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선택

어제 만난 ㅎㅇ씨에게 “내 유학시절은 실패였다”라는 말을 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내 유학 과정을 목격하고 말 없이 응원한 그와 같은 사람들의 고마운 마음 덕분에 나는 그 시간을 무사히 ‘버텨’ 낼 수 있었지만, 박사 과정에서 확인 가능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너는 항상 2% 부족한 삶을 살았다.”

라는 누나의 지적(군대 훈련소에서 누나에게 받은 첫번째 편지에 적혀 있었다)은 여전히 유효했다. 스무살 중반까지 꾸준하게 쌓여온 나태함의 흔적은 6년의 짧은 시간으로는 극복이 되지 않는 진득한 찌꺼기로 남아 있었다. 나는 그저 그런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고, 그저 그런 졸업 논문을 썼다.

“네 재정적 문제가 아니었다면 졸업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지도 교수님의 지적은 그래서 더 뼈아팠다. 결국 바뀐 것이 없는 상태에서 졸업을 한 것이다. 그런 나에게 한국에서의 취업은 하나의 기회였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내 졸업 논문의 허점을 맹렬하게 공격하는 사람이 그 곳에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나는 이 회사에 취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지시로 연구조직을 갑자기 신설하게 되었고, 그래서 젊은 박사급 인력이 급하게 ‘다수’ 필요한 당시의 상황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곳에 취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열 두명의 후보군 중 나는 처음 세 명 안에 들지 못했다. 처음 오퍼를 받은 우수한 인재들이 다른 곳을 선택한 뒤에야 중간 쯤의 순번표를 들고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나에게 전화가 왔다.

그러한 시작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 기회를 잘 활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까라면 까야 한다”는 뻑뻑하고 보수적인 조직의 문화 역시 잘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술을 마시라면 마시고, 연구와 상관없는 일을 하라면 했다. 같은 팀 세 명의 박사들 중 나이가 제일 어리다는 점도 궂은 일을 떠맡아 하기에 좋은 이유였다. 생전 처음 해보는 회사 생활이었지만 매일 출근하고 퇴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점에 감사하며 다녔다. 동년배 친구들보다 더 많은 돈을 받고 독립된 연구실과 성능 좋은 컴퓨터까지 제공받은 업무 환경 역시 분에 넘치는 호사였다.

우리 ‘연구팀’은 연구를 하라고 만든 신설 조직이었지만, 그 규모가 너무 작아 다른 부서 아래 속한다는 한계를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었다. 실무 인력 한 명 한 명이 아쉬운  회사의 빠듯한 사정이 우리팀을 편안하게 계속 내버려 두지 않았다. 독립된 연구실은 부서내 공간 한 쪽으로 줄어들었고 상부에서의 지시는 조금 더 빠른 호흡으로 내려왔다. 성과를 뽑아내라는 독촉은 더 심해졌고 장기적인 연구계획은 승인받지 못했다. 팀원들처럼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온 팀장님은 부서와 우리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했다. 위에서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는 것에는 상처가 뒤따랐다. 논리로만 무장하기에는 우리가 생각하지 않는 다른 종류의 ‘정치 논리’가 너무 강하게 작용했다.

결국 팀장님은 지방으로 발령이 났다. 나는 실무팀으로 파견을 갔다. 팀장님은 강릉에서 그 지역 민원을 처리하는 일을 맡게 되었고 나는 실무팀에서 아주 빠른 호흡의 보고서를 생산해내는 일을 해야 했다. 어느날 아침 출근길, 문득 회사에 가기 싫어졌다. 연구팀에서 일할 때에는 단 한번도 느껴보지 않은 감정이었다. 매일 아침 오늘은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떤 연구결과를 뽑아낼지 두근거렸다. 야근을 해도 즐거웠고 주말에 출근해도 즐거웠다. 실무팀에서는 그런 감정을 느끼기 힘들었다. 그때부터 고민이 깊어졌다. 유학시절을 함께 보낸 한 형님에게 자문을 구했다.

“결국 종혁씨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하는 사람이구나.”

그 말을 듣고, 와이프의 깊은 이해가 없었다면 진행하기 힘들었을 일을 시작했다. 몇군데 원서를 넣었고 대부분 낙방했다. 이 곳에서 꾹 참고 논문을 열심히 써서 내년 쯤 학교로 바로 가야 하나, 하고 마음 먹을 무렵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신경써서 입사원서를 준비했던 곳이었다. 역시 신경써서 면접을 준비했고, 당연히 떨어질 줄 알았던 그 곳에서 좋은 연락이 왔다. 박봉-이라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적은 연봉-에 개인 연구실도 없지만 금리와 물가 등 내 박사학위 전공과 관련이 깊은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연구원 개인에 대한 자유도도 상대적으로 높고 개인적으로 노력만 하면 논문 발표도 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국가를 위해 공식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기회는 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큰 영광이었다. 잠재 경제성장률을 예측하는 모형을 내부에서 지켜볼 수 있는 기회 역시 꽤 커보였다. 지도교수님이 계신 곳과 정확히 같은 일을 하는 곳이라는 사실은 내 인생의 흥미로운 변곡점을 맞이한 것만 같아 재미있게 느껴졌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와이프에게 이야기했고, 그녀 역시 흔쾌히 동의해주었다.

유학, 첫번째 직장, 그리고 두번째 직장. 너무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오로지 내 의지로 선택한 세 번의 순간이 있었다. 모두가 가지 말라는 유학을 혼자 결심했고 준비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첫번째 직장을 다니며 평생의 반려자를 만났다. 그리고 이제 그녀와 함께 세번째 선택을 했다. 이 선택이 올바른지에 대한 확신은 당연히 없다. 아직도 학자로서의 나를 신뢰하지 못한다. 물론 이전보다 조금 더 희망이 보이기는 한다. 드디어 첫번째 논문 게재가 확정되었고, 전에 발표한 정책보고서에 대한 언론 및 유관기관의 관심도 지속되고 있다. 개조식 보고서를 쓰는 법을 배웠고, 조직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며 내 생각을 담아낸 보고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요령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그와 동시에 개인의 생각을 담은 논문을 쓰는 일도 계속 하고 있다. 나는 QJE나 AER에 논문을 게재하고 전세계를 공짜로 여행하며 세미나를 하는, 그런 삶을 살지는 못할 것이다. 그 정도 높은 수준에서 세상에 공헌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이제 잘 깨달았다. 하지만 남들보다 조금 더 낮은 수준에서, 조금 더 느린 속도로, 지향하는 지점으로 계속 가고는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는 된 것 같다.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앞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알겠다. 내 유학시절은 실패였고, 첫번째 직장생활에서도 우리팀이 이룩하고자 했던 바를 결국 완수하지 못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내 인생이 실패를 향해 가고 있다고는 이야기하지 못하겠다. 마이클 조던은 성공한 슛보다 실패한 슛이 더 많았다. 그래도 그의 인생은 성공으로 기억된다. 나 역시 연속된 작은 실패을 겪으며 조금씩 단련되고 있음을 느낀다. 무언가 거창한 것을 이룩하고자 하는 욕심은 없다. 그저 내 그릇에 맞게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을 뿐이다. 이것이 근거없는 오기인지 확실한 자신감인지는 앞으로 몇년이 지나면 조금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6 thoughts on “세번째 선택

  1. 저는 천천히라도, 느리게라도, 어느 한 방향을 계속 보고 걷는다면 결국은 그 지점에 다다른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은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고요.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고 고민해보고 그리고 결정을 내리게 된 종혁님을 응원합니다. 언제나처럼 좋은 글이고, 언제나처럼 또 좋은 생각이에요. 사람은 결국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봐요. 어떤 형태로든 말이지요.

    • 감사합니다. 잘 계시죠? 늘 이렇게 드문드문 안부를 여쭙게 되네요.. 이번주부터 출근 시작했어요. 아직까지는 느낌이 괜찮네요. 제 선택은 항상 얻는 것과 잃는 것을 동시에 가져다주더라구요. 이번에도 그럴 것 같아요. 얻는 것에 감사하고 잃는 것을 잘 떠나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어요.

    • 감사합니다 ㅎ 잘 계실거라 믿고, 저도 잘 살고 있음을 전합니다.

  2. 인스타 통해서 기사 소개도 봤어요. :) 이렇게 성과를 내기까지 어려움이 많았겠구나 다음 행보는 어떻게 하시려나, 한번 뵙지도 않았지만 갑자기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런 제 맘을 읽기라도 한 듯 이런 글을 올려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이룬 것 없이 그냥저냥 살아온 (인류에 대한 공헌이라고는 꿈도 못 꾼) 저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는 글입니다. 앞으로도 응원할게요.

    • 기사까지 보셨군요 ㅋㅋㅋ 부끄럽습니다.. 성과라고 할 것 까지 없구요, 그냥 다들 살고 있는 만큼만 살고 있습니다. 각자 자신이 하는 일이 가장 값지고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일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요. 저도 더 열심히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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