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필레: 겟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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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 아웃>은 명민한 영화다. 스탠드업 코미디언 출신 감독 조던 필레는 이영화에서 특유의 B급 감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흑백 갈등과 차별이라는 미국사회의 뿌리깊은 문제를 미시적인 시선에서 효과적으로 다루어냈다. 미국사회를 떠받드는 핵심은 ‘가족’과 ‘이웃’이다. 다양한 인종이 섞인 3억이 넘는 인구가 살아가는 이 나라가 잠재적인 인종 및 계급 갈등을 극복하고 단일국가로서의 견고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강조되는 ‘커뮤니티’의 가치덕분이다. 개인의 가치를 억압하지 않지만 가족과 공동체의 위대함을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고, 학교, 군대, 이웃 등 그룹화시킬 수 있는 거의 모든 개념에서 공동체 의식을 강력하게 주입한 결과, 미국 사회는 시민 개인의 자발적인 희생과 참여에 기반하여 각종 국가적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이 견고한 국가적 시스템이 균열을 일으키는 순간은 시민 개개인이 서로를 믿지 못할 때 발생한다. 1%와 99%가 서로를 경멸하고, 여성의 어려움을 남성이 이해하지 못하고, 소수자의 기본권을 다수자가 지지하지 못할 때 사회는 갈라서기 시작한다. 하지만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잠재적 위험요인은 아마도 모두가 짐작하듯 백인과 흑인 간 인종 갈등일 것이다. <겟 아웃>은 가족으로부터, 이웃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갈등의 미묘한 시작점을 정확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이와 함께 인디 공포-코메디 영화 장르 안에서 마음껏 뛰어 놀며 장르의 형식적인 장점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관객은 충분한 몰입도와 함께 영화 그 자체를 즐기기만 해도 만족할 것이다. 만약 미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백인 중산층의 가식과 흑인에 대한 뿌리깊은 차별의식을 같은 유색인종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경험한 사람이라면, 영화 곳곳에 숨어 있는 장치들에서 현실을 환기시키는 섬뜩함을 느낄 것이다. 이 영화는 관객을 깜짝 놀래키는 서스펜스 장치의 효과적 사용만으로 인기를 끈 것은 아닐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오늘, 바로 지금 길거리에 실재하는  공포의 원천을 영화적 언어로 잘 옮겨 놓았으며, 그 결과 영화를 본 이들로 하여금 영화관 밖에서도 그 공포가 지속된다는 생각에 몸서리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이 아닌 한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만약 한국에 사는 한국인이 이 영화의 숨은 장치들을 100% 이해할 수 없었다면, 혹은 단순히 이 영화를 ‘재미있는 공포영화’ 정도로 받아들였다면, 그건 아마도 현대사회에 존재하는 인종차별이라는 개념을 올바르게 체득할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조금 더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한국에 사는 한국인은 인종차별의 잠재적 가해자로 존재하기 때문에 이 영화가 선사하는 불편함을 피해자의 입장에서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해외여행이 보편화된 오늘날 많은 한국인들이 외국으로 여행을 간다. 아마도 그 여행지에서 그곳의 문화와 예의를 숙지하지 못해 어떤 곤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혹은, 그 상황이 어떤 것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했을 확률도 높다. 그들에게 문화적 중심지는 여전히 한국, 그 중에서도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다른 인종이 서울에서 공존해야 할 때, 자신들의 문화를 내어줄 의사가 아직까지는 없어보인다. 혹은, 인스타그램 배경으로 썩 괜찮은 도시에 사는 선진국 출신 백인들의 문화에 동참하고 싶은 잠재적 욕망 정도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베’와 같은 극우 사이트들 뿐 아니라 ‘평범한’ 온라인 커뮤니티들에서조차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평균적인 시선을 쉽게 읽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점점 가난해지고 있다. 잠재성장률이 3% 이하로 내려가고 물가상승률이 2%가 채 되지 않는다면 그 나라의 어떤 부분은 침체하고 있다는 뜻이다. 돈이 되는 것들은 점점 사라지고 돈이 되지 않는 것을 두고 더 많은 사람이 경쟁하는 사회가 되어간다. 우리나라보다 더 가난한 나라의 시민들이 돈을 벌기 위해 우리나라로 넘어올 것이고, 아마도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타문화 배경의 시민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한국처럼 극도로 예민한 신경질적인 국가에서 문화적으로 조금이라도 다르다는 것을 쉽게 인정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들에게 <겟 아웃>은 굉장히 심각한 경고의 메시지로 읽혀야 한다. 이태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금천구와 안산에 대한 이야기다. 어쩌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흉악스러운 인종차별 국가로 낙인찍힐지도 모른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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