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주: 82년생 김지영

82년생 김지영
한국은 불균형과 노골적인 차별이 일상화된 사회다. 윗 세대의 아랫 세대에 대한 억압, 장애인과 성적 소수자에 대한 당당한 차별, 자본가와 노동자 간 넘을 수 없는 장벽 등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채 남아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불균형, 혹은 차별의 대상은 남성의 여성에 대한 폭력일 것이다. 이 나라의 절반이 만성적인 폭력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으며 또다른 절반은 그것이 폭력인지 모른채 살아가거나 폭력의 주체가 되지 않음으로써 비판의 대상에서 피해 나가려는 소극적인 위치에 머물러 있다. 한국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갉아먹는 수많은 요인들 중 가장 먼저 제거되어야 하는 것이 남녀 불균형, 혹은 여성에 대한 차별이고, 가장 먼저 해방되어야 하는 계급이 여성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한국의 여성운동, 혹은 페미니즘 운동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현재 한국 여성의 위상이 지금과 같지 못했을 것이다. 문학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고통과 불편함을 문학의 차원에서 다루는 작업은 매우 소중하고 더 발전되어야 한다.

<82년생 김지영>은 2016년 현재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30대 중반 여성의 ‘평균’적인 삶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 ‘평균’의 삶을 살아가는 가상의 여성이 겪는 다양한 폭력을 구체적인 수치와 함께 표현한다. 어린 시절부터 남동생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학교에서 여학생에 대한 비논리적인 억압에 힘없이 저항도 해보며 자라다가 성추행과 성폭력에 무작위로 노출되는 삶을 견디어 내어야 한다. 시스템적으로 불공평하게 설계된 취업관문을 어렵게 통과하면 육아가 보장되지 않는 불안정한 위치에서 처음부터 다시 불공정경쟁을 시작해야 한다. 결국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는 가정주부가 되면 자아실현은 배부른 사치처럼 느껴지고, 시댁의 눈치없는 잔소리에 익숙해질 때쯤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자신을 발견한다. 이 책은 이처럼 딱히 실패하지도, 딱히 특별한 삶을 살지도 않은 이 평범한 여성이 결국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병을 얻게 된다고 마무리짓고 있는데 그 섬뜩한 결론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이 책은 소설처럼 읽히지 않는다. 그리고 위와 같은 여성주의적 시각을 충분히 이해하고 읽는다 해도 대단히 멍청한 책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먼저, 이 책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노골적으로 페미니즘 문학을 표명하고 있지만 그 어떠한 새로운 경향이나 에너지를 느끼기 힘들다. ‘평균적인 여성’을 가공하여 대다수의 여성에게 공감대를 얻으려고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대도시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에 성공한,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하나 낳은 여성이 한국사회 여성의 삶을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전형적인 평균의 함정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위와 같은 삶을 살지 않는 여성이 훨씬 많을 것이고, 위와 같은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여성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어쩌면 이 82년생 김지영씨의 삶은 많은 여성들에게 부러움과 질투의 시선으로 읽힐 수 있다. 페미니즘이 사치처럼 느껴지면 안된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삶 안에서 함께 호흡해야 한다. 왜 페미니즘을 드러내기 위해 ‘평균’적인 여성의 삶을 시대순으로 따라가야만 하는 것인가. 또한, 개개인에 따라 여성주의보다 더 우월한 가치를 갖는 다른 가치에 의해 무시될 수도 있다. 당장 먹고 사는 것이 힘든 여성, 혹은 아무런 문제 없이 철저한 보호를 받으며 자란 여성 등 ‘평균’이 아닌 양 극단에 속한 여성들이 고민하는 것들이 과연 김지영씨의 삶과 호응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어떠한 답도 내어놓지 못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 책은 김지영씨가 겪는 고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무리한 설정을 지나치게 많이 삽입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남성이 폭력적으로 타자화되고 있다. 가족 내에서 모든 특혜를 받는 남동생은 그림자처럼 존재감이 없고, 아버지는 멍청한 존재로만 묘사된다. 김지영씨를 스쳐지나가는 모든 남성은 폭력의 주체로서만 기능한다. 심지어 이 책의 화자인 정신과 의사조차 자기 자신이 만성화된 남녀 차별의 주체임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의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사회의 절반을 멍청하게 묘사하는 것이 나머지 절반을 위하는 최선의 방식인지 고민을 많이 했는지 의문이다. 발전적이지도 않고, 자기성찰적이지도 않으며, 이유없이 남탓만 하는 철부지 어린아이의 투정만 잔뜩 적혀 있다. 이 책에는 ‘그래서’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가 없다. 고통의 나열은 이미 현실에서 우리 모두가 충분히 경험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걸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이 2016년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더욱 더 안타까운 점은, 주인공인 82년생 김지영씨조차 별 생각이 없어보인다는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일차원적이다. 문장은 새롭지 않다. 건조한 기사나 칼럼을 읽는 느낌이다. 신문 등에서 따온 구체적인 수치가 등장할 때마다 그래서 헛웃음이 나온다. 이 책의 저자는 성실한 정보수집자는 될 수 있을지언정, 문학이라는 예술의 영역에서 일할 만큼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목적이 너무 뻔히 읽혀서 재미가 없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이 지나치게 나이브해서 설득력이 높지도 않다. 차라리 기사나 칼럼의 형식으로 썼다면 재미없는 글 하나 읽었네, 하고 넘어가면 되겠지만 소설의 영역에서 이런 책을 읽으니 오히려 기분이 나쁘다. 우리가 문학에서 기대하는 것은 이러한 글이 아니다. 논문이나 칼럼이라면 현실적인 대안이나 정책적 해결점을 제시해야 할 것이고, 문학에서는 모두가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고통의 한 단면을 예술적인 차원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나 권여선의 <레가토>가 여성의 삶을 드러내는 방식을 참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프로의 냄새가 나지 않고 아마추어의 설익은 의욕만 잔뜩 읽히는 책이다. 차라리 대학생의 습작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3 thoughts on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1. 포스팅 내용에 수긍을 하지만, 남자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싶어하고 여자는 일종의 위안(?)정도 받는 수준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면이 있어서 이 책도 좀 그런 식 아닌가 싶..어욥..

    • 사실 공감도 많이 되는 좋은 소설인데 제가 좀 과격하게 표현했죠 ^^;

    • 아 사실 아직 읽진 안았어욥.. ㅋㅋ 그치만 이 책을 읽음으로써 제가 이후 나이들어 감내해야할 일들의 리스트를 어느정도 훑고 담담해질수 있겠다 싶네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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