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브 에거스: 비틀거리는 천재의 가슴아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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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소설책 크기인 신국판에 신명조체, 폰트 사이즈 10에서 11 정도의 크기로 번역된 책의 두께가 600쪽이 넘어가면 일단 책을 집어 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약간의 고민을 하게 된다. 빠르게 읽어나간다고 해도 최소한 며칠이 걸릴 정도의 분량에 가지고 다니면서 읽기 위해 팔과 어깨의 근육에 양해를 구해야 하는 무게, 그리고 혹시나 이 책을 읽기로 한 결정이 잘못되었을 경우 얻게 되는 내상의 크기 등을 생각할 때 책의 첫 쪽을 넘기기 위해 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미국의 떠오르는 신예 작가 데이브 에거스의 데뷔 장편 소설 <비틀거리는 천재의 가슴아픈 이야기>는 장황한 책의 제목만큼이나 수다스럽고, 그래서 분량도 엄청나다. 이 책의 중요한 특징은 엄청난 분량을 자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서사구조를 찾기 힘들 정도로 정신 없이 ‘무언가가 나열’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설의 형식은 작가가 품고자 하는 주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부모를 모두 암으로 잃은 뒤 7살짜리 어린 동생을 건사해야 하는 20대 초반의 가난한 예술가 지망생이 겪는 정신적인 혼란을 표현하기 위한 문체와 서사구조는 분명 이러한 방식으로 표현될 필요가 있었다.

제목만큼이나 정신 없는 – 사실 이 소설의 제목이 거의 모든 것을 다 상징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시피 이 소설은 작가의 생애를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다큐멘터리든, 뉴스든, 소설이든, 수필이든, 실제 인물이 2차 가공되어 표현되는 그 어떤 생산품에 대해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까지 허구인지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그대로 재현할 수 없을 뿐더러, 그렇게 재현하는 것이 갖는 의미 역시 매우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작가의 시각과 의도에 맞게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어떤 현실이 얼마나 일관되게 편향되어 있는가를 관찰하는 것이 훨씬 더 흥미로운 읽기 방식이 될 것이다. 에거스는 이러한 면에서 분명 일정 부분 성공하고 있다. 작가의 의식의 흐름을 충실히 따라가다가도 인터뷰 등 다른 형식을 삽입하여 독자의 흥미를 지속적으로 자극하는 가운데 에거스는 자신의 삶을 둘러싼 여러 부조리를 나쁘지 않은 유머와 함께 어렵지 않게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결국 작가의 혼란을 독자가 충실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고, 반대로 이 책의 단점은 그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600쪽이 넘는 분량을 할애했다는 점이다. 모든 페이지가 쉽게 넘어가지만, 반대로 그 어떤 페이지에서도 밑줄을 긋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모든 단어에 생기를 불어넣었지만, 그 어떤 단어도 머릿속에 깊게 박히지는 않는다. 적절히 가볍고 적절히 무거운, 기존의 문학 문법을 적절히 배반하면서도 결국 기존 문학이 물려준 유산을 영리하게 활용하는, 요즘 주목받는 신진 작가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제이디 스미스처럼 완전히 판을 엎어버리는 것도 아니고 줌파 라히리처럼 기존 문학의 토대 위에 미학적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것도 아닌, 뭔가 애매모호하고 어중간한, 적당히 재미있고 적당히 지루한 작품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이때문이다.

일주일 넘게 이 책을 가지고 출퇴근하며 책을 끝내기 위해 많은 끈기와 용기를 내야 했다. 내가 투자(..)했던 노력만큼 이 책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었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미국의 문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일으키는 재미있는 작업들을 많이 하고 있는 젊은 작가의 역사적인 데뷔작(퓰리쳐상 최종 후보까지 갔다고 한다)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낭비가 많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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