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올해의 음반들

음악에 관해서라면 2016년에 한해 할 말이 없다. 부끄러울 뿐이다. 음악을 제대로 듣지도 못했고 들은 음악을 제대로 정리하지도 못했다. 연애와 결혼때문이라는 변명을 굳이 구차하게 덧붙이지 않겠다. 나에게 음악은 삶의 리듬을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음식을 먹고, 편한 곳에서 듣고 싶은 음악을 듣는 것으로 하루의 호흡을 완성하면 비로소 머릿속에 창의적인 생각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내 삶을 의미있게 만들어주는 거의 유일한 요소는 이렇게 음악으로부터 비롯되는 창의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2016년은 그런 의미있는 리듬을 많이 만들어내지 못했다. 앞으로 가정을 이끌고 아이를 키우고 경조사에 시달리다 보면 더더욱 이런 리듬을 만들어내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래서 2017년이 중요하다.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일들이 예상치 못한 시점에서 삶을 덮칠 것이다. 2016년처럼 음악을 들으면 앞으로의 삶은 훨씬 더 복잡하고 정신없어질 것이다. 호흡을 가다듬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간단하게나마 2016년에 들었던 좋은 음악들을 정리해본다. 다른 음악팬들이나 평론지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남들이 잘 알지 못할 법한 숨은 보물을 찾아내는 경험은 거의 하지 못했다. 그만큼 게을렀다는 뜻이다. 다시 한번 반성한다. 순위는 없다.

1. 이랑 – 신의 놀이

이랑의 첫번째 음반은 그 해 나의 베스트 음반이었고, 그의 두번째 음반은 첫번째 음반보다 더 좋다. 아티스트가 자신을 드러내는 가장 좋은 방법을 알고 있을 때 보여지는 아름다움이 있다. 이 음반은 그러한 아름다움으로 충만하여 첫번째 트랙을 재생시킬 때부터 이 음반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책의 내용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지만 음반의 레퍼런스로 그 기능을 한정한다면 나름 충실한 편이다.

2. 실리카겔 – 실리카겔

‘우리나라도 The XX같은 밴드를 가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 때 한 적이 있다. 그에 대한 답을 부분적으로나마 주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었다. 창의적인 감성으로 똘똘 뭉친 젊은 친구들이 주눅들지 않고 용기있게 레퍼런스를 자신들의 것으로 바꾸어내는 결과물 하나하나가 기대 이상이어서 놀라웠다. 지난해 가장 흥미롭게 들었던 음반이고,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음반이다.

3. David Bowie – Blackstar

그의 음악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팬은 아니었지만, 그가 끈기있게 보여준 새로움에 대한 도전은 동시대에서 비교 가능한 그 어떤 뮤지션에게서도 발견할 수 없는 어떤 숭고함이 있었다. 이 음반은 그러한 숭고한 도전정신이 새로운 경지에 이르렀음을 선언하는 출발점이자, 그 영광스러운 길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끝나게 되었음을 알리는 가슴 아린 묘지명이 되어버렸다.

4. Nick Cave and the Bad Seeds – Skeleton Tree

데이빗 보위의 마지막 정규음반과 함께 뮤지션의 실제 삶이 음악 감상에 실제적인 영향을 미친 중요한 음반이다. 닉 케이브의 개인사를 떠나서 얼음같은 서늘함과 송곳같은 날카로움이 숨쉬기 힘들 정도의 빽빽한 밀도로 들어차 있다. 지난해 가장 완벽한 음반을 꼽으라면 이 음반이 아닐까 한다.

5. Bon Iver – 22, A Million

나는 여전히 보니베어를 좋아하고 지지한다. 저스틴 버논은 여전히 자신 음악의 뿌리를 잘 지키고 있고 그 형태를 이리저리 변형해가며 즐거운 음악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그 여정을 멈추어버린 수많은 대가들과 비교하면 훨씬 용감하고 흥미롭다.

6. Blood Orange – Freetown Sound

거리의 공기를 잊지 않은 아티스트가 온 몸으로 모든 장르의 아름다움을 받아들여 갈고 닦은 내공을 비로소 자기만의 색깔로 펼쳐보이게 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데브 헤인즈는 이제 다른 차원으로 넘어갔다. 묵묵히 자기만의 춤사위를 출 뿐인데 그 한 순간 한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

7. Beyonce – Lemonade

비욘세는 그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의 위상때문에 오히려 음반 그 자체의 가치가 저평가당하는 경향을 견뎌왔고, 이 음반으로 그러한 불공정한 평가에서 어느정도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모든 곡의 완성도가 상상 이상으로 뛰어나다. 단순히 팝송으로서의(소비재로서의) 가치 뿐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는건 메인스트림 씬에서 현시대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장르를 하나의 함수 안에 녹여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뮤지션이 비욘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8. Angel Olsen – My Woman

2016년에 나온 가장 훌륭한 rock-base 음악이다. 흠잡을 곳도 없고 귀를 지속적으로 즐겁게 만든다.

9. Sturgil Simpson – A Sailor’s Guide to Earth

컨트리 장르의 외연을 확장시켰을 뿐 아니라 팝 뮤직의 문학적 기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놀라운 음반.

10. case/lang/veirs – case/lang/veirs

여성 뮤지션들은 모두 이 음반을 들어야 한다. 남성 뮤지션들도 모두 이 음반을 들어야 한다. 여성 음악팬들도 이 음반을 들었으면 좋겠고, 남성 음악팬들은 무조건 한번씩은 이 음반을 듣기를 바란다.

11. 방백 – 너의 손

방백의 음반을 2016년 안에 포함시킬 수 있다면 이들의 음반도 반드시 들어가야겠지. 2016년 초반 가장 많이 들었던 음반이다. 백현진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 음반에서만큼은 방준석에게 잘 길들여진 탓인지 기분나쁘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12. Anderson .Paak – Malibu

한국인의 피가 섞여 있다는 개인사에 관심을 갖지 않더라도 충분히 즐거운 음반이고 기억할만한 데뷔 음반이다. 앞으로 어떤 음악을 보여줄지가 더 기대되는 뮤지션이다.

라디오헤드, 프랭크 오션, 미츠키, 아노니, 재페니즈 브랙퍼스트, 카 싯 헤드셋, 휘트니 등의 음반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실제로 이들의 신보를 그리 좋게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충분히 좋은 음반들이고 너무 즐겁게 듣긴 했지만 위에 열거한 음반들에 비해 사소한 불만이랄까, 아쉬움같은 것들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 미츠키의 음반은 무척 좋은 록 넘버를 많이 담고 있지만 강렬한 한방이 부족했다. 휘트니도 마찬가지. 너무 반가운 음악을 들고 나왔지만 그저 마냥 행복하다는 일차원적 생각 외에 더 무엇이 떠오르지 않았다. 라디오헤드는 이제 더이상 혁신적이지 않고, 프랭크 오션의 새 음반은 자의식이 넘친 나머지 음반을 플레이시키고 싶은 욕심을 구겨버린다. 아노니는 이 음반의 장르보다 더 잘하는 것이 분명 있을 것 같다. 카 싯 헤드셋의 경우는 조금 다른데, 내가 이제 이들이 속한 장르에서 더이상 자극을 찾을 수 없는 것인가 하는 회의감이 먼저 들었다. 재페니즈 브랙퍼스트는 굳이 가져다 붙이면 올해의 발견 정도가 되겠지만 뒤로 갈수록 뒷심이 달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오프닝 트랙은 최고다.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