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gabon: Infinite Worl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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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룬 태생으로 십대 시절을 미국 뉴욕 근방에서 보낸 이민자 가정 출신의 Laetitia Tamko의 무대이름 Vagabon의 데뷔 음반 [Infinite Worlds]는 20분이 조금 넘을 정도로 아주 짧다. 2,3분 내외의 짦은 곡이 딱 8개 수록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임팩트는 결코 작지 않다. 아마도 올해 들어 제대로 된 ‘발견’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의 최초의 음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단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우선 음악적 완성도는 기본이다. 헤비한 인디록부터 인디포크까지 다양한 장르를 본인의 바탕 위에 무리 없이 풀어내고 있다. 악기 연주부터 녹음까지 거의 모든 부분을 본인 혼자의 힘으로 해낸, 요즘 보기 드문 DIY 음반임에도 불구하고 사운드의 품질은 결코 로파이하지 않다. 음악의 결이 성긴 것과 사운드의 질이 거친 것은 완전히 다른 의미인데, 배가본은 그 둘을 절묘하게 분리하며 각각의 지점에서 제대로 된 성취를 해내고 있다. 중요한 것은 가사인데, 단순히 이민자의 눈으로 바라본 미국사회, 혹은 디아스포라 예술 계열로 분리해버리기에는 그녀가 가진 섬세한 시선이 너무나 곱고 아름답다. 너무나 가볍게 스쳐지나치기 때문에 차마 가벼운 시선조차 주기 힘든 일상의 사소한 지점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그녀의 감성은 이 시대의 인디음악이 파고들어야 하는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음악의 형식부터 완성도, 음악 제작 과정, 그리고 메시지까지 한 색깔 위에서 가지런하게 공유하는 지점이 존재하며, 이 지점이 오직 배가본만이 창조해낼 수 있는, 그녀만의 오리지널한 세계라면, 우리는 그녀의 음악을 매우 소중하게 다루어야 할 사명감을 지니게 된다. 대단히 뛰어난 데뷔 음반이자 올해의 음반 목록에서도 반드시 거론되어야 하는 명반이다.

Charly Bliss: Gu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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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인디록 밴드 Charly Bliss의 데뷔음반 [Guppy]를 듣고 있다 보면 좋은 음악이 탄생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가 비단 개인의 재능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러니까 음악의 장르를 결정짓는 지역성, 문화적 인프라와 같은 잘 알려진 환경요소 뿐 아니라 무형의 문화적 배경이 개인의 재능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다. 코네티컷의 한 동네에서 좀 특이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아이로 유명했던 Eva Hendricks는 혼자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다 밴드를 만들고 싶어 사람을 찾던 중 한 인디밴드 공연장에서 Spencer Fox라는 사람을 만나 함께 합주를 시작한다. 마침 에바의 전 애인이었던 Dan Shure가 베이스를 칠 줄 안다고 해서 무작정 합류시켰고 드럼은 에바의 오빠인 Sam Hendricks에게 맡겼다. 그러다가 에바가 NYU에 진학하면서 밴드는 근거지를 뉴욕으로 옮기게 되었고, 그곳에서 2013년부터 줄기차게 공연을 하면서 명성도 쌓고 EP도 내다가 슬리터-키니, 도쿄 폴리스 클럽 등의 오프닝을 맡으면서 계약을 체결하고 데뷔 음반도 냈다는, 그렇게 좋은 평를 받은 그 음반과 함께 지금 열심히 본인들만의 투어를 돌고 있다는, 전형적인 인디밴드 성공스토리를 써내려가고 있다. 어쩌면 미국에서는 아주 평범한, 1년에 수십 차례 가까이 등장하는 고만고만한 인디밴드의 성공적인 데뷔 뒷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만약 이들이 서울에 태어났다면,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에바의 경우 아마도 공부를 하느라 밴드를 해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아니 그 전에 음악은 무슨 음악이냐며 부모님께 혼나면서 풀이 많이 죽었을 것이다. 코네티컷과 뉴욕이라는 배경이 이들에게 어떤 기회를 준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이것이 재능으로 발전되는 ‘채널’이 한국보다 훨씬 잘 뚫려 있다는게 부러울 따름이다. 이것은 단순히 ‘열려 있는’ 사회구조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밴드를 하고자 마음먹으면 밴드를 할 수 있는 ‘단단한’ 사회적 뒷받침이 부러운 것이다.

이들의 음악에는 둔탁한 그런지 사운드와 밝은 팝 멜로디가 공존하고 있다. 에바 헨드릭스는 아마도 이 두 요소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본인의 목소리가 달콤한 멜로디라인에 잘 쓰일 수 있음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블 기타가 육중하게 내리찍는 얼터너티브 사운드에서 물려받은 유산을 거부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그 해결책으로 속도를 택한 듯 보인다. 모든 곡은 빠르게 시작해서 빠르게 끝난다. 좋은 훅을 가지고 있는 멜로딕한 후렴구와 시원하게 내지르는 두꺼운 기타사운드가 쉴새없이 몰아친다. 30분 정도에 불과한 짧은 러닝타임은 그래서 큰 흉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 아쉽지만, 더 길게 끌었다면 자칫 지겨울 뻔 했다. 시원하게 시작해서 깔끔하게 끝나는 좋은 구성의 음반이다. 그래서 두번째 음반에서 조금 더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숙제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