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미언 셔젤: 라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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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를 굉장히 나쁘게 봤다. 영화팬과 평론가들을 혹하게 만들만한 요소들을 많이 품고 있는 흥미로운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를 ‘좋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다. 무책임하게 마무리된 서사와 그로 인해 더 모호해진 영화의 윤리성때문이었다. 감독은 <라라랜드>에서 자신이 잘 하는 것에 집중하고, 자신없어 하는 것은 과감히 생략해버리는 방법을 택했다. 덕분에 서사구조는 아무런 논란이 있을 수 없는 매우 통속적이고 단순한 뼈대만을 취한다. 무산계급의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나누지만 힘겨운 현실은 한발 늦게 찾아오고, 꿈을 포기한 채 살아가다 결국 각자의 꿈을 향해 제 갈 길을 간다는 줄거리는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다. 그 안에 불편한 윤리적 시선이 들어갈 여지도 거의 없다. 영화의 중반부에 두 사람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스틸컷처럼 짧게 보여주는 순간 이미 씁쓸한 결말은 예상되어졌다.

중요한 것은 감독의 시선이 두 주인공의 삶에 머무르지 않고 조금 더 높은 곳을 향해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 영화를 일종의 메타 필름으로 읽었다. 영화는 두 주인공의 통속적인 삶을 바탕으로 뮤지컬이라는 전통적인 장르에 기대어 영화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하다. 기발한 오프닝씬을 제외하면 전통적인 헐리우드 뮤지컬 영화의 각종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인용한다.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를 그대로 모방한 플라잉 댄스 씬은 대표적인 예다. 그래서 차라리 뮤지컬 영화라고 하기 보다는 음악 영화라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겉으로 드러난 주제’는 남자 주인공 세바스챤의 뮤지션으로서의 삶에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는 쇠락해가는 전통적인 재즈를 지키고 싶어하고 그 고전적인 재즈를 연주할 펍을 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연인을 위해 크로스오버 재즈 밴드에 들어가 돈을 번다. 여자 주인공 미아는 그렇게 멀어져 가는 연인을 불안하게 지켜보고, 거듭되는 실패에 배우로서의 정체성마져 흔들린다. 결국 남자의 도움으로 여자는 캐스팅 기회를 얻어 배우로서 성공하고, 남자는 자신의 곁을 떠난 여자를 기다리며 약속한대로 펍을 열어 작은 성공을 이룬다. 그가 펍에서 연주하는 곡은 당연히 전통적인 프리 재즈 기반의 음악이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감독이 재즈를 빗대어 영화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서는 영화의 마지막씬, 여자, 혹은 남자의 상상 장면이다. 5년만에 다시 만난 남자는 여자와 함께 나누었던 음악을 연주하며 ‘만약 그 때 우리가 조금 더 행복했다면’이라는 상상을 시작한다. 영화의 주요 장면들은 조금씩 뒤틀리고 영화는 이 커플의 완전히 다른 미래를 보여준다. 이들이 매 순간 조금 더 나은 결정을 내렸다면, 여자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이 남자의 곁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마치 <파이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두번째 이야기”처럼 <라라랜드>는 영화의 마지막에 서사구조의 완전히 다른 면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파크웨이에서 춤을 추는 영화의 오프닝씬부터 이미 이 영화는 ‘판타지’라는 것을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으므로, 이제 이 커플의 ‘조금 더 행복한 인생’을 보여주었으니 영화 내내 보여준 ‘조금 더 현실적인’ 서사를 굳이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지 않겠냐는 제안을 건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삶 자체가 거대한 맥거핀처럼 느껴졌다. 감독이 정말 진지하게 이 둘의 사랑 이야기에 집중했다면 이렇게 허술하고 진부한 서사구조를 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미아의 룸메이트 세 명은 곡 하나를 함께 부른 이후 아무런 역할도 부여받지 못한 채 거의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감독은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영화는 이제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이 영화를 만든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그저 단순한 뮤지컬 로맨스 영화로 읽어도 충분히 흥미롭다. 배우들의 연기를 훌륭하고 음악은 아름답다. 통속적인 이야기라는 것은 결국 ‘고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니, 그것이 반드시 재미가 없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완전히 같은 서사구조를 가진 우디 앨런의 <카페 소사이어티>가 보여준 처참한 실패는 <라라랜드>가 얼마나 교묘하게 예상된 함정들을 잘 피해왔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하나의 연애가 시작되고 그 연애가 현실과 부딪히고, 그래서 연애가 끝난다. 그 과정에서 사랑이 있었고, 슬픔은 조금 더 오래 남아있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흔하고 또 가장 중요한 이 감정의 심연을 건드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독의 재능에 대해 의심할 근거가 없음을 보여준다.

2 thoughts on “데이미언 셔젤: 라라랜드

    • 이에 대한 문의(?)를 많이 받았는데요, 우선 제가 살던 곳은 콜로라도주의 볼더구요, 영화속 엠마 스톤의 부모님이 사시는 곳은 네바다주의 볼더 시티입니다. 엘에이에서 차로 운전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구요, 콜로라도 볼더는 엘에이에서 16시간 정도 걸릴거예요;;

      기억해주셔서 고마워요. 역시 제 주변 사람들은(그리고 오직 그들만) 볼더를 알고 있더군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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