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 너무 한 낮의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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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어려움을 견디어내는 숭고함은 타인에 대한 경멸로 시작될 때가 있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곤궁한 처지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현실과 정 반대의 길로 자신을 내모는 길을 택한다. 희망조차 남아 있지 않은 사람이 종교에 매달리는 모습은 차라리 논리적이다. 타인에게 받은 상처를, 혹은 자신의 모자람으로 인해 발생한 마음의 짐을 이와 관련이 없는 완전한 타인에게 더 큰 상처로 부풀려 넘겨 줌으로써 얻게되는 말초적 쾌감이 마치 면죄부인냥, 회복제인양 부끄러움 없이 이를 받아들이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이것이 인간 마음의 바닥 언저리에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것일지라 해도, 그 형상을 지켜보는 마음 역시 편할리 없다.

김금희의 소설집 <너무 한 낮의 연애>에 등장하는 화자들은 하나같이 어떤 어려움을 견디어내려 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바라보는 관찰의 대상은 화자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화자가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 자체로 하나의 수단이 된다. 어려움을 견디어내는 수단. 비록 저열하고 옳지 않다고 해도 소설 속 화자는 그 시선을 쉽게 거둘 수 없다. 어쩌면 대상을 억지로 아래로 끌어 내리는 그 비열함이 현재의 자신을 견디게 해주는 거의 유일한 버팀목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직으로 좌천되어 인생의 위기를 맞이한 “너무 한 낮의 연애”의 화자 필용은 관객이 서너명 뿐인 연극을 진행하는 과거의 사랑 양희를 매일 지켜보면서 삶을 견디어 낸다. 과거 인연에 대한 반가움때문이라고 하기엔 뭔가 꺼림찍한 무언가가 필용의 행동의 기저에 깔려 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조중균의 세계”의 화자 역시 비정규직의 설움을 딛고 정규직으로 올라서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 세상의 변방에 속한 사람이다. 그는 회사에서 묘하게 겉도는 조중균”씨”가 구축한 단단한 세계를 애써 낮추어 보려고 한다. 상사가 따라주는 술을 거절할 힘조차 없는 화자는 끝까지 자신만의 규칙을 지키려고 하는 조중균을 우습게 여기는 주변 세상에 결국 굴복하고 마는, 평범하고 나약한 한 인간일 뿐이다. “세실리아”와 “고기”의 화자, 혹은 주인공 역시 가만 보면 정상은 아니다. 그들 자신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불쌍하고 애처롭게 여길만한 삶을 살고 있다. 거짓과 위선으로 쌓아 올려진 위태로운 그들의 세상을 떠받들고 있는 힘은 남들과 아주 조금 다른, 혹은 아주 조금 더 변방으로 밀려난 것처럼 보이는 타인의 빈틈을 파고들고 끌어내리는 볼품없는 오만함이다. 그들은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이 ‘평범한 비겁함’을, 김금희는 과연 이 소설을 읽는 당신은 힘을 내어 거부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 그런 것에 기대지 않고 지금의 현실을 이겨낼 수 있겠냐고 묻는다. 이건 작가 스스로 깊은 성찰을 하지 않으면 닿을 수 없는 솔직함의 영역이다. 한번 접고 들어가야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 현문에 우답으로 응하지 않기 위해서는 독자 개개인도 꽤 깊은 수준의 반성과 성찰을 해야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집은 응당 현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삶을 견디어 내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며 자신의 숭고함을 지켜내는 일조차 참으로 힘든 시대이기 때문이다.

2 thoughts on “김금희: 너무 한 낮의 연애

  1. 안녕하세요. 우연히 들어왔다가 담담하고 치밀한 문장에 감탄해 댓글을 남깁니다. 이런 좋은 글에 유령독자 행세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김금희 소설가 본인도 인정한 것처럼, 이 작품들엔 참 ‘견딘다’는 말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실제로 작품 속 인물들도 그 단어가 아니고선 달리 설명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아내고요. 마지막 말씀은 무릎을 치게 할 정도로 좋네요. 멋진 시선을 가진 분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자주 들르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일기장처럼 사용하는 이 개인적이고 볼품없는 곳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소설집 참 좋았죠? 저는 좋게 읽었어요. 저도 블로그 종종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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