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nity

나는 노빠다.  그에 대한 나의 생각에 대해 몇 년 전 어설픈 일기 하나를 쓴 적이 있다.  이후 그를 ‘정치적으로 죽인’ 세력이 권력을 잡고 있던 몇 년의 시간이 더 흘렀고, 나는 지금 한국에서 그가 한 때 몸담으며 꿈을 키웠던 곳을 위해 일하고 있다. 아직 국회의원실과 직접적인 업무를 주고 받은 것은 아니지만 같은 캠퍼스에서 오며가며 그들의 호흡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고 있다. 그런 와중에 그가 그토록 물리치려고 애썼던 망령의 딸이 구속되는 사건이 있었고, 이 사회는 예상보다 빠르게 새로운 대통령을 뽑게 되었다.

가장 친한 친구 중 한명은 문재인에게 투표하지 않겠다는 이유로 “스스로의 힘으로 이룬 것 없이 누군가의 후광에 기대어 권력을 잡으려는 사람”이라는 그 친구 나름대로의 판단을 들었다. 박근혜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그 친구가 당시 지지했던 안철수는 스스로의 힘으로 기업을 일으켜 세우는 등 이룬 것이 많기 때문에 믿을만 하다는 논리였다. 그 친구의 논리대로라면 전자와 같은 “후광에 기대려는 사람”의 대표격이 박근혜라면, 후자의 경우 이명박을 안철수와 비슷한 범주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친구처럼 문재인을 노무현의 사람으로 인식하고 노무현의 정치적 유산을 물려받아 대통령직에 오르려는 사람 정도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지금까지도 그 생각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닌,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는 유명한 말은 노무현 그 자신의 입에서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의 전속 사진작가이자 문재인 대선캠프의 영상팀장이기도 했던 정철영씨는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노무현과 문재인을 “아!”와 “아~”로 구분했다. 만나는 즉시 이미지와 색깔이 용수철처럼 튕겨져 나오는 사람이 노무현이었다면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의중을 파악하고 이해하게 되는 사람이 문재인이라는 의미였다. 그래서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 먼저 세상에 발견되었고, 문재인은 그의 친구가 저세상으로 가는 마지막 여행길까지 배웅한 뒤에야 천천히 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더 흐른 뒤에야 세상이 “아~”하며 문재인의 색깔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통령에게 ‘자격’과 ‘경력’이 필요하고 그 것들이 스스로의 힘에 의해 주도적으로 완성되어야 한다면, 거대 정당을 이끌고 몇차례의 선거에서 승리한 박근혜보다 더 화려한 경력과 더 단단한 자격을 갖춘 이는 없을 것이다. 아버지의 후광을 철저하게 이용한 그녀의 몸에는 동물적인 정치적 본능이 꿈틀대고 있었다. 자수성가의 표상이었던 이명박이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국가의 재산을 사유화시키는 것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철수라는 또다른 기업인 출신 정치인에게 몰표를 주고 대통령 후보로 성장시킨 호남의 심리 역시 이해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정치적인 레주메가 일천한 그에게 하나의 정당을 ‘창업’시켰다는 훈장을 수여함으로써 “우리도 대안을 가져보자”는 열망을 실현시켰으니 말이다. 문재인은 다른 방식으로 자격을 획득했다. 노무현 정부 내내 민정수석과 사회수석 등 청와대 요직을 두루 거치며 행정경험을 쌓았지만 그는 여전히  노무현의 그늘에 가리워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그만의 색깔과 그만의 철학을 포기하지 않으며 정당을 일궈나갔다. 그의 성품에 매료된 인재들이 민주당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촛불이 켜진 광화문으로 뛰쳐나간 수많은 정치인들 중 문재인이 ‘선택’된 것 역시 필연적이다. 그는 오랜 기간에 걸쳐 자신의 색깔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그 색깔은 노무현과 다르지만 노무현만큼 깊게 새겨질 수 있는 것이었고, 그 결과 다시 한번 기회를 얻게 된다. 세상을 바꿀 기회. 노무현이 꿈꾸었지만 보지 못했던 그 세상. 노무현과 만난 것이 “운명”이었다면 이제 문재인은 스스로 운명의 다음 장을 써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더이상 노무현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으며 “친문세력”에 대한 비토로 상대방의 비난의 물결이 흘러가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부터다.

노무현을 죽인 두 개의 망령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박정희로 상징되는 친일반공주의다. 이들은 이번 대선에서도 태극기와 성조기, 그리고 십자가라는 불가해한 조합의 상징물에 의지하며 과거에 천착하려는 천박한 종교적 열망을 감추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어지러운 시대의 틈바구니에서 괴물처럼 약자를 잡아 먹으며 성장한 천민 자본주의 세력이다. 재벌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태어난 이명박은 이 괴물이 낳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씨앗이었다. 촛불집회를 통해 시민의 힘으로 전자를 밟고 일어설 수 있는 동력을 얻었다면 그보다 조금 더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후자는 선거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죽은 노무현과 살아남은 문재인을 괴롭혔다. 그 망령 중 일부는 안철수에게 붙었다. 성공한 기업인, 한국사회에 몇 안되는 올바른 소리를 하는 오피니언 리더, 기업의 생리를 잘 이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교육에 대한 이해도 밝은 해결사 이미지. 안철수는 이 시대의 좋은 대안이었다. 망령의 일부는 홍준표에게 붙었다. 죽어도 문재인은 싫다는 사람들은 박근혜가 속한 정당에서 배출한 후보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표를 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정당이 매 선거마다 택한 전략이기도 하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잘못을 많이 저지를 수밖에 없지만, “이번에 내세우는 후보는 과거의 잘못과 상관이 없다” 라는 논리로 무장하여 무지한 노년층과 이기적인 부유층을 자극한다. 이게 정확하게 먹히는 지역이 바로 대구와 경북, 그리고 서울 강남구다. 대구와 경북에 사는 그 사람들은 이런식으로 매번 스스로를 기만한 결과 모든 나쁜 경제지표에서 순위권을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대구는 망해가고 있지만 이들은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불우한 현실은 남탓을 하면 그만이다. “이게 다 노무현때문이다”는 아마 5년 뒤에도 유효할 것이다.

문재인이 기적적으로 이 사회를 바꿀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김대중도 하지 못했고 노무현도 하지 못한 일이다. 조선일보는 여전히 건재하고 삼성도 지금까지 쌓아온 시스템을 더 견고하게 만들며 버틸 것이다. 대구와 경북에는 아직도 수백만의 사람이 살고 있다. 약자를 밟고 일어서는 부유층은 더 집요하게 재산을 끌어모으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검찰과 같이 영원한 권력을 가진 집단은 다시 한번 대통령을 모욕주려 할 것이다. 이 모든 장애물을 문재인 혼자 넘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여러번 걸려 넘어지고 상처를 입을 것이며 어쩌면 영구히 다리를 절게 될지도 모른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 자체로는 아무런 성취도 얻을 수 없다. 무수히 공격받고 무수히 넘어질 그의 옆과 뒤와 앞에서 그와 함께 서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노무현이 세상을 등질 때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집단적 부채의식이 ‘미안하다’라는 말을 기어코 한국인의 입 밖으로 나오게 만들었다.  세월호 사건에서 아무 상관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일반 시민들이 “미안하다”고 이야기한다. 공감을 할 수 있게 되었고, 타인을 생각하게 되었다. 노무현의 죽음은 그렇게 아주 큰 씨앗 하나를 한국사회에 심어 놓았다. 문재인이라는 큰 나무 주변에는 그 씨앗으로부터 솟아난 작은 풀잎들이 함께 해야 한다. 그래서 땅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그래서 비가 와도 나무의 뿌리가 흔들리지 않게 해야 한다. 그것이 이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이, 내가 앞으로 5년동안 해야 할 일이다.

나는 노빠다. 빠는 빠답게 해야 할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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