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뷰티인사이드

뷰티인사이드
예술작품에 대한 나의 기호는 대체로 평론가들의 그것과 일치하는 편이다. 어쩌면 평론가의 시선으로 예술작품을 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품을 대하는 나의 감정이나 입장보다는 작품을 만든 작가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 작품이 사회, 문화, 공간 따위의 환경과 어떻게 어우러지는 지에 집중한다. 그런 나에게도 ‘개인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이 생기기 마련이다. 작품을 접할 당시 내가 처한 특수한 상황과 화학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일 수 있고, 지금까지 쌓아온 ‘감정의 역사’ 중 유난히 민감한 지점을 강하게 건드리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인해 평론가들의 평이나 대중의 관심과 상관없이 그저 개인적으로 다가오는 것들이 생기게 된다.

최근에는 [뷰티인사이드]가 그랬다. 아마도 절대 주머니에서 내 돈을 꺼내지 않게 만든 포스터와 시놉시스,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감독, 딱히 챙겨보지 않는 주연배우들. 케이블 영화채널에서 반복적으로 상영하지 않았다면 결코 보지 않았을 작품이다. 케이블 영화채널을 통해 보게 되는 대부분의 영화들이 그러하듯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집중해서 보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영화의 후반부부터 보기 시작했고, 몇개월 뒤 영화의 중간 부분을 볼 수 있었고, 또 몇개월 뒤에는 영화의 초반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한 호흡으로 확인한 것은 네번째로 이 영화를 접한 어제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가능했다.

영화는 사실 완성도가 아주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다. 매일 신체가 변하는 남자의 이야기는 이 영화가 창조한 고유한 세계도 아니다. 시종일관 어떻게 하면 이뻐보일까를 고민하는 화면과 머나먼(그리고 반드시 아름다워야 하는!) 체코까지 가서 결국 이어지고야 마는 남자와 여자의 사랑 이야기는 이 영화가 추구하는 방향이 그리 깊은 철학적 담론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때때로 지루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얻어 걸린’ 듯한 장면들이 튀어나올 때마다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 장면들은 대부분 한효주가 만들어내는 것들이다. 에너지 과잉이 알파요 오메가인 한국 영화 판에서 절제된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그녀의 연기만이 이 영화가 차별화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지점이자 이 영화가 가진 거의 유일한 아름다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를 통해서 한효주의 연기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전 작품인 [동이], [광해], [반창꼬], 혹은 이후 작품인 [해어화]에서 보여준 모습이 기존 한국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에너지 과잉의 일차원적 캐릭터라는 점에서 어쩌면 [뷰티인사이드]에서 감독의 디렉션이 꽤나 훌륭한 것은 아니었는지 추측해보게 된다. (혹은, 그만큼 여성 캐릭터를 다층적으로 풍부하게 만드는 힘이 한국영화계에 부재하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한효주가 연기한 이수라는 캐릭터는 다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성장해나가는 유일한 캐릭터이자 영화의 감정선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진다는 점에서 영화의 정체성 자체가 현현하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나레이션은 거의 대부분 남자 주인공 우진이 맡고 있지만 영화의 중반 이후 매일 신체구조가 변하는 애인을 눈 앞에 둔 이수의 복잡한 심정이 부각되면서 우진은 관찰자적 시선으로 한발 물러선다. 애인이 가진 비밀을 받아들이기 위해 겪었던 혼란, 사랑의 힘으로 이겨내려는 당찬 모습, 이후 정신적으로 피폐해져서 떠나고 다시 돌아와 용기를 내는 모습까지, 영화는 이수의 심리적 변화를 통해 “있을 때 잘해라”라는 메시지를 예쁘게 포장해서 보여준다. 그런데 사실 이 메시지가 매우 통속적이긴 해도 그만큼 강렬하기도 한 것이어서, 빠르게 떠나보내야 하는 상대방의 ‘어제’에 집착한 나머지 ‘오늘’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를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영화의 감정이 이렇게까지 전해진 것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오롯이 한효주의 연기 덕분이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한효주의 이런 모습은 다시 발견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더더욱 희귀한 경험으로 남게 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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