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종말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신화가 있다. 생존과 출세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철학과 가치관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지독한 성격을 가진 한 남자의 이야기가 신화가 되어 계속 생명을 이어왔다. 일본 제국주의와 남로당, 괴뢰 만주국을 거쳐 신생 공화국의 육군 장교로 살아남아 권력의 끄트머리에서 질긴 숨을 이어나간 그 남자는 불법에 의해 권력을 쟁취하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강화한 뒤 기어코 헌법을 바꿔 권력을 영속적으로 유지하려 했다. 그는 결과를 위해서라면 과정은 무시되어도 좋다는 가치관을 한국에 심어 놓았고, 그 결과 한국은 동과 서로 나뉘어 반목하고 다투기 시작했으며, “큰 일”을 하기 위해 개인의 가치는 희생되어도 좋다는 주장을 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만들었다. 한국사회는 제국주의의 지배로 인해 단절되었던 역사를 회복하기도 전에 그 한 사람으로 인해 아주 큰 변화를 아주 짧은 기간에 겪어야 했고, 그 기간동안 일어난 수 많은 고통들은 숫자로 보기 좋게 표현된 ‘발전’이라는 구호 아래 묻혀버렸다. 누군가에게는 떼돈을 벌게 해준 은인이자 영웅으로 칭송받는 그의 철학은 한국사회의 철학이 되었고, 한국인의 절반은 그의 철학에 동의하며 더이상 발전이 아니게 된 그 ‘발전’이라는 구호를 떠받드는 충견으로 기능해왔다.

그와 그의 철학에 동의하는 그 절반의 한국인이 그의 딸을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그녀에게 권력을 다시 선물했다. 그녀가 권력을 잡게 된 이유를 분석한 수많은 사람들은 그녀가 얼마나 정신적으로 불안정한지, 부모를 모두 비명에 잃은 그녀의 성장 과정에 어떠한 문제는 없었는지 사려깊게 살펴보지 않았다. 단지 세대 간의 갈등, 소외 받은 노인들의 실력 행사 정도로 이 기현상의 배경을 얼버무릴 뿐이었다. 그의 신화는 그의 딸의 신화로 이어졌다.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변해온 나라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수십년 지난 가치들이 다시 현대 한국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미 권력자 한 사람이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시스템을 갖게 된 이 사회였지만 여전히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아보였다. 공직사회의 말단 직원이 쓰는 보고서의 톤 하나조차 청와대의 오더를 받아 수정되어야 했다.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마땅한 견제세력조차 보이지 않는 한국사회의 대통령이라는 위치는 단지 물리적인 명령의 현실화 외에도 그 사회의 공기, 분위기, 혹은 집단 철학의 기조 자체를 바꾸어버리는 위력을 가진다. 경제는 고꾸라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덜 웃게 되었다. 같은 계급에 있는 사람들끼리 더 많이 다투기 시작했고 권력을 가진 자들 앞에는 충성을 맹세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의 신화가 그의 딸의 신화로 전이되는 최근 몇 년의 기간동안, 한국사회는 분명 뒤로 후퇴하고 있었다. 그의 신화를 그대로 이어받아 현대적으로 ‘승화’시킨 전 대통령의 공헌 또한 무시할 바는 아니지만, 단순히 이기적인 도둑질을 현명하게 성취해 낸 그의 ‘그릇’과, 한국 현대사의 흐름 자체를 통째로 바꾸어 버린 논쟁적 인물의 철학을 고스란히 부활시킨 그녀의 ‘그릇’은 분명 다른 차원에 존재하고 있었다. 거짓말, 반칙, 결과주의, 경쟁, 불로소득, 힘, 집중, 대마불사, 물질, 돈, 질투.. 이런 가치들이 한국사회를 다시 지배하기 시작했다. 잠시나마 분배, 정의, 공정, 상식, 복지, 같은 가치들에 밀려 숨어있던 이 가치들이 조금 더 굳건한 방식으로 한국사회를 물들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신화는 그와 그녀를 추종하는 이들의 신화이기도 했다. 권력자의 밑에서 조금 작은 권력을 나누어 받은 이들은 그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고 있었다. 할 수 있는한 많이,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개인의 이기심이 우선시되는 사회철학은 이들의 행동을 쉽게 정당화시켜 주었다. 권력을 나누어 받지 못한 이들은, 시스템을 바꿀 힘을 부여받지 못한 이들은 점점 가난해져갔다. 몸도 마음도 가난해질 수 밖에 없는 시스템에서 고통만 쌓여 갔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집 한 채 장만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누군가의 주머니에 돈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며 하루 하루를 허비해야 했고, 그렇게 모인 돈은 권력자를 위해 쓰였다. 돈을 가진 이들과 돈을 갖지 못한 이들의 격차는 점점 벌어졌고, 권력을 가진 이들은 힘을 합쳐 그들만의 울타리를 더 높게 만들었다. 계급 간 차이는 눈에 띄게 커졌고 계급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 모든 과정은 제국주의로부터 시작해 독재와 재벌 중심 계획경제로 귀착되는 불평등한 사회로부터 출발되었고, 더 불평등한 사회로 마무리되었다. 이것이 우리나라가 가진 유일한 신화다. 이 유일한 신화는 구미 어딘가에서 동상의 모습으로 현현해 있을 뿐만 아니라 꽤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도 무형의 모습으로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오늘은 이 신화가 무너지는 과정이 출발하는 날이다. 광장에서 시작되었고 민주주의와 헌법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독재와 비상식, 질투와 이기심으로 상징되는 하나의 신화를 무너뜨리는 과정은 너무나 평화로웠고 민주적이었으며, 무엇보다 평범한 시민 개개인의 노력에 의해 완성되고 있다. 시민의 상식에 의해 법은 만들어지고 이 법에 의해 권력은 통제되어야 하며, 통제된 권력은 시민 개개인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봉사되어야 한다. 자본주의는 법으로 통제되는 범위 내에서 권력의 재분배를 이루어 내는 유일한 수단이어야 하지만 자본주의의 ‘나쁜 이기심’은 다시 한번 법 아래에서 자원의 효율적인 재분배를 위해 통제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정치적 권력을 쟁취한 세력과 경제적 권력을 쟁취한 세력이 결탁하여 불평등한 사회를 심화시키는 공범으로 활동해왔다. 오늘은 그러한 세력에게 정당한 절차에 의해 책임을 묻는 과정의 출발선인 셈이다. 이제 헌법재판소는 이 신화를 법적으로 끝낼 키를 쥐게 되었다. 그리고 시민들은 직접 투표를 통해 신화를 공식적으로 끝낼 새로운 대표자를 뽑게 된다. 우리나라에 희망이 있다면, 그 희망의 실마리는 여전히 인상을 찌푸린채 오늘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 개인의 미간 주름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개, 돼지” 취급을 받으며 수모와 멸시를 묵묵히 견디어 낸 시민의 목소리는 그 누군가에게라도 들려야 하는 정치적 의사의 표현으로 보상되어질 수 있다. 이제 추운 겨울이 지나고 다시 꽃이 필 무렵이 되면 그러한 역사를 만들어나갈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이 비뚤어진 신화 아래에서 고통받은 수많은 이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올바른 역사를 써 나가는 것이다. 역사만이 고통을 감춘 과거를 미래로 끄집어내어 위로해줄 수 있다. 그 역사는 미래를 바라보는 현재에 의해서만 기록되어질 수 있다. 오늘은 그 기록의 첫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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