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빨간 사춘기: Red Pl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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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스케”와 “케이팝스타”를 보고 자라며 뮤지션의 꿈을 키운 세대가 있다. 아이돌을 꿈꾸다가 이러저러한 사연들로 인해 인디씬으로 흘러들어온 뮤지션도 있다. 이들이 꿈꿔온 음악관은 그 전 세대와 어떻게 다를까? 이 세대가 만들고자 하는 음악의 선과 결은 기존 대중음악 산업에서 고수되어온 소비방식과 여전히 맞닿아 있을까? 수년 간 급격하게 달라진 씬의 패러다임과 달리 전부터 음악을 들어온 사람들은 여전히 음악을 듣고 있다. 이들에게 새로운 세대의 음악은 여전히 “좋은” 느낌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볼빨간 사춘기의 데뷔 음반 <Red Planet>은 최근 한국 팝음악의 급격한 변화과정에서 한번 쯤 생각해봄직한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한 훌륭한 대답이다. “좋은 음악은 시대를 가리지 않는다”라는 단순한 명제가 최근 한국 음악시장에서도 성립할 수 있음을 증명한 대단히 뛰어난 음반이다. 이들의 음악에는 핸슨도 보이고 리한나도 보이고 아델도 보이는데 그 어느 레퍼런스 하나도 그대로 베껴쓴 티가 나지 않는다. 기존에 존재하는 팝음악의 문법을 뻔뻔하게 빌려 쓰면서도 그룹만의 정체성을 확실히 지킬 수 있는 요인으로 여러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역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보컬 안지영의 음색과 소화력일 것이다.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색깔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버해서 내세우지 않아 금방 질리지도 않는다. 그리고 보컬의 독특함을 십분 살려주는 훌륭한 작곡, 작사 능력을 빼놓을 수 없다. 볼이 쉽게 빨개지는 여리고도 당돌한 사춘기 시절의 감수성을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드러낸 가사와 이를 잘 녹여낸 멜로디 라인, 그리고 깔끔한 편곡까지, 음반에 수록된 거의 모든 곡들이 평균 이상의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평론가들은 가장 볼빨간 사춘기다운 노래인 “우주를 줄게”나 알앤비 장르를 훌륭히 소화한 “나만 안되는 연애”를 가장 선호할 것이고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혹은 막 통과한 팬들은 “You(=I)”같은 달달한 노래를 좋아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싸운날”이나 “반지”처럼 감수성 충만한 노래들이 좋다.

화려하지 않은 단순한 구성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고 꽉 찬 팝음반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소중한 음반이다. 이건 최근 양적 확대에만 치중한 나머지 속이 텅 빈 영혼없는 음악을 양산해내는 메이저 음반사들에게 적지 않은 충고가 될 것 같다. 좋은 비교대상으로 최근 오랜 커리어 끝에 최초의 솔로 음반을 발표한 태연의 예를 들 수 있다. 화려한 세션과 엔지이너 등을 대동한 채 화력을 쏟아부었지만 음반의 그 어떤 지점에서도 좋은 팝 음악이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미덕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그녀가 커리어 내내 대체 무엇을 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볼빨간 사춘기의 이 음반을 들으며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실감했으면 좋겠다. 이런 처지에 놓인 베테랑 메이저 뮤지션들은 비단 태연 뿐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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