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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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버지가 된 친구가 있다. 그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 이 영화를 추천해 주었더니, 영화 하나를 본다고 해서 아버지의 세계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그 세계를 직접 경험한 자만이 알 수 있는 무한한 기쁨이 있고 그 과정을 직접 겪어야만 인간으로서 한단계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는 대답을 들었다. 당연히 맞는 말이다. 영화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책과 비슷하다. 나쁘게 말하면 다른 이의 삶을 훔쳐보거나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 듣는 것 정도다. 그래서 영화가 주는 가르침의 한계도 명확하다. 다만,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본 나는 그 친구가 지금 막 세상으로 나온 자신의 아이를 환영하고 받아들이는 육아의 기초적인 단계에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게 되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과정에서 아이와의 관계가 자신과 아버지와의 관계를 비추는 거울처럼 작용할 수 있다는 것, 그 과정에서 이룩하는 ‘성장’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아버지가 되는 것과는 또다른 차원의 성취라는 것을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배웠다”.

이 영화를 보면서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일본의 다르덴 형제가 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태풍이 지나가고>에서 그러한 심증은 더 굳어졌다. 히로카즈는 윤리에 대해 조금씩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관객에게 특정 수준의 윤리적 판단을 요구한다. “특정 수준”이라고 표현한 것은 감독이 던지는 윤리적 질문이 범상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는 아들이 뒤바뀐 상황을 던져놓고 “당신이라면 친자와 함께 살 것인가”와 같은 예상된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대신 “당신은 친자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고 묻는다. 두 질문은 모두 윤리적이지만 후자가 조금 더 사색적이고 개인적이다. <태풍이 지나가고>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오고 간다. 아내와 아들을 잃게 된 처지에 놓인 망나니 아저씨를 답답한 심정으로 지켜보는 관객에게 “가족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묻지 않고 “아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기를 요구한다. 히로카즈에게 현실의 많은 문제들은 단순한 상식 수준에서 이해 가능하다고 받아들여진다. 그의 관심사는 현상 이면에 숨어 있는 인간의 자세와 마음가짐이다. 이 지점에서 히로카즈는 다르덴 형제와 결을 조금 달리 한다. 사회 속의 개인이 아닌, 개인이 또다른 개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조금 더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뻔해보이는 결말은 감독의 이런 고민들 덕분에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누구나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어하고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어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아버지, 혹은 멋진 어른이 되지 못한다. 히로카즈의 최근 영화들은 실패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위한 사려깊은 송가다.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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