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나의 한국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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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로만 역사를 배우며 베트남 전쟁을 “(나쁜) 공산당과 (착한) 미국이 싸운 전쟁에서 우리나라는 의롭게 참전하여 용감히 싸웠다” 정도로 이해한 내게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사고체계의 방향성을 전환시키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드레퓌스 사건부터 팔레스타인 사태까지 각각의 주제를 다루며 반공주의와 권위주의의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 있던 8,90년대 제도권 역사 교과서의 해석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이 책을 나와 비슷한 시기에 읽은 사람이라면 아마 비슷한 경험을 공유할 것이라 짐작한다. 이 책을 쓸 당시 젊은 유시민은 열렬한 투쟁가의 모습에서 살짝 벗어나 유려한 필체로 독자를 설득하는 재능을 가진 ‘작가’였다. 그러던 그가 노무현과 함께 격동의 시절을 보내고 다시 ‘작가’라는 직함을 달고 다니는 요즘의 모습을 보며 친구들과 함께 “참 행복하고 편해 보인다”라며 괜히 오지랍을 부려가며 안도의 한숨을 쉬곤 한다. 나와 내 친구들에게 유시민은 아이돌이자 판타지스타였다. 통찰력과 의지, 신념을 가진 지식인이 현실 정치에서 휘둘리고 좌절하는 모습은 괴롭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고 반드시 목격해야만 하는 어떤 현상이었다.

정치판과 공직사회를 경험한 뒤 글쟁이의 세계로 돌아온 그가 오랜만에 다시 역사책을 펴냈다. 제목에 선명하게 박힌 “나의”라는 단어에서 균형감을 갖고 냉정하게 쓰인 교과서적인 역사책은 쓰지 않았다는 선언을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학생운동과 정치운동, 정무직 공무원 생활까지 경험하며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온 몸으로 체험한 그가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에게 꼭 이야기하고 싶은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주제별로 엮은, 일종의 ‘아재의 옛날 이야기’다. 때문에 이 책이 가진 편향성과 뚜렷한 목적의식을 문제삼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 수도 있다. 처음부터 그러자고 마음먹고 쓴 책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작가는 한국 현대사를 조망한다는 명분 아래 현재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과거에 선배들이 겪어 왔던 고초와 현재 젊은이들이 겪는 고통의 본질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주장하고 싶었을 것이고, 한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뒤바꾼 중요 인물들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고 있으며 그들의 영향력이 현재에도 정제되지 않은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난민촌”과 “병영”을 지나 “광장”에 서 있는 현대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넌지시 제시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이 책이 가진 한계도 그래서 명확하다. 작가가 속해 있던 ‘장르’에 대한 이야기는 풍성하고 재미있다. 구체적인 비화까지 등장하는 운동권 시절 이야기를 읽다보면 타고난 이야기꾼의 완숙미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경험하지 못했지만 한국 현대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글쟁이로서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작가는 독재정권의 권위 아래 숨죽이고 있던 시민들과 급진적 학생운동이 괴리되었던 현상을 지적하며 모든 시민이 단일대오로 함께 싸울 때에만 역사가 진보했음을 설파하고 있지만, 정작 작가가 속해있던 학생운동의 반대편에서 겁에 떨며 생업에 종사해야만 했던 대다수 일반 시민의 삶을 구체적으로 조망하지 못한다. (이것은 민족주의 사관이 일제시대 민초들의 삶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극소수 운동가들이 과연 식민지 시대에 생존을 목적으로 살아가야 했던 평범한 일반인 한 명 한 명과 어떻게 연결되거나 분리되었는지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그 자체로 역사연구에 대한 편향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현재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두 축, 조선일보와 삼성에 대해서도 거의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독재정권 시절을 지나오며 탄압을 당하던 주요 언론사들이 어떻게 본인들의 적극적인 의지로 극우의 편에 서게 되었는지, 정경유착의 고리를 빠져 나오는 과정에서 재벌이 어떻게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며 지나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고찰이 없다면, 이 책은 “한국 현대사” 라기 보다는 “한국 정치운동사” 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유시민은 그 자체로 한국 현대사를 대변하는 사람이다. 그는 주인공으로, 혹은 관찰자로 늘 현대사의 중요한 시점마다 가까운 거리에서 그 현장을 목도해왔다. 그런 그가 직접 기술하는 현대사는 분명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가 칭송하듯 교과서로 쓰일 정도는 아니다.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한 아저씨가 다음 세대에게 “이런 일도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달라”고 당부하는 내용이자,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게 “우리가 이런 시대를 살아왔습니다”라고 알려주는 사적 기록의 의미가 더 크다. 객관적인 사료로서의 기능은 크게 떨어지는 편이다. 어쩌면 그가 가장 잘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한국 확장판 정도를 기대했다면 기대와 약간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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