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 한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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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감독의 <한공주>는 천우희의 좋은 연기와 한국사회의 가장 아프고 추한 단면인 청소년 성폭력 문제를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가감없이 드러냈다는 용감한 주제의식을 제외하고 본다면, 환호성을 지를만큼 엄청나게 대단한 영화는 아니다. 특히 많은 이들이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영화의 암묵적인 약속을 무너뜨려가면서까지 ‘전시’한 “선풍기 씬”의 윤리성 문제는 이 영화가 이룩한 소중한 성취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어떻게 보면 만족감보다는 아쉬움이 더 큰 영화다. 이 소중한 영화가 조금 더 맵시있게 마무리될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 말이다. 이미 10여년 전에 같은 문제를 다룬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판타지적 장치들을 사용하여 주제의식을 우아하게 승화시켰고,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미숙한 폭력성을 다룬 <파수꾼>이나 <용서받지 못한 자>와 같은 한국 독립영화들 역시 <한공주>보다 훨씬 사려깊은 방식으로 주제를 풀어냈다. 이미 차분히 서사를 마무리 짓기 위해 참고할 만한 레퍼런스가 충분히 쌓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조급한 마음이 들어 그렇게 처리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아직도 채 가시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공주>가 남긴 대단한 성취들은 오랜 기간 기억되어야 한다. 천우희의 놀라운 연기는 엄마보다 황정민을 더 자주 봐야 하는 한국 영화의 배우 기근 현상을 해결해 줄 단비와 같은 청신호였다. 영화를 구원해 주는 또다른 수호천사는 역시 마지막 씬이다. 영화에서 말없이 보여준 공주의 여러 행동들이 하나로 꿰어지며 통렬한 아픔과 무한한 희망을 동시에 품게 만드는 그 장면이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을 상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할 때 혹시나 살고 싶은 마음이 들까봐 수영을 열심히 배운 한 소녀를 기억해야 한다. 그러한 소녀가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사회 이곳 저곳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리고 그 소녀를 가까이에서 보거든, 방관자적 시선으로 가만히 응원을 할 것이 아니라, 그녀의 옆에 가만히 서서 함께 그 길을 걸어가 주어야 한다. 영화에서 공주를 천사처럼 보살펴주려고 노력한 친구들이 결국 ‘그’ 영상을 본 후 전화를 받지 않는(혹은 못하는) 장면은 그래서 무척 뼈아프게 현실적이고 상징적이다. 우리는 그 전화를 받아야 한다.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야 한다.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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