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책장

책을 전시용으로 사용하는 순간부터 그 책은 시체로서 존재한다. 만약 당신 지금까지 읽지 않은 책, 그리고 앞으로도 읽지 않을 책을 책장에 꽂아두었다면 그것은 시체가 썩어가는 모습을 음미하는 그릇된 도축장 주인의 심리와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외국서적을 관상용으로 구입한다”는 농담을 여러 사람들로부터 심심치 않게 들을 때마다 웃어 넘겼다. 그 정도의 허영심을 비난할 정도로 마음이 못되진 않았으니까. 다만 코엑스 별마당도서관과 한남동 북파크에 전시되어 있는 책들을 사진으로 접할 때마다 착잡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전시가 아니라 박제에 가까운 형태다. 책들을 이렇게 손에 닿지 않는 멀고 높은 곳에 박제한 이들이 타게팅했을 법한 고객층의 마음, 혹은 그 소비욕구의 색깔을 헤아릴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책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아름다움을 지니지 못하는, 기표와 기의 간 관계가 온전히 성립하지 못하는 사물에 가깝다. 책 안에 들어 있는 활자들이 여러 사람에 의해 ‘읽혀짐’으로써 비로소 사회적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책은 아름다운 내용을 품고 있는 책이다. 못생긴 책은 못생긴 내용을 품고 있는 책이다. 책의 표지 디자인의 아름다움을 논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그것은 책에 대한 탐미가 아니라 책의 표지라는 디자인의 작은 분야에 대한 탐미다. 책의 내용을제대로  접하지 못하게 만든 공간이 “도서관”과 같은 이름을 차용할 때 느껴지는 절망스러움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소비의 본질 중 한 부분을 상징하는 현상이라면 조금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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