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nny Hval: Blood Bi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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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사람들의 성(surname)은 대부분 특정 장소의 오래된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들의 조상이 살던 곳, 그 곳의 (하지만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오래된 지명이 뿌리에 대한 기억, 혹은 흔적으로 남아있는 셈이다. “Hval”(“Vaal”이라고 발음한다고 한다. 실제로 들어보면 “(우)바알” 정도 느낌?)은 노르웨이어로 고래를 뜻한다고 한다. 노르웨이에서 나고 자란 뮤지션 Jenny Hval과 그녀의 조상이 고래의 뱃속에서 살았다는 기록은 없다. 하지만 요나 정도가 아니면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했을 그 고래의 뱃속에서 나온 듯한 제니 바알의 음악은  <Blood Bitch>에서 한 차원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간 듯 보여진다.

19세에 노르웨이의 고딕 메탈 밴드의 보컬(..)로 시작한 그녀의 음악 커리어를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멜번대학교에서 창작과 공연예술을 전공한 뒤 노르웨이로 돌아와 Rockettothesky라는 무대명으로 발표한 두 장의 음반으로 자국에서 명성을 쌓았고, 이후 본명인 Jenny Hval로 돌아와 로컬 레이블인 Rune Grammofon을 통해 발표한 두 장의 음반, 특히 그 중 두번째 음반인 <Innocence is Kinky>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음반의 성공을 바탕으로 뉴욕을 기반으로 하는 Sacred Bone’s Record와 계약을 맺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그녀의 미국에서의 커리어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처음으로 발표한 음반이 2015년에 나온 그 유명한 <Apocalypse, Girl>인데 이 음반을 묘사하기 위해 많은 평론가들이 곤욕을 치루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avant-garde electronic, art pop, experimental folk 등 기존에 존재해왔던 음악 개념들을 조합하여 만들어낸 복잡하고 어려운 표현들의 출현은 그녀의 음악이 얼마나 정의내리기 힘든지 역설적으로 증명해주는 좋은 예일 것이다. <Apocalypse, Girl>은 신경질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강박증에 걸린 로맨티스트를 보는 것과 같은 다차원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음반이다. <Innocence is Kinky> 시절부터 보다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여성으로서의 자기 표현같은 개념이 보다 명확하게 정의된 음반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인터뷰에서 제니 바알은 타인에 의해 정의내려진 여성의 고정관념과 주변적인 특징, 즉 창녀와 성녀의 이미지를 동시에 투영시키는 폭력적인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고 밝힌 바 있다. <Apocalypse, Girl>은 그러한 그녀의 입장이 명확하게 드러난 첫번째 시도이자, 최초로 대규모로 진행된 북미 투어에서 화제가 된 그녀의 전위적인 포퍼먼스와 함께 인디씬에서 본격적인 논의의 대상이 된 화제작이기도 했다.

<Blood Bitch>는 전작에 비해 음반으로서의 성격을 더 강하게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전작에 비해 한결 편안해졌다. 조금 더 “팝음악처럼 들린다”라고 표현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올란도라는 이름을 가진 벰파이어의 여행기, 혹은 피에 대한 깊은 성찰이라는 컨셉 음반을 표방하고 있지만, 여기에 바알 자신이 전작들에서 사용했던 음원과 멜로디, 가사를 뒤섞어 새로운 사운드스케이프를 창조하는 등 메타음악적인 성격도 강한 음반이기도 하다. 즉 과거에 해왔던 음악적 기록과 퍼포먼스를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여성이라는 일반적 개념, 집단적 정체성으로서의 자각을 함께 강화시켜나가고 있는데,  그녀의 표현대로 “가장 허구적(fictional)이면서 동시에 가장 개인적인(personal) 음반”인 셈이다. 70년대 인디 호러 영화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음반의 중심 서사구조와 음악적 이미지 창조 작업의 결과물 뿐만 아니라(호러 영화의 이미지를 음악으로 재현한 이 음반의 제작 목적이 “개인적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기 말하는 그녀도 정상은 아닌 것 같다..) 전작들에 비해 보다 과격해진 메시지와 한결 따뜻해지고 명확해진 멜로리 라인과 너그러운 사운드스케이프가 동시에 선사하는 묘한 균형감이 무척 흥미롭다. 귀에 들리는 단편적 소리들이 아니라 전체적인 이미지, 혹은 전체적인 공간 자체에 집중한다면 더 깊고 더 즐거운 그녀만의 음악세계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줄리아나 바윅(Julianna Barwick)과 함께 최근 가장 즐겨 들은 여성 종합예술가의 결과물이다.

2 thoughts on “Jenny Hval: Blood Bitch

    • ㅎㅎ 그럼요. 제가 뭐 별일 있겠습니까. 바쁜 일은 좀 마무리하셨나요? 저녁 식사를 한번 하시죠.. 조만간 연락 드릴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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