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labour rigidity

흔히 임금계약의 경직성으로 대표되는 노동의 명목 경직성은 학계에서도 많이 연구가 되어 있는 주제이지만, 노동의 실질적 이동, 혹은 진화가 더디게 이루어지는 현상을 거시경제학 관점에서 통찰력 있게 들여다본 연구결과는 상대적으로 많이 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사용자 측의 임금 요구 수준에 맞게 노동의 공급이 신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바이지만, 특정 계층, 혹은 특정 노동 집단이 언뜻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판단 결과를 바탕으로 노동의 공급을 의도적으로 중단시키는 사례에 대한 모형화 작업은 (최소한) DSGE 쪽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특히 문제가 될 여지가 많다고 생각되는 사례 두가지만 기록해본다.

먼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 사회에서 정년을 채운, 혹은 정년에 근접한 세대가 두번째 직업을 찾는 과정에서 경직성이 발생한다. 원래 이들의 계획대로라면 은퇴 연령에 도달했을 때까지 모든 충분한 자산을 바탕으로 부를 유지한 채 연금 등의 노후대책을 통해 생을 마감해야 하는게 정상이지만, 이들 스스로 창출한 역피라미드 구조의 인구 생태계에서는 연금이 효율적인 노후대책이 될 수 없으며 그 외의 다른 생계수단을 마련해야만 한다. 한국의 베이비부머는 이를 부동산 시장에서 찾고 있는 듯 하다. 즉 부동산 시장의 끝없는 거품 생산을 통해 자산가격을 뻥튀기하고 이를 되파는 과정에서 부를 축적하여 생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부작용은 크게 두가지로 나타날 것이다. 첫째, 부동산 가격 상승을 통한 자산의 축적은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않는다. 즉 시장에서의 균형가격만이 상승할 뿐인 이 현상은 수요-공급의 원칙에 의해 반드시 수요 측의 효용을 갉아먹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이것이 젊은 세대에게 전적으로 귀속되고 있으며, 이 결과 세대간 갈등이 증폭될 뿐더러 젊은 세대의 빈곤화 현상이 가속되고 있다. 이는 또다른 부작용인 노동 시장에서의 공급 부족 사태로 이어진다. 새로운 기술을 연마하여 은퇴 이후 제 2의 직업을 찾으려 하는 이들은 대부분 자영업으로 몰린다. 은퇴자금을 가지고 가게를 차린 영세자영업자는 이들 스스로 자초한 부동산 시장의 거품에 의해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디폴트로 내몰린다. 많은 경험을 축적한 베이비부머가 치킨집과 같은 단순 노동 사업으로 몰리는 이유는 경직적인 한국의 사내 문화와 적극적으로 경쟁력 있는 기술을 습득하려 하지 않는 보수적인 사회 문화 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기업 부장까지 한 사람이 자동차 기름을 닦을 수는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결국 은퇴 시기에 다다른 기성 세대는 자신들이 자초한 함정에 걸려 허우적거리고 있다. 아이를 하나만 낳다 보니 자신들을 부양할 젊은 세대가 극적으로 줄어들게 되었고, 부동산 시장에 올인하다 보니 그 거품때문에 은퇴 후 생계 유지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차라리 금융상품에 투자하였더라면 어땠을까. 올바른 투자는 기업의 자본을 확충시켰을 것이고 건전성을 확보한 기업은 더 나은 상품을 개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경제는 지금보다 더 나아졌을 것이고, 사람들은 아이를 조금 더 많이 낳았을 것이다. 경제가 떠받들어 주는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것은 생각보다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기성 세대는 금융 지식이 무척 부족한 편이고, 높은 인구 밀도와 좁은 땅덩어리에서 인간의 노동력보다 땅과 건물의 존재 가치가 더 귀하게 대접받는 시대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노동력을 귀하게 여기고 가족과 개인의 소중함을 존중하는 문화를 형성했더라면 좁은 땅덩어리가 가지는 한계를 인간 그 자체로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경직적인 사회 문화는 또다른 노동의 실질적 경직성을 불러온다. 바로 젊은 세대의 중소기업 기피 현상이다. 이는 언뜻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 즉 사용자는 더 적은 임금을 제시할 수 밖에 없다. 혹은 높은 임금을 제시하는 기업과 낮은 임금을 제시하는 기업 중 낮은 임금을 제시하는 기업의 수가 더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직자, 혹은 노동 공급자가 만약 현명한 사람이라면, 경쟁자들보다 먼저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던가 낮은 임금을 받아들여 생활을 영위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전자는 인적자본에의 투자이고, 자본이 필요하다. 그것을 우리들은 “금수저”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어쨌든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집중적으로 인적자본을 확충하는 것에는 돈과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그러한 여유가 주어지지 않은 노동자는 낮은 임금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젊은이들은 차라리 실업 상태를 택해버리고 있다. 이 현상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 부모 세대의 가치관이 아직 젊은 세대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부모 세대에서 대학 졸업자가 갈 수 있었던 기업의 수준과 현재 젊은 세대가 동등한 학력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기업의 수준은 당연히 같지 않다. 7~10%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던 시대는 기회의 시대이다. 하루가 다르게 사회가 발전하고 그 틈바구니를 파고들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었다. 2~3%대의 경제성장률을 보이는 시대는 정체의 시대다. 안정적으로 현실을 유지할 수 있는 직업이 각광받는다. 7,9급 공무원에 목숨을 거는 젊은이들을 좋지 않게 볼 수도 있겠지만, 이들은 이 시대의 가치와 요구수준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구성의 오류’가 발생할 여지 역시 존재한다. 개개인으로서는 안정적인 공무원에 지원하기 위해 집에서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지 몰라도 국가 경제 전체로 보면 경제에 자극이 될 수 있는 총명한 재능들을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기업 관점에서 봐도 비슷하다. 개별 기업은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통과하기 위해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를 줄인다. 신입사원 규모를 줄이고 희망퇴직을 실시하여 피고용인 규모를 줄이면 당장의 재무구조는 개선될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기침체를 탈출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줄여버리는 결과를 불러 오는 것이다. 결국, 젊은 세대는 시장에 신축적으로 노동력을 공급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실업률에 잡히지 않는 곳으로 숨어버린다. 지금 당장 중소기업에서 입에 풀칠할 정도로 다급하지 않을 수도 있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고통을 비용으로 저당잡아 버릴 수도 있다.

위의 두가지 사례는 모두 노동 공급의 실질적인 부분에서의 경직성, 혹은 ‘inertia’가 존재한다는 가정에 대한 근거로 기능한다. 늙은 세대는 늙은 세대대로, 젊은 세대는 젊은 세대대로 노동의 비신축적 공급, 혹은 전환 현상에 기여하고 있다. 이들의 선택에서 보여지는 공통점은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가치관에 여전히 사로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현실적으로 가장 높은 수입을 보장하는 선택을 매 기마다 한다고 가정한다면, 늙은 세대는 치킨집을 더이상 차리지 말아야 한다. 젊은 세대는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 인정받는 기업으로 취직하던가 그와 동등한 대가가 예상되는 스타트업을 차려야 한다. 의도적 실업과 의도적 파산이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 되는 사회라면 그 나라 경제는 이미 마비 수준으로 치닫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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