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바깥은 여름

김애란 바깥은여름
김애란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녀는 장난으로 글을 쓰지 않는다. 다른 목적을 위해 글을 희생하지도 않는다. 김애란의 소설을 읽다보면 진짜 글을 쓴다는 확신이 든다. 그것은 그녀의 시선이 소설 속 인물들에 계속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창동이 그러하듯, 김애란도 작품 속 인물의 삶 중 한 부분만을 떼어 독자들에게 보여줄 뿐이지만 그 인물이 그 전에 살아온 삶,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해서도 시선을 쉽게 거두지 않음으로써 책임을 지려 한다. 이것이 그녀의 소설을 단지 기교나 표현의 영역에 한정하여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다.

[바깥은 여름]은 사랑하는 어떤 것, 혹은 강하게 존재했던 어떤 것과 멀어지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아이를 잃은 부부, 남편을 잃은 아내, 언어를 잃은 영혼, 개를 떠나보내야 하는 아이, 아들의 순결함을 의심하게 되는 엄마, 오랜 애인을 떠나야 하는 여자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들이 처한 상황은 결핍으로부터 시작되어 상실로 끝나기도 하고, 외로움으로 시작되어 낙담으로 끝나기도 한다. 모든 작품의 마지막에 남는 감정은 공통적으로 쓸쓸하다. 김애란의 이전 작품들에 비해 유머가 한결 줄어들었다. [침이 고인다], [달려라, 아비] 시절 알면서도 뻔뻔하게 모른척하며 지었던 한줌의 미소조차 사라졌다. 한결 어두워졌다. 어쩌면 많은 매체에서 주목하듯 물에 빠진 제자를 구하려다 함께 죽은 교사의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등장하고 아이를 잃은 부모의 심정이 적극적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에서 세월호 사건에 대한 문학적인 반응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약간의 유머조차 죄책감으로 되돌아오는 참담한 상황에서 김애란 역시 웃음을 의도적으로 거두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펄떡펄떡 뛰는 인물들의 생생한 숨소리는 여전하다. 우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비행운]의 “그 곳에 밤 여기에 노래”에 등장하는 ‘용대’와 비슷한 존재감을 뽐내는 “노찬성과 에반”의 찬성이가 있다. 이 가난한 소년은 늙은 개를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현실의 벽과 유혹 속에서 이리저리 비틀거린다. 단 돈 몇천원의 들락날락거림에 갈등하는 그의 영혼은 사랑하는 개의 마지막 순간을 위한 몸부림이라는 점에서 결코 가볍지 않다.

김애란은 현실의 어두운 면을 결코 에둘러 표현하려 애쓰지 않는다. 그 곳에서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시선에 조미료를 첨가하지도 않는다. 그저 있음직한 상황을 설정한 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담담히 기술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소설이 건조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녀의 시선때문이다.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그 낮은 자리를 비추고 있다. 우리의 삶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므로, 그 인물들의 삶 역시 계속 지속되고 있을 것이므로, 비록 피곤한 오늘을 사는 우리 중 그 누구에게도 그들에게 따뜻한 안부를 물어볼 여유가 허락되지 않을 수 있기에 더더욱, 김애란 그 자신이 조금 더 지긋한 시선으로 조용히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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