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니 빌뇌브: 컨택트(Arr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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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홍보팀의 멍청한 제목 바꾸기 행위로 인해 영화가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의 전체적인 의미가 완전히 왜곡될 위험에 처한 <컨택트>는 굉장히 잘 가공된 깔끔한 SF 영화다. 누군가는 지구 밖 생명체와의 ‘접선’에 초점을 맞추어 동명(..)의 영화 <콘택트>를 떠올렸을 것이고, 다른 어떤 이는 비선형적인 시간의 흐름같은,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과학 이론에 흥미를 느껴 <인터스텔라>와 같은 영화를 비교 대상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혹은, 연식이 좀 된 관객이라면 <미지와의 조우> 등을 떠올리며 이 영화가 반드시 참고했을 것이라고 추측해보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는 외계인의 갑작스러운 방문과 인류를 구하기 위한 개인의 희생이라는 SF 장르의 일반적인 소재를 제외하면 감독과 배우의 역량에 의해 오롯이 자기 색깔을 지키며 독보적인 위치를 획득하고 있다.

사실 “사용하는 언어에 의해 사고체계가 지배당한다”는 한 가설을 그대로 받아들여 윤회적 구성을 가지는 외계인의 언어를 인류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외계인과 한 언어학자의 사투(?)를 자연스럽고 적절한 서사구조라고 받아들이긴 힘들다. 먼저 작품의 설정을 그대로 받아들여 위의 가설이 옳다고 해도 천재적인 한 언어학자에 의해 해독된 새로운 차원의 언어가 강대국들의 전폭적인 지원에 의해 전세계로 뻗어 나가고 그 결과 인류가 그 언어를 사용하게 되어 3천년이 지난 뒤 그 언어를 창시한 외계 생명체를 돕게 된다, 는 ‘미래’를 관객들도 먼저 보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 간극이 너무 아득하게 느껴진다. 원형으로 보여지는 외계인의 문자가 해독되는 과정에서 관객이 참여할 틈을 전혀 주지 않고, 그 구조적 ‘비밀’은 등장인물들만이 간직하고 있는 비밀 자체로 간직된 채 영화가 끝나버리기 때문에 관객은 자신들과 동떨어진 차원에 사는 권력자들에 의해 인류의 미래가 수정될 수 있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약간 전체주의적인 결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설정을 비롯해 영화 곳곳에서 논리적 비약, 혹은 동의할 수 없는 지점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이러한 점들이 크게 불편하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첫째, 드니 빌뇌브 감독의 고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기대를 접고 그러려니 하며 보게 되는 것이고, 둘째, 빌뇌브 감독이 이러한 오류들이 크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다른 부분에서 극복을 잘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 비극적 미래를 뻔히 보면서도 그 미래를 향해 담담히 걸어 나가야 하는 언어학자를 연기한 에이미 아담스의 연기가 영화를 구원했기 때문이다.

빌뇌브 감독은 그 스스로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영화에 고스란히 드러난 <그을린 사랑> 이후 <시카리오>와 <컨택트>를 거치며 온전히 자기만의 리듬, 자기만의 색깔, 자기만의 분위기를 찾은 것처럼 보인다. 누가 봐도 빌뇌브의 영화다, 라는 인장을 처음부터 찍고 들어가는 자신감과 당당함이 보기 좋다. 아마도 최근 10년 간 가장 자기성찰적이며 내성적인 SF 영화일 것이다. 물론 그에게는 여전히 확고한 ‘입장’이 보이지 않지만, 그런 그가 SF 쪽으로 빠져서 <블레이드 러너> 속편을 만들기로 한 것은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이 잘 못하는 것을 최소화시키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천재가 아닌 범인의 재능을 가진 작가들에게 필요한 미덕이다. 에이미 아담스는 빌뇌브의 전작들에서 그저 소모되다시피 한 여배우들의 위치를 다른 차원으로 격상시킨다. 그녀는 이 영화가 빌뇌브의 영화가 아닌 아담스의 영화로 기억되게 만드는데, 감정의 아주 미묘한 부분까지 표정의 작은 일그러짐만으로 표현해내는 연기가 매우 탁월했다.

<컨택트>는 외계 생명체와의 조우(contact)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그들이 지구에 내려와(arrival) 주고간 선물(“gift”)이 과거를 미래로 연결시키고 미래를 현재로 내려오게 하여 인류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로 내딛게(arrival) 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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