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k Cave & the Bad Seeds: Skeleton Tree

닉 케이브 아저씨가 음악을 잘 한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다만 그의 음악을 좋아하고 즐겨 듣느냐는 질문에 선뜻 네, 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나부터가 그렇다. 그가 아주 오래전부터 다른 차원에서 놀고 있는, 음악의 거의 모든 것을 깨달은 도인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집에 쌓인 그의 음반들을 부담없이 꺼내서 플레이하지 못하는 어떤 ‘벽’같은 것을 느껴 왔다. 빡세게, 각 잡고 들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어쩔 수 없이 풍기는 아티스트가 바로 닉 케이브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 중 그것에 임하는 자세가 무척 진지하고 순수한 사람이 흔히 그렇다. 그가 만든 사운드 하나 하나를 세심하게 들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느끼게 만드는 아우라가 있다. 보통 이정도 수준에 다다른 뮤지션이라면 정체기를 겪는다던가 적당히 투어만 돌면서 명성을 즐기는 삶을 살아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지 않을텐데, 닉 케이브 선생님은 그런 빈틈조차 허용하지 않는 듯, 엠비언트, 신스팝, 그런지같은 시대를 관통하는 장르들을 씹어 삼키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왔다. 정돈되지 않은 듯한 날 것의 사운드는 그만의 전매특허이지만 자세히 듣다 보면 그 거친 표면조차 철저한 계산 아래 완벽하게 직조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그 순간 소오름이 돋으면서 정말 나같은 놈이 이 분의 음악을 들어도 되나 싶은 경외감마저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완벽에 가까운 그의 음악에 개인적인 이야기가 뒷배경으로 삽입될 때, 창작자 본인 및 청자들이 함께 겪게 되는 감정의 파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수준이 된다. 닉 케이브는 이번 음반 <Skeleton Tree>의 대부분의 노래들이 그의 아들의 비극적인 사고 이전에 만들어졌지만 몇몇 곡에서 약간의 수정은 이루어졌다고 밝히고 있다. “Jesus Alone”은 마치 아들을 잃은 닉 케이브의 마음을 선지자적 시선에서 바라보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 곡 외에 직접적으로 닉 케이브의 가정사와 연결지을만한 노래도 없고 그 사고를 바탕으로 쓰인 노래도 없다. 하지만 음반 전체를 관통하는 절대자,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 의심이라는 테마를 읊조리는 닉 케이브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린다고 느낄 때 청자의 입장에서 음악에서 느껴지는 울림의 진폭이 어쩔 수 없이 커지는 경험을 비단 나만 한 것은 아니리라 믿는다. 닉 케이브는 아들의 장례를 치루고 2주만에 스튜디오로 복귀하여 음반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보컬 트랙은 장례 이후에 녹음되었다. 예술가는 고통스러워야 한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다만 결과론적인 관점에서 아들의 죽음을 관통하며 완성된 이 음반이 역사에 길이 남을 명반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이다. 여전히 다양한 장르를 장인의 손놀림으로 주물럭거려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고, 여전히 내뱉는 단어 하나 하나가 가슴에 쿵쿵 들어와 박히는 문학적인 아름다움도 간직하고 있다. 그 뒤로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 깊은 슬픔이 읽힌다. 너무 깊고 위대해서 차마 자주 들을 수조차 없다.

Bon Iver: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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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장의 정규 음반으로 인디계에 거물로 떠오른 Bon Iver와 Justin Vernon은 이후 오랜 기간 스튜디오를 떠나 분주한 나날, 혹은 비공식적인 혼란기를 겪는다. The National 멤버들과 함께 만든 Eaux Claires Festival이 “분주한 나날”에 해당한다면 저스틴 버논을 제외한 대부분의 2집 스튜디오-투어 멤버들이 밴드를 떠난 일은 “비공식적인 혼란기”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건일 것이다. 지난 겨울 버논은 세번째 음반을 제작하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마치 몸을 풀 듯 아시아 투어에서 밴드의 새로운 라인업과 셋리스트를 공개했다. 운 좋게 그 아시아 투어에 한국이 포함되어 있었고, 그 곳에서 밴드의 새로운 음악이 어떤 모습일지 살짝 맛을 볼 수 있었다. 두 대의 드럼으로 만들어내는 강렬한 리듬 파트는 여전했지만 2집과 1집을 사운드 면에서 구분 짓는 주요한 특징 중 하나였던 현악기와 관악기의 사용이 전혀 없었다. 세 명의 여성 보컬과 보코더 등을 통해 보컬 파트를 강조한 것도 흥미로웠다. 많은 이들이 “장르의 변화”라고 생각한 1집에서 2집으로의 변화를 나는 ‘점프’로 해석하고 싶다. 버논의 음악적 뿌리는 하나의 장르에 국한되지 않은 채 그만의 색깔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론을 편견없이 습득하고 체화해 내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2집의 첫 곡 “Perth”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은 이후 곡들에서 조금씩 사라지고 결국 남는 것은 여전히 진한 그만의 쌉싸름하고 쓸쓸한 감수성이다. 2집에서 3집으로의 변화도 같은 선상에서 해석 가능하다. 1집의 포크 감성이 2집의 대형 밴드 구성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한 사람은 3집에서 그 밴드의 구성 자체를 해체해 버린 변화의 폭이 무척 크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기존의 목가적인 정체성마저 완전히 버리고 제대로 발음하기도 힘든 노래 제목들과 해석 불가능한 앨범 커버 등 청자의 이질감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3집 <22, a million>은 여전히 Bon Iver의 음악이고, 여전히 이들만이 만들 수 있는 요소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장르의 변화로 읽지 않고 저스틴 버논의 성장기로 읽으면 그냥 여전히 그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만의 감정으로 담아내고 있을 뿐이다. 지난 음반에서와 마찬가지로 음반의 포문을 여는 첫 곡에서 버논은 그 음반에서 보여주고 싶은 가장 극단적인 형태를 담아냈다. “22(Over Soon)”은 그래서 파격적이라고 할 만 하다. 하지만 “#29, Strafford Apts”,  “666 (Upsideddowncross)”처럼 그 뒤 이어지는 노래들은 2집, 심지어 1집에 포함되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구성과 편곡을 거쳤다. 칸예 웨스트, 제임스 블레이크같은 이 시대의 첨단을 달리는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에서 무언가 재미있는 도구들을 발견하고 그 것을 적용하면서 새로운 옷으로 갈아 입었을 수는 있지만, 위스컨신의 오두막집에서 하루종일 그 누구와도 말하지 않고 꼼지락거리며 음악을 만들 던 그 정체성과 뿌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여전히 좋다. 아주 좋은 음악들이 담겨 있다. 그는 여전히 좋은 아름다운 멜로디와 쓸쓸한 가사를 절묘하게 엮어내어 독특한 심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 과정에서 세계에 존재하는 그 어떤 음악과도 다른 독특한 세계를 구축한 것은 놀라운 성취다. 그와 그의 밴드는 여전히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이랑: 신의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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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의 첫번째 음반 <욘욘슨>에 대해 이 블로그에 “그 해 가장 유쾌하게 들었던 앨범”이라고 적었다. 모든 가사와 가락이 한 없이 밝았기 때문은 아니다.  “포크에 기반을 둔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인위적인 카테고리를 만든다면 그 최전선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아티스트를 만난 반가움이 커서 마냥 기쁘게 들렸던 것 같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발매된 이랑의 두번째 음반이자 수필인 <신의 놀이>는 그녀의 세계가 -당연하게도-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지긋이 눌러 알려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가 여전히 매우 재능 넘치는 예술가이며, 그 재능을 풀어낼 수 있는 목소리를 조금 더 다채롭게 다듬어 왔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맺음한다. 안도와 희열을 동시에 느낀다. 새로운 음악을 접하기 까지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만 그 기다림이 무색할 정도로 좋은 노래들이 넘실거린다. 조금 더 솔직하게 본인의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서 드러내는 이야기 방식을 통해 깊이가 더해졌다. 그녀가 왜 영화라는 종합예술의 형태에 천착하는지 그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고 시작하는 타이틀곡과 어머니와의 실제 대화를 삽입한 “가족을 찾아서”, 개인의 욕망과 현실의 어려움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도쿄의 친구”까지 듣고 나면 그녀가 용기 있는 이야기꾼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웃어 유머에”, “슬프게 화가 난다”같은 노래들은 그녀만이 만들 수 있는 강렬하고 독창적인 넘버들이다. 그녀에게 배고프게 살라고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재능 중 가장 영리하게 잘 하고 또 가장 편안해 하는 건 역시 음악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가 만든 영상물에서는 음악에서와 같은 감흥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계속 음악을 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