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bo Yéyé: Belle Époque In Upper Volta

bobo yeye
이런 저런 이유들로 동시대에서 제대로 된 조명을 받지 못한채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진 숨은 명반을 찾아내 재발매하는 시카고 기반의 인디 레이블 누메로의 작업들은 명시적인 시대적 공헌 뿐 아니라 음반 자체의 높은 퀄리티로 많은 주목을 받아 왔다. 나 역시 이들이 발매하는 음반들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어 여유가 있을 때마다 한 장씩 구입한다. 193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오래된 음반들이 대부분이기에 정보나 지식이 현저히 부족한 나는 음반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반드시 읽는 편인데, 누메로가 밝히는 기본적인 정보들에서 음반의 주인공들의 삶에 대한 관심이 부쩍 생기는 음반들에 먼저 손이 가게 된다.

말리 음악에 대한 서구(및 우리나라) 음악팬의 관심은 지난 10,20년 간 부쩍 늘어났다고 말할 수 있지만, 말리와 접경해 있는 브루키나파소의 음악이 가진 세계적인 명성은 그보다는 조금 낮은 편인 것 같다. 이번에 누메로에서 내놓은 [Bobo Yéyé: Belle Époque In Upper Volta]는 1983년 군부 쿠데타에 의해 브루키나파소가 건립되기 전 동지역에 존재했던 오트볼타(Republic of Upper Volta)시절 음악들을 세장의 음반에 모아놓았다. 이웃나라 말리와 마찬가지로 볼타는 20세기초부터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고 1958년 독립했다. 프랑스 식민지배 기간동안 서구의 음악문화가  자연스럽게 많이 유입되었을 것이고, 독립 이후 Bobo-Dioulasso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클럽, 밴드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음반의 첫번째 장은 볼타 재즈 오케스트라(Orchestre Volta-Jazz)의 노래들 중 대표곡들을 엄선해서 뽑았다. 당시 오트볼타의 음악은 프랑스 식민지배세력 뿐 아니라 말리 음악씬으로부터도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 볼타 재즈 오케스트라의 초기 주축 멤버였던 Tiemoko Traoré 와 Tidiani Coulibaly 역시 말리에서 음악을 배워 와서 보보에서 음악을 시작했다. 보보 지역에서 첫번째 운전면허학원을 차려 재정적인 여유를 가지고 있던 Idrissa Koné가 매니지먼트를 총괄하기 시작하면서 밴드는 전성기를 맞기 시작한다. 볼타 재즈 오케스트라의 음악은 Senufo와 Mandingo라고 불리우는 지역 민속음악에 쿠바 리듬과 일렉트로닉 기타사운드를 뒤섞은 독특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가끔 신중현과 김정미같은 한국의 선구적인 록음악과 비슷한 색채를 느낄 수 있는데, 서구 음악의 유산을 짧은 식민지시대로부터 물려 받아 지역 전통음악(우리나라는 민요, 혹은 엔카-ish가 되려나)과 교배를 이룬, 완전히 독립적인 두 지역의 음악이  비슷한 결과물을 보여준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소위 말하는 식민지 정서, 혹은 한이라는 정서가 공통적으로 존재했는지, 그것이 음악에 영향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밴드의 전성기는 멤버 간 불협화음과 새로운 트렌드를 적극 받아들인 신진 세력들에 의한 위상 하락 등이 겹치면서 짧은 시간동안만 지속되었다. 1977년 Koné가 밴드의 이름으로 음반을 냈지만 사실상 혼자 제작하면서 밴드의 명맥은 끊기게 되었고, 1983년 쿠데타에 의해 사회주의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완전히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음반의 두번째 장은 볼타 재즈의 주축 멤버였던 Tidiani Coulibaly의 개인 작품들을 모았다. 말리 지역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티디아니 쿨리발리는 아이보리 코스트 지역에서 철도노동자로 일하다 1962년 볼타 재즈에 합류했다. 약 10년간의 볼타 재즈 활동을 정리하는 그는 이후 Dafra Star 앙삼블로 활동했다. 이 시기가 쿨리발리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두번째 음반을 제작하기 위해 보보에서 500마일 떨어진 곳까지 여행을 가야 했을 정도로 당시 볼타 음악가들의 사정은 그리 풍족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이런 저런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쿨리발리는 아름다운 음악들을 기록으로 남겼고, 누메로가 그 유산을 발견하여 말끔한 음반으로 재탄생시켰다. 쿨리발리의 음악은 볼타 재즈 오케스트라보다 조금 더 부드럽고 유연한 보컬 중심의 세련된 팝음악을 구사한다. 역시 만딩고 음악을 주된 뿌리로 삼지만 민속음악과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샹송과 아프로팝에 대한 애정을 강하게 드러낸다. 쿨리발리는 80년대 초 정권이 바뀌고 나라가 바뀌면서 음악계에서 은퇴를 선언했고 그로 인해 Djoliba National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National Treasure”라는 뜻이라고 한다.

세번째 장은 Echo-Del-Africa와 Les Imbattables Léopards의 음악이 섞여 있다. Echo-Del-Africa는 Dynamic Jazz로 활동했던 Yaya Konaté와 볼타 재즈에서 보컬리스트로 활동한 Antoine D’Albin이 주축이 되어 1974년 결성한 밴드다. Les Imbattables Léopards는 10대 시절부터 보보 지역 클럽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한  Idrissa Ouédraogo가 중심이 되어 1970년 결성된 빅밴드였다. 두 밴드는 보보 지역의 문화적 전성기였던 1970년대가 품었던 에너지의 수혜를 강하게 받았다고 한다. 이 두 밴드는 재즈와 팝, 만딩고와 세누포, 샹송과 아메리칸 록음악이 뒤섞여 볼타만의 독특한 음악적 정체성을 형성했다. 이 지역의 문화적 융성기는 앞서 말했던 바와 같이 사회주의 정권이 브루키나파소를 건립하고 프랑스 문화와의 단절을 선포하면서 빠르게 식어갔다. 이후 경제정책 실패와 끊임없는 내전으로 피폐해진 국가경제와 함께 볼타, 혹은 브루키나파소의 음악은 다른 아프리칸 음악들에 비해 더 빠르게 잊혀지게 되었다.

여행을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한국에서 태어나 서아프리카 연안 국가에 장기간 체류하며 그 나라의 음악을 깊이있게 들을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누메로의 복각 작업은 흥미로움을 넘어선 고마움까지 느끼게 만든다. 앞으로 여기에 곧 기록하게 될 Wee의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대학생을 총으로 살해한 혐의로 30년 째 복역중인 Norman Whiteside가 만든 Wee의 [You can Fly on My Aeroplane]은 소울의 정수를 담아낸 명반이다. 최근 그가 살해사건이 발생할 당시 사건 현장에 존재하지 않았고 방아쇠도 당기지 않았다는 조사결과가 밝혀지며 구명운동이 한참 벌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런 구구절절한 사연을 가진 음악가들의 음악을, 비록 3,40년이 지났지만 어쨌든 동아시아 끝단에 자리잡은 작은 나라에서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 좋은 시대에 태어났다.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