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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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결혼을 했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결혼식과 이후 행사들을 소화했다. 어머니의 모교인 성심여고 안에 있는 성심성당에서 혼배미사 형태로 진행이 되었고, 이후 피로연은 근처 식당을 빌려 하객들에게 조촐한 식사를 대접했다. 70명 남짓한 하객들만을 모셨지만 그조차 다 수용하기 버거워 친구들에게는 돈을 따로 쥐어보내 다른 곳에서 먹게 해야 했다. 지금까지 34년 넘게 생을 살아오면서 감사의 마음을 예를 다해 표해야 할 사람들이 70명보다는 많을 것이다. 아무리 폐쇄적인 삶을 살았다 해도 혼자만의 힘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이 세상이니 만큼, 삶의 각 단계에서 도움을 주고 은혜를 베푼 이들이 결코 적을리 없다. 결혼식이라는 행사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두 명의 사람이 만나 하나의 가정을 이룰 것을 그 순간까지 그 두 명의 사람을 만들어준 사람들 앞에서 선서하고 인정을 받는 자리다. 사회적인 통과의례이고, 때문에 결혼식을 올리는 두 명의 당사자 뿐 아니라 그 주변 가까운 지인들의 영향력이 강하게 개입될 수 밖에 없는 이벤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고집을 피워가며 당사자의 의지대로 결혼식을 진행하겠다고 했을 때 추가되는 희생과 고통은 어찌 보면 당연히 예상되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아니 나는 그런 결혼식을 고집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배우자를 아내로 맞아 들이기 위해 굳이 가톨릭 혼배미사를 고집했고, 배우자가 될 사람은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명동성당으로 나가 예비신자 교리를 들어야 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결혼식 그 자체보다 축의금과 피로연에 더 집중되는 듯한 한국의 결혼식 문화를 달가워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결혼식과 피로연 시간을 분리하고 축의금을 공식적으로 받지 않는다는 입장도 결코 철회하지 않았다. 모든 결혼 비용은 내가 부담한다는 조건은 양가 부모님들에겐 아이들 장난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결국 부모님들의 도움을 받아 식을 치루게 되었고, 하객들은 ‘비공식’적인 루트로 축의금을 전달해야 했으며 초대받지 못한 다수의 지인들은 어떻게 축하의 인사를 건네야 할지 몰라 난감해 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나 역시 추가적인 고통을 부담해야 했다. 작은 규모의 결혼식을 완성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은 결코 작지 않았다. 더 많은 것을 스스로 챙겨야 했다. 기존 시스템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는 계획은 그만큼 더 많은 개인의 노력을 필요로 했다. 게다가 준비 기간도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짧았다. 5월에 만나 12월에 결혼하는 이 과정은, 연애와 결혼준비가 하나로 합쳐지고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결혼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공고해지는 기묘한 체험을 선사해주었다. 결혼식 전날과 당일, 이틀 간은 생애 가장 바쁜 시간이었다. 새로운 가족을 모시고 꽉 막힌 금요일 저녁 도로를 뚫고 서울 여기저기를 돌아다녀야 했으며 새벽같이 일어나 행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제대로 앉지도 못한 채 여기저기를 뛰어 다녀야 했다.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표하고자 모신 소수의 하객들에게 진심의 인사를 건넬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는 아이러니도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생애 가장 기억에 남는 기쁜 날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진심을 다해 결혼식에 집중해주었고 진심으로 축하해 준 그날 함께 한 지인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에서 소리 없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준 관계자들, 함께 하지 못했지만(초대를 받지 못한 설움과 섭섭함에도 불구하고) 먼 곳에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축하의 인사를 건네준 소중한 지인들, 주인공이 되어야 함이 마땅하지만 조연으로 전락했음에도 함께 준비의 고통을 기꺼이 나누어준 양가 가족들, 그리고 따뜻한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넬 줄 모르는 서툰 나를 내치지 않고 묵묵히 옆에 서서 고통을 함께 감내해준 (이제 당당한!) 나의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잘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이다. 늘 받기만 하며 살아왔다. 주변 사람들을 챙기지 못하는 나의 부족한 성품은 버릇없음으로 이어지기 쉬웠고, 여기에 게으른 기질이 더해져 제대로 축하받지 못하고 축하하지 못하는 삶으로 이어져 왔다. 이런 내가 결혼이라는 인간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의례 중 하나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 정도로 무난한 삶을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나를 이끌어준 가족과 나의 부족함을 채워준 주변 사람들 덕분이다. 삶에서 내 힘으로 이룩할 수 있었던 부분은 극히 일부분이다. 음식을 소화시키고 심장을 뛰게 하는 등 몸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생리활동을 내가 전혀 인지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삶을 완성시키는 많은 것들을 나는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흘려보낼 때가 많다. 그것에 대해 일일이 감사를 표하지 못하는 나의 부덕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제 넘치는 사랑과 축하를 받았다. 모든 순간이 너무 황홀해서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사람들의 표정 하나에도, 주례신부님의 플룻 연주 음 하나에도, 나의 축가를 비웃는 웃음소리 하나에도 가슴이 뭉클해져 눈물이 쏟아졌다. 왜 그렇게 마음이 많이 움직였는지 모르겠다. 계획한 대로 되었던 것은 거의 없었다.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돌발상황이 터져 나왔고 그 어떤 부분도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이 너무 감사하고 즐거울 뿐이었다. 대학 입시, 군 제대, 대학원 합격, 박사 논문 심사 통과, 첫 출근.. 삶에서 일어난 수 많은 큰 사건들 중에서 어제보다 더 크게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직장 동료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해설을 맡아준 J선임, 술 한번 같이 마셨을 뿐인데 기꺼이 주례를 맡아준 P신부님, 축의금이라는 거대한 시장 규율을 포기하고 기꺼이 작은 결혼식을 허락해 준 양가 부모님, 회사의 명운을 좌우할 큰 작업을 눈 앞에 두고 기꺼이 반주를 맡아준 Y, 결혼식 장소로 공개하지 않지만 기꺼이 예외사례를 만들어주고 결혼식 당일까지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은 Y수녀님, 어린 나이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욕은 욕대로 먹고 힘은 힘대로 들었을 와이프의 동생 J, 따로 핑거푸드를 준비하여 하객들을 대신 대접한 누나와 자형, 그외 친척들, 축의금을 받지 않는다는 시장규율을 어긴 규칙을 다시 어기고 기어이 축하의 마음을 표현해주신 하객들, 먼길을 달려와 단 몇 시간의 행사에 참여하기 위한 지방에서 오신 하객들, 아름다운 순간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준 사진과 영상 기사님, 결혼식의 꽃인 밥 한그릇 먹지 못한 채 쫓겨 나오듯 식만 보고 떠난 친구들, 초대받지 못했다는 섭섭함을 감추고 끝까지 축하의 인사를 건네준 직장 동료,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 대학원 친구들, 그리고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고통 속에서도 드레스를 입고 밝은 미소를 잃지 않으며 함께 참아준 아내, 그 모든 이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혹시나 남아 있을 안좋은 감정은 모두 나에게로 보내길 바란다. 모든 책임과 멍에는 내가 짊어지고 가겠다.

7 thoughts on “결혼식 후기

    • 감사합니다. 축가는 다행이다 불렀어요. 원래 노래 못 부르는데 더 망했어요 ㅋ

  1. 자주 종혁님 블로그 보고 갔었는데… 결혼 축하드립니다. 의미 있는 결혼식 올리셨네요.. 좋은 기운이 전달되기를…. ;) 다시한번 축하드려요.

    • 오랜만입니다~ 반가워요 ㅎㅎ 저도 결혼이란걸 하게 되었네요. 갑자기 찾아온 사람과 갑자기 진행한 결혼이라 아직 어리둥절하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2. 축하 인사를 여기에 남기게 되네요. 블로그 피드가 쌓여 있어서 이제서야 이 글을 보게 되었어요. 물론 결혼 하신 것은 인스타 통해서 먼저 알게 되었지만요.
    아마 지금은 신혼여행 중이시겠죠? ㅎㅎ 무사히 즐겁게 잘 다녀 오시길 바랍니다! 앞날에 좋은 일만 생기길 기원합니다~! 축하 드려요!!

    • 감사합니다!! 이니셜만 쓰셔서 누군지 모르겠지만 ^^; 니스에 와 있어요. 날씨가 흐리네요(..) 하지만 좋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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