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nny Abrahamson: Room

room-2015
모든 인간은 어미에게서 태어난다.  어미와 자식은 한 몸으로 9개월에서 10개월을 함께 보낸 뒤, 밖으로 나와서도 가장 긴밀한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거의 모든 인간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배우는 단어는 그들의 어미를 지칭하는 단어이며, 가장 먼저 먹게 되는 음식은 어미의 몸에서 나오는 음료이고, 가장 먼저 이별하게 되는 사람도, 탯줄을 끊음으로써, 그 어미임을 확실히 한다. 자신의 어미를 보지 못한채 태어나는 사람도 많고, 모든 여성에게 모성애를 강요하는 것도 분명 어떤 차원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며, 최근에는 어미가 되는 것을 희망하지 않는 여성이 점차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어미와 자식 간의 관계는 아마도 다른 모든 인간 관계에서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신비로운 감정을 공유하는 사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어렸을 때 나는 나의 어머니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알 수 없었다. 사실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품을 벗어나 바깥 세상을 하루라도 빨리 넓혀 나가고 싶었을 뿐, 어머니와의 관계는 항상 뒷전이었다. 어머니를 돌아보고 그의 품에 안길 때는 세상이 무서워졌을 때, 뒷걸음질 치고 싶고 숨고 싶을 때 정도였다. 그래서 어머니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물음표로 남아있던 어미의 시선을 나의 누나를 통해 요즘 간접적으로 배우고 있다. 누나는 그의 아들과 하루종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행복해하고, 슬퍼하고, 화를 내며, 같이 울고, 같이 웃는다. 때로는 너무 한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이를 다그치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순하다 싶을 정도로 아이를 풀어두기도 한다. 방관자인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닐 뿐더러 내가 누나보다 아이 교육에 대해서 더 잘 안다고 절대 말할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에 가만히 지켜볼 뿐이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능력은 끊임없이 갈등하고 실수를 반복하는 부족한 한 인간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내 친구들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이토록 부족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한 아이의 부모가 된단 말인가, 하고 혀를 찰 때가 많다. 내가 아이를 낳아 키운다고 해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다.

영화 <룸>은 작은 방에 갇혀 있던 모자가 조금 더 넓은 방으로 옮겨가 살아가는 이야기다, 라고들 많이 이야기한다. 영화의 구성만 보면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전반부는 납치당한 뒤 7년동안 감금되어 있던 여자와 그 여자가 낳은 5살된 납치범의 아들이 좁고 낡은 방을 탈출하는 과정을 다룬다. 영화의 후반부는 그렇게 바깥 세상으로 나온 모자가 또다른 ‘갇힘’안에서 적응해가는 이야기다. 여자는 여자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급변한 환경에 혼란스러워한다. 이들은 결국 반목하고,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진다. 씻을 수 없는 상처였던 7년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살아가야 하는 어미와 달리, 아이는 “룸”을 그리워할 정돌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한다. 아이는 그러한 ‘아이다움’으로 자신의 어미를 두 번 위기에서 구해주고, 여자는 아들에 기대어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원시적인 폭력에 시달렸던 작은 방에서 조금 더 교묘하고 잔인한 세상이라는 더 넓은 방에서 살아가는 모자의 이야기, 정도로 이야기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요약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조금 더 잭이라는 아이의 관점에서 보았다. 어쩌면 브리 라슨이 연기하는 어머니 역할은 거대한 맥거핀처럼 느껴질 정도로 큰 의미가 없어보였다. 나에게 이 영화는 한 아이가 어머니와 점점 멀어지는 이야기다. 어머니가 세상의 전부였던 어린 나이의 그에겐 작고 낡은 방 정도로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진짜 세상으로 나오게 되면서, 혹은 더이상 작은 방에 갇혀 있을 정도로 어리지 않게 되면서, 그의 삶에서 어머니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줄어든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강아지와 교감하며, 하늘을 보고 잔디밭을 걷게 되면서, 그의 세상은 점점 넓어지게 되고, 그는 조금씩 덜 어머니에게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이제 어머니가 없어도 컵케잌을 만들 수 있으며, 어머니의 젖을 먹지 않고도 굶주림을 느끼지 않는다. 물론 그는 여전히 어머니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좁은 방에서 넓은 방으로 나왔을 뿐인, 또다른 ‘갇힘’과 잊지 못할 기억에 시달리는 그의 어머니와 달리, 소년은 넓은 세상을 그 자체로 받아 들이며, 갇혀 있던 작은 세상에도 쿨하게 작별인사를 건넬 정도로 담담하다. 그는 실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버텨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적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흡수하고 있으며, 스스로를 길러내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이 영화가 결코 어머니와 자식을 동일선상에 두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둘은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동반자적 주인공이 아니다. 즉, <룸>은 어머니와 자식이 점점 멀어져가는 이야기이자, 한 인간이 원초적인 단계에서 세상을 배워나가는 과정에 대한 아주 미시적인 관찰기이다.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되며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아이가 세상을 배워나가는 과정(쥐부터 강아지까지)을 성실하게 묘사하고 있음을 생각해보면 그 의미는 더욱 분명해진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잭이며 그를 연기한 제이콥 트렘블레이의 연기에 대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충실하게 이야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연기는 소름끼칠 정도로 완벽하다. 영화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은 철저히 그의 연기이고, 그의 연기가 없었더라면 영화는 아주 지루한 신파극 정도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브리 라슨이 연기한 어머니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그의 연기는 극단적인 환경과 맞물려 부족한 인간이 어머니가 되었을 때, 더이상 숭고한 모성애를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자식과 눈을 똑바로 마주보고 대화해야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모자가 다시 재회한 뒤 나누는 대화는 그래서 인상적이다.

“미안해.”
“괜찮아. 다음엔 그러지 마.”
“약속할게.”

“난 좋은 엄마가 되기엔 부족한가봐.”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내 엄마야.”
“그래, 맞아. 엄마지.”

사과하는 것은 어머니고, 용서하는 것은 아들이다. 부족함을 탓하는 것은 어머니이고, 위로하며 존재감을 확인시켜주는 것은 아들이다. 이들은 눈높이를 똑같이 맞추는 것으로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동력을 얻었다. 때문에 나는 이 영화가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한다. 갇혀 있던 방으로 돌아가 “안녕”이라는 인사를 건네는 것으로 조금 더 확실해졌다. 해피엔딩 맞다.

2 thoughts on “Lenny Abrahamson: Room

  1. 이 글 많이 좋네요. 생각이 좋아야 글이 좋은 것 같아요. 느낌, 감정이 당위가 되는 건 평소에 마음을 많이 다듬어야 하는데, 솔직한데도 그늘이 없네요.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별 의미도 없는 글인데 ^^: 영화는 참 다차원적으로 읽을 수 있어서 흥미로운 대상같아요. 여러 차원 안에서 서로 보는 시각도 다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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