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와 숫자들: 수렴과 발산


9와 숫자들은 아마 동세대 한국 음악인들 중 전통적인 팝음악을 가장 잘 만들어내는 작곡가라고 생각한다. 네마디, 혹은 여덟마디의 분절된 멜로디들이 프랑켄슈타인처럼 이종교배된 후크송이 넘실거리는 현재 음악계에서 몇십년 전 유행했던 전통적인 팝음악의 구조를 고집스럽게 계승하고 있는 그의 작곡 방식은 긴 호흡으로 전주부터 버스와 코러스를 지나 노래의 맺음까지부드럽게 이어지는 흐름을 선사한다. 세기와 이미지가 득세하는 현 음악계에서 호흡과 흐름이 주는 달콤한 오아시스, 그게 9와 숫자들이 갖는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EP <유예> 이후 이들은  이런 측면에서 정점에 올라섰고, 이후 2집을 지나 3집 <수렴과 발산>에 다다르면서 비로소 이들만의 음악세계를 완전히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이들의 음악은 소위 ‘칭찬 받으려는 노력’이 너무 노골적으로 보이는 것 같아 완전한 지지를 보내기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달까,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나름의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었겠지만 그 의도가 너무 빤히 읽히는 느낌이어서 음악의 ‘고수’라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한 것이다. 마틴 스코세지가 오스카를 받기 위해 만든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수렴과 발산>은 약간 더 힘을 빼고 음악을 만들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여전히 인공적인 소녀 감수성에 대한 집착은 포기하지 못한 듯 보이지만(“언니”), 타이틀송 격인 “드라이 플라워”나 “싱가포르”, “엘리스의 섬” 등에서 관계의 축적에 의한 연대의 힘이라는 음반의 주제의식을 꾸준히 밀어붙이는 힘이 느껴져서 좋다. 이들의 가장 큰 장기인 멜로디는 여전히 아름답고, 편곡은 매끈하게 잘 뽑아져 나왔다. 음반의 처음부터 끝까지 귀를 거스르게 하는 요인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서 더 좋았다. 개인적으로 9와 숫자들의 음악에서 가장 불만인 것은 역시 보컬인데, 9와 숫자들의 모든 곡은 9가 아닌 다른 사람이 불렀을 때 몇 배는 더 아름다웠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는 좋은 작곡가이자 꽤나 사려깊으려고 노력하는 작사가이지만, 그가 창조하고자 하는 세계를 완성시킬만한 축복받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는 못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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