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eymooning: Aix-en-Provence

The reason we decided to go to Southern France was so simple: It should be in Europe because my wife had never been there and this was the best chance to spend two weeks there, and it should be warm enough in the middle of December. Candidates were pinned down to two: Barcelona and Nice. And we chose the latter because it’s France. Simple. We both never speak French, but we felt France should be the first place to visit for her. Just felt. So, here are few footprints of first several days in Nice and Aix-en-Provence. We will head back to Nice and have a Christmas holiday there and finally enjoy Paris at the end of the one and only honeymoon.

 

결혼식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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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결혼을 했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결혼식과 이후 행사들을 소화했다. 어머니의 모교인 성심여고 안에 있는 성심성당에서 혼배미사 형태로 진행이 되었고, 이후 피로연은 근처 식당을 빌려 하객들에게 조촐한 식사를 대접했다. 70명 남짓한 하객들만을 모셨지만 그조차 다 수용하기 버거워 친구들에게는 돈을 따로 쥐어보내 다른 곳에서 먹게 해야 했다. 지금까지 34년 넘게 생을 살아오면서 감사의 마음을 예를 다해 표해야 할 사람들이 70명보다는 많을 것이다. 아무리 폐쇄적인 삶을 살았다 해도 혼자만의 힘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이 세상이니 만큼, 삶의 각 단계에서 도움을 주고 은혜를 베푼 이들이 결코 적을리 없다. 결혼식이라는 행사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두 명의 사람이 만나 하나의 가정을 이룰 것을 그 순간까지 그 두 명의 사람을 만들어준 사람들 앞에서 선서하고 인정을 받는 자리다. 사회적인 통과의례이고, 때문에 결혼식을 올리는 두 명의 당사자 뿐 아니라 그 주변 가까운 지인들의 영향력이 강하게 개입될 수 밖에 없는 이벤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고집을 피워가며 당사자의 의지대로 결혼식을 진행하겠다고 했을 때 추가되는 희생과 고통은 어찌 보면 당연히 예상되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아니 나는 그런 결혼식을 고집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배우자를 아내로 맞아 들이기 위해 굳이 가톨릭 혼배미사를 고집했고, 배우자가 될 사람은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명동성당으로 나가 예비신자 교리를 들어야 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결혼식 그 자체보다 축의금과 피로연에 더 집중되는 듯한 한국의 결혼식 문화를 달가워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결혼식과 피로연 시간을 분리하고 축의금을 공식적으로 받지 않는다는 입장도 결코 철회하지 않았다. 모든 결혼 비용은 내가 부담한다는 조건은 양가 부모님들에겐 아이들 장난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결국 부모님들의 도움을 받아 식을 치루게 되었고, 하객들은 ‘비공식’적인 루트로 축의금을 전달해야 했으며 초대받지 못한 다수의 지인들은 어떻게 축하의 인사를 건네야 할지 몰라 난감해 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나 역시 추가적인 고통을 부담해야 했다. 작은 규모의 결혼식을 완성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은 결코 작지 않았다. 더 많은 것을 스스로 챙겨야 했다. 기존 시스템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는 계획은 그만큼 더 많은 개인의 노력을 필요로 했다. 게다가 준비 기간도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짧았다. 5월에 만나 12월에 결혼하는 이 과정은, 연애와 결혼준비가 하나로 합쳐지고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결혼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공고해지는 기묘한 체험을 선사해주었다. 결혼식 전날과 당일, 이틀 간은 생애 가장 바쁜 시간이었다. 새로운 가족을 모시고 꽉 막힌 금요일 저녁 도로를 뚫고 서울 여기저기를 돌아다녀야 했으며 새벽같이 일어나 행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제대로 앉지도 못한 채 여기저기를 뛰어 다녀야 했다.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표하고자 모신 소수의 하객들에게 진심의 인사를 건넬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는 아이러니도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생애 가장 기억에 남는 기쁜 날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진심을 다해 결혼식에 집중해주었고 진심으로 축하해 준 그날 함께 한 지인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에서 소리 없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준 관계자들, 함께 하지 못했지만(초대를 받지 못한 설움과 섭섭함에도 불구하고) 먼 곳에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축하의 인사를 건네준 소중한 지인들, 주인공이 되어야 함이 마땅하지만 조연으로 전락했음에도 함께 준비의 고통을 기꺼이 나누어준 양가 가족들, 그리고 따뜻한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넬 줄 모르는 서툰 나를 내치지 않고 묵묵히 옆에 서서 고통을 함께 감내해준 (이제 당당한!) 나의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잘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이다. 늘 받기만 하며 살아왔다. 주변 사람들을 챙기지 못하는 나의 부족한 성품은 버릇없음으로 이어지기 쉬웠고, 여기에 게으른 기질이 더해져 제대로 축하받지 못하고 축하하지 못하는 삶으로 이어져 왔다. 이런 내가 결혼이라는 인간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의례 중 하나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 정도로 무난한 삶을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나를 이끌어준 가족과 나의 부족함을 채워준 주변 사람들 덕분이다. 삶에서 내 힘으로 이룩할 수 있었던 부분은 극히 일부분이다. 음식을 소화시키고 심장을 뛰게 하는 등 몸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생리활동을 내가 전혀 인지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삶을 완성시키는 많은 것들을 나는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흘려보낼 때가 많다. 그것에 대해 일일이 감사를 표하지 못하는 나의 부덕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제 넘치는 사랑과 축하를 받았다. 모든 순간이 너무 황홀해서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사람들의 표정 하나에도, 주례신부님의 플룻 연주 음 하나에도, 나의 축가를 비웃는 웃음소리 하나에도 가슴이 뭉클해져 눈물이 쏟아졌다. 왜 그렇게 마음이 많이 움직였는지 모르겠다. 계획한 대로 되었던 것은 거의 없었다.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돌발상황이 터져 나왔고 그 어떤 부분도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이 너무 감사하고 즐거울 뿐이었다. 대학 입시, 군 제대, 대학원 합격, 박사 논문 심사 통과, 첫 출근.. 삶에서 일어난 수 많은 큰 사건들 중에서 어제보다 더 크게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직장 동료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해설을 맡아준 J선임, 술 한번 같이 마셨을 뿐인데 기꺼이 주례를 맡아준 P신부님, 축의금이라는 거대한 시장 규율을 포기하고 기꺼이 작은 결혼식을 허락해 준 양가 부모님, 회사의 명운을 좌우할 큰 작업을 눈 앞에 두고 기꺼이 반주를 맡아준 Y, 결혼식 장소로 공개하지 않지만 기꺼이 예외사례를 만들어주고 결혼식 당일까지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은 Y수녀님, 어린 나이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욕은 욕대로 먹고 힘은 힘대로 들었을 와이프의 동생 J, 따로 핑거푸드를 준비하여 하객들을 대신 대접한 누나와 자형, 그외 친척들, 축의금을 받지 않는다는 시장규율을 어긴 규칙을 다시 어기고 기어이 축하의 마음을 표현해주신 하객들, 먼길을 달려와 단 몇 시간의 행사에 참여하기 위한 지방에서 오신 하객들, 아름다운 순간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준 사진과 영상 기사님, 결혼식의 꽃인 밥 한그릇 먹지 못한 채 쫓겨 나오듯 식만 보고 떠난 친구들, 초대받지 못했다는 섭섭함을 감추고 끝까지 축하의 인사를 건네준 직장 동료,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 대학원 친구들, 그리고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고통 속에서도 드레스를 입고 밝은 미소를 잃지 않으며 함께 참아준 아내, 그 모든 이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혹시나 남아 있을 안좋은 감정은 모두 나에게로 보내길 바란다. 모든 책임과 멍에는 내가 짊어지고 가겠다.

데이미언 셔젤: 라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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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를 굉장히 나쁘게 봤다. 영화팬과 평론가들을 혹하게 만들만한 요소들을 많이 품고 있는 흥미로운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를 ‘좋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다. 무책임하게 마무리된 서사와 그로 인해 더 모호해진 영화의 윤리성때문이었다. 감독은 <라라랜드>에서 자신이 잘 하는 것에 집중하고, 자신없어 하는 것은 과감히 생략해버리는 방법을 택했다. 덕분에 서사구조는 아무런 논란이 있을 수 없는 매우 통속적이고 단순한 뼈대만을 취한다. 무산계급의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나누지만 힘겨운 현실은 한발 늦게 찾아오고, 꿈을 포기한 채 살아가다 결국 각자의 꿈을 향해 제 갈 길을 간다는 줄거리는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다. 그 안에 불편한 윤리적 시선이 들어갈 여지도 거의 없다. 영화의 중반부에 두 사람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스틸컷처럼 짧게 보여주는 순간 이미 씁쓸한 결말은 예상되어졌다.

중요한 것은 감독의 시선이 두 주인공의 삶에 머무르지 않고 조금 더 높은 곳을 향해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 영화를 일종의 메타 필름으로 읽었다. 영화는 두 주인공의 통속적인 삶을 바탕으로 뮤지컬이라는 전통적인 장르에 기대어 영화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하다. 기발한 오프닝씬을 제외하면 전통적인 헐리우드 뮤지컬 영화의 각종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인용한다.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를 그대로 모방한 플라잉 댄스 씬은 대표적인 예다. 그래서 차라리 뮤지컬 영화라고 하기 보다는 음악 영화라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겉으로 드러난 주제’는 남자 주인공 세바스챤의 뮤지션으로서의 삶에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는 쇠락해가는 전통적인 재즈를 지키고 싶어하고 그 고전적인 재즈를 연주할 펍을 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연인을 위해 크로스오버 재즈 밴드에 들어가 돈을 번다. 여자 주인공 미아는 그렇게 멀어져 가는 연인을 불안하게 지켜보고, 거듭되는 실패에 배우로서의 정체성마져 흔들린다. 결국 남자의 도움으로 여자는 캐스팅 기회를 얻어 배우로서 성공하고, 남자는 자신의 곁을 떠난 여자를 기다리며 약속한대로 펍을 열어 작은 성공을 이룬다. 그가 펍에서 연주하는 곡은 당연히 전통적인 프리 재즈 기반의 음악이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감독이 재즈를 빗대어 영화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서는 영화의 마지막씬, 여자, 혹은 남자의 상상 장면이다. 5년만에 다시 만난 남자는 여자와 함께 나누었던 음악을 연주하며 ‘만약 그 때 우리가 조금 더 행복했다면’이라는 상상을 시작한다. 영화의 주요 장면들은 조금씩 뒤틀리고 영화는 이 커플의 완전히 다른 미래를 보여준다. 이들이 매 순간 조금 더 나은 결정을 내렸다면, 여자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이 남자의 곁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마치 <파이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두번째 이야기”처럼 <라라랜드>는 영화의 마지막에 서사구조의 완전히 다른 면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파크웨이에서 춤을 추는 영화의 오프닝씬부터 이미 이 영화는 ‘판타지’라는 것을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으므로, 이제 이 커플의 ‘조금 더 행복한 인생’을 보여주었으니 영화 내내 보여준 ‘조금 더 현실적인’ 서사를 굳이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지 않겠냐는 제안을 건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삶 자체가 거대한 맥거핀처럼 느껴졌다. 감독이 정말 진지하게 이 둘의 사랑 이야기에 집중했다면 이렇게 허술하고 진부한 서사구조를 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미아의 룸메이트 세 명은 곡 하나를 함께 부른 이후 아무런 역할도 부여받지 못한 채 거의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감독은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영화는 이제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이 영화를 만든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그저 단순한 뮤지컬 로맨스 영화로 읽어도 충분히 흥미롭다. 배우들의 연기를 훌륭하고 음악은 아름답다. 통속적인 이야기라는 것은 결국 ‘고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니, 그것이 반드시 재미가 없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완전히 같은 서사구조를 가진 우디 앨런의 <카페 소사이어티>가 보여준 처참한 실패는 <라라랜드>가 얼마나 교묘하게 예상된 함정들을 잘 피해왔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하나의 연애가 시작되고 그 연애가 현실과 부딪히고, 그래서 연애가 끝난다. 그 과정에서 사랑이 있었고, 슬픔은 조금 더 오래 남아있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흔하고 또 가장 중요한 이 감정의 심연을 건드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독의 재능에 대해 의심할 근거가 없음을 보여준다.

신화의 종말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신화가 있다. 생존과 출세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철학과 가치관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지독한 성격을 가진 한 남자의 이야기가 신화가 되어 계속 생명을 이어왔다. 일본 제국주의와 남로당, 괴뢰 만주국을 거쳐 신생 공화국의 육군 장교로 살아남아 권력의 끄트머리에서 질긴 숨을 이어나간 그 남자는 불법에 의해 권력을 쟁취하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강화한 뒤 기어코 헌법을 바꿔 권력을 영속적으로 유지하려 했다. 그는 결과를 위해서라면 과정은 무시되어도 좋다는 가치관을 한국에 심어 놓았고, 그 결과 한국은 동과 서로 나뉘어 반목하고 다투기 시작했으며, “큰 일”을 하기 위해 개인의 가치는 희생되어도 좋다는 주장을 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만들었다. 한국사회는 제국주의의 지배로 인해 단절되었던 역사를 회복하기도 전에 그 한 사람으로 인해 아주 큰 변화를 아주 짧은 기간에 겪어야 했고, 그 기간동안 일어난 수 많은 고통들은 숫자로 보기 좋게 표현된 ‘발전’이라는 구호 아래 묻혀버렸다. 누군가에게는 떼돈을 벌게 해준 은인이자 영웅으로 칭송받는 그의 철학은 한국사회의 철학이 되었고, 한국인의 절반은 그의 철학에 동의하며 더이상 발전이 아니게 된 그 ‘발전’이라는 구호를 떠받드는 충견으로 기능해왔다.

그와 그의 철학에 동의하는 그 절반의 한국인이 그의 딸을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그녀에게 권력을 다시 선물했다. 그녀가 권력을 잡게 된 이유를 분석한 수많은 사람들은 그녀가 얼마나 정신적으로 불안정한지, 부모를 모두 비명에 잃은 그녀의 성장 과정에 어떠한 문제는 없었는지 사려깊게 살펴보지 않았다. 단지 세대 간의 갈등, 소외 받은 노인들의 실력 행사 정도로 이 기현상의 배경을 얼버무릴 뿐이었다. 그의 신화는 그의 딸의 신화로 이어졌다.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변해온 나라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수십년 지난 가치들이 다시 현대 한국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미 권력자 한 사람이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시스템을 갖게 된 이 사회였지만 여전히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아보였다. 공직사회의 말단 직원이 쓰는 보고서의 톤 하나조차 청와대의 오더를 받아 수정되어야 했다.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마땅한 견제세력조차 보이지 않는 한국사회의 대통령이라는 위치는 단지 물리적인 명령의 현실화 외에도 그 사회의 공기, 분위기, 혹은 집단 철학의 기조 자체를 바꾸어버리는 위력을 가진다. 경제는 고꾸라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덜 웃게 되었다. 같은 계급에 있는 사람들끼리 더 많이 다투기 시작했고 권력을 가진 자들 앞에는 충성을 맹세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의 신화가 그의 딸의 신화로 전이되는 최근 몇 년의 기간동안, 한국사회는 분명 뒤로 후퇴하고 있었다. 그의 신화를 그대로 이어받아 현대적으로 ‘승화’시킨 전 대통령의 공헌 또한 무시할 바는 아니지만, 단순히 이기적인 도둑질을 현명하게 성취해 낸 그의 ‘그릇’과, 한국 현대사의 흐름 자체를 통째로 바꾸어 버린 논쟁적 인물의 철학을 고스란히 부활시킨 그녀의 ‘그릇’은 분명 다른 차원에 존재하고 있었다. 거짓말, 반칙, 결과주의, 경쟁, 불로소득, 힘, 집중, 대마불사, 물질, 돈, 질투.. 이런 가치들이 한국사회를 다시 지배하기 시작했다. 잠시나마 분배, 정의, 공정, 상식, 복지, 같은 가치들에 밀려 숨어있던 이 가치들이 조금 더 굳건한 방식으로 한국사회를 물들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신화는 그와 그녀를 추종하는 이들의 신화이기도 했다. 권력자의 밑에서 조금 작은 권력을 나누어 받은 이들은 그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고 있었다. 할 수 있는한 많이,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개인의 이기심이 우선시되는 사회철학은 이들의 행동을 쉽게 정당화시켜 주었다. 권력을 나누어 받지 못한 이들은, 시스템을 바꿀 힘을 부여받지 못한 이들은 점점 가난해져갔다. 몸도 마음도 가난해질 수 밖에 없는 시스템에서 고통만 쌓여 갔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집 한 채 장만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누군가의 주머니에 돈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며 하루 하루를 허비해야 했고, 그렇게 모인 돈은 권력자를 위해 쓰였다. 돈을 가진 이들과 돈을 갖지 못한 이들의 격차는 점점 벌어졌고, 권력을 가진 이들은 힘을 합쳐 그들만의 울타리를 더 높게 만들었다. 계급 간 차이는 눈에 띄게 커졌고 계급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 모든 과정은 제국주의로부터 시작해 독재와 재벌 중심 계획경제로 귀착되는 불평등한 사회로부터 출발되었고, 더 불평등한 사회로 마무리되었다. 이것이 우리나라가 가진 유일한 신화다. 이 유일한 신화는 구미 어딘가에서 동상의 모습으로 현현해 있을 뿐만 아니라 꽤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도 무형의 모습으로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오늘은 이 신화가 무너지는 과정이 출발하는 날이다. 광장에서 시작되었고 민주주의와 헌법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독재와 비상식, 질투와 이기심으로 상징되는 하나의 신화를 무너뜨리는 과정은 너무나 평화로웠고 민주적이었으며, 무엇보다 평범한 시민 개개인의 노력에 의해 완성되고 있다. 시민의 상식에 의해 법은 만들어지고 이 법에 의해 권력은 통제되어야 하며, 통제된 권력은 시민 개개인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봉사되어야 한다. 자본주의는 법으로 통제되는 범위 내에서 권력의 재분배를 이루어 내는 유일한 수단이어야 하지만 자본주의의 ‘나쁜 이기심’은 다시 한번 법 아래에서 자원의 효율적인 재분배를 위해 통제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정치적 권력을 쟁취한 세력과 경제적 권력을 쟁취한 세력이 결탁하여 불평등한 사회를 심화시키는 공범으로 활동해왔다. 오늘은 그러한 세력에게 정당한 절차에 의해 책임을 묻는 과정의 출발선인 셈이다. 이제 헌법재판소는 이 신화를 법적으로 끝낼 키를 쥐게 되었다. 그리고 시민들은 직접 투표를 통해 신화를 공식적으로 끝낼 새로운 대표자를 뽑게 된다. 우리나라에 희망이 있다면, 그 희망의 실마리는 여전히 인상을 찌푸린채 오늘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 개인의 미간 주름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개, 돼지” 취급을 받으며 수모와 멸시를 묵묵히 견디어 낸 시민의 목소리는 그 누군가에게라도 들려야 하는 정치적 의사의 표현으로 보상되어질 수 있다. 이제 추운 겨울이 지나고 다시 꽃이 필 무렵이 되면 그러한 역사를 만들어나갈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이 비뚤어진 신화 아래에서 고통받은 수많은 이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올바른 역사를 써 나가는 것이다. 역사만이 고통을 감춘 과거를 미래로 끄집어내어 위로해줄 수 있다. 그 역사는 미래를 바라보는 현재에 의해서만 기록되어질 수 있다. 오늘은 그 기록의 첫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