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상깊게 듣고 있는 음반들.

이직 후 생활리듬을 되찾기 시작하면서 음악을 다시 듣기 시작했다. 나에게 음악은 일상의 영역에 있기도 하지만 감정의 영역을 지배하는 주된 인자이기도 해서 감정이 고르지 못한 시기에는 음악이 잘 들리지 않는 경향이 있다. 마음이 한참 어지러웠던 지난 몇달 간 음악을 거의 듣지 못했다. 평이 좋은 신보만 대충 메타그리틱이나 앨범오브더이어에서 체크하고 넘어가는 정도였다. 새 직장에 무사히 안착하면서 최근 다시 음반을 주문했다. 그것도 한뭉텅이로. 올해 나온 좋은 음반들을 한꺼번에 주문하느라 그렇게 되었다. 운이 좋게도 보물같은 순간들이 많이 담겨 있었다. 하나 하나  되새김질하기 전에 간단하게 메모라도 해두고 넘어가야겠다 싶다.

Infinite Worlds by Vagabon

아마존에서 총 열장의 음반을 주문했는데 오토립 서비스를 통해 가장 먼저 들어본 음반이다.  거의 대부분의 매체에서 고르게 호평을 받고 있는데 이전까지 전혀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어서 호기심이 발동했다. ‘vagabond’의 의도적 오타일 것으로 짐작되는 이름은 카메룬 출신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Laetitia Tamko의 무대이름이다.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이민을 왔을 때 그녀는 고등학생이었고 그때부터 악기를 배우기 시작해 지난해 첫 EP를 냈다.  로파이 인디록이라고 뭉뚱그려 묘사할 수도 있겠지만 듣다보면 정제되지 않은 톤에서 남들과 다른 차원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그리고 그 거대한 에너지의 원천이 가사에서 나온다는 것이 이 음반이 가진 가치의 핵심이다. 우리가 쉽게 지나쳐가는 일상의 작은 파편들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그녀의 감성은 ‘인디’의 핵심 철학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것 같다.

The Order of Time by Valerie June

요즘 인디씬에서 가장 핫한 아티스트인 발레리 준의 두번째 음반인데 듣던 명성대로 탄탄한 소리를 들려준다. 미국 포크 음악에 블루스와 아프리칸 리듬을 끼얹은 사운드스케이프가 매력적이다. 소문에 의하면 스튜디오 음반보다 라이브 무대에서 진가가 드러난다고 한다. 음반으로 들어도 이미 꽉찬 사운드에 마음이 쉽게 풍성해지는데 공연은 또 얼마나 좋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Memories Are Now by Jesca Hoop

요즘 미국 인디 포크 씬이 심상치 않다. 특히 블루스, 일렉트로닉, 컨트리, 인디 록 등 이웃한 장르와 교배하여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제스카 훕은 그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다. 올뮤직의 평가대로 폴 사이먼, 조니 미첼, 바쉬티 번얀 등의 영향력이 느껴지지만 역시 그녀의 커리어를 이야기할 때 뺴놓을 수 없는 사람은 톰 웨이츠다. 몰몬 집안에서 성장한 그녀는 부모의 이혼으로 미국 여기저기를 떠돌게 되는데, 그 와중에 톰 웨이츠 가정의 가정부로 5년 간 생활하게 된다. 이 기간동안 제스카 훕의 스펙트럼도 극적으로 넓어지게 된다. 소위 조아나 뉴섬 류의 “new weird Americana” 카테고리에 묶일 수 있을 법 한 그녀의 음악은 현대 인디 포크 씬이 어디까지 진화했는지 보여주는 좋은 이정표로 읽힐 수 있다.

Sick Scenes by Los Campesinos!

이제 관록의 중견 인디록 밴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로스 깜페지노스!의 무려 일곱번째 정규 음반이다. Wichita 레이블로 옮긴 뒤에는 두번째로 내놓는 음반으로 전작 가 2013년에 나왔으니 그 간격이 4년 정도로 그들의 부지런함을 생각했을 때 꽤 긴 편이다. 에서 보여주었던 넘치는 에너지와 불안한 청년 정서의 묘한 공존이 불러일으키는 특유의 감성이 좋아서 이후 계속 찾아 듣고 있는데 에서는 그 힘이 조금 떨어진 느낌이 든다. 메이저 데뷔로부터 벌써 10년이 지났으니 이제 아저씨 아줌마가 된 이들이 전과 같은 수준의 에너지로 노래를 부를 것이라는 기대는 더이상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그래도 그 감성만큼은 여전하다. 범작의 범위를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팬들에게는 여전히 반가운 음반.

Heba by Lowly

덴마크 출신 드림팝 그룹의 데뷔 음반이다. 드림팝 장르는 왠만하면 다 좋다 좋다 이쁘다 이쁘다 하고 넘어갈 정도로 개인적인 선호도가 있는데, 이 음반 역시 오구오구 좋구나 좋구나 소리가 절로 나오는 곡들을 꽤 많이 가지고 있다. 꼭토 트윈스의 강한 영향력을 느낄 수 있는 이들의 음악은 현지에서 비치 하우스, 엠프레스 오브 등과 비교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들보다는 약간 더 일렉트로닉한 쪽으로 기운 드림팝을 하는 것 같다. 좋은 곡들이 많다. 곡들 간 편차도 꽤 있는 편이다.

Guppy by Charly Bliss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인디록 밴드의 데뷔 음반인데, 슬리터-키니, 도쿄 폴리스 클럽 류, 그러니까 ‘위저의 아이들’로 분류될 법한 기타 중심의 음악을 구사한다. 흥미로운 것은 매 트랙이 거슬림 없이 쉽고 부드럽게 넘어간다는 점인데 데뷔작에서 이정도의 능숙함을 구사한다는 것이 꽤 인상적으로 느껴진다. 아직 몇번 들어보지 않아서 조금 더 들어봐야 진가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Bandwagonesque by Teenage Fanclub

최근 애플뮤직에서 90년대 인디록 컴필레이션을 듣다가 귀에 확 꽂혀서 갑자기 주문장에 추가하게 되었다. 틴에이지 팬클럽의 음악은 항상 좋지만 이 음반이 가진 위력은 역사적이라고 할 만큼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악의 표지만큼이나 기억에 오래 각인될 음반.

Powerplant by Girlpool

친애하는 여성 듀오 걸풀의 두번째 음반이 나왔다. 기타와 베이스, 그리고 두 명의 하모니만으로 완성되는 사운드는 구성만으로 이미 독특한 정체성을 품고 있는 바, 이들 음악의 관건은 결국 어느 정도 수준의 에너지를 담아내느냐가 될텐데, 아쉽게도 전작에 비해 약간은 힘이 달리는 것이 느껴진다. 위트 넘치는 가사는 여전한데 조금 더 어두워진 느낌을 받는다. 위치타에서 안티-로 레이블을 옮겨서인지 뭐때문인지 잘 모르겠지만 암튼 색깔이 조금 더 차분해졌고 회색빛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아쉽지만, 여전히 NPR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서 충분히 사랑받을 것 같다.

Pleasure by Feist

NPR의 all music considered에서 언급이 되었던 바와 같이 파이스트의 새음반은 무척 잘 정체되어 있고 파인 튜닝되어있다. 이 음반이 새로운 청자들에게 얼마나 어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전작들을 꾸준히 들어온 이들에게는 대단히 반갑고 고마운 음반이 될 것 같다. 한단계 더 성장했음이 분명히 느껴진다. 그 성장곡선의 방향 자체에 반대한다면 할 말 없지만.

Damn by Kendrick Lamar

메이저 매체들에서 올해의 음반으로 거론되고 있는데 딱히 반대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게 잘 완성되어 있는 것 같다. 다만 이제 다음 행보부터는 분명히 매너리즘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가 하는 모든 음악이 항상 좋은 것도 사실이지만, 항상 좋은 것을 ‘항상’ 한다는 것은 ‘정체’로 읽힐 여지를 제공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 그에게 새로운 것에 대해 이야기할 힘이 아직 남아 있다고 믿는다.

Elwan by Tinariwen

알리 파루카 투레, 아마두와 마리암, 살리프 케이타 등 말리 출신 거장들의 음악이 영미씬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 기타를 중심으로 조금 더 로킹한 음악을 하는 티나리웬도 미국 안티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본격적으로 미국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미국에서 낸 여섯번째 스튜디오 음반 은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음반으로 거론되고 있고, 들어보니 과연 허언이 아니구나 싶을 정도로 홀딱 반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말리 음악을 파볼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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