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트위터를 그만 두었는가

작년 가을부터 결혼 준비를 시작하면서 하지 않게 된 것이 세가지 있다. 하나는 음반을 구입하는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소설을 읽는 읽이었는데 이 둘은 결혼 이후 생활이 안정되면서 다시 재개하게 되었다. 정말 단지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서 하지 못했던 일이었던 것이다. 마지막 하나는 트위터인데, 이건 의도적으로 그만 두었고, 결혼 이후에도 하지 않고 있다. 와이프와 결혼 전, 아니 연애 전부터 트위터 상에서 알던 사이였으므로 트위터가 와이프에 대한 정보를 일정 부분 제공해주었기에 어쩌면 트위터가 ‘소개팅 주선자’의 역할 중 일부를 수행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지만, 와이프와의 지속 가능하면서도 발전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 재미나고도 유익한 플랫폼을 우리의 인생에서 완전히 지워버리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우선 우리는 트위터를 싫어하지 않으며, 트위터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여전히 트위터만이 가지는 미덕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트위터를 잘 이용함으로써 삶을 좀 더 윤택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명동 성당 서점에서 <하느님과 트윗을>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사버렸다. “하느님과 트위터는 공통점이 많다. 24시간 쉬지 않고 떠든다는 것부터 시작해서…”라는 실없는 농담을 하면서. 어쨌든 종교도 트위터를 이용하는 세상이다) 다만, ‘굳이 트위터가 우리 관계에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반드시 필요하다”라는 답을 얻을 수 없었으며, 트위터가 야기할 수 있는 몇가지 부작용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생각이 강했다. 이 부작용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 예컨대 ‘세컨계정’의 존재와 그것의 활용 범위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트위터라는 매체 하나에 얽메여 상대방을 믿지 못한다면 다른 어떠한 것도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즉, 트위터가 문제가 아니라 트위터를 둘러싼 시선과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굳이’ 불화의 씨를 남겨두어야 할 정도로 트위터가 각자의 삶에 중요하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니라고 생각한다. 트위터를 절대 포기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트위터로 엄청난 가치를 창출하던가 트위터를 끊지 못하는 중독 상태에 처해있다는 것일텐데, 나는 두 경우 모두 해당되지 않았다. 트위터보다 훨씬 중요한 사람과 평생 함께 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트위터 정도 되는 것을 삶에서 지워버리는 것이 그리 어려운 선택은 아니었던 셈이다. 물론 이 결과가 내가 트위터를 하찮게 생각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서는 안된다. 매 순간마다 트위터는 나에게 큰 희열과 재미를 안겨 주었다.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부터 병신 짓을 자랑하고 싶은 순간까지, 트위터는 꽤나 유용한 매체로 내 삶에서 훌륭한 역할을 수행해 주었다. 다만, 이제 트위터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소중한 존재가 삶에 생겼을 뿐이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트위터를 삶에서 아예 제거해버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뿐이다.

트위터를 하지 않게 된 이후 한동안 허전함에 시달렸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열어도 할 것이 없어 이리 저리 스위핑만 하다가 다시 창을 닫곤 했다. 괜히 인스타그램에 사진만 많이 올리게 되었다. 스포츠 경기 결과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거나 요즘과 같은 국정농단 사태에서 네티즌들의 뼈 있고 기발한 개그코드를 접하고 싶을 때 찾아볼 곳이 없어 아쉬움이 커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모두 부수적이고 주변적인 것들이다. 트위터를 관둔 이후 좋아진 것들도 많다. 우선 다시 ‘긴 글’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한 두 마디 정도로 서론부터 결론까지 모두 종합되는 세상은 그만큼 많은 오해와 극단적인 태도가 득세할 수 밖에 없다. 트위터는 완벽하지도 않고 기존의 세상이 가지고 있던 미덕마저 깎아 내리는 부작용까지 가지고 있는, 불완전하고도 감정적인 세상이다. 트위터를 관둔 이후 어제서야 처음으로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진중권의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반가우면서도 짠했다. 수많은 대담 프로그램이 유행하는 시대에서조차 진중권은 트위터 밖 세상에서는 아무런 존재감도 없었다. 유명인 뿐만이 아니다. 트위터 안 자신의 세상을 예쁘게 구축해 놓은 사람들 중 그 밖에서도 트위터 못지 않게 예쁘고 탄탄한 세상을 구축하는 이를 거의 목격하지 못했다. 그래서 트위터 안에서 일부러 병신 짓을 하면서 트위터 밖의 모습을 상대적으로 예쁘게 보이려고 애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트위터 안에서 담담하고 조용한 이들은 밖에서도 소리 없이 빛난다. ‘트위터에 쓰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 비정상적인 행동도 더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트위터에 무언가를 적기 위해 하는 행동이 모두 틀린 것도 아니다. 긍정적인 효과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들의 총합이 트위터 밖 세계에서도 일관성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목적성을 분명하게 정리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트위터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훨씬 더 건강한 목적 의식을 갖게 만들어주었다.

아직도 여전히 트위터가 그립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다. 트위터 안에서 만났던 수많은 친구들이 그립지만, 그들은 트위터 밖에서도 잘 살고 있을 것이다. 굳이 내가 트위터 안으로 다시 들어가 그들에게 say hello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휘발성의 ‘계약’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인 채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트위터에서 만난 친구들 중 그 누구에게도 집착하지 않으며, 그들 중 그 누구도 다시 보고 싶지 않다. 우리는 트위터 안에서 충분히 즐거웠고 그 안에서 관계를 마무리할 예정이었으므로. 그들 중 트위터 밖으로 나와 관계를 확장한 이들도 여럿 있다. 그들과의 관계는 그렇게 다른 세상에서 계속 이어지는 것이지, 트위터를 관계 내에서 완전히 지워도 관계의 성격이 달라지거나 왜곡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블로그도 마찬가지였고, 페이스북도 마찬가지다. 모두 각기 다른 세상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며,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넘어가기도 하고, 그렇게 넘어가며 관계가 이어지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한다. 그러한 것들에 대한 미련때문에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을 잃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나와 아내는 금호동의 한 아파트에서 현실에 천착하며 삶을 일구어 나가려고 한다. 함께 밥을 지어 먹고 서로의 어깨를 주물러 주고 함께 빨래를 널다가 피곤하면 소파에 서로의 몸을 겹치고 누워 꾸벅꾸벅 졸기도 한다. 지금의 나에게는 이 ‘세상’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소중하다. ‘굳이’ 트위터가 들어와서 자리잡을 구석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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