하고 있다. 불투명한 미래로 인해 출산을 하지 않는 젊은이들은 ‘선택’의 문제이니 어떻게든 애를 낳으라고 닥달해야 하고, 죽지 않는 노인들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니 그저 어쩔 수 없이 공짜 지하철이나 타고 다니며 소일이나 할 수 밖에 없다는 기본 가정 자체가 틀렸다. 먼저 노인들은 실제로 가난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연금 등 노후수단을 확보하지 못하고 충분한 국가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극빈층 노인의 삶은 생각보다 훨씬 더 비참하다. 죽지 않는 노인들도 일을 계속 할 수 있다. ‘일’이라는 것이 육체노동을 의미하는 시대는 이미 예전에 지났다. ‘노인’의 정의부터 달라져야 한다.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고정관념도 바뀔 때가 왔다. 사회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노인들의 노동력을 활용해야 한다. 오히려 고령사회로 접어드는 경제구조에서 노인들의 노동력은 보다 더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 ‘고통분담’은 노인들도 함께 해야 한다. ‘은퇴’라는 개념은 2%대 성장률을 기록하는 나라에서는 사라져야 한다. 고령화한 노년층이 계속 일을 할 수 있다면 생산인구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고 낮은 출산율을 해결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낮은 출산율이 ‘문제’라는 생각을 기어코 바꾸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낮은 출산율은 문제의 원인이라기 보다는 원인의 결과 중 하나일 뿐이다. 낮은 출산율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결과는 너무 많은 가정과 추측이 필요한 상상 속 세상일 뿐이지만, 낮은 출산율을 만든 원인들은 이 사회의 안좋은 모든 것을 농축해 놓은 액기스와도 같이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관찰대상이다. 여성에 대한 수십, 수백년간의 비논리적인 탄압을 정당화시키고 나이 그 자체로 사회적 지위를 약탈하려고 하는 유교적 세계관에 의해 탄생한 숫자일 뿐이다. 모성애와 부성애는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지만, 최소한 여성에게 조금 더 높은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허락되었다면 지금보다는 더 많은 아이들이 태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낮은 출산율을 해결하고 싶다면 어느 정당에서 주장했던 바와 같이 해외에서 노동력을 수입해오면 된다. 하지만 지금도 구로나 안산을 슬럼이라 칭하며 노골적인 인종차별 기질을 드러내는 한국인의 습성을 볼 때 이조차 요원한 일이다. 뿌리깊은 유교적 세계관에 ‘단일민족’이라는 허구적 믿음이 더해지니 답이 없다. 문화적으로 열려 있지도 않고 기득권을 포기할 생각도 없다. 우리나라가 먹고 살기 어렵다면 해외로 나가면 되는데 그 잘난 유교적 세계관에 기초한 엄청난 교육열은 토플 만점은 받을 수 있지만 해외에서 영어회화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들만 잔뜩 만들어냈다. 이 뛰어난 젊은 친구들은 먹고 살기는 힘든데 기술로 돈 버는 것은 천하다고 생각하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 일단 아무 대학이나 가서 등록금 꼴아박고 150만원 받으며 인턴으로 일한다. 아파트를 소유한 부모에 기생해서 30대 중반까지 비정규직으로 전전한다. 친기업 정서가 팽배한 사회에서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처우는 “국격”이라는 단어 하나로 가볍게 정리된다.

결국 유교적 질서에 갇혀 버린 폐쇄적 사회가 그 비용을 지금 톡톡히 치루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사태를 이렇게 심각하게 만든 주범들은 여전히 아파트를 부여잡고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그 책임을 지금 막 사회로 나온 젊은 세대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능력에 걸맞는 직업을 갖지 못하고 그만한 수입도 보장받을 수 없는 이 세대는 아이조차 마음대로 낳을 수 없다. 이미 많이 늦어버린 것 같지만, 그래도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고쳐야 한다. 정신머리부터 고쳐야 한다.

2 thoughts on “낮은 출산율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1. “최소한 여성에게 조금 더 높은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허락되었다면 지금보다는 더 많은 아이들이 태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현실과 정반대입니다. 학력과 사회적 위치가 높은 여성일수록 아이를 낳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게 미국인데, 힐러리 클린턴은 명문대를 나온 당대를 대표하는 여성이고 아이를 낳았지만 그녀의 대학 동기 중 40%는 아이를 낳지 않았습니다.

    학력,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출산하지 않는 아이러니는 전세계 공통입니다. 이제 곧, 우리나라도 학력 높은 여성의 非출산 시대가 올겁니다. 지금 1.2명이지만 앞으론 더 떨어질거란 의미입니다.

    그리고 노인을 “생산”의 위치에 놓고 보셨지만, “소비”의 위치에 놓으면 제일 불친절한 소비자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높은 구매력을 가진 연령층은 30, 40대 여성, 주부입니다. 그중 40대 주부의 구매력은 이미 널리 알려질 정도로 유명하죠.

    마지막으로 유교 이야기를 계속하시지만, 유교와 전혀 상관없는 非아시아 국가들도 저출산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굳이 이런 이야기에 유교를 인용할 필욘 없습니다.

    • 미국 주류경제학에 기대어 전세계적인 트렌드에 대해 생각해보면 말씀하신 것들이 다 맞는 이야기들이고, 동의합니다. 다만 저는 한국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어요. 한국의 특수성을 논하기 위해 미국이나 다른 나라 사례를 가지고 오는걸 “현실”이라고 일반화시키기는건 무리가 많이 따를 것 같네요. 우리나라의 경우 ‘여성해방’이 미국과 동등한 수준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급격한 산업화가 진행되었고, 이 과정에서 유교적 불평등성이 작용하여 전세계적 ‘평균’과는 조금 다른 양상의 저출산 현상을 야기했다고 보는 것이 저의 견해입니다. 글쓰신 분께서 주장하신 바와 같이 여성의 고학력화로 인해 출산율이 더 떨어지는건 당연한 현상이겠죠. 하지만 그 이전에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남녀 불평등, 그 뒤에 자리하고 있는 유교문화의 영향력을 생각하지 않고는 한국적 특수성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논문 몇개 읽으면 파악할 수 있는 당연한 트렌드.. 그게 진리는 아니거든요. 학자라면 더 생각해야죠.

      그리고 노인의 소비성향 이야기는 뜬금없네요. 대한민국 역사상 노인에게 안정적인 소비문화를 허락한 시대가 한번이라도 있었나요? 경제는 정치나 문화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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