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여행: 창원, 대구, 서울.

지난 주말에는 창원과 대구에 다녀왔다. 결혼 이후 매 7일마다 한 번씩 주어지는 주말의 상당 부분이 ‘가족’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내 입장에서는 아내의 가족으로까지 가족의 범위가 확대된 셈인데, 원래 익숙한 나의 가족에게 새로운 멤버를 소개시켜주고 친해질 시간을 마련해주는 작업이 필요한지라 기존의 가족에게 할애하는 시간 역시 비례해서 증가하게 되었다. 아내 역시 마찬가지 입장라 ‘우리’의 가족에게 투입되는 시간과 노력이 몇곱절은 늘어난 것처럼 느껴진다. 결혼을 통해 서로의 부모에게서 떨어져나와 법적으로 독립된 하나의 가정을 생성하게 된 것이 오히려 ‘예전’ 가족들에 대한 생각을 한번 더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창원은 결혼 전에는 한번도 방문해본 적이 없는 도시다. 군대 시절 바로 윗 고참이 창원 출신이었는데 힘이 무척 세고 단순 무식한 문제 해결방식을 선호하는 성격 탓에 “황소개구리”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양반과 잡담을 할 때 항상 나오던 단어가 “상남동”이었다. 아시아 최고의 유흥가, 외국인 노동자의 천국, 빌딩 하나에서 모든 욕망을 해결할 수 있다, 등등의 화려한 미사여구를 붙이는 것으로 보아 창원 시민으로서 상당한 자부심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나에게 창원의 이미지는 딱 그정도였다. 그 당시 현재 아내의 부모님, 그러니까 나의 장인 장모님이 운영하시는 가게가 바로 그 상남동 한복판에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뿐더러, 더 나아가 지난 주말 그 가게에서 장인 장모님을 도와 일을 거들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현재 창원은 예전 도시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는 마산과 계획도시 창원, 그리고 신/구시가지가 섞여 있는 진해 등 세 도시가 통합되어 있다. 도시 간 거리가 존재하는데다 분위기도 많이 달라 하나의 완전한 도시라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는다. 깔끔하게 구획된 도로와 공공기관들이 대규모 공단과 함께 자리잡은 창원은 쾌적하고 평화롭다. 그 요란스럽다는 상남동조차 서울의 명동이나 강남역과 비교하면 한적하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사람들은 많이 사납지 않으나 경상도 사람 특유의 서두름과 퉁명스러움은 어쩔 수 없이 존재한다. 도시의 분위기 자체는 우리나라에서 ‘지방’이 갖는 여러 편견에서는 꽤나 자유로운 편이다. 낙후되었다는 인상은 쉽게 가질 수 없으나 이 도시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 역시 찾기 힘들다. 프랜차이즈 상점들이 점령한 유흥가 틈새로 가끔 보이는 동네 상점들 역시 홍대나 성수 어딘가에 있는 흔적을 그대로 베낀 느낌이 강하다. 그런데 이건 아마 전국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홍대나 성수 등 ‘핫’한 동네 역시 특유의 고유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긴 힘들 것이다. 그들 역시 윌리엄스버그나 포틀랜드 어딘가에 있는 무언가를 훔쳤을 가능성이 높다.

대구에는 태어날 때부터 줄기차게 오르내렸다. 아버지의 고향이자 조부모님 등 친가 식구들이 살고 있는 곳이라 1년에 최소한 두 번은 왕래했던 것 같다. 중공업 도시인 창원과 달리 대구는 제조업 위주로 발달했다. 산 속에 갇힌 분지 지형이 주는 폐쇄적인 문화에 더해 생활의 호흡조차 조금 더 빨라질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정치적으로 가장 많은 혜택을 받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이 지역 사람들의 성향은 전국에서 발전이 가장 더딘 도시라는 오명을 안게 만들었다. 뻥 뚫린 도로와 높게 솟은 빌딩, 모노레일과 같은 눈요깃거리들은 기간산업의 침체 속에서 부동산 시장 버블 붕괴 등의 위험요인으로 쉽게 연결될 수 있다. 도시는 덥고 답답하다. 사람들은 성마르고 공동체의식은 결여되어 있다. 공동체의식의 탈을 뒤집어 쓴 집단 이기주의만이 여러 곳에서 감지될 뿐이다. “세월호는 교통사고일 뿐”, “친손자와 외손자는 다르다”, “문재인은 무조건 싫다” 등의 표현을 아주 최근에 그곳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들었다. 물론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서울에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뿌리를 따지고 들어가면 그 줄기 어딘가에는 대구라는 지명이 반드시 출현할 수 밖에 없다. 거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이틀간의 고된 여정을 마치고 서울역으로 돌아와 집으로 가는 길에 서울의 밤 풍경이 조금 달리 보이는 것을 느꼈다. 창원과 대구에 걸려 있는 수많은 네온사인과 간판들은 서울의 몇년 전, 혹은 몇십년 전 걸려있던 것들을 가져다 놓은 느낌이다. 서울과 창원, 대구는 같은 2017년을 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시간을 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을 ‘후진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서울이 조금 더 빠르게 베낄 뿐이다. 왜냐하면 자본은 항상 서울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서울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아이들 교육때문에, 집값 상승폭때문에, 벌이가 괜찮은 직장때문에, 문화적 혜택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등 이유는 다양하다. 사람들이 서울에서 떠나지 못하니 자본도 서울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고, 그 자본은 ‘더 새롭게’가 아닌 ‘더 빠르게’에 집중되어 소모된다. 누가 더 빠르게 베낄 수 있는가의 싸움을, 현대 한국사회는 여전히 하고 있는 셈이다. 창원과 대구라는 지방에서도 꽤 좋은 도시들이 고유성을 상실한채 서울을 쫓아만 가고 있는 것도,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가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 채 순간의 차익만을 노리며 현재의 위상을 위태롭게 유지하고 있는 것도 결국 나라의 고유한 철학이 부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주말 성북동에서 곤지암으로 가게를 옮긴 단골 미용실 사장님께 “영어 공용화”에 대해 말씀드렸다. 언어적 장벽이라도 허물어버리면 더 많은 노동인구, 그것도 젊은 층에 집중된 사람들 사이에서 왕래가 더 빈번해질 것이고, 이것이 장기적으로는 문화적 장벽마저 낮출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 내 생각에 한국은 현재 문화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섬나라다. 사실 언어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요즘 어린 친구들은 토플시험 만점 받는 것이 일도 아니라고 한다. 그들이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문화적 고립성이다. 미국에서, 혹은 다른 영어권 국가에서 그곳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살아갈 수 있다면 한국사회의 꽤 많은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 ‘다름’을 경험하고 와야만 한국에서 ‘다름’이 인정받을 수 있다. 현재 한국사회는 다름을 인정받기 힘든 구조다. 역설적으로 더 큰 격차의 다른 문화를 경험한 자만이 한국 사회에서 그 다름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창원부터 대구를 거쳐 서울로 이어지는 지난 주말 여행동안 내가 고민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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