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rives whom?

많은 이들이 정치인과 기업가를 혐오한다. 그들이 너무 많은 것을, 부당한 방식을 통해 가져간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갑”을 상징하게 되었고, “갑”은 “을”을 탈취하는 부정적인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들은 “지금 너무 급하다”라는 핑계를 댄다. 그들도 사실 어려우니 이해를 좀 해 달라는 것이다. 내가 지금 먹고 살기 어려우니, (나보다 조금 더 약한) 너를 약탈할게, 라고 약자에게 사정하는 척 하는 것이다.

일상 생활에서 위와 비슷한 ‘사정’을 많이 목격한다. 지하철이나 사람을 치고 지나갈 때, 뒤에 따라 들어오는 사람을 인식하고도 문고리를 잡아주지 않을 때, 새치기를 할 때, 엘리베이터에서 닫힘 버튼을 반복적으로 누를 때, 이들은 의도적으로 악한 마음을 먹고 있는, 반(反)윤리적인 악의 화신이 아니다. 이들의 표정에서 “내가 지금 급해서 (좀 봐달라)”, 혹은 “먹고 살기 힘드니 (좀 봐달라)” 정도의 절박함이 읽힌다. 실제로 이야기를 나누어봐도, “어쩔 수 없이 그랬다” 정도의 변명을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이들에게 ‘배려없음’이란, 마치 이 사회의 거짓말과 같이, 딱한 사정이 있다면 얼마든지 저지를 수 있는 선택적 윤리규정의 부분집합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철학의 형성과정은 양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개별적인 민초들의 생활습관에서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컨센서스가 발전하기도 하고, 사회적 담론을 주도하는 몇몇 소수집단에 의해 하향식으로 뿌리내려지기도 한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음은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확인이 된 바다. 구성원 개개인의 의식구조와 정치인, 자본가, 언론, 공무원 등 어젠다 세터의 철학이 상호작용을 주고 받으며 한 사회의 집단적 가치관을 형성하고, 이것이 누적되어 ‘문화’ 혹은 ‘국민성’이라고 부르는 특질로 체현된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타인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이들을 통제하고 약탈하는 “갑”이 탄생했을까, 아니면 먹고 살기 힘들다는 핑계를 대는 “갑”이 “을”을 탈취했기 때문에 “을” 역시 이러한 지배자의 가치관을 물려받게 된걸까? 전자가 맞다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고, 후자가 맞다면 이 사회의 일반적인 구성원은 지배계급에 복종하며 사는 피지배계급으로서 그 역할에 충실하게 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전자가 민주주의의 디스토피아적 가능성을 재현하고 있다면, 후자는 근대화가 진행되지 못한 사회의 후진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 어느쪽도 그리 달콤해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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