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이에 마사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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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ㅈㅎ씨와 “몹시 덥고 습기로 가득한 일본의 여름날씨를 마치 뽀송뽀송하고 상쾌한 것처럼 포장하는” 일본영화의 특성에 대해 농담조로 성토한 적이 있다. 한국보다 미세먼지가 적게 배출되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영화속 일본의 여름하늘은 유난히 푸르고 맑아보인다. 강한 햇살을 받아내는 거리와 사람들의 모습에서 더위에 찌들어 지친 모습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10년 전 GRE 시험을 치루기 위해 함께 도쿄를 찾은 당시 스터디 멤버는 “집단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며 차분히 가라앉은 일본의 도시풍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언뜻 보이는 일본의 거리는 조용하게 정리되어 있다. 사람들은 말 없이 빠르게 서로를 스쳐지나간다. 상대방에게 어떻게든 영역표시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의 시선에서 일본사회의 풍경은 솔직하지 못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많은 한국인 독자들의 평처럼 담백하고 잔잔하다. 존경하는 건축가가 운영하는 건축사무소에 들어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사무소의 일상을 함께 체험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작가의 풍부한 배경지식과 꼼꼼한 묘사에 힘입어 마지막까지 일정한 호흡을 유지한다. 마치 나오코 오기가미의 영화들, 예컨대 [카모메 식당]이나 [안경], 혹은 오모리 미카의 [수영장]과 같은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한여름 일본의 풍경이 선선하거나 담백할리 없지만, 많은 독자들이 그렇게 느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단단한 내공에 의존한 유려한 문체덕분일 것이다. 담담하지만 끈기있게 이어지는 만연체의 문장들 속에서 독자들은 어쩌면 잠시 공기좋은 산자락 어딘가로 피서를 떠난 듯한 느낌을 받았을런지도 모르겠다.

다만, 주변의 많은 호평과 달리 개인적으로 이 소설이 크게 와닿지 않았던 이유는 이 작품이 태생적으로 버리지 못하는 보수성이 불편했기 때문이고, 지나치게 영화적인 이 작품의 성격에서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는 높은 습기를 의도적으로 지워버린 듯한 일본영화의 화면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작품 속 여성 캐릭터들은 수동적이고 순종적이다. 주인공 역시 수동적인 것은 마찬가지이긴 하다. 대부분의 캐릭터가 전형적이고 평면적이다. 일본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보수성이 삶의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뭍어나온다. 소설은 두시간짜리 영화로 만들면 딱 좋은 서사구조와 규모를 가지고 있다. 소설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은 풍부한 건축 배경지식 설명 정도일텐데, 이 부분은 픽션이라기 보다는 논픽션에 가까운 영역이라 이조차 문학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번역이 썩 매끄럽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중 화자인 주인공의 독백 부분에서 습관적으로 구어체 표현을 사용하고 있고 현재형과 과거형 어미를 한 문단에서도 번갈아가며 사용하고 있는데 원문이 정말 이런 표현들을 사용한 것인지, 반드시 필요한 표현이었는지 궁금하다. 소설을 읽다보면 딱히 필요하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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