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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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을 본 후 ‘이 영화를 무척 재미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주변에 꽤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나홍진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었다. 얄팍한 주제의식을 그나마 현란한 테크닉과 개연성 있는 탄탄한 시나리오로 잘 가리며 버텨 왔던 그였지만, <곡성>에서는 오리지널리티라고는 전혀 없이 여기저기서 빌려 쓴 클리셰들로 떡칠이 되어 개연성을 잃고 마구 흔들리는 서사구조를 편집이라는 교묘한 속임수로 간신히 감춘 모양새다. 속임수에도 클래스가 있다. 모든 속임수가 비판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애거사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은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 전개된다. 독자는 주인공의 시선과 인식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사건을 이해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진실을 보여준다는 보장은 없다. 스릴러 장르에서 흔히 사용되는 이 트릭은 인식론적 주제의식을 부각시킬 때 주로 사용된다. 이처럼 ‘왜곡된 시선’은 잘만 사용하면 특정 장르에서 훌륭한 장치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곡성>에서 사용한 속임수는 아주 단순하고 저열한 방식이다. 개연성 없는 두 사건을 교차편집하여 혼란을 가중시키거나 특정 인물에 대한 거짓된 단서를 복수의 등장인물로 하여금 발화하게 하여 영화 내에서 ‘소문’을 만들어내는 등의 방식은 사실 속임수 축에도 끼지 못하는 유치한 방법들이다. 그렇게 영화를 만들어 놓고 포스터에는 자랑스럽게 “미끼를 물었다”라고 써 놓았다. 뭘 하자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동서양 샤머니즘의 결합, 믿지 못하는 인간의 마음, 등등 무언가 있어 보이려는 시도는 중학생 정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어쩌면 그에게 오리지널리티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홍진은 원래 이정도 수준의 감독이 맞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의 필모그래피는 점점 퇴화하고 있다. 다음 작품 쯤에서 바닥을 드러낼 것이라고 예상해본다.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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