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명

어린 시절 아버지는 자주 나와 누나를 앉혀놓고 가정교육을 실시하셨다.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평생의 업이었던 당신에게는 마치 강의와도 같았던 그런 방식의 교육방식이 더 편했을 것이다. 아주 어린 시절에는 지구의를 앞에 두고 세계여행을 다녔고, 조금 더 커서 국민학교에 들어가고 난 다음에는 주로 역사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아버지에게 ‘진인사대천명’을 모토로 삼으라는 말을 듣고 난 후 꽤 오랫동안 그 말을 가슴에 품고 다녔다. 어려운 시기가 올 때마다 좌절하지 말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용도로 주로 사용했던 것 같다. 스스로의 노력만으로는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없는 순간이 올 때  누구나 변명거리가 하나씩 필요하다. 대체로 실패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쪽으로 정당화를 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나는 부족함이 없이 노력했으니까, 내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 부분도 있으니 나는 ‘잘못되지 않았어’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아 두려웠다.

동쪽으로 가고 싶은 사람이 서쪽으로 가지만 않으면 된다는 말을 들은건 유학을 온 뒤에서였다. 한국인 선배에게 그 말을 듣고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하버드에 가야만 경제학을 공부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AER에 논문을 게재해야만 경제학을 공부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경제학을 공부하는 것을 업으로 삼을 수 있는 ‘대외적인’ 최소한의 자격 정도가 물리적으로 필요했을 뿐, 그 외에는 모두 내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래서 지금은 마음이 무척 편하다. 좌우명도 바뀌었다. 도전을 즐기는 쪽으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쪽으로, 조금 난이도가 있는 도전에 실패한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은 반드시 있을 것이므로 무언가를 배움으로써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자는 쪽으로 바뀌었다. 스스로를 더이상 위로할 필요가 없다. 실패에 대한 변명을 찾을 필요가 없다. 나는 원래 실패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므로, 실패를 당연히 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므로, 그 현실 위에서 내적으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와중에 가시적인 성취가 있다면 기뻐하면 되고, 그 와중에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 원인을 곱씹어 보며 다음 기회를 기다리면 될 일이다.

물론 인간관계는 위와 같은 좌우명에 의해 움직이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아직 많이 서투른 부분이다. 아마 죽을 때까지 허둥지둥거릴 것이다. 아직도 깜빡이를 켜지 않고 불쑥 끼어드는 차를 보면 마음이 상하고 붐비는 버스 안에서 백팩을 매고 있는 남자를 보면 답답해진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은 아내의 언행을 접할 때 마음이 좁아지고, 아직도 가르치려 들고 통제하려 드는 부모님의 언행을 접할 때마다 속이 상한다. 인격수양은 끊임없이 해야하는 것 같다. 이건 생각으로 정리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