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가끔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가난해져 작은 것도 커 보일 때가 있다. 예컨대 매일 반복하는 출근과 퇴근이 가끔은 무척 감사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퇴근하기 위해 해야만 하는 출근, 그 출근을 하기 위해 하고 싶어지는 퇴근, 그리고 다시 출근. 이 루틴의 반복은 정기적인 월급을 받아내기 위한 기본적인 의무이기도 하지만,  통장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누군가에겐 매일 일을 할 수 있는 자리가 보장되어 있다는 축복의 신호일 수도 있다. 

노동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주고 사회를 사회로서 존재하게 해주는 사회적 약속의 가장 작은 단위다. 노동을 함으로써 생산물이 축적되고 그 축적된 생산물을 나눔으로써 인류는 사회라는 단위로서 진화할 힘을 얻는다. 사회로부터 받은 교육을 통해 잉여 노동력을 획득한 개인은 그 노동력을 사회에 제공함으로써 살아갈 여유를 얻고 사회는 그 노동력을 자양분으로 삼아 발전을 꾀한다. 노동력의 질이 차별화될수록 여유의 크기는 커지게 되고 어떤 뛰어난 이들은 노동가에서 자본가로 신분을 바꾸기도 하며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기도 한다는, 뭐 그런 뻔한 이야기가 떠오르는 이유는 오늘 나의 마음이 약간 가난해졌기 때문이다. 

금호역 개찰구를 빠져나오는데 개찰구 밖에서 어린 소녀가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겉옷도 입지 않은 그 소녀는 내 뒤에 있던 그녀의 엄마에게 뛰어가 품에 안기며 말했다. 

“오늘도 고생 많았어요. 이제 집으로 가요.” 

나는 그녀의 엄마가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른다. 식당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는 여인일 수도 있고 대기업의 중견 간부일 수도 있다. 그냥 지인의 일을 며칠 도와주는 전업주부일수도 있고 혼자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일수도 있다. 어쨌든 그 순간의 나는 고작 열시간 정도 책상머리에 앉아 그래프를 끄적거리며 인생 참 고단하네, 라고 불평하다 막 튀어나와 집으로 향하고 있던 참이었고, 그 소녀의 “고생했다”는 한마디가 나를 향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오늘도 고생한 사람”의 하루는 값진 것이다. 그것이 원치 않는 출근과 퇴근의 굴레바퀴에 갇혀 있다 해도 말이다. 네이버 부동산을 보며 세상에 돈 많은 이가 이리도 많구나, 탄식하다가도 반짝반짝 빛나는 삶의 작은 파편을 발견하는 이런 순간은 그저 마음이 가난해지며 어깨를 낮추게 되는 것이다. 

2 thoughts on “퇴근길. 

  1. 저희 어머니도 매일 밤늦게 퇴근하세요. 그리고 아침 일찍 출근하시고요. 전역하고 그 모습을 보니 너무 죄송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종종 마중을 나가는데 그때마다 환하게 반겨주십니다. 갑자기 생각나서 끄적였습니다.
    오늘 하루도 고생많으셨어요!!

    • 매일밤 늦게 퇴근하시는 민형씨 어머니에게 죄송한 마음을 가지는 것 자체가 이미 효도하고 계시다는 증거예요. 부모님은 때로 실제로 무언가를 받는 것보다 마음 그 자체를 더 고마워 하시더라구요. 오늘 하루도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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