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매큐언: 칠드런 액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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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매큐언은 인간의 ‘원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다. 악한 마음에서 의도적으로 저지르는 잘못이 아닌, 그저 인간이기에 할 수 밖에 없는 잘못이 있다. 좋아하는 마음이 지나쳐서 질투로 번지거나, 책임감이 너무 큰 나머지 불의를 지나치지 못하거나, 한순간의 실수를 되돌릴만큼 용기가 없거나, 그 외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의 나약함은 그 자체로 죄의 씨앗이 된다. 그리고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참담한 결과로 나타날 때, 인간은 무너질 수도 있고, 다시 일어설 수도 있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아무 것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 과정을 적시하여 독자로 하여금 판단 이전에 반추하게끔 만드는 것이 매큐언의 문장들이 가진 재능이었다. <어톤먼트>가 그랬고, <새터데이>가 그러하였으며, <체실 비치에서>나 <암스테르담>도 마찬가지였다. 매큐언의 화려하고 치밀한 필체는 읽는다는 행위 그 자체의 즐거움을 극대화시키면서도 그가 천착해온 원죄와 속죄, 혹은 잘못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라는 주제의식을 구체화시키는데에 아낌없이 쓰인다.

신작 <칠드런 액트>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읽힐 수 있다. 소설은 주인공이 경험하는 두 개의 삶을 병렬적으로 나열한다. 우선 환갑을 바라보는 판사 피오나 개인의 피곤한 삶이 있다. 남편과의 관계는 위기에 봉착했다. 그녀에게 집은 쉴만한 곳이 아니다. 소파에 앉자마자 서류를 풀어놓는 것으로 ‘보호막’을 치는 그녀의 사생활은, 직장동료들 앞에서 말러를 연주하며 “my lady” 칭호를 듣는 품격 있는 삶에도 불구하고 그리 풍요로워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가 법복을 입고 있을 때의 또다른 삶이 있다. 그녀는 아동문제에 대한 판결을 내린다. ‘칠드런 액트’는 아동의 양육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판결할 때 해당 아동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아동법 제1조 a항으로 대변되는 영국의 법령이다. 피오나는 어느날 ‘아동의 복지’에 대한 그녀의 신념에 대한 강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는데, 바로 여호와의 증인 가족이 한 소년의 수혈을 거부한 것에 대한 병원의 긴급소송건을 맡게 된 것이다. 애덤 헨리라는, 법적 성인 연령인 18세에 몇개월 모자란, 이 신념 강하고 영특한 소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수혈을 강제할 것인가, 혹은 그와 그 가족이 가진 종교적 신념 및 신체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 수혈을 거부할 권리를 인정할 것인가. 쉽지 않은 문제이며, 판사의 재량이 개입할 여지가 많은 문제다. 굉장히 윤리적이며 종교적인 부분까지 건드릴 수밖에 없는 이 사건에 대한 피오나의 판결문은 흡사 수필, 혹은 소설의 문장들을 방불케 할 정도로 감정적이며 종교적이고, 사회/문화적 컨텍스트 위에서 형성된 그 공동체의 합의된 정서에 기대고 있다. 소설 전체에서 볼 때 중간 부분에 등장하는 이 판결문이 사실상 절정에 해당한다. 애덤 헨리에 대한 판결까지 한차례 폭풍이 몰아친다. 가족 측 변호인과 병원 측 대리인이 치고받는 법정 공방은 영화보다 스릴 넘치며, 피오나가 취하는 행동과 이후 판결은 감정적으로 강한 울림을 준다. 소설만이 줄 수 있는 짜릿함이 있다. 소설을 읽는다는 행위만이 줄 수 있는 쾌락이다. 이후 소설은 한껏 힘을 뺀 채 길고 긴 에필로그를 써 내려간다. 피오나의 두 개의 삶이 뒤엉키며 그녀가 내린 판결이 불러오는 결과를 담담히 서술한다. 법치사회에서 최고의 사회적 지위를 가지는 판사, 그것도 베테랑 판사가 커리어의 황혼기에서 접하게 되는 윤리적 갈등은 결코 간단치 않다. 사회적으로 그녀보다 완성이 되어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그런 그녀조차 자신의 행동이 뜻하지 않은 결과를 불러왔을 때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소설은 그런 그녀에게 충분한 해명의 기회를 주지 않고 성급히 마무리해버린다. 그녀를 위한 변명은 독자의 몫이다. 혹은 그녀보다도 더 당황했을 독자 자신을 위한 변명이 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